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카루이자와 씨 잘 안 놀아주지 않아?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미안해, 라고 대답하면서도 나는 언제나 키요타카를 우선시하고 있다.

내가 반에서 떠있는 키요타카와 실은 몰래 사귀고 있어서, 이미 갈 때까지 갔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까.


축제 때부터, 나는 위기감을 느끼게 됐다.


키요타카가 내가 아닌, 아마사와 씨에게 마음이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몇번이나 초조한 마음을 가졌다.


그 얼굴의 상처도, 류엔이 아마사와 씨를 돕기 위해 1학년에게 맞을 거라고, 벌레를 씹은 것처럼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왜, 키요타카는 내가 아니라 류엔에게 말한건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그런 일이 없어졌다.

키요타카가 아마사와 씨에서 나로 전환했다, 라고는 할 수 없다.


처음부터 나만을 좋아했듯이, 나의 어리광을 대부분 들어주었고, 내가 응석부리고 싶을 때나 안기고 싶을 때는 확실히 남자친구로 대해주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키요타카가 진정한 의미에서 나에게 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최근에서야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키요타카를 좋아하기 때문에, 키요타카가 나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남자친구를 해주고 있다고 생각해 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어쩔 수 없잖아?


키요타카는, 내게 쑥스러워하거나, 그 근처도 일절 하지 않으니까, 여자친구인 내가 불만스러운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


만약, 키요타카가 진심으로 반하고 있는 것이 아마사와 씨이고 내가 그 대신일 뿐이라면, 금방이라도 미칠 것 같다. 발광하며, 키요타카에게 심한 말을 해 버릴 것 같다.


아마사와 씨의 일이 억울하지 않다고 하는 건 거짓이다. 솔직히 내가 아마사와 씨를 밤중에 원망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키요타카가 가끔씩 우울하게 먼 곳을 보고 있을 때는, 아마 그 아이를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쓸쓸한 분노와 함께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져, 그 여자를 원망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래도 대체로 충실하게 했어.





키요타카가 있는 힘을 다해 나를 좋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아마사와 씨와 같이, 자신안에 나의 존재를 크게 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알았으니까.


다른 어중이떠중이들과 달리 나만을 키요타카가 특별하게 해주는 것 같아 기뻤어.


좀더 좀더, 키요타카 속에서 나의 존재가 커지고, 좀더 키요타카 속에서 아마사와 시의 존재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몇번이고 생각했다.


싫은 여자, 라고 나도 생각하지만, 원래 키요타카의 여자친구는 나야. 아마사와 씨 따위가 아니야.


그래서 우리는 분명히 잘 지내고 있다. 나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행복한 망상이라는 걸 알게 됐어.










키요타카가 감기에 걸렸다.


굉장히 드문 일이었지만, 여러가지 있어서 몸이 망가지는 일은 나도 있었다.


지옥 같은 중학생 시절.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싫어서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현관 앞에서 토한 적도 있다. 학교 화장실에 틀어박혀 그 위에서 양동이로 물을 뒤집어쓴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비겁한 집단 괴롭힘에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등교거부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키요타카도 그렇게 궁지에 몰릴 때가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 녀석의 간병을 하고 있었다.


나는 키요타카의 방을 따뜻하게 하고, 시원한 배게(アイス枕)로 머리를 식히고, 약을 먹여 잠들기 편한 자세로 만들어 주었다.

수건으로 키요타카의 단련된 몸도 닦아주고, 몇 번이나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 입혀 주기도 했다.


은혜를 베풀고 싶다든가, 빚을 만들겠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친구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키요타카에게 계속 있을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나세 씨에게 간병 포지션 같은 건 빼앗기고 싶지 않고.


"....키요타카, 괜찮아?"


키요타카는 드물게 꽤 괴로워 보였다.


얼굴을 붉히고 눈을 허옇게 뜨고 휘청휘청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아왔다.


"키, 키요타카....!"


기뻤다.

키요타카 쪽에서 나를 구해주는 것 같았다.


키요타카가 한순간 나를 보고 웃었다.


그렇게 웃는 모습은 매우 인간다운 미소로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내가 키요타카를 인간으로 만들어준 것 같았다.


"아아...."


"....앗"


쿵, 하고 심장소리가 커진다.

키요타카의 눈망울에, 뭐 약간 무기력함이 있고, 감기의 영향으로 힘이 빠져, 분명 나를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데도, 나에게 말해 주었다.


어린아이처럼 미소를 띠고 나를 보는 키요타카가 있다. 나도 그런 키요타카를 보고 행복을 음미하며 웃었다.


"아아, 거기 있었구나────"


"....응, 계속 있을 거야"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다시 한 번 따뜻하게 심장소리가 커졌다.










"이치카"










"...."


커지던 심장소리가 빠르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뭔가 이상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키요타카에게 있어서, 나의 세계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바라던 곳"따위가 아니었다.


잔인한 구분.

나는, 나에 대한 마음이 커져서, 아마사와 씨에 대한 마음이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런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카테고리가 달랐다. 키요타카는 나와 아마사와 씨를 명확하게 구분짓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이 만발해 있는 꽃밭에서 떨어져 있는, 아무것도 없는 평원을 손에 넣고 나는 비참하게 혼자 기뻐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눈을 뜨니, 감기는 완전히 나았다.


"....케이?"


어느샌가, 간병해 주고 있었을 케이는 방안에서 없어져 있었고, 핸드폰의 화면을 보니『돌아갈게』라고 쓰여져 있었다.


"뭐, 그렇겠지"


커튼을 열자 이미 아침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하룻밤을 새우면서까지 병자를 돌볼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오늘은 일요일.

현재 특별시험의 정보는 없다.

어쩌면 12월 하순에 행해, 그것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겨울방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크리스마스인가..."


문화제가 시작되기 전에, 나는 케이와 둘이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약속했었다.


항상 신세를 지고있는 케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뭔가 사야겠네.

또 하트형 목걸이 같은 걸 주면 혼날 것 같고, 그렇다고 작년처럼 감기약 같은 걸 주면 따귀 맞을 것 같으니까.


그때 내 방에 인터폰이 울렸다. 케이가 돌아왔나 싶어, 나는 방의 모니터를 봤다.


"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그 녀석은 기숙사 로비의 전자 잠금장치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아야노코지냐』


"....왜 네가 여기 있는거지?"


『사카야나기 이사장이 학교에 불러서 말이야. 우연히 너에게 근황이라도 물어볼까 싶어서 찾아왔다. 들어가도 될까?』


"잠금은 풀게. 문화제 이후네, 마나부"


『고마워. 가능하면 오늘 내가 네 방에 방문한 일은 스즈네에게는 말하지 말아줘』


"그래"


호리키타 마나부가 사복차림으로 나를 찾아왔다.

기숙사의 잠금을 풀고 안으로 불렀다.


잠시 후, 마나부가 내 방 앞가지 온 것 같아서, 노크를 했기에 안으로 들였다.


"오랜만이네, 아야노코지"


"아, 미안. 나 어제까지 감기여서 말이야. 마스크를 써줘"


"미안하네. 나은 직후에 와서. 나중에 올까?"


"아니 모처럼 왔으니까. 있어도 상관없어"


학생에게 판매되고 있는 마스크를 한 장 건네주어 안에 들였다. 안경을 밀어 올리고 귀에 마스크를 쓴 마나부는 조심히 신발을 벗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사카야나기 이사장에게 볼일이 있다는 건 츠키시로랑 관련해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츠키시로, 라기보다는 화이트룸이야"


"...."


설마, 마나부의 입에서 화이트룸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카야나기 이사장에게 들은 건지, 자력으로 조사해 낸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마나부, 너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대악에 다니면서, 사카야나기 이사장으로부터 이 고등학교에 관한 일의 일부를 맡고 있다. 라고 해도 보수는 나오니까 아르바이트 같은 거지"


"화이트룸의 이야기는 사카야나기 이사장한테 들은거야?"


"들었다고 해도 단편적인 얘기다. 너와 아마사와 이치카, 츠바키 사쿠라코의 출신 시설로, 불법적이고 위험한 영재교육을 하는 시설로 알고 있어"


"대충 그런 느낌이야. 그럼 그 남자는 질리지도 않고, 화이트룸에서 무슨 계획 같은 걸 진행하고 있는건가?"


"....그 남자. 그건 네 아버지가 맞는거지?"


"그래"


화이트룸을 안 이상 숨길 필요는 없겠지. 오히려 외부와의 연락이 끊기고 있는 가운데, 마나부 같은 존재는 매우 귀중한 정보원이 된다.


"네 아버지는, 돌아온 아마사와 이치카를 이용해 진정한 천재를 만들려 하고 있다.


"진정한 천재....?"


"그래. 적어도 5기생 중에는, 츠바키 사쿠라코에 필적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여자야. 아야노코지 선생님으로 불리는 남자는, 그녀를 중심으로 이 일본을 삼키려 하고 있다"


"...."


벌써 그 단계까지 간 건가.

내가 화이트룸으로 돌아갔을 때 실행하는 줄 알았는데.


"나는 화이트룸 직원과 사카야나기 이사장이 연결이 되어 독자적으로 접촉해, 내부 정보를 아주 조금 알고 있다"


"그 남자가 그 방에서 뭘 하고 있는거지?"


"────실험이야"


마나부는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을 순간 망설이며, 나에게 숨김없이 이야기해 주었다.


새로 돌아온 5기생과 교육 중인 6기생에게, 내가 받아온 프로그램과 똑같은 방식으로 교육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 5기생 이후 학생들의 뇌가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인체실험에 가까운 수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만약 나보다 더 성공한 사례가 나온다면 그 데이터를 가지고 일본 정부를 위협해 화이트룸을 합법화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실패하면, 실패하고 폐인이 되는 것은 5기생 이후의 학생이니까, 어차피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획에 차질이 생길리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 이야기가 만약 사실이라면.


"이치카는....그 교육은 받고 있다는 거야?"


"....그래. 아직 아마사와 이치카의 생존은 확인되고 있지만, 그래도 상당히 어려운 상황인 것 같아. 이대로는 앞으로 일주일도 못 버틴다고 하더군"


화이트룸에 인권을 통용되지 않는다.

일본 헌법도 적용되지 않으며, 그 남자가 정한 규칙이 그 방의 법이다.


화이트룸에 있는 아이들에게 거부권을 없다.


"....나 혼자 가더라도, 그녀를 도울 수 없어. 화이트룸의 정체가 들어날 경우엔 놈이 안고 있는 일본 정부 일부를 통째로 적대하는 거니까"


"마나부. 너는, 왜 그렇게 화이트룸의 아이들을 신경쓰는거지?"


"그들을 실제로 만나고 왔으니까. 그리고 생각했다. 이대로 화이트룸이 합법화 되었을 경우의 일본에 미래는 없어. 화이트룸에서 태어난 소수의 천재들에 의해 일본을 기능할 수는 있겠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탈락자와 똑같이 취급된다"


"...."


"지금의 노인세대 일본인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그들의 시대가 끝난 뒤에는 분명히 일본은 떨어지겠지"


마나부의 고찰은 거의 들어맞았다.

저 남자도 앞으로의 미래가, 앞으로의 아이들의 인생이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닐 것이다.


지금의 일본 정부에도 그 남자와 비슷한 사상의 소유자는 썩을 정도로 존재한다.

지금의 노인 세대의사람들이 생애를 마칠 때까지의 일시적인 안녕을 위해서, 앞으로의 젊은 세대를 희생시키려 한다고 마나부는 말했다.


사실, 그게 아니라면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는 일본에서, 화이트룸을 합법화하는 이유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 아이들을 구하는 건 앞으로 일본의 미래를 구하는 일과도 연결 돼"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나는 이 학교에서 외부에 간섭을 할 수 없어. 너하고 사카야나기 이사장 두 사람에게서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들을 수 없고"


"...."


"────하지만"


나는 마나부에게서 이유를 찾고 있었다.


계속 화이트룸과 싸우는 이유를.


제3자로부터 듣고, 협박받는 것으로 간신히 화이트룸과 싸울 의사가 정해졌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치카가 망가지게 둘 것 같냐"


"나와 함께 싸운다면 이 고등학교 생활을 모두 버리게 되는거야"


"...."


눈을 감고 생각한다.


"나는 그냥 이야기로 네가 들어줬으면 했을 뿐이야. 강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기까지 화이트룸의 내부 상황을 알아버린 이상 네게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지금 화이트룸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들려주기도 했어"


"마나부"


놈의 말을 막았다.


어쨌든, 마나부 나름대로 나나 화이트룸의 아이들을 생각해 이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겠지.


만약, 마나부가 전해주지 않았다면 이치카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듣고 싶다"


"그래"


아니, 이렇게 듣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이치카를 위해서만 싸우는 동기를 마나부가 만들어 주었다.


"내가 이치카를 돕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괜찮은거냐?"


"그래. 무슨 일이든 상관없어. 괴로운 일이라도 고통스런 일이라도, 이치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어"


"아야노코지....그건...."


"────마나부"


"...."


"나는 여기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분명 평생 후회할 거야. 최고 걸작으로 불리면서 여자애 하나 못 구했어, 평생 고통스러울거야"


마나부가 하고 싶은 말은 알고 있다.

나도 아마, 마나부와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겠지.


"나는....가능하다면, 내게 맡겨주길 바랬다. 네가 스즈네와 함께 A반으로 졸업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었어"


"...."


마나부는 괴로운 듯이 쥐어짜내 듯 소리를 냈다. 진심으로 후배의 미래를 걱정하는 남자, 학생회장으로서 적합한 인격체라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아야노코지 키요타카"


마나부가 곧게 나의 눈을 응시해 온다.

이제 답답한 공기는 견딜 수 없다.


빨리.

네 입으로.

내가 할 일을 말해줘.


"너도 알 거야. 이 학교 학생들은 어떤 이유로도 이 학교를 떠날 수 없다. 동아리 활동 이외의 학생이, 휴학기간이라고 하고, 외부에 나갈 수는 없어. 그런 건 알고 있지?"


"그래. 휴학하고 학교에 다시 나오는 그런 짓은 할 수 없어"


"오래 걸리는 싸움일거야. 일주일이나 그 정도로 끝나지 않겠지. 그리고 당연히 사카야나기 이사장도, 네 사정을 알더라도 너를 외부에 내보내는 허가를 절대 내주지 않을 거야"


"단언하는거냐"


"사카야나기 이사장에게 들었다. 아야노코지 군은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이 학교의 학생으로 있는 한 이 섬에서 내보낼 수 없다고"


"....이 학교의 학생으로 있는 한, 인가"


"그래"


요컨대 화이트룸을 쓰러뜨리러 갈 테니 학교를 잠시 쉬게 해달라는 이유로 휴학하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카야나기 이사장은 나의 입장을 자세히 알고 있다. 그러니, 나만 다른 학생들과 달리 편애하는 짓을 할 수는 없다는 건가.


동아리 활동도 하고 있지 않으니, 집안 불행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외부에 나갈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그것을 할 수 있다면, 여기에 있는 학생들은 외부에 마음대로 나가게 될테니까.


"어떤 이유로도 나를 외부에서 내보내지 않겠다고 한거지?"


"그래, 여기 학생으로 있는 한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은 있어"


"...."


"화이트룸의 일을 우리 어른들에게 맡긴다는 선택은 없은거냐?"


"없어. 그 남자는 나 밖에 말리지 못할테니까"


"그러냐. 난 네가 이 선택지를 절대 선택하길 바라지 않았다.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겠지. 네 주변 사람도 불행해질 거야. 그리고 아마사와 이치카 자신도 울 것이다. 누구나 예외없이 베드엔딩으로 만들어버리는 악인이 될 수도 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마나부가 다시 한 번 강하게 타일렀다.


"그래도 괜찮은거냐?"


"괜찮아"


생각도 하기 전에 먼저 말이 나왔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헤매거나 하지 않는다. 그렇게 결정했다.


"밖에 나간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아마사와와 함께....지옥에 떨어질지도 몰라"


"지옥, 인가"


상관없다.


그렇다면 내 손으로, 이치카를 지옥의 밑바닥에서 끌어 올려 주면 될 뿐인 이야기.


"아마사와와 함께 있는 것이, 인생에 지옥이 될지도 몰라"


"상관없어. 이치카와 함께 있는 것이 지옥이라고 한다면, 내겐 천국 따윈 존재하지 않아도 좋아"


"훗.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하나도 안 변했구나. 아마사와는 분명 울 거야. 네가 울리는 거다. 너를 말려들게 한 나를 분명 원망하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이치카는 내가 행복하길 바라니까, 나에게 학교에 남으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대로 자신이 그 남자에게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울면서 실컷 매도당해도 좋다.

이치카가 나를 말려들게 한 것을 비난한다면 내가 말려주마.

애초에, 내 사정에 이치카를 말려들게 한 거니까.


"꽤 감정적이게 됐구나, 아야노코지. 제멋대로인 남자로 성장하고 있어"


"시간버리지 말고 빨리 말해 줘"


내 말에 힘이 다한 듯 마나부가 반웃음을 짓고 있었다. 기분 탓일까.


내가 분명 이렇게 나올거라고 확신했는지 입가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럼, 지금 당장 자퇴 신청을 해라"


"역시, 그거냐"


마나부가 할 말을 알고 있었다.

밖에 나가고 싶으면, 이 학교 학생이 아니면 된다.


이치카가 망가지기까지 일주일. 사카야나기 이사장은 자퇴 이외의 이유로, 나의 외출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마나부가 단언했다.


"이곳의 학생이라는 신분을 버리면 너는 외부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화이트룸으로 끌려가기 전에 우리 측에서 보호하지"


"...."


사실 이게 제일 위험했다.


마나부의 대 화이트룸 세력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곳에서 보호받는다면 언제라도 화이트룸과 싸울 준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자퇴한다는 것은.


"고교생의 아야노코지 키요타카는 모두 버려라. 친구도, 후배도, 선배도, 적도, 애인도, 은사도,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라와라. 그게 화이트룸 아이들을 구하러 가는데 있어서 네가 이 싸움에 참가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다"


"...."


즉, 내가 자퇴한다는 것은.

이치카와 다른 화이트룸 생들 이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싸우라는 것이다.


"나는 오늘 밤 8시까지 이 학교에 머물 작정이다. 이제 12시간도 안 남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지"


"밤 8시까지, 인가"


"가능하다면, 네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나의 선배로서 후배가 무사히 A반으로 졸업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남자에 대한 대항세력 중 한 사람으로서의 생각은, 화이트룸과 일을 벌인다면 내 힘이 필요한거지?"


짓궂은 질문이라고 말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마나부는 나의 그런 오만한 대사에 얼굴을 찡그리기는 커녕 오히려 고급스럽게 웃었다.


마나부는 나를 전력으로 하고 싶지만, 내가 졸업해주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사카야나기 이사장이 나를 밖에 내보내지 않는 진짜 이유는, 내가 화이트룸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의 고교생으로서 졸업해 주었으면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네가 그렇게까지 화이트룸을 생각해주는 줄은 몰랐어. 조금,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다. 고마워, 마나부"


"고맙다는 말을 들을 이유는 없어. 내 맘대로 하고 있을 뿐이니까"


"그래도야. 네가 움직이는 동기가 앞으로의 일본을 위해서라고 해도, 이치카의 사정을 내게 이야기하고, 내가 선택을 하게 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네게 갚지못한 은혜를 느끼고 있어"


"....너, 정말 아야노코지냐? 캐릭터가 너무 변해서 누군지 모르겠어"


"....한 소녀에게 배웠어"


나에게도 남들만큼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고독한 소녀가 전해주었다.


그래서 분명 나는, 간신히 이 1개월동안 남들처럼 감정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12시간까진 필요없어.

나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나는,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었을까.

간신히 멈춰서서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오 주위를 둘러본다.


눈 앞에는 낯이 익은 케야키 몰이 펼쳐진다. 그 케야키 몰도 가까워진 크리스마스를 위해 빛나고 있었다.


조금, 나는 맥이 빠졌다.


이런 때 정신을 차려보면, 나도 와본 적 없는 장소에서 뛰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연애 드라마나 만화에서는 그랬다.

케야키 몰 부근 공원 가로등에 기댄다.


"....하아. 추워"


예절이 없다고, 호리키타 씨가 보고 있으면 말했겠지.


"벌서 1시간이나 지났구나"


시계를 보니 이미 저녁 7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신을 차려보니 1시간이 넘었다.


지금까지 읽어 온 소녀만화나 연애 영화라면 이런 때, 히로인은 미아가 되거나 한다.


히로인과 주인공은 사소한 마찰로 말다툼이 가열되면서, 급기야 서로 평소에 쌓아두던 불만까지 터뜨리고 만다.


주인공의 말에 상처받은 히로인은 주인공의 방을 뛰쳐나간다.

정신없이 달려나가고, 정신을 차려보면 여주인공은 낯선 장소에 도착한다.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으면 필사적인 표정으로 찾아 헤매던 주인공이 찾아준다.


그리고 약간의 말다툼 끝에, 맺힌 감정이 풀린 두 사람은 수줍은 듯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하핫"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일은 없었다.

있을 수 없었다.


"아하하, 역시 그렇겠지. 역시 그렇잖아....아하핫....아하하하핫...."


부서진 듯이 웃기 시작했다.

이젠 달리는 데 체력을 다 써버려서 웃지 못해야 한다.


어째서일까.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텐데, 내 입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역시....그랬어, 알고 있었잖아. 역시, 키요타카는.....아하하"


소리를 내고 보니, 그것은 나의 특기인 허세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하하....하하핫....하핫...."


부서진 듯, 말라버린 듯, 메마른 목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학생들의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상했다. 개중에는, 내 사정을 눈치챘는지, 흥미 반 동정 반 같은 시선을 보내온다.


"....키요타카"


사실 조금 기대하고 있었어.

키요타카가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얼굴로 땀범벅이 되어 나를 찾아오기를.


땀범벅이 되어, 여느 때와는 달리 필사적인 얼굴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미안 케이. 내가 좀 이상했어. 쓸데없는 말을 해서 네게 상처를 준 걸 용서해줘』라고 키요타카 말해준다.


나는 울면서, 키요타카의 뺨을 힘껏 때리고, 그리고는 키요타카의 가슴 속으로 뛰어든다.


뛰어다닌 탓에 땀냄새가 풍기는 키요타카의 냄새를 맡으며, 나는 키요타카의 가슴속에서 실컷 울어준다.


그리고 조금 침착하게, 나는 소중한 미소를 보인다. 그것으로 용서해준다.


요즘은 키요타카도 사람다운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키요타카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나만의 특권이다.


거기서 엔딩곡 같은 것도 나오면 완변한 정도의 화해.


하지만 그런 건 나의 망상.

기대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체념하고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옆이 튀어오른 갈색머리의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키요타카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보일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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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으로 나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