SS느낌으로 써 본 히로인들이 퇴학당할 때의 이야기 







1. 이치노세 호나미

 



-배신-



 

수많은 친구들이 나를 둘러싼다. 

 

한 겹, 또 한 겹. 나를 데리러온 선생님들에게서 막아서기 위해 벽을 만든다.

 

나에게 등을 보이는 친구들이 선생님들에게 소리쳤다.

 

“거짓말이야! 이치노세... 이치노세 양이?”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해주세요!”

 

“이치노세 양이 최하위라뇨...? 퇴학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러한 친구들의 뒤에서 멍하니 휴대전화의 특별시험 결과표를 보고 또 보았다. 

 

몇 번을 보아도 글자가 달라지진 않는다.

 

 

[이치노세 호나미 외 1人   ···   75 위 / 75 조]

 

 

그것은 3학년의 2학기 마지막 특별시험의 최종결과였다. 

 

남은 3학년생 150명을 2명씩 묶은 75개의 페어로 진행된 이번 특별시험. 

 

2학년 첫 특별시험때와 같이 2인 1조의 필기시험 점수를 합하여 조별로 순위를 매긴 후, 최하위조 2명은 퇴학을 당하는 심플한 시험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페어는 같은 학년에서만 맺어지며, 자신의 페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점.

 

비록 내 페어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리 학력이 낮은 학생이 선택되더라도 내가 만회하면 된다고... 그러니 중간은 갈 것이라 여겼다.

 

그랬을 텐데...

 

내가 속한 페어의 총점과 내 개인 점수가 같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상대와 동반퇴학이라도 노리지 않는 이상 이것은 의미불명의 행동이다.

 

이래서야 나 뿐만 아니라 나의 페어였던 학생도...

 

 

그 순간, 한 가지 위화감을 깨닫는다. 

 

휴대전화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울리는 다른 반 친구들의 문자를 보면...

 

‘다른 반에는 나의 페어였던 학생이 없다...?’

 

그렇다면 나의 페어는... 우리 반에 있었다는 뜻일까? 

 

하지만... 나 외에는 누구도... 누구도...? 

 

‘아...?’

 

한 가지 가능성이 머리를 스친다. 그렇다기보다 이게 유일한 해답일 것이다.

 

퇴학을 무마할 수 있는 권리, 프로텍트 포인트. 

 

현재 우리 반에서 그 권리를 가진 것은... 그 학생은...? 

 

머릿속에 프로텍트 포인트 소지자의 이름이 지나간다. 

 

굳이 다시 생각할 볼 필요도 없다.

 

 

그 이름은... 지난 3년, 나에게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자리 잡은 사람의 이름이니까.

 

 

가슴에 얼음덩어리가 떨어진다. 

 

싸늘하게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차디찬 눈물이 한 방울 흐른다.

 

‘그런...가? 그런...거... 였구나...’

 

고개를 돌려 그가 있는 자리를 바라본다. 

 

이러한 소동 중에도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자신의 자리에 묵묵히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크윽... 칸자키! 포인트는...? 2,000만 포인트를 쓰면 되잖아?”

 

그런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 무리야. 이미 지난번 특별시험에서도 퇴학자를 구제하기 위해 2,000만 포인트를 소모했다. 우리에게 아직... 아직 그만큼의 포인트는... 없어.”

 

탄식과도 같은 칸자키의 그런 말.

 

“그럼... 다른 반에 빌려서라도?!”

 

“그것도 무리일 테지. 현재 각반의 클래스 포인트는 아슬아슬한 격차.. 다른 반을 도와줄 이유 같은 건... 없을 테니까.”

 

결국 주저앉아버리는 칸자키.

 

그런 그의 뒤로 그제야 나와 같은 사고를 거쳐 나의 페어가 누구인지 알아채는 학생들이 하나 둘씩 속출했다.

 

“너... 아야노... 아야노 코지...!”

 

와타나베 군이 이제껏 본 적 없는 분노의 표정으로 아야노코지 군의 멱살을 잡는다.

 

원망의 말을 담아 그의 상체를 흔들어대는 와타나베 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이러려고... 이러려고 우리 반으로 온 거야? 이치노세 양은 너를... 너를...!”

 

“그만!!”

 

생각보다도 먼저 목소리가 나와 버린다.

 

‘나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아이인 걸까?’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에 의해 퇴학자가 된 이 상황에 이르러서도... 


그에 대한 부정과 비난의 말을 잠재우려 한다.

 

한 마디도 그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그제야 시험 직전, 그가 나에게 했던 ‘미안하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알고... 있었던 거구나 아야노코지 군...’

 

아마도 그는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이번 페어의 규칙을 풀어내 자신의 페어가 누구인지를 미리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계획을 감행했다...

 

자신의 행동으로 퇴학당하게 되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에게 배신당한 이 순간.

 

이상하게도... 아무런 원망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방긋 웃는다. 

 

무너져 내리지 않게 웃는다. 

 

한 점의 후회 없이 웃는다.

 

 

부디, 그에게 나의 마지막이 슬픔으로 기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것이...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이 한 점 거짓 없었다는 증거일 테니까.











2. 나나세 츠바사


 


- 증언 -




“지금... 뭐라..고?”

 

“죄송합니다. 잘 안 들리셨나보군요 선생님.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한 번 제 입으로 적나라한 언급을 꺼냈습니다.

 

“아야노코지 선배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요청했습니다. 제가... 제가, 아야노코지 선배에게 관계를... 요청했습니다.”

 

너무도 당혹스러운 진술이었을까요?

 

징계 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학생회실에 잠시 쥐죽은 듯한 침묵이 깔립니다. 

 

잠시 할 말을 잊은 듯한 교사분들과 학생회 분들을 대신해 제일 먼저 소리를 낸 것은.. 

 

“나나세!!”

 

호센 군이 성난 사자와 같이 포효했습니다.

 

“이 계집이! 무슨 개수작이야? 아야노코지가 퇴학당하기 직전이건만!”

 

확실히. 아야노코지 선배를 퇴학으로 몰아갈 수 있는 건 특별시험만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특정시기에만 가능한 특별시험에 따른 퇴학보다도, 교칙위반에 따른 퇴학이 더욱 빠르고 확실할 테니까요.

 

풍기문란, 학교명예의 실추, 불건전 이성관계.

 

학교 익명 게시판에 퍼진 아야노코지 선배와 저의 영상에 대한 명목상의 징계 사유입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저, 아야노코지 선배는... 저를 위로해주었을 뿐입니다

 

마츠오 에이치로. 저에게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낙인처럼 남은 그 이름에 오열하던 저를, 안아주었을 뿐이니까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충동적이었음에도, 그에게 몸을 맡긴 저의 행동에 조금의 후회도 없습니다.

 

그저... 저로 인해 호센 군의, 그리고 그에게 악마의 지혜를 선물한 화이트 룸의 함정에 빠진 아야노코지 선배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잠깐, 잠깐! 기다려라 마시마 선생. 나나세 녀석은 지금 위증을 하고 있어. 그렇다기보다 녀석은 오히려 피해자다.” 

 

다급한 호센 군의 그런 말에서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한 짜증이 묻어납니다.

 

“그야 당연하잖아? 남녀 간의 관계다.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모종의 사유로 나나세는 아야노코지 선배에게 좋은 감정이라곤 없어. 그렇다면 오히려 상대 쪽에서 나나세를...”

 

“호센 군.”

 

가라앉은 어조로 그를 제지합니다.

 

“당신은 지금 증인으로 이곳에 계신 거지, 제 변호사가 아닙니다. 제 감정은 제가 진술합니다.”

 




“핫! 말 잘했다 나나세. 그럼 네 입으로 말해봐라. 네가 그를 퇴학시키려 했던 이유를. 아야노코지 선배에게 네가 가진 감정을!”

 

모두의 시선이 저에게 쏠리는 것이 느껴집니다.

 

‘제가 선배에게 품은 감정... 인가요?’

 

분명 이 학교에 입학한 것은 그에 대한 원망 탓이었습니다.

 

‘그만 아니었다면... 저는.. 그리고 에이치로 군은...’

 

그런 생각을 몇 달이나 품다보니 스스로의 인격을 에이치로 군과 동일시하며 혼란까지 온 적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무인도에서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싸워왔던 겁니다.

 

스스로의 자유를 위해, 저나 에이치로 군 같은 사람이 또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 그를 보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저는 어느 샌가...

 

그렇군요. 

 

선배에게 한 번이라도 직접 말로 전했으면 좋았을 이 감정은... 

 

 

“선배는... 아야노코지 선배는 제가 존경하는 선배이자, 연모하는 선배입니다.”

 

아무런 거짓 없이 솔직한 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비록 직접 전하지는 못했지만 이것으로 그를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 나나세 츠바사 양. 지금 자네가 말하는 바의 의미를 아는 건가?”

 

징계 위원장을 맡은 마시마 선생님께서 차분히 되묻습니다.

 

“세세한 부분은 따져봐야 하겠지만... 그 말대로라면 결국, 이번 사건의 최종 책임은 자네가 지게 될 거다. 그리고 그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아.”

 

'가볍지 않다...' 분명 퇴학처분을 에둘러 말하는 것일 테죠.

 

“각오한 바입니다. 선생님”

 

흔들림 없이 저의 굳은 결의를 내보입니다.

 

오늘의 진술로 저의 미래 또한 바뀌겠지만, 이것이 제 인생의 마지막은 아니니까요. 

 

그저 이번에야말로 선배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3. 시이나 히요리




-에필로그-

 


 

교실을 뛰쳐나와 달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전력, 전심을 다한 질주.

 

체육대회에서도, 합숙훈련 때도 이렇게 절박하게 뛰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텅 빈 3학년 복도에 저의 뜀박질 소리만이 울려 퍼집니다.

 

가쁘게 차오르는 호흡을 이를 악물어가며 참아냅니다.

 

숨이... 호흡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지만...

 

상관없습니다. 

 

지금 달리지 않으면 저는 평생을 후회하고 말테니까요.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 계단을 달려 내려가려는 순간...

 

“아..?”

 

익숙지 않은 스탭에 다리가 엉켜 구르고 맙니다.

 

콰당!   쿵!   데구르르...

 

온몸을 강타하는 충격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잠시 정신을 잃은 걸까요?

 

저의 눈앞에 조금 전 저희 반 친구들의 모습이 스쳐지나 갑니다.

 

 

 

 

“가라 히요리.” 

 

류엔 군이 말했습니다.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그 녀석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이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2,000만 포인트... 결국 구하지 못 했다만,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

 

그런 그의 옆으로 알베르트 군, 이시자키 군이 나란히 섭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와 같은 이유라는 게 비장한 뒷모습에서 전해집니다.

 

저를 데리러 온 사카가미 선생님과 다른 교사 분들의 당황한 모습이 그들에 의해 가려지고, 그 틈에 망설이는 저를 이부키 양이 잡아끌었습니다.

 

“뭐하고 있어? 빨리 가! 시이나!”

 

“이부키 양... 저는.. 저는..!”

 

“바보야! 마지막까지 후회하지 말라고! 나는... 나는 단순해서 그런 거 잘 모르지만... 마음을 전하는데 자격 같은 건 필요 없는 거잖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그녀의 말이 멍하니 귓가를 맴돕니다.

 

그럼에도 그 순간, 저의 다리는 이미 주춤거리면서도 교실의 문 쪽으로 돌아서고 있었습니다. 

 

아직 특별시험 때 선생님들이 거둬간 휴대전화를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퇴학자가 되어버린 저는 물론, 다른 학생들도 말이죠. 

 

하지만...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면 그는 하굣길에 올랐을 시간이라는 것을, 

 

“잠깐, 시이나 양! 거기 멈추게!”

 

“가라! 히요리!” 

 

그렇게 저는... 저는...

 

 

 

 

“으으...”

 

눈앞의 흐릿함이 걷혀가며 정신이 돌아옵니다.

 

정신을 잃은 것은 불과 수초인 것 같지만, 그조차도 아까운 시간.

 

난간을 붙잡고 일어서려하자 온 몸에 퍼지는 통증이 느껴집니다. 

 

무릎에서는 피가 흐르는 게 느껴집니다. 

 

넘어지며 한쪽 손을 잘못 짚은 듯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나아갑니다. 절뚝이면서도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계단을 구르다시피 해서 도착한 1층. 몇몇 지나가던 학생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저를 바라보았지만 지금의 저에겐 아무런 신경도 쓰이지 않습니다.

 

건물을 나서자마자 고개를 돌려 운동장과 교문을 바라봅니다.

 

하교중인 학생들 사이로 ‘부디... 부디...’ 하는 마음으로 그의 모습을 찾기 시작합니다.

 

“아...!”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누구에게 감사드려야 하는 걸까요?

 

있습니다.

 

결코 잘못 볼 리 없는 틀림없는 그의 모습입니다.

 

저 멀리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그의 뒷모습에 울컥하고 두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 ㄴ코지 군...”

 

모기소리만도 못한 목소리.

 

떨려오는 아래턱을 악물고는 다시 한 번 소리를 냅니다.

 

“...ㅇ야노... 코지 군!”

 

안됩니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성량입니다.

 

“아야노... 코지 군!!”

 

주변과 운동장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저를 향해 돌아보았지만 교문까지 당도한 그에겐 닿을 수 없는 목소리.

 

깊고 깊게 숨을 들이킨 후 마지막으로 아무런 후회가 없도록, 하늘까지 닿아라 그의 이름을 부르짖어 봅니다.

 


“아야노코지 군~!!!!!” 

 


그것은 어쩌면... 제가 태어나던 순간의 울음보다도,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어느 순간보다도 큰 울부짖음이었겠죠.

 

“허억...허억...”

 

모든 힘을 소진하고 탈진한 듯, 그저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가쁘게 호흡을 몰아쉽니다.

 

닿았을까요? 그에게 닿을 수 있었을까요?

 

그조차도 확인해 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전해졌다면...

 

제 안에서 불타올라 터져버릴 것 같은 이 감정이 전해졌다면...

 

마지막인 이번에야 말로 제 안의 모든 마음을 그에게 전하겠노라 다짐합니다.

 

 

 

그리고...

 

 

 

저의 고도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이야기는 그와의 에필로그를 남기며 그렇게 완성되었습니다.








4. 호리키타 스즈네




-낙화-

 


 

봄바람이 불어온다.

 

예년과 다르게 3월의 초순부터 너무나도 일찍 피어 버린 벚꽃들이 바람에 휘날린다.

 

그런 아름다운 광경에도 웃음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울음도 나오지 않는다.

 

그야... 어제까지 울만큼은 이미 다 울었으니까. 

 

하다못해 미소라도 지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는 것은 지금 내가 학교를 벗어나는 버스정류장에 홀로 앉아 있기 때문이다.

 

 

퇴학.

 

다른 학교와 그 의미는 다르지 않지만, 이 학교에서는 특별시험의 탈락자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그러한 탈락자의 불명예를 쓴 채... 졸업까지 불과 남은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탈락된 나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씁쓸할 뿐이다.

 

‘3년... 전인가?’

 

그날도 벚꽃이 휘날리는 날이었다. 

 

오로지 오빠에게 인정받겠다는 독기를 품은 오만방자한 한 학생이 이곳에 내렸었다.

 

그리고...

 

지금 막 도착한 버스에 몸을 싣고 그때의 그 학생은 이제 다시 학교의 밖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남아있던 한 자리에 앉아 조용히 창문에 손을 대고 학교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새겼다.

 




이윽고 출발하는 버스.

 

우수수 바람에 흩어지는 꽃잎들에 지나쳐간 많은 학생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그야... 알고 있었다. 각오하고 있었다... 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3년간의 특별시험. 

 

다른 사람을 쳐낼 결단을 가진다면, 자신도 쳐내질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3년을 매듭짓는 마지막 특별시험...

 

3년간의 학교생활과 OAA 점수를 종합해 모든 학생들 각각에게 클래스 포인트로써의 가치를 매긴다. 

 

반 내에서의 투표를 통해 과반 이상의 이름이 적힌 경우, 해당자를 퇴학시키고 그 가치만큼의 클래스 포인트를 반에 가산한다.

 

 

비정했다...

 

마지막까지 100포인트 안팎으로 나란히 선 4개의 반에서 리더들과 우수한 학생들을 향한 비정한 결단이 솟구쳤다.

 

결단과 지지 

 

반론과 저항

 

관망과 희생 

 

광기와 체념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결론을 내린 결과가 이것이었다.

 

‘받아들여야 하겠지.’

 

이제와 나에게 후회는... 후회는... 없다.

 

그저 한 가지. 단 한 가지 나에게 남은 의문.

 

끝까지 내가 이해 할 수 없었던 그가... 아야노코지 키요타카가 마지막에 나를 지키려던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나 같잖은 동정심 때문이었다면 내 쪽에서 사양인데 말이지.’

 

그런 의문의 너머로 어느덧 다음 정류장에 정차한 버스에 승객들이 탑승한다.

 

왜였을까?

 

그저 어르신 한 분. 딱히 거동이 불편하지도, 지팡이를 짚은 것도 아닌 노인이었지만 그 분을 보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생각하기도 전에 여기에 앉으시라는 양보를 권한다.

 

‘아...?’

 

무언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로되, 내가 아닌 과거의 누군가와 찰나의 순간 대화를 나눈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의 대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지금 나의 행동과, 이야노코지 군이 보인 행동은 어쩌면... 어쩌면...?

 

 

‘그런...가? 그래서 였구나... 아야노코지 군.’

 

큰 깨달음에 작은 미소를 홀로 지어 보이며 마지막으로 그에게 닿지 못할 인사를 마음속으로 전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와 다시 만날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가 온다면 꼭 물을 것을 다짐한다.

 

오늘, 내가 찾은 이 답이 과연 정답이었는지를.

 

나는... 과연 너에게 괜찮은 제자였는지를.

 

그 때는 부디 언제가 보았던 그의 미소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런 마지막 다짐을 하는 3월의 어느 버스 안이었다.








5. 쿠시다 키쿄




-마지막 인사-

 



온 몸에 오한이 든다.

 

사시나무 떨리듯 전신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따뜻한 교무실 안에서 담요까지 얻어 뒤집어썼음에도 그런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적막한 교무실 안. 평소라면 교사들로 분주했을 교무실 안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학생간의 유혈사태가 벌어진 지금은... 다들 뒷수습에 여념이 없는 듯 나를 신경 쓸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야.., 나는 특별시험에서 탈락해 이제 곧 떠나갈 퇴학자. 소동의 관련인들은 재학생. 당연한 처사일 테지.

 

한때 나를 빗겨갔던 퇴학의 칼날이 돌고 돌아 다시 나를 찍었다...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걸까?

 

머리까지 뒤집어쓴 담요 안에서 그런 허망함을 느끼고 있자니, 문득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어... 아야노..코지?”

 

마치 유령처럼 어느 샌가 내 옆자리에 그가 자리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늘 그렇듯 종잡을 수 없다니까...

 

“많이 놀랐겠군, 쿠시다. 어쨌든 다치지 않아 다행이네.”

 

언제나처럼 무덤덤하게 그런 말을 꺼낸다.

 

“이런 말을 하게 되서 유감이다만, 퇴학 건은 정말 운이 나빴어. 믿을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너를 살리고 싶었어. 진심이야.”

 

“핫?! 뭐라는 거야...”

 

신랄하게 웃는다. 신경질적인 미소가 그 뒤를 따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만은 조금이나마 따뜻해지는 건 왜일까?

 

“됐어 아야노코지. 그런 위로 따윈 이제 필요 없어.”

 

그야 그도 봤을 테니까. 내 본성을 전교에 까발린 류엔의 뒤로 펼쳐진 그 혐오스런 눈동자들을...

 

나의 최후 앞에 펼쳐진 수십 쌍의 눈동자들. 

 

마치 어두운 밤 날아오르는 나방무늬들처럼 격하게 동요하며 나에게 비난을 쏟아내는 군중들.

 

익숙하다. 이번이 벌써 3번째 경험이니까. 

 

중학교 3학년 때도, 작년 만장일치 시험 때도.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온 세상이 나를 몰아붙이는 것 같은 이 감정은... 이제 익숙하니까.

 

그저 이번에는 정도가 심했을 뿐이다.

 

설마하니... 나에 대한 배신감에 샤프펜슬을 휘두르는 학생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으니까.

 

그런 점에서

 

“오히려 너야말로 괜찮은 거야?”

 

나답지 않은 그런 안부. 

 

“문제없어. 다친 건 내가 아니라 히라타니까.”

 

“... 확실히 그러네.”

 

나의 본성에 대한 폭로를 듣던 전교생들. 그 가운데는 양다리를 걸치며 자신의 반을 배신한 비밀을 나에게만 털어놓은 1학년생이 있었다.

 

유일하게 믿고 고해성사를 한 상대가 실은 누구보다도 위험한 인물이었다.

 

확실히... 나였어도 그 상황에선 진정할 수 없었을 테지.

 

후배가 휘두른 샤프펜슬이 얼굴에 다가오는 찰나... 이것이 나의 업보구나 생각했다.

 

마치 영원히 눈앞에 멈춰버린 것 같은 날카로운 날붙이의 앞에, 정신을 차려보니... 정말로 멈춰있었다.

 

아야노코지가... 재빠르게 그를 팔을 제압해 막아준 덕분이었다.

 

직후 그를 도우려던 히리타가 발버둥치던 후배에게 운 나쁘게 찔렸을 뿐.

 

“있잖아 아야노..코지...”

 

신기했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떨림이 잦아드는 게 느껴진다.

 

“이제 마지막이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봐도 돼?”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아야노코지는 대체 정체가 뭐야?’ 라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입이 통제를 벗어난 듯 제멋대로의 질문을 뱉고 만다.

 

“아야노코지가 했던 내 본성이 호감이었다는 말... 진짜야? 아...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아... 아야노코지는 내가 혐오스럽지 않아?” 

 

내가 어떻게 된 게 분명하다. 이 순간에 접어들어 그의 정체보다도, 그가 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더 궁금하다니...

 

정말 의외의 질문이라는 듯 아야노코지가 살짝 눈을 치켜뜨면서도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 사실이야 쿠시다. 나는 네 본모습이 더 편하다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너무나도 쉽사리 인정해버리니 오히려 당혹스럽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한다. 

 

이런 나 따위에게 호감을 가져줄 학생 같은 건... 없는 게 당연하니까. 

 

‘부정해야 해. 착각해선 안 돼.’ 

 

그렇게 계속 되뇌지 않으면 나는... 나는....

 

담요를 좀 더 깊이 뒤집어쓴다. 그가 보지 못하도록 얼굴을 가린다.

 

하지만... 떨려오는 어깨까진 가릴 수 없었다.

 

후회된다. 그와 이런 방식으로 만나게 된 것에 진심으로 후회가 된다.

 

만약 그 때, 그를 협박하지 않았더라면... 

 

1학년 첫 날, 가면 없이 내 본성만으로 모두와 시작했더라면...

 

후회, 또 후회. 그저 모든 것이 후회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아야노...코지.”

 

“응? 쿠시다.”

 

“잠깐... 잠깐 눈 좀 감아줄 수 있어?”

 

“뭐?”

 

담요의 너머로 그가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잠깐의 침묵 후 되물음 없이 순순히 내 지시를 따라준다.

 

“감았어, 쿠시다.”

 

스르륵 담요를 내려 그를 바라본다.

 

과연 순순히 눈을 감아준 그를 보자...

 

‘너무 무방비하잖아...?’

 

잠깐이지만 실소가 나온다. 

 

대체 이런 어수룩해 보이는 남자에게... 이런 알 수 없는 남자에게...

 

어째서 나는...?

 



그것은... 더 이상의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하는 나의 마지막 작별인사였다.

 

 

 

잠시 후 교무실 문이 열리고 교사들이 돌아왔다.

 

아마 그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붉어진 얼굴을 담요에 묻고 있는 이유를.

 

아야노코지가 한쪽 뺨을 스윽 매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유를.

 

나의 떨림이 잦아든 이유를.

 

그런 작은 비밀을 남긴 채 나의 고도 육성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후회하지 않을 마지막 하루가.








6. 아마사와 이치카




-뒤따름-




내게서 멀어져가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환호성을.

 

누군가는 망연자실한 걸음을.

 

누군가는 생각에 잠긴 듯한 고민을.

 

 

그러한 오늘의 주인공들 뒤로 남겨진 졸업식장의 뒷정리는 우리 2학년생들의 몫이었다.

 

“가버렸네... 아야노코지 선배.”

 

그야 알고 있었다. 

 

그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곳을 떠날 것이란 걸.

 

그에게 주어진 자유는 오늘까지란 걸.

 

이제는 다시 화이트 룸으로 돌아가 날개를 접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허탈했다. 그리고 허무했다. 가슴에 구멍이 난 기분이었다.

 

거짓말처럼 웃는 법을 잊어버린 듯 이제는 미소조차 지을 수 없었다.

 

그러한 나의 뒤로 우리 2학년 A반 아이들의 잡담이 들려온다.

 

“아아... 겨우 끝났나? 선배들의 졸업식.”

 

“크으... 이젠 우리가 이 학교의 주인인가? 난 1년 후 이 자리가 정말 기대 된다고?”

 

“주인? 너무 거창하잖아 그거?”

 

“뭐 어때? 다른 반들과의 포인트 격차도 어마무시하고, 무엇보다 이시가미 군, 아마사와 양이 있는 한 우리 반이 이대로 A반 졸업 확정 아니겠어?”

 

 

‘... 뭐라는 거야...’

 

시시하다. 너무도 시시해서 죽을 것 같다.

 

수년 전 그날. 화이트 룸의 유리벽 너머로 4기생들을 보았을 때 이후로 잊었던 따분함이 몰려왔다.

 

사실은 알고 있다. 그 따분함과 시시함을 당장에 벗어 던질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그리고 고민하는 것도 잠시뿐, 마음속의 나는 이미 선택을 내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말이지, 나도 정말 어쩔 수 없는 종자라니까?”

 

정말 그렇다.

 

닭들 사이에서 한 마리의 학으로 시시하게 살아가느니, 천 리 하늘 위 봉황에게까지 날아오르려다 그 날갯불에 불타버리는 학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그 봉황이 내가 숭배해 마지않는 아야노코지 선배라면 말이지. 

 

그렇게 마음속으로 결단을 내리자 입가에 다시 장난스런 미소가 돌아온다.

 

히힛 웃으며 돌아서는 순간, 마침 저편에서 걸어오는 이시가미 군을 발견한다.

 

“있지, 있지? 이시가미 군!”

 

언제나처럼 질색하는 표정을 보일 거라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무언가가 표정에 드러난 걸까?

 

드물게도 내 말을 경청하기 위해 멈춰준다.

 

“있잖아 이시가미 군. 나 말이야. 오늘부로 자퇴하려고 해!”

 

“...”

 

“...”

 

일순 주변에 정적이 감돈다.

 

주변에서 잡담을 하던 학생들이 놀라는 것도 잠시, 이내 농담이겠거니 깔깔 웃으며 다시 자기들의 대화를 마저 이어나간다.

 

“... 그런가? 어쩌면 그럴 거라 생각했다만.”

 

오로지 나의 사정을 알고 있는 이시가미 군만이 내 진의를 알아준다.

 

“후회는... 없는 거겠지?”

 

“응, 응! 물론!”

 

그저 그 뿐. 더 이상의 대화도 없이 그저 손만을 내민다. 

 

그에게 있어 최소한의 존중의 표시겠지.

 

“덕분에 앞으로 반이 적적해지겠군.”

 

“히히히, 뭐야~? 아쉬운 거야?”

 

말은 그렇게 해도, 마지막 악수만은 제대로 한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이야기 안 하는 건가?”

 

“아~ 아... 됐어, 됐어. 그냥 이시가미 군이 적당히 둘러대 줘.”

 

손사래를 치며 조용히 학교를 한 바퀴 빙글 돌아본다. 

 




신기했다.

 

그렇게나 따분했던 곳인데, 막상 떠나려니 그래도 약간의 소회는 생기는 것이 신기했다.

 

동시에 이 학교에 오게 된 것은 타의였지만, 돌아가는 것은 자의라는 나름의 뿌듯함이 내 안에 스며든다.

 

하지만 거기까지. 

 

감상에 잠기는 건 그 정도면 됐다.

 

망설임 없이 돌아서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무실을 향한다. 

 

후배로서, 앞서간 선배의 바로 뒤를 따라가기 위해.








7. 사카야나기 아리스




-새크리파이스-

 

 


'새크리파이스.' 다시 말해 희생. 

 

체스를 진행하는 주요한 요소입니다.

 

당장의 득실을 비교해야 하는 교환과 달리...

 

궁극적 승리를 위해 피해를 감수하고 내다보아야 하는 희생이야말로 저의 기풍입니다.

 

체스는 물론... 어쩌면 삶에 있어서도 말이죠.

 

 

 

 

탁!

 

지팡이를 짚으며 학교의 현관을 벗어납니다.

 

그 소리가 공허하게 울리는 것은 예전과 달리 지금 제 옆엔 그 누구도 함께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야 그럴 테지요.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지만, 막상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가지 않는 법입니다.

 

A반의 리더였던 때와 달리 퇴학자 신분이 된 저에겐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것이 저희 반 학생들의 마음일 테죠.

 

하물며... 그 퇴학사유가 학교에 대한 심각한 명예실추라는 대외적인 이유에서야 누구도 제게 다가오기 쉽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조용한 퇴장길도 나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에게 한 점 후회가 없다면 더더욱 기죽거나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그저...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은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그때였습니다.

 

갑작스레 소원이 이뤄진 걸까요?

 

교문 옆에 등을 기댄 채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 그를 발견합니다.

 

“이런... 이런...”

 

아련한 웃음이 지어지는 순간.

 

가슴 한편에서 북받치는 무언가를 억지로 삼키며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놀랐습니다. 아야노코지 군. 저를 기다려 주신건가요?”

 

“...”

 

잠시 저를 물끄러미 바라 볼 뿐 그에게선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그런 그의 표정에서 '어째서 그런 거지?'라는 짧은 질문을 읽어낼 뿐입니다.

 

“어째서 그런 거야 사카야나기?”

 

‘역시나인가요?’ 

 

이런 순간에도 그에 대한 제 관찰력이 유효하다는 것에 헛웃음이 나옵니다.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닐 텐데?”

 

“말해두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는답니다? 아야노코지 군.”

 

지팡이에 살짝 기대며 다시 솟구치려는 가슴속 무언가를 이번에도 억지로 삼킵니다.

 

그런 저에게 아야노코지 군이 말없이 휴대전화에 뜬 오늘 날짜의 기사들을 보여주었어요.

 

‘아야노코지 아츠오미에 대한 규탄 여론’, 

‘화이트 룸이라 불리는 시설에 대한 수사 진전 상황’, 

‘화이트 룸과 연관되었다고 혐의를 받는 정치인사들’...

 

대부분은 이미 읽었던 기사지만, 그럼에도 제가 이룬 성과를 다시 한 번 두 눈에 새깁니다. 

 

“저들은 결코 쉽게 빠져나갈 수 없을 겁니다, 아야노코지 군. 지난주 이후에 언론사에 추가로 보낸 자료의 양이 생각보다 많아서 말이죠.”

 

“너에게 이런 일은 부탁한적 없어 사카야나기.”

 

“물론. 부탁받은 적 없습니다. 강요당한 적도 없고말고요.”

 

“설마 나를 위한 일이였다고 말할 셈인가?”

 

“자의식 과잉 아니신지요, 아야노코지 군?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의도였습니다.”

 

조금은 표독스러운 그런 거짓말의 너머로... 날카로운 비수가 가슴에 꽂힙니다.

 

“... 솔직히 너에게 실망이군, 사카야나기.”

 

... 가라앉아갑니다. 

 

그의 그 한 마디에 밑도 끝도 없는 늪지에 빠진 것처럼 침몰해갑니다. 

 

동시에 세상이 빙글빙글 돌며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억지로 지팡이를 쥐며 견뎌냅니다.

 

“손익계산이 틀린 거다, 사카야나기. 명백히 손해 보는 교환이야. 그 시설엔... 너의 퇴학을 걸 만큼의 가치는 없어.”

 

‘아니...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있습니다.’ 라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알고 있었고말고요.

 

화이트 룸에 대한 폭로를 막기 위해 아야노코지 선생님께서 제게 보복을 해오리란 것. 

 

그가 예전부터 이 학교의 퇴학자들에게 미리 손을 뻗어 작업을 해놓았다는 것.

 

그리고... 학교의 보호를 받는 저에게도 여론이라는 무기는 통한다는 것. 

 

모두 다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멈추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든 것을 받아낸 것입니다.

 

이성교제를 빌미로 자신을 이용해 먹었다는 퇴학생 Y의 인터뷰.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시험 룰을 이용해 퇴학당했다는 T학생의 인터뷰.

 

그런 진실들과 함께 섞인 몇몇 유사한 날조된 증언들까지.

 

학교 앞에까지 들이친 기자분들에게 정부시설의 학교에서 학생들에 대한 정서적 학대가 이뤄졌다는... 하물며 그 주동자가 이사장의 딸이라는... 여론이 물어뜯기 좋은 이야기 거리가 던져졌습니다.

 

빗발치는 학부모들의 항의, 때 아닌 장학사의 방문, 그리고 징계위원회. 

 

그 모든 칼끝을 주저 없이 받아들인 결과가 오늘의 이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몇 번이고 말할 겁니다.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야노코지 군.”

 

이로써 그가 두 번 다시 저주받은 그곳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의 인생에 자유를 선사한다는 저의 사명이 이제야 완성되었으니까요.

 

그러니 이것은 손해가 아닙니다. 등가교환도 아닙니다.

 

그에 대한 대가가 고작 저의 퇴학이라면...

 

한 장의 종이에 지나지 않을 졸업장과 그의 해방을 바꿀 수 있었다면...

 

저의 퀸을 내줌으로써 킹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훌륭한 퀸 새크리파이스 일 테니까요.


 

 

토독...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눈가를 닦아냅니다.

 

그럼에도 이번엔 반대쪽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버립니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어떻게 해서든 참으려 했는데....'

 

억지로 막으려던 둑처럼, 한순간에 터져버린 가슴속의 무언가에 삽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흐느껴 버립니다.

 

‘아... 이제는 멈출 수 없겠군요.’

 

마치 어릴 적 첫 거짓말을 아버지에게 들켜서 혼났던 그때처럼, 어린아이와도 같이 그저 하염없이 울고, 또 울어버립니다.

 

왜 이제야 깨닫게 되는 걸까요?

 

처음엔 이 학교 자체가 저에겐 놀이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저 역시 마지막까지 남고 싶었습니다. 

 

계속... 그와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평범함을 바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저를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그가 살며시 안아주었습니다.

 

말없이 저를 끌어 안는 그의 따뜻한 가슴에...

 

흘러도 마르지 않는 눈물들을 파묻으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아이처럼... 또 여느 평범한 소녀처럼.

 

제가 놓아버린 것들에 대한 작별과 진혼의 눈물들을 흩뿌리며. 

 

그럼에도 동시에, 그를 구할 수 있어서... 

 

또 마지막으로 한 번, 저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어디까지나 다행이라고. 

 

그렇게 모든 슬픔을 쏟아내 버린 제 청춘의 어느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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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에선 볼 일 없길 바라는 퇴학이 주제라 그런지 분위기가 죄다 어두워지네. 

 

케이는 퇴학하고 관련이 없어서 비었고,


사카야나기는 다음권에서 어찌 될지 이젠 그냥 기다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