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려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일기예보에서 눈은 오늘 밤 11시부터라고 했잖아?


전혀 믿을 수 없잖아, 곤란하네,


칸자키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서로, 광장 중앙에서 대자로 누워 있었다.


머리가  흔들린다.

입 안도 찢어져, 모래맛과 철맛이 섞인 맛이나 기분이 바느다.


"....어이, 살아있냐. 칸자키"


"....네가 주먹을 약하게 해줬으니까. 뭐 죽을만큼 아프지만"


"크크, 그러냐. 그 정도로 입을 놀릴 수 있는 정도면 멀쩡한거네"


다행히, 감시 카메라는 이곳에 없다.


나와 칸자키가 문제로 삼지 않는 한 문제가 되지 않고, 칸자키가 호소해도 정학처분인 이 녀석이 신용받을 가능성은 낮다.


아무리 내 행동이 나쁘다 해도 말이야.


"나는...."


칸자키가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하늘을 올려다본 채 말을 걸어온다.


놈은 입술이 찢어진건지, 아픈 듯 보이는 검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뭐, 때린 건 나지만.


"아직 납득하지 못했다. 이치노세에게 상처를 주고, 거기서 또 모든 것을 버려두고 도망가려는 그 녀석을 나는 용서할 수 없어"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게 아니다. 애초에 이건 아야노코지의 문제니까"


"....그래.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건 없는 거야. 나는 너나 아야노코지처럼 합리적으로 움직일 수 없어. 나는 감정적으로 움직이니까"


"크크, 이치노세 못지 않게 성가신 놈이네"


"그건 피차일반이잖아. 너야말로 납득할 수 있어? 내가 할 만한 얘기는 아니지만, 아야노코지에게 맡기고, 자신은 멀리서 좋아하는 여자의 행복을 바라기만────"


무슨 소릴 하는걸까 이 바보는.

내가 그렇게까지 성인인 줄 아는거야?


"크크,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네. 별로 상관없어. 애초에 승부도 안 되고, 내가 여자를 두고 승부라니, 그런 찌질이 같은 짓은 안 해"


"....억울하지 않은거냐? 나는 분해서 견딜 수가 없어. 나라면 이치노세를 슬프게 하지 않을거야. 누구에게도 상냥한 그 녀석은 나에게 태양과 같은 존재니까"


"핫, 그거야말로 네놈이 말하지 말라고. 아야노코지의 옆에 이치노세가 있다해도 그런 바보 같은 사람을 보고 이치노세가 웃는다면 그걸로 된거잖아? 자기가 정해놓고 이제와서 미련하게 잡으려하지 마라, 패배자가"


"너무 말이 심한데"


하지만, 칸자키가 그런 복잡한 생각으로 이치노세를 맡긴 아야노코지는 오늘 완전히 사라진다.


아야노코지는 카루이자와나 이치노세, 히요리나 사카야나기, 나나세나 다른 여자들을 모두 돕는 주인공이 아니라, 아마사와 이치카 한 사람을 도우러 가는 남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치노세의 자리는 확실히 비어 있겠지.


"크크, 그래도 이치노세에게 잔뜩 미련이 남아있다면 차라리 일이 다 끝나고 노려보는게 어때? 비교적 실연 직후라면, 이치노세가 넘어갈지도 모르잖아"


"──그렇지 않아. 이치노세는 앞으로도 쭉 아야노코지밖에 보지 못할테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그렇다면 칸자키에게 잘못은 없다.

제대로 뒤처리를 하지 않고, 멋대로 사라져버린 아야노코지를 이치노세가 원망해야 한다.


슬슬, 여기서 끝낼까.


누군가가 이런 모습을 보게 되면, 또 엄청 성가시게 될 것 같으니까.


"류엔"


"아?"


"보답은 받지 못하겠네──서로"


"크크, 그럴지도"


나는 그런 칸자키를 뒤돌아보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일부러 배웅해주러 온건가. 너희들"


"...."


"마나부. 왜 이 녀석들도 데려온거야?"


"따라와서 어쩔 수 없었어"


장소는 학원섬 외부 방문객용 주차장.

나는 자퇴서와 약간의 음식과 갈아입을 옷이 든 배낭만 가지고 있다.


마나부는 아무래도 고등학교 졸업 후에 면허를 딴 것 같아, 꽤 좋은 차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차 옆에 우리가 서 있었다.


나는 아픈 입가에 반창고를 붙이고, 한숨을 내쉬는 마나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옆에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나구모

이 학교의 학생회장.


그리고, 또 한 사람은....


"...."


"그런 얼굴 하지 마, 호리키타"


"웃기지 마. 너 때문에 이쪽은 클래스 포인트가 줄어든다고. 미안한 얼굴이라도 지어"


"끝까지 자기 걱정인가"


"당연하지, 아야노코지. 스즈네는 너랑 같이 A반으로 졸업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고? 네가 멋대로 빠지면 곤란하잖아"


"너도 배웅하러 온거냐. 나구모"


기분이 나빠진 여동생을 옆에서 놀리는 듯, 나구모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나구모와 스즈네에게는 우연히 발견되었다며, 마나부는 어깨를 으쓱하고 있었다.


어이, 이 학원섬.

사실 외부 보안 엄청 허술한 거 아니야?


"뭐, 너한테는 여러가지 당했으니까. 마지막쯤은 얼굴 좀 보여줘"


"....나구모, 왠지 너 변했네"


"──────────"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나구모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내 말 한마디가 그만큼 정곡을 찌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을 반쯤 벌린 것이 조금 웃겼다.


"변했다고 말한다면 너도 그렇잖아. 문화제나 무인도 때에 비해 뭔가 굉장히 사람다워졌는데?"


"꼭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 같네"


"응. 로봇 같은 느낌이었지. 호리키타 선배도 그렇게 생각하죠?"


"나구모 말이 맞아. 아마사와 이치카의 영향이 크겠지만"


마나부도 함께 나를 그렇게 평가했다.

뭐지, 나 녀석들한테 놀림 받을 만한 짓을 했었나.


"....일단, 뭐. 나는 방식을 바꿔보려고 해. 적어도, 정정당당한 실력의 고교로"


"학생회장인 너는 별로 볼일 없잖아"


"그 학생회장을 간단히 쓰러뜨린 네가 말하면 비아냥거리는 걸로밖에 안 들리는데?"


"나 혼자의 힘이 아니야. 거기 있는 호리키타 스즈네나, 지금은 없지만 류엔이나 키류인 선배의 힘도 있었기 때문이다"


"훗. 뭐 됐어, 그런 셈 칠게"


그렇게 말하며 나구모는 나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

갑작스런 행동에,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악수해줄 수 있지? 아야노코지"


"...."


"너에게 여러가지 폐를 끼친 나와 악수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여러가지로 나를 깨닫게 해줬으니까"


"나구모"


"마지막쯤은, 선배에게 꽃을 달아줘"


여느 때처럼 속셈이 없는, 천진난만한 미소로 나구모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단단히 손을 잡는다.


앞으로 나구모가 어떤 식으로 학교를 바꿀지를 모르지만, 분명 지금의 나구모라면 잘못된 곳으로 가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이 정도네. 이번엔 스즈네의 차례야"


"...."


대화에 들어오지 않고 가만히 보고 있던 호리키타가 입학초와 비슷한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너를 보내고 싶지 않아. 난 류엔 군만큼, 너한테 상냥하게 할 수 없는걸"


"...."


"그래도....아마사와 양과 같이, 아야노코지 군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도 갖고 있어. 뭐, 전부 남겨두고 도망가는건 화나지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구모도 마나부도, 그리고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호리키타 스즈네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다.


"내가 여기서 가지 말라고 하면, 넌 여기 남아줄거야?"


"알고 있잖아"


"....그렇겠지. 너는 항상 무사안일이라고 말하면서 이럴 때는 완고하네. 나 혼자서 멈출 수 있다면, 카루이자와 양이나 류엔 군이 실패하지 않았겠지"


"....잠깐만,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왜 카루이자와랑 류엔의 이름이 나오는거야?"


"아까, 케야키 몰 앞에서 울고 있는 카루이자와 양이 류엔 군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어. 그나마 본 사람이 나여서 망정이지, 그 덕분에 네가 자퇴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


류엔이 짊어지겠다고 한 건 그런 것이었나.

내가 사라진 것에 충격을 먹은 사람들의 분노를 모두 떠맡겠다고 한 것이다.


류엔이 왜 그렇게까지 해주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류엔에게 어리광을 부려 전부 놔두고 왔다.


눈앞에 있는 호리키타도 예외가 아니다.


"....뭔가 개운한 표정을 하고 있네"


"너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읏, 울것 같다니....그런...."


사실, 누가 봐도 호리키타가 울 것 같은 것은 분명했다.


"나는, 계속 너에게 인정받고 싶었어"


"──────────"


"네 옆에 나란히 서서, 발목을 잡는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호리키타 스즈네로서, 네가 보았으면 하고 바랬어"


고백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호리키타는 그럴 생각은 없겠지만, 스도에게 이 말을 하면 틀림없이 착각하겠지.


"....그래서, 마음대로 사라지려 하는 너한테 화를 내고 있어....내게....내게 아무말도 하지않고, 제멋대로 버리고 가는 네가...."


"...."


"버리지 마, 아야노코지 군"


순진한 소녀가 서 있었다.

봄방학 때, 마나부가 졸업할 때의 호리키타 그 자체가 거기에 서 있었다.


"여기서 나가는 거지, 아야노코지 군"


"그래, 그럴 생각이야"


"나도────────"


"뭐....?"


"나도, 너를 따라가고 싶다고 말하면....데려가 줄래?"


정말 놀랐다.


아니, 류엔이 전부 짊어진다고 말해줬을 때보다 더 정말 놀랐다.


이런 호리키타는 본 적이 없었다.

A반 졸업을 놔두고 나를 따라간다니, 그런──────


"너는 이 고등학교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을거야"


"오빠. 저는 지금 아야노코지 군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끼어들지 마세요"


"....우헤에. 여동생 무셔"


보다 못한 마나부가 중재했지만, 호리키타는 그런 존경하는 오빠의 말을 잘랐다.

나구모는 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지금의 호리키타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나부의 말대로야. 너는 여기서 A반으로 졸업해야 해. 그렇지?"


"...."


"아직 이 고등학교에서 네가 해야 할 일은 있을거야. 너는 먼저 학생회장이 돼. 그리고 류엔이나 사카야나기에게 이겨서 A반으로 졸업해라....그게 지금의 내가 호리키타──아니, 스즈네에게 바라는 거다"


"──앗"


일부러 이름으로 불렀다.

이럴 때, 마나부가 있는데도 윗이름으로 불러 비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한, 거지"


"그래. 만약 A반으로 졸업하고 다시 만난다면, 나는 스즈네를 인정하겠어"


"취소는 안 받을거야. 자기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질거지?"


"물론이지"


"그걸 어긴다면 어떻게 되는지는 말 안해도 알겠지?"


벌칙이 있는거냐.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애써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리키타는 마지막에 크게 한숨을 내쉬고, 나의 얼굴을 봐왔다.


"A반으로 졸업하고, 그래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컴퍼스형으로는 안 끝날거야"


"더 위가 있는건가....가능하면 용서해────"


"──약속, 한거지?"


뭐지.

어딘가 데자뷰를 느꼈다.


그래. 호리키타 스즈네는 이런 녀석이다.

지기 싫어하는 여자.

내가 이렇게 말하면, 반드시 거기에 부응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해 올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없어진 C반을 제대로 통솔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케이는 이제 아마 기능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자퇴한 것을 기뻐할 쿠시다는 더욱 호리키타를 압박할 것이다.

내가 없어진 학교에 코엔지는 흥미를 잃을 것이고, 챠바시라도 협조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문제아 투성이인 반을, 지금의 호리키타는 혼자서 A반으로 이끌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나에게는 더 이상 의지할 수 없다.

혼자서 류엔이나 사카야나기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꼭 A반으로 졸업할거야. 그러니, 너도 자신이 할 일을 제대로 해"


"....그래. 기대할게"


나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호리키타는 아직 기분이 좋지 않아 울먹이고 있었지만, 마나부가 그런 공기를 끊으라고 나에게 말했다.


"아야노코지. 자퇴한다는 것은 절대로 이 고등학교로 돌아올 수 없다는 거다. 물론 연락도 금지. 그래도 괜찮은거지?"


"그래, 이미 결정한 일이야. 그리고 고마워 마나부"


"감사는 필요 없다. 끝이 아니니까. 너한테 싸움은 이제부터잖아?"


툭, 하고 마나부의 주먹이 내 가슴을 가볍게 눌렀다.

아마사와 이치카 한 사람을 돕는 것은, 그 이외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고, 마나부가 충고해 온다.


"이제부터 너는 지금까지의 아야노코지 키요타카가 제일 경멸할 만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야 해. 아마사와 이치카나 다른 화이트룸 생을 위해 눈앞에서 괴로워하는 인간을 내버려두는 선택도 해야 할 거다"


"그래, 지금 그걸 하고 있는 중이니까"


"십을 버리고 백을 구하는 합리주의자가 아닌 하나를 지키기 위해 만을 버리는 것도 요구될 거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을 지옥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 넌 그 지옥에 발을 넣으려 하고 있다"


"알고 있어"


마나부가 충고해 주었지만, 난 지금부터 이치카가 있는 곳으로 갈 거다.


"....게다가, 이치카와 약속했으니까"


"약속?"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마나부가 뒷좌석을 열고 배낭을 넣으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차를 타지 않은 것도 오래된 것 같다.


나는 적당히 뒷자석에 필요 최소한의 짐만 싣고 조수석에 타려고 했다.


그 때였다.


"아야노────키요타카 군"


"....뭐야?"


마지막으로 호리키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의 이름을 부른 것에 대해 대답했다.


조금 전의 나구모와 같이, 스즈네도 또 한손을 내게 내밀어왔다.

나는 그런 그녀의 하얀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앞으로의 서로의 건투를 빌기 위해.


"제발 무사해줘"


"너야말로. 꼭 A반으로 졸업해"


"누구한테 하는 소리야. 너도 열심히 실수하지 마"


다시 한번 강하게 손을 잡았다.

그때 호리키타 스즈네가 처음으로 나를 향해 웃어준 것 같았다.


쓴웃음이나 뭔가 나쁜 일을 꾸밀 때 웃는 것은 본 적 있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기하네. 너의 그런 얼굴을 볼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어"


"그래?"


"그러고보니, 너를 그런 식으로 만든 아마사와 양의 공적이 크네"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럼 잘 있어. 스즈네"


"잘 가, 키요타카 군"


마나부는 여동생에게 특별한 말 없이 운전석에 탔다. 나구모는 나와 스즈네의 악수를 보고 무엇인가 생각했는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시동이 걸린다.

차 안에 있는 네비게이션의 화면이 켜진다.


그것을 마나부가 조작해, 어딘가의 장소로 연결하고 있었다.


"여기가 대 화이트룸 세력이 있는 곳이야?"


"그래. 화이트룸의 위치에 대해서는 짐작하고 있어. 지금부터 이동해 너를 더한 멤버로 화이트룸을 괴멸시킨다. 그걸로 이 싸움은 끝나. 그뿐이다"


"....끝까지 의지하고 있을게. 마나부"


"훗. 설마 네게 의지 받을 날이 오다니. 선배로서 보답할 수 밖에 없네"


"아, 그리고 너한테 건네주고 싶은 게 있었어"


"건네주고 싶은 거....라고?"


"이거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뒤에 있는 배낭에서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지 않아도 짐작한 것 같았다.


"필요없어. 네가 가져야 할 돈이잖아"


"그렇지 않아. 내가 가지고 있는 프라이빗 포인트를 사카야나기 이사장에게 부탁해 돈으로 만들어왔어. 대 화이트룸 세력의 협력자금으로 써줬으면 해"


뭐, 푼돈이지만, 인건비 정도는 될 테니까.


스즈네에게 프라입시 포인트를 줘도 좋겠지만, 그 경우. 내가 자퇴한 후에 스즈네의 포인트가 늘어난 것을 본 반 녀석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C반 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돈은 졸업생인 마나부에게 줄게.


"....그런 얘기라면 받아두지. 그걸로 괜찮은거지, 아야노코지?"


"그래. 화이트룸을 부수러 가자"


마나부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출발했다.

사이드미러를 보니 스즈네가 우두커니 서서 이 차를 지켜보고 있다가 나구모와 함께 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창문에서 한쪽 손만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뒤에서 이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두 사람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이 날, 정말로 고도 육성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잘 있어, 스즈네.

나의, 첫번째 친구.



♢♢♢♢♢♢♢♢♢♢♢♢♢♢♢♢♢♢♢♢



"....이제 차는 보이지 않아. 스즈네"


나구모 학생회장이 옆에서 그렇게 말한다.

알고 있다.


나는 그를 배웅했다.

게이트 밖에서 오빠의 차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키요타카 군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먼저 갈게. 눈도 내리기 시작했으니까, 너도 몸이 추워지기 전에 돌아가"


나구모 학생회장을 마지막에 그렇게 말하며 신경을 써주며 먼저 돌아갔다.


이걸로 진짜 나 혼자.

내일부터는 그에게 의지할 수도 없다.

나 혼자의 힘으로, 반을 위로 올려 졸업하지 않으면, 키요타카 군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오빠의 차가 진짜 안 보이게 됐다.

키요타카 군을 태운, 오빠의 차가.


잘 버텼어.

잘 했어, 나.


"────────────앗"


모든 힘이 빠진 듯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키요타카 군은 정말로 가버렸다.


"....앗....아"


찬 하늘 아래인데도 내 눈에는 엄청나게 뜨거운 무언가가 치솟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손으로 눌렀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은 알고 있는데, 누군가가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필사적으로 참았다.


"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서 나는 혼자 울었다.

키요타카 군이 아마사와 양을 선택해, 혼자 싸우러 가버렸다.


그것을 보고, 조금 아마사와 양이 부럽다고 생각해 버린 것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나는 분명──그를 좋아했다.


그게 아니라면, 반 친구의 퇴학이 슬프긴 해도, 이렇게 얼굴과 가슴을 움켜잡고 울지는 않는다.


"....엣....응"


코를 훌쩍거렸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추워졌다.


하지만 기숙사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가 없어진 기숙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와 이야기할 수 없다.

이제 그와 싸울 수 없다

이제 그와 만날 수 없다.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

나와 키요타카 군은 이제, 사귈 일도 없다.


내가 A반으로 졸업해도 그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애초에 키요타카 군에 대해서 아는 게 없으니까.


만약 내가 그 상황에서 고백했더라도, 분명 키요타카 군을 가버렸을 것이다.


그 역시 아마사와 양에게 『첫사랑』을 했으니까, 누구도 말릴 수 없다. 될 리가 없다.


슬프게도, 괴롭지만, 나는 이 고등학교에서 키요타카 군 옆에 다시는 설 수 없게 되어버렸다.


눈이 그치길 바랐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혼자 우는 나를 빨리 방으로 돌아가게 하듯, 전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야노코지 키요타카가 자퇴했다.

이 뉴스는 순식간에 전교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다.


2학년 A반의 리더, 사카야나기 아리스는 그 말을 듣고 전의 아야노코지처럼 빈 껍데기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2학년 D반의 리더, 이치노세 호나미는 그럴 리가 없다고 울부짖고, 나와의 1년 후의 약속은 어떻게 된거냐고 발광해, 반을 혼란시킨 것 같았다.


3학년 A반의 리더, 나구모는 왠지 침착한 모습으로 그것을 듣고, 나구모 옆에 있는 아사히나는 엄청나게 동요한 모습으로 나구모의 표정을 가만히 보고 있던 것 같다.


1학년 B반의 리더, 야가미 타쿠야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묵묵히 수업만 받았다.


1학년 D반의 리더, 나나세 츠바사는 그 뉴스를 듣는 순간, 어디론가 뛰쳐나가, 그대로 학교에서 보이지 않게 됐다.


그리고, 2학년 C반의 리더, 호리키타 스즈네는 혼란스러운 반을 제어하고, 마치 다른 사람처럼 반을 침묵시키고 A반을 목표로 하겠다고 단언했다.


한편, 2학년 B반도.


"아, 아야노코지가 퇴학이라니 농담이지!? 어, 어이! 알베르트랑 류엔 씨도 그렇게 생각하죠!?"


"oh...."


"....류엔. 너 왜 그렇게 침착한 거야?"


예상대로, 아야노코지의 퇴학은 모두에게 큰 영향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내 주위에 있는 바보들이 시끄럽다.


카루이자와와 나, 그리고 나와 아야노코지의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던 칸자키는 이 일을 미리 알고 있었으니까, 특별히 동요는 없을 것이다.


아니, 버려진 카루이자와는 몰랐었나.

어쨌든 이미 사라진 놈에게 뭐라해도 어쩔 수 없다.


"시끄럽다 송사리들. 아야노코지가 멋대로 도망쳤을 뿐이야. 우리와는 관계없어. 언제까지 떠들거냐"


나의 그 말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B반 녀석들은 내 말을 듣듯이 아야노코지의 화제를 반에서 꺼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쉬는 시간은 복도가 시끄러웠다. 누구나가 아야노코지의 퇴학에 대한 화제를 접하고 있었다.

저건 못막지.


역시 짊어지는 건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새삼 후회한다.


그리고 하루가 끝나고 방과 후가 되니 아야노코지의 화제는 없었다는 듯이 B반은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뭐, 우리들 이외에는 특별히 아야노코지와 깊은 관련도 없었던 것 같으니까, 그렇게 신경 쓸 것도 아니었나.


아야노코지가 자퇴한 것에 의해, C반의 클래스 포인트는 마이너스 100이 되었다. 문화제때에 그룹 1위를 차지해 아야노코지가 획득한 클래스 포인트는 133. 그것이 갑자기 증발해버리니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치노세의 반과는 상당히 차이가 나 있기 때문에, 스즈네네가 D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아니 다른반 애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가 신경 쓰이는 건──


"히요리"


"....류엔 군, 인가요?"


혼자 교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 전, 사카가미로부터 아야노코지의 자퇴를 들었을 때에 B반 녀석들은 거의 다 동요하고 있었지만, 히요리는 그런 기색도 없었다.


제일 동요할줄 알았는데.


"이젠 한가한거냐? 친구가 많이 않아서, 심심할텐데"


"무슨 일로 오셨나요? 특별히 시험 통지도 없었을텐데"


"좀 어울려라. 사고 싶은 책이 있어"


"엣....류엔 군과, 말인가요?"


"아? 뭐냐,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거냐?"


"아뇨....특별히 없습니다만....네, 특별히 일정은 없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갑시다"


히요리는 특별히 싫어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내 옆을 나란히 걸었다.


나는 적당히 읽고 싶은 책이 있으니까, 그 밖에 뭐든 추천을 해달라고 화제를 주었다. 히요리는 아야노코지에 관한 일이라도 들을 줄 알았는지 놀란 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거낙요, 류엔 군. 지금까지 방과 후에 저에게 놀러 가자고 한 적이 있었나요?"


"크크, 그래서 한 말이야. 심심풀이다. 그 심심풀이 상대로 골라줬으니까, 솔직하게 놀아라"


"엄청나게 거만하네요. 그렇게 말하면 처음 보는 사람한테 나쁜 사람이라고 오해받을 걸요?"


"오해고 뭐고 사실인데? 난 친구가 없는 네놈을 노리고 이렇게 맘대로 데리고 있는 거니까 말이야"


"...."


히요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나를 따라와 케야키 몰의 서점을 적당히 둘러보고 있었다.


"....왜, 아야노코지 군을 언급하지 않는거죠?"


"아?"


"궁금하지 않나요....? 제가 아야노코지 군의 퇴학에 반응을 보이지 않은 이유"


"별로. 랄까, 아직 아야노코지에게 미련이라도 있는거냐?"


"...."


딱 맞았는지, 히요리의 시선이 약간 아래로 내려간 것 같았다.


초조한 가슴을 억누르며, 적당히 그 근처의 책을 골라 화제를 만든다. 히요리는 그런 나의 의도를 읽고, 그 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조금 스포일러를 할 것 같은 설명도 있었지만, 책의 화제로 들어가면, 히요리는 멈추기 어려워지니까.


"아야노코지 군은 잊고 싶지 않아요"


잠시 후 나와 대화가 끊기자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류엔 군은 어떤가요?"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지"


"후훗. 그렇죠...."


겨우 이야기할 마음이 생겼는가 싶더니, 히요리가 입 밖에 내고 있었다.


"사실 왠지 그런 생각이 들긴 했어요. 아야노코지 군이 자퇴할 거라고"


"....이유를 물어봐도 되냐"


"근거는 없습니다. 그냥 육감이에요. 왠지 아야노코지 군은 카루이자와 양보다 아마사와 양에게 마음이 간 것 같았으니까"


그런 이유로 아야노코지의 자퇴를 예상하고 있었다면, 그냥 점쟁이나 그 근처를 직업으로 하는 게 좋겠네.


히요리는 쓸쓸하게 웃으며 내 얼굴을 봐왔다.


"정말 저는 아야노코지 군에게 눈길 하나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냐"


그 기분 알지, 라고 말할 뻔해서 빠르게 입을 억제했다. 히요리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개의치 않고 그대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네가 지금 데이트하고 있는 건 나잖아. 아야노코지 같은 건 잊어버리고 빨리 책 소개나 해줘"


"────────────────"


히요리가 그런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뭐, 자각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녀석, 같은 표정을 지으면 나라도 상처받는데.


다음 순간, 히요리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훗, 아하핫! 아하하하핫! 데, 데이트 할 생각....이었나요! 아하핫....하하하하하핫!"


"....너무 웃잖아"


이마에 핏대를 올릴 뻔했지만 어떻게든 참는다. 히요리는 나를 보고 울먹이며 계속 웃고 있었다.


"류, 류엔 군이....! 아하핫! 그, 그런 말을 하다니....아하하하하핫! 너, 너무 기습이잖아요....!"


"...."


히요리가 토하는 듯 웃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뭐하는거야, 이 녀석들이라고 하는 듯한 시선이 왔다.


어이, 슬슬 웃는 거 그만두지 않을래?

주위에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고, 슬슬 그만둬주지 않으면 내 정신에 금이 갈 것 같아.


"헉....헉...."


정말로 괴로운 듯, 히요리는 너무 웃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잠깐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그녀의 뺨에서 넘쳐흘러서 그치지 않았다.


"....어라, 죄송해요. 이상하네요, 류엔 군이 웃겨서....눌물이 멈추지가 않네요"


"...."


"죄송, 해요....금방, 멈출, 테니까"


"....히요리"


"어라.....왜"? 정말 안 멈춰요. 어떡하죠, 류엔 군"


왜 자신이 울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번에, 울고 싶을 때는 어설프게 하지 말고 제대로 울어대라고 한 것은 나였다는 것이 생각났다.


한동안 그대로 방치해 뒀더니 완쾌되었는지, 눈가를 문지르고 있었다.


"죄송해요....소란스럽게 했네요"


"갑자기 웃어놓고, 눈물은 멈추지 않고, 정서 불안이냐?"


"으으. 실례예요, 드래곤보이. 따지고 보면 류엔 군의 센스 없는 개그에 빠진 탓이니까"


"그거 너무하지 않아?"


빵 터지는 시점에서 아니잖아.

하지만 울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까보다 훨씬 개운해 보였다.


"....혹시, 제 기운을 차리게 해주시려 그러신건가요?"


"응? 무슨 소리냐 자의식 과잉 여자. 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그렇죠. 류엔 군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죠"


쉽게 긍정된 것에 화나 나는 건 왜일까. 뭐, 어쨌든 울음을 그쳤다면 그걸로 됐겠지.


쌓여있다가 어느 순간에 터지는 게 제일 위험하니까.


"그래도, 류엔 군에게 그런 마음이 없다 해도, 이렇게 울어서 왠지 상쾌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칫...."


그럼 됐다.

이걸로 내가 염려하고 있던 것은 끝났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히요리는 마음을 일단 정리해 준 것 같다.


"어라? 어디 가시나요? 류엔 군"


"돌아간다. 이제 여기 볼일이 없으니까"


목적은 달성했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히요리를 남기고 서점을 나가려고 할 때였다.


뭔가가 나를 붙잡았다.

교복 자락이 뒤에 있는 여자에게 잡혀 있었다.


"아? 뭐하는 거야, 히요리"


"....저기"


조금 쓸쓸한 듯 눈을 가늘게 뜨고 히요리의 얼굴은 나를 보고 있었다.


"데이트, 하는 거 아닌가요? 왜 맘대로 돌아가려 하는거죠?"


"........크"


"류엔 군?"


"크, 크크크, 크크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하하하핫....!"


이번에는 내가 참을 수 없게 되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설마 그걸 핑계로 도망갈 길을 막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히요리는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보지만, 그런 그녀에게 한마디 사과를 했다.


"크크, 그래. 그렇지. 내가 꼬셔놓고 내가 맘대로 가는 건 잘못이네. 미안하다, 히요리"


"정말. 그러면, 평생 여자친구 생기지 않는다구요?"


"피차일반 아니냐. 아아, 아야노코지 녀석도 불쌍하네. 이 대역을 내가 하게 두다니"


"네? 무슨 소리예요. 류엔 군 따위가 아야노코지 군을 대신할 리가 없잖아요. 그 개그는 재미없어요"


그런 말을 하니 가볍게 진심으로 받아쳐졌다.

네네, 하고 그 자리에서 적당히 흘려보내고, 나는 그 후 시간에 서점과는 다른 장소에서 히요리와 함께 아야노코지를 잊듯이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있었다.


히요리도, 아야노코지를 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까지나 반의 독재자로서 억지로 그것을 시킬 뿐이다.


히요리도 아야노코지를 잊어버리기 위해 계속해서 나에게 책 토크를 해주었다.


여자의 장황한 이야기는 정말 귀찮다고 생각한 적은 몇 번이나 있지만, 히요리에게는 처음이었다.


못 당하겠네,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 또한, 아야노코지를 잊듯이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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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노세 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