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1752078






내 능력의 일부를 아는 사람들이 듣는다면 의외라고 생각할 만한 것이 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호기심에 휘둘리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고도육성고교에 입학할 때까지 나는 그 시설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학교에 왔을 때의 흥분이란 형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것들, 지식으로만 알았던 것들. 그것들을 실제로 본 나는 신이 나서 나답지 않은 행동을 취해버리고 말았다.


바깥 세상에 익숙해진 지금도 그 본성은 변하지 않았고, 호기심에 져 메리트가 없는 행동을 해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



"아야노코지군? 듣고 있어요?"


"응... 아아, 미안. 조금 생각할 일이 있었어."



지금 나에게 말을 건 소녀는 시이나 히요리. 나의 몇 없는 친구 중 하나다. 독서라는 공통의 취미로 의기투합한 우리는 자주 도서관에서 독서 모임이나 비브리오 배틀을 즐긴다. 지금은 둘이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비브리오 배틀 : 참가자 각자가 추천할만한 책을 차례로 소개하고, 이에 대해 토론 후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을 투표로 결정하는 게임)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몇 번이나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어서 걱정했어요..."



방긋방긋 귀여운 미소를 짓는 히요리. 이 고운 미소와 방금 날 걱정해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히요리는 매우 상냥하다. 그저 상냥한 것만이 아니고, 지략도 출중하다. 희생은 어쩔 수 없다며 잘라버리는 드라이함도 갖고 있지만 본질은 싸움을 좋아하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천연소녀다. 그런 히요리에게 나는 하나의 의문을 품고 있었다.



'히요리가 화내면 어떻게 될까'



히요리가 분노를 드러내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두뇌 회전이 빨라 냉정히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주위가 도발에 넘어가 버릴 상황이라도 맨 먼저 나서서 사태의 악화를 막는다. 평소의 부드러운 성격도 있어 히요리가 화를 냈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히요리가 화를 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이 내 마음을 붙들고 놓지 않는 것이다.


라곤 해도, 나와 히요리는 친구 사이다. 사이가 좋다는 자각도 있고, 히요리와 독서하는 시간이 나는 꽤나 마음에 든다. 화내게 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이로 인해 관계가 악화되어 같이 지낼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면 매우 아깝다. 성격상 그렇게 될 가능성은 한없이 낮지만, 만약 직접 절연을 선언 한다면 나는 심한 쇼크를 받겠지. 히요리를 너무 기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화나게 한다라... 난이도가 높은 과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 호기심은 억누를 수 없다.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특기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어떻게든 해내도록 가능한 한 노력해 보려 한다.



"생각도 좋지만 너무 머리를 쓰면 피곤해져요. 이거 받아요."


"...사탕인가. 히요리 건데 괜찮아?"


"조금이라도 아야노코지군의 도움이 된다면 저는 행복하니까."



이 쓰라림을 견뎌낼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남을 화나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들을 대강 조사해 보았지만 좀처럼 적당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실행한다면 관계 수복이 불가능해지는 방법이나, 소개 사이트로 보이지만 주의 환기를 재촉하는 페이지 등만 보여 조금만 화나게 하는 방법이라는 걸 찾을 수 없다. 결국 나는 방침을 바꿔 가진 지식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지 시도해 보기로 했다.


침대 위에서 생각에 잠기길 수십 분. 어렴풋이 떠올랐다. 머리카락은 여자의 생명이라는 말이. 여성에게 있어 고운 머릿결은 큰 스테이터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때문에 여성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머리를 거리낌 없이 만지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즉, 어떠한 방법으로 히요리의 머리를 만진다면 다소 히요리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스스로 말하긴 그렇지만 아슬아슬하게 변태적인 것을 생각하고 있구나. 아니, 여성에게 조금만 미움받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상당히 이상하다는 자각은 있지만...


아무튼 계책 하나가 떠오른 것이다. 일단 실천에 옮겨보자.






시간이 지나 현재는 방과 후. 도서관에 다니는 것은 완전히 일과가 되어버렸다. 무수한 서적에 둘러싸인 고요한 공간. 그 구석의 나무 책상에 히요리가 있었다.



"안녕, 히요리."


"안녕하세요. 아야노코지군."



적당한 인사와 함께 곁에 앉았다. 히요리 손에 들린 것은 저명한 미스터리 소설. 평소와 같은 익숙한 광경이다. 반면 내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실용 서적이다.



"어라, 아야노코지군치고는 드문 책을 읽네요."


"아아, 난 사람과 관계를 쌓는 것을 어려워하니까 슬슬 개선해볼까 생각해서 사봤어."


"후훗, 정진을 잊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목표는 친구 100명이군요."



히요리는 나를 칭찬해 주지만 실제 목적은 히요리를 화나게 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자기를 기분 상하게 할 준비를 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히요리의 칭찬이 나의 마음을 푹푹 찌른다. 전부 내던지고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요동치는 마음을 어떻게든 억누르고 나는 독서를 시작했다.


그 이후로 몇 분. 나는 책을 읽는 척하며 가끔씩 히요리에게 시선을 보낸다. 목적이 있는 행위가 아닌 그저 타이밍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히요리의 머리카락을 만지기까지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왔지만, 조금 모양이 나쁘게 되어 언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고 그녀를 관찰하고 있지만 그런 편리한 타이밍 따위 존재할 리 없고, 헛되이 시간만 지나간다. 역시 이런 쓸데없는 짓은 포기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히요리에게 눈길을 주니 무슨 우연인지 히요리와 눈이 마주쳤다.



"...저기, 뭔가 용건이라도...?"


"아~ 아니, 그거다..."



이쪽을 수상하게 쳐다보는 히요리. 하지만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솔직히 불안감이 크지만, 할 수 밖에 없다.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말야..."


"네?"


"...예, 예쁜 머리카락이네."



말해버렸다. 이젠 어떻게 될까... 혹시라도 혐오의 눈빛을 보낸다면 2학년 개근상을 놓칠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가요? 일반적인 케어는 하고 있지만, 그다지 스스로 의식한 적은 없어서..."



좋아, 여기까진 세이프.



"적어도 객관적으로 보면 굉장히 예쁘다고 생각해. 바람에 머리가 흩날릴 때의 모습은 그림 같아서 아름다움마저 느껴."


"가, 갑자기 그런 칭찬을 들으니 조금 부끄러워요..."



조금 뺨을 붉히고 머리를 살짝살짝 만지는 히요리. 조금 부자연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시도한다면 지금인가.



"히요리, 잠깐 그대로 있어줘."


"에? 알았어요."



나는 약간 몸을 기울여 히요리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스륵스륵



"...저기, 아야노코지군?"


"화났어?"


"네?"


"화났냐고 물었지만."


"화나지 않았습니다만...?"


"그런가..."



스륵스륵



"화났어?"


"화나지 않았어요?"



스륵스륵



"화났어?"


"화나지 않았어요?"



......휙



"화나지... 앗.."


"걸렸구나."



전혀 화낼 기색이 없어 페인트를 넣어봤다.



"저, 정말! 심술궃어요!"


"미안, 히요리는 놀리는 보람이 있어서 무심코."


"무무... 아야노코지군따위 몰라요!"



히요리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화낼 생각인 것 같지만 대단한 미소녀가 그런 짓을 해도 그저 귀엽기만 하다. 하지만 너무 기분 나쁘게 하는 것도 내가 바라는 바는 아니다. 슬슬 사과할 때인가.



"정말 미안. 용서해 주지 않을래?"


"...반성하고 있나요?"


"깊이 반성하고 있어."


"...그럼 제 머리에 손을 올려주세요."



시키는 대로 히요리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렇게?"


"그대로 손을 좌우로 움직여주세요."


"이걸로 괜찮아...?"


"네, 그렇게 있어요."



히요리가 말하는 대로 손을 움직인다. 이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



...히요리의 기분은 좋은 듯 하니 뭐 괜찮겠지.



"아야노코지군의 손, 크네요."


"그래? 남고생의 평균 손 크기는 잘 모르지만."


"제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괜찮아요. 안심이 돼서 굉장히 좋아요."


"그럼 상관없지만..."



반대편의 손을 히요리의 손과 비교해 본다. 남녀 차이나 체격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당연하지만 내 손이 훨씬 큰 것 같다.



"모처럼이니 비교해 보죠."



히요리와 나의 손바닥을 맞대본다. 짐작대로 내가 1cm 정도 큰 것 같다. 비교도 끝났으니 손을 떼려 하자 히요리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에 얽혀 온다.



"왜 그래?"


"어... 어쩐지 이렇게 하고 싶어졌어요. 안되나요...?"


"아니, 딱히 상관없지만..."



실제로 만져보고 알았지만 히요리의 머릿결은 곱고 부드러워 손가락이 도중에 얽히는 일이 전혀 없다. 고급 실크를 만지는 듯한 느낌이다. 약간 중독될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선 책도 차분히 읽을 수 없을 테니 당분간 이대로 즐기도록 하자.






다음날, 수업을 적당히 들으며 어제의 반성을 하고 있다. 확실히 머리를 만지는 것만으로 화내는 일은 없었지만, 조금 장난치는 걸로 화내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화를 내는 것에는 강도가 있다. 어제 히요리의 반응은 화내는 것 중에서도 토라지는 것에 가까웠다. 화났을 때의 반응은 확인했지만 가능하다면 조금 더 파고들고 싶다.


그렇게 해서, 오늘의 작전은 무시다. 물론 강도는 조절할 필요가 있다. 타인을 무시하는 것은 꽤나 무례한 행위니까. 관계를 붕괴시킬 행위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히요리의 화난 모습을 보고 싶을 뿐, 상처를 주고 싶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화나게 하고 싶지만 미움 받기는 싫다니 스스로도 꽤나 제멋대로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번 떠오른 의문은 꽤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히요리에게 상처주지 않는 것을 우선하며 실행해 보자.



방과 후가 되자마자 나는 급히 도서관으로 향했다. 나중에 온 사람이 무시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우니 먼저 도착해서 히요리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평소의 자리에 앉아 빌린 책을 펼쳐 히요리를 기다린다. 곧 입구에 히요리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 모습을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이쪽을 향해서 다가온다. 벌써 양심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지만 꾹 참아야 한다.



"안녕하세요 아야노코지군. 오늘은 일찍 왔네요."


"........."


"아야노코지군?"


"......"


"들리지 않나요?"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걸어오는 히요리. 시작한 지 몇십 초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후회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히요리와 인사를 나누고 잔잔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남을 무시한다는 걸 문장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직접 해보니 이렇게까지 정신적으로 힘들 줄은...



"아야노코지군, 저에요. 시이나 히요리에요ー"



히요리는 나와 책 사이로 손을 내밀어 팔랑팔랑 위아래로 흔든다. 평소라면 여기서 집중이 끊어져 상대의 존재를 알아채지만 나는 양심의 비명을 억누르고 모르는 척 한다.



"...혹시 일부러 그러는 건가요?"



역시 히요리도 무시당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는지 뚱하게 뺨을 부풀리고 이쪽을 노려본다.



"...과연, 그런가요 그런가요. 그럼 저도 생각이 있어요."



부루퉁한 채 입을 열고는 히요리는 검지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쿡쿡



...볼을 찔렸다.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쿡쿡 찌른다.



"어머... 아야노코지군의 뺨. 생각 이상으로 탱탱하네요. 후훗, 귀여워요."



쿡쿡 조물조물



간지럽다. 역시 이래선 책을 읽을 상황이 아니다. 애초에 마음이 아파 책을 읽을 상황이 아니었지만.



"반응하지 않으면 계속 해버려요? 단념하고 저와 얘기하세요."



조물조물 문질문질



찌르는 걸로 그치지 않고 볼을 집어 가볍게 당기거나 주물대는 등 히요리는 완전히 내 얼굴을 장난감으로 놀고 있다. 간지러움과 묘한 부끄러움에도 나는 버티길 계속한다.



"...아직 꺾이지 않나요?"



5분 정도 계속 놀아 만족했는지 히요리는 손을 뗀다. 하지만 나의 침묵을 깰 생각은 여전한지 다음 계책을 생각하고 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히요리는 머리의 리본을 풀었다. 그리고 내 머리의 일부를 손에 쥐곤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어떻게 하면 귀여워질까~"



아무래도 내 머리에 리본을 장식할 생각인 것 같다. 역시 그건 부끄럽지만 무시를 결심한 나에겐 일체의 저항이 허락되지 않는다. 저항한다는 것은 곧 히요리의 존재를 알아채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아, 귀엽게 되었어요."



히요리가 내 눈 앞에 내민 손거울을 보면 2개로 갈라진 앞머리가 리본으로 고정되어 마치 벌레의 촉각처럼 쑥 튀어나와 있는 내가 있었다... 위험해, 전혀 안 어울려. 만약 다른 누군가에게 보인다면 지독한 괴롭힘을 당할 것이 뻔하다.



"모처럼이니 사진도 찍어요. 이시자키군이나 류엔군에게 보내면 분명 기뻐할..."


"정말 미안했다. 그것만은 그만둬 줘."



마침내 나는 꺾였다. 류엔도 문제지만 이시자키는 역시 곤란하다. 좋든 나쁘든 깊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녀석에게 이런 걸 보낸다면 끝장이다. 내일이면 나의 치태가 2학년 전체에 퍼져 있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후후훗, 제 승리네요."


 

내가 꺾인 것이 기뻤는지 히요리는 만족스러워 한다.



"이제 질렸으면 더는 저에게 심술부리지 마세요. 아야노코지군과 이야기할 수 없으면 외로워요."


"알았어, 두 번 다시 안 그럴게."


"그럼, 오늘 독서는 쉬고 둘이서 잔뜩 이야기하죠. 무시 같은 걸 했으니 이 정도면 벌충의 범주지요?"


"가해자는 나니까, 희망이 있다면 뭐든 들을게...... 그, 화내지 않는건가? 무시 같은 걸 했다고?"


"화내지 않아요? 아야노코지군은 다른 사람에게 악의를 갖고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아닌 걸 알고 있으니까."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 걸까. 전혀 싫증내지 않고 이런 말을 해주는 소녀를 일부러 화나게 하려 하다니. 이미 내 양심은 구멍 난 에멘탈 치즈로 변해 버렸다. 실험은 중지하자. 더 이상 히요리를 휘말리게 할 수 없다.



"잠깐 기다려줘. 자퇴 수속을 밟고 올게."


"안된다구요?"






그리고 다음날. 어제의 내 발언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던 히요리에게 '어제 뭐든지 한다고 말했죠?' 라고 몰려, 희망대로 점심을 함께 했다. 식사를 마치고 잡담하며 교실로 돌아가던 중 한 학생과 마주쳤다.



"여어, 아야노코지. 히요리와 밀회인가? 절조가 없구나. 놀랐다고."


"점심을 같이 했을 뿐이다. 이상한 억측은 그만둬."



류엔 카게루. C반의 폭군이다. 또 귀찮은 것에 얽혀버렸다.



"핫, 너희가 방과 후 매일같이 만나는 건 알고 있다니까? 이걸 밀회가 아니라고 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맞아요 아야노코지군.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휩쓸리지 말아줘 히요리..."



때때로 히요리의 행동을 읽을 수 없을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이다. 이렇게 근거 없는 트집을 잡아도 메리트는 없을 텐데.



"호오... 이름으로 부르는가. 생각보다 깊은 관계 같구나. 이거이거 더욱 수상해졌다고 어이."


"너는 히요리는 물론 호리키타마저 이름으로 부르겠지."


"평소 이름으로 부르는 나와 평소 성으로 부르는 네놈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이에 관해서는 류엔이 옳다. 조잡한 트집이지만 적당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아 반박할 수 없다.



"크큭... 침묵이냐. 하지만 너희가 그렇게까지 깊은 관계가 된다면 나로서도 방관할 수 없지. 히요리에게 정보를 캐내거나 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순 없다고."


"그런 일 하지 않아요. 저희들은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남녀관계를 이용해 정보를 빼내는 건 옛날부터 쓰이던 첩보활동이다. 히요리라도 신용할 수 없다고. 당분간 아야노코지와의 접촉 금지령을 내리는 것도 머리에 넣어두지 않으면 안되겠지."



그렇게 말하는 류엔이지만 그 얼굴에는 나쁜 미소가 떠올라 있고, 가늘어진 눈은 나를 응시하고 있다. 뭐, 단순한 농담이겠지. 진심이라면 나로서는 유감이고 최악의 경우엔 실력행사도 불사하겠지만 단순한 농담이라면 신경 쓸 필요는───






빠직!






"아...?"



문득 귀에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 나와 류엔은 순간 얼굴을 마주 보고 소리의 근원을 향해 눈을 돌린다. 거기엔 균열이 간 복도의 유리창. 허나 무언가 부딪힌 흔적은 없다. 충격이 가해진 점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균열이 퍼져있는 것이 아닌 여러 균열이 규칙성 없이 유리 전체에 퍼져있다. 갑자기 유리가 깨졌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 원인을 고찰할 새도 없이 우리를 덮친 것은 무서울 정도의 냉기. 아니, 이건... 살기인가?



"류엔군."



제 9지옥 코큐토스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무서운 목소리에 나와 류엔의 몸이 경직된다. 그것은 주위가 흔들릴 정도의 무시무시한 살기, 그 중심에 있는 것은.. 히요리, 인가?



"지금 발언은 무슨 뜻이죠?"


"...아니, 방금 것은..."


"저기, 류엔군."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지금, 저는 냉정함을 잃으려 하고 있습니다."






"...농담이다. 진심이 아니었다고."


"그 말에 거짓은 없습니까?"


"거짓말이 아니다, 맹세하지. 말해도 들을 생각 없었겠지. 방금 것은..."


"그런가요, 그럼 됐습니다."



류엔이 농담이라고 밝힘과 동시에, 발했던 살기는 빠르게 수습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을 받았을 때의 감촉은 아직도 몸이 기억하고 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듯한, 혹은 천적을 앞에 둔 초식동물이 된 듯한 감각. 화이트룸에 있을 때도 방금 같은 위기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자, 슬슬 갈까요 아야노코지군. 서두르지 않으면 수업에 늦어버려요."


"아, 아아, 그래."



손에 이끌려 나도 히요리를 따라간다. 그러는 도중 히요리는 잠시 멈춘다.



"류엔군."


"...뭐냐."


"설령 농담이었더라도... 두 번 다시 그런 말을 하지 마세요."






"두 번째는 없으니까."






류엔과 엇갈리는 순간,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0.1초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속, 나와 류엔은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결코 히요리를 화나게 해선 안된다는 것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