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하얀 천장, 하얀 벽, 하얀 책상에 하얀 침대.

 

방도 복도도 욕실도 교실도 모든 것이 새하얀 세상.

 

균형감각을 잃을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나는 균형을 잡으면서 그 복도를 필사적으로 달린다.

 

“하아....! 하아....!”

 

달린다.

달린다.

달린다.

오로지, 이 하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하지만 뒤에 있는 하얀 옷을 입은 남자들에게 쫓겨, 나는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직전에 잡혔다.

 

“놔....놓으라고!”

 

가끔 꾸는 불쾌한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화이트룸에서 나가고 싶어 버틸 수 없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벗어나려 한 적도 여러번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이 세계에 계속 얽매여 있는다.

 

모든 것을 제한받아 왔다.

모든 것이 한정되어 왔다.

 

자유라는 자유는 모두 빼앗겨 목욕과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시간동안 감시당하면서 살아온 15년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남자아이를 삶의 보람으로 삼으며 기를 쓰고 살아남았다. 그것만 손에 넣으면, 분명 그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나는 퇴학했어.

그와 떨어져버렸어.

 

절대 헤어지고 싶지 않았는데.

 

화이트룸에 돌아오자마자 검사를 받아야 했다. 고도 육성 고등학교에서 수준낮은 수업이나 생활을 보내왔기 때문인지, 나의 수치는 전성기에 비해 큰폭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그것에 위기감을 느낀 어른은, 나에게 아야노코지 키요타카와 똑같은 커리큘럼을 받게 했다.

 

그와 재회하는 날을 꿈꾸며, 쭉 그것을 버텨왔다. 다른 6기생 이후의 아이들이 폐인이 되어 가는 가운데,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기위해 필사적이었다.

 

선배를 만나는 그날까지.

 

“....”

 

만날 수 있어?

 

이렇게 하면 정말 선배를 만날 수 있어?

 

나는 선배를 그 학교에 남겨두고 왔는데,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어?

 

“싫어....싫어어어어!!”

 

한번 생각해내니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자신의 방에서 발광했다.

 

아야노코지 키요타카와 같은 인간이 되어도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배는 오지 않는다.

 

나는 혼자 쓸쓸하게, 생애를 이 하얀 방에서 마치게 되겠지

 

 

♢♢♢♢♢♢♢♢♢♢♢♢♢♢♢♢♢♢♢♢

 

“....앗!”

 

끔찍한 악몽에서 눈을 떴다.

 

이제야 잠에서 깨어났다.

내 이마와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송송 맺혀 있었다.

 

그를 만나지 못하고 그저 힘들기만 했던 시험을 치렀던 1개월이 트라우마로 변한 걸까.

 

“하아....하아....”

 

오랜만에 그 꿈을 꿨다.

 

정기적으로 계속 꾸게되고, 그 이후는 더 이상 두 번 다시 그런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고 재확인한다.

 

알몸인 모습의 나는, 꿈속에서 자고 있는 침대안을 살핀다.

이때 딱딱하고 따뜻한 물체를 만진다.

 

“앗....”

 

그 행복한 것을 안아, 단번에 평온함과 안심을 얻었다.

 

단련된 가슴에, 내 가슴이 짓눌려졌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매우 만족스러운 기분이 된다.

 

“다행이야....”

 

그게 꿈이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는 이렇게 옆에 있어줘.

 

난 그걸로 충분해.

 

“으응, 앗....이치카?”

 

“아, 미안. 깨워버렸나?”

 

“아니....벌써 아침이니까....랄까, 뭐야? 너 땀 엄청난데”

 

“아하하....어제 심했으니까~그거 떄문인 것 같은데?”

 

“있잖아....내가 퇴근길에 녹초가 됐는데 하고 싶다고 한 건 이치카였잖아?”

 

“그래도....요즘 전혀 상대해 주지 않았고....”

 

“아, 네네. 미안미안. 미안해”

 

그는 다정하게 나를 안아준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

아니, 실제로 흘렸을지도. 눈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그는 조금 초조한 듯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치카? 미안, 힘들었지. 떨어질게”

 

“기, 기다려....!”

 

“응?”

 

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 것에 그가 무언가 착각한 걸까, 내게서 팔을 떼려고 하고 있었다.

 

싫었다.

 

그의 온기가 사라지는 것이 싫었다.

 

그의 온기가 사라진 후에, 다시 한번 그 악몽을 꾸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다.

 

“부, 부탁이야....방금 무서운 꿈 꿨으니까, 조금만 더 안아줘....?”

 

“애냐”

 

“으, 으으으....안될, 까?”

 

“아니, 안 되는 건 아니야”

 

“....고마워”

 

그에게 둘러싸인다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고 무엇을 생각했는진 모르겠지만, 그는 내가 울음을 그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상냥한 손이 좋다.

조금 전에는 그렇게 무서웠는데, 그가 만져주자 순식간에 떨림이 진정되었다.

 

 

 

“그때부터 8년인가. ᄈᆞ르네, 키요타카”

 

 

 

“어떠려나. 이치카도 앞으로 2, 3년이면 아라사(アラサー30세 전후의 사람)의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으, 그런 말은 좋지 않아. 키요타카도 이제 아저씨 다 됐잖아”

 

여전히 그는 섬세함이 없다.

뭐, 이상한 곳에 기를 쓰지 않는 것도 그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화이트룸 괴멸로부터 8년.

나는 24살이 되고, 그는 25이 되어 있었다.

 

 

 

나는 눈이 쌓이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옆에서 손을 잡고 있는 이치카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의 일본이네”

 

“라고 해도 2주 만이지만”

 

“조금 더 그쪽에 있어도 괜찮았을까나”

 

“그쪽도 충분히 춥잖아”

 

공항 밖으로 나와 추위를 느끼며, 나와 이치카는 택시를 잡았다.

 

뉴욕으로 2주 출장이었는데, 당연히 이치카가 내게서 2주나 떨어져 살 리도 없어서, 내 말을 듣지 않고 같이 가게된 것이다.

 

설득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었으므로, 모회사 측을 설득시켜 이치카의 여비도 대줄 수 있었다.

 

“설마, 키요타카가 코엔지 콘체른에서 일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겠지?”

 

“그래, 코엔지도 나를 필사적으로 숨겨주고 있으니까. 늘 도움만 받네”

 

그래.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전 동급생인 코엔지 로쿠스케의 부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일은 도련님인 로쿠스케의 서포트. 거기에 더해, 해외 거래처에 출장을 하거나 해서, 회사의 사업에 계속 힘을 보태왔다.

 

뭐, 빈털터리였던 나를 주워준 코엔지 로쿠스케에 대한 보답이라는 것도 있지만.

 

“다 왔어, 키요타카”

 

나를 『그녀』와 같이 키요타카라고 부르고 있는 트윈테일 여자는 아마사와 이치카.

 

지금은 8년 이상 사귀어 화이트룸 『밖』에 나온 뒤 인생에서 누구보다 함께 지낸 사람이 됐다.

 

그런 이치카와 함께 도착한 곳은 눈의 도시였다. 추운 날씨에 그녀의 팔에 이끌려 여러 관광지를 돌아다닌다.

 

이렇게 하얀 세상을 보니, 화이트룸이 생각난다.

 

“화이트룸에서 망가진 아이들은 지금 사회복귀를 했을까....?”

 

“아직 그 근처도 정보가 돌봐주고 있는 중일거야. 그리고, 최근에는 몇몇은 회복됐다고 마나부에게 연락이 왔어”

 

“나중에, 호리키타 선배한테도 고맙다고 말해야겠어”

 

“그래”

 

8년 전.

나는 이치카를 구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마나부와 일부 정부 인상, 나아가 국가 권력을 가진 여러 협력자들로 구성 된 『대 화이트룸 세력』에 들어갔다.

 

나는 그중에서 실행 부대로 임명되어 극비리에 화이트룸의 아이들을 꺼내오는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이치카의 정신이 무너질 때까지 1주일도 안남았다고 해, 빠르게 작전을 짜 그들을 구하러 갔다.

 

“그때의 키요타카, 아직도 기억나. 멋있었지”

 

“....나만의 힘으로는 널 도울 수 없었어”

 

“그래도야. 이렇게 제대로 나를 구하러 와줬잖아?”

 

“그래”

 

이치카는 내 손을 기쁜 듯이 잡았다.

 

그녀와 아이들을 보호하고 난 뒤, 바로 그 남자는 움직였다.

 

하지만 그 남자는 내가 화이트룸을 사실상 궤멸로 몰아넣은 뒤 바로 죽었다.

 

화이트룸에서 폐인이 된 아이의 부모에 의해 그 남자는 길거리에서 찔려 죽은 것 같다.

 

인과응보인 얼빠진 최후였지만, 그 남자를 죽여봤자, 부서진 아이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화이트룸 최고책임자인 놈이 죽었고, 그 시설은 완전히 괴멸되었다.

 

정신적으로 무사했던 아이는 곧바로 보호되어 1개월도 지나지 않아 다른 학교에 입학시켜, 어떻게든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과도한 커리큘럼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아이, 폐인으로 변한 아이는....

 

“이제, 그런 얼굴은 하지마. 그건 키요타카 때문이 아니라. 키요타카의 아버지 때문이니까”

 

“알고 있어. 하지만, 난 이 인생을 걸어서라도 그들에게 속죄해야 하는거겠지”

 

“괜찮아. 나도 같이 인생을 걸어줄테니까, 2명이서 힘낼까?”

 

“그래....그렇게 말해줄거라고 생각했어”

 

폐인으로 변한 아이들은 병원 침대에 누워 링거주사를 맞는 삶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얼마 전, 8년이 지나 간신히 각성해, 회복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마나부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여기 와서 열심히 한 게 보상을 받은 것 같아서. 그런 나를 보고, 이치카도 함께 울어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녀와 맺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서 행동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 후에는 힘들었었지. 선배랑 나는 속공으로 높게 인정을 받고 말이야. 코엔지 선배랑 재회하지 못했다면 너무 위험하지 않았어?”

 

“어떠려나, 왠지 코엔지가 날 높게 사줬으니까. 그 덕분에 이치카와의 생활도 곤란하지 않는거지”

 

“....음, 여러사람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있는거네”

 

마나부에게 보조를 받으면서도, 화이트룸의 잔당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일자리에 곤란을 겪고 있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코엔지와 우연히 재회했다.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코엔지에게 술을 마시러 가자고 했다가, 결과적으로 녀석의 회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길거리에 나앉지 않고 제대로 지낼 수 있었던 게 코엔지 덕분이라는 건 왠지 신기하네”

 

“....뭐, 저렇게 보여도 코엔지 선배는 의외로 이해심이 깊은 사람이니까. 선배의 신분을 숨기고 일하게 해준건가?”

 

“맞아. 화이트룸의 잔당들은 지금도 나를 노리고 있을테니까”

 

화이트룸의 잔당.

 

라는 것은, 궤멸당한 전 화이트룸 직원들의 세력이다.

 

놈들의 목적은 최고 걸작인 나를 2대 화이트룸 창립자로 만들 속셈인 것 같지만, 그런 하얀 방 때문에 인생을 좌우당하거나 하는 건 너무 바보 같다 생각해, 한때 일본을 떠났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나와 키요타카는 일본에 없는 걸로 되어있으니까. 그래서 잔당들은 전 세계를 찾아 헤맨다는 말이네”

 

“그래. 마나부 쪽도 잔당들을 찾느라 정신없던 모양인데, 나로서는 성가신 일이지”

 

“....”

 

이것이 이치카를 구한 뒤 일어난 사건들.

 

나는 넌지시, 코엔지에게 고등학교는 어떻게 됐냐고 물은 적이 있지만, 녀석은 전혀 대답하려고 하지 않았다.

 

마나부도 마찬가지다.

녀석들은 입을 모아 스스로 확인하라고 말해온다.

 

나는 그 학년에 누가 A반으로 졸업했는지 모른다.

 

“저기, 선배”

 

“이치카한테 선배라고 불리는 건 오랜만이네”

 

이치카는 사귀기 시작할 때 나를 선배라고 불렀지만, 대등한 관계를 요구한 나의 말을 들어줘 어느덧 반말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치카가 나를 『선배』라고 부를 때는 언제나 내게 어리광을 부릴 때 쓰는 말이라 불안해진다.

 

이치카가 일시적으로 나의 후배가 되는 것으로, 나로부터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아하하....나에게 있어서, 키요타카는 평생 선배야”

 

“그래서, 뭐야?”

 

“화이트룸의 이야기를 하니까, 불안해져서....또, 츠바키 사쿠라코의 행방도 아직 불명인 것 같고....”

 

“....”

 

츠바키 사쿠라코.

나와 이치카는, 그 후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모른다.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그것조차 몰랐다.

 

호적을 확인하려 한 적은 여러 번 있지만 화이트룸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우리들은 결국 츠바키의 생사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 저기. 선배는 이제 두 번 다시, 나를 떠나거자 하지 않는거지?”

 

“그래”

 

“정말? 나, 선배가 없으면 살 수 없어....선배가 없으면 나는....”

 

불안해하는 이치카를 껴안는다.

남의 눈에 띄었기 때문에 꽤 주목을 받아 환성이나 비명같은 것이 주위에서 들려왔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는 나에게 의존한 채로 살게 되었다.

 

한 번은,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보지 못했다가, 다시 만난 반동이 컸는지 그녀를 구한 그날부터 계속 성행위를 요구받았다.

 

눈치 빠르게 마나부가 어느샌가 호텔을 잡아둬, 하룻밤 그녀를 안았지만, 그 후로 이치카는 나를 떠날 수조차 없게 된 것이다.

 

“미안해....나, 나 역시 선배한테 짐이 되는거지....?”

 

“그런 소리 다시는 하지 마. 나는 이치카를 사랑해. 너를 짐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어”

 

“선배....”

 

감격한 듯 이치카는 눈을 적셨다.

 

그 때였다.

 

“저기 뭔가 커플이 있나봐요. 가보지 않을래요?”

 

“나는 그런 귀찮은 일을 할 생각은 없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서로 껴안고 있는 우리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온 두 남녀였다.

 

이치카는 필사적으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어서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남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에────────”

 

“어────────”

 

그 두 남녀가 나를 보고 얼고 있었다.

사실 나도 놈들을 보고 얼었다.

 

여자는 하늘색 장발의 미인이었고, 남자는 성질더러워 보이고 장신에 어깨까지 닿을 정도의 검은 보라색 머리를 가진 남자였다.

 

“아야노, 코지....?”

 

“──────────────류엔”

 

8년만에, 나는 옛 동창과 조우한 것이었다.

 

 

 

“류엔”

 

위에 있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얼굴을 들었다.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에....아야노코지, 군인가요....?”

 

“히요리도 함께구나”

 

선배의 가슴팍에서 고개를 들고 시선을 돌리자, 낯익은 두 사람이 놀란 듯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오랜만이잖아, 아마사와”

 

“류엔, 선배....?”

 

“크크, 그래. 살아있었냐 네놈들. 목격정보랑 소식이 완전히 없어서 대충 쓰러져 죽은 줄 알았는데”

 

류엔 카케루였다.

 

그 거친 입과 그리움과 눈은 뱀 같은 모습인 존재로.

 

“저, 저기!”

 

“아?”

 

“오랜맙입니다, 선배. 저, 저....아마사와 이치카입니다”

 

“알고 있어. 어떻게 잊겠냐”

 

그리워하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옆에 있는 키요타카도 그를 보고 어깨가 떨리는 듯 했다.

 

아, 맞다.

나는 간접적으로 그에게 구원을 받고 있는거다.

 

그 일이 생각나서, 나는 류엔 선배에게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키요타카 선배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에게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응?”

 

내가 고개를 숙이는 것이 그렇게나 충격인지, 류엔 선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만해, 고개 들어 아마사와. 별로 아야노코지를 도와준 건 아니야. 간접적으로 너를 도운거라면 그냥 기적이고”

 

“류엔 군. 오랜만에 만난 아이가 고개를 숙여주고 있는데요? 순순히 받아주시는게 어떨까요”

 

“칫....이런 건 익숙하지 않다고”

 

“아, 저도 기억하시나요? 아마사와 양”

 

“그게....시이나 선배, 였죠? 분명 류엔 선배랑 같은 반인”

 

“예, 한번 당신과 이야기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서 만난 것도 무슨 인연이니까. 어떤가요? 이 다음에 함께 하는 건”

 

““──!?””

 

느릿느릿한 그녀의 말투에 키요타카 선배와 류엔 선배가 동시에 놀란 모습이었다.

 

....뭐랄까, 마이페이스인 점은 변하지 않았네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그녀와는 이야기해 두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 냈다.

 

“어이, 히요리....네놈이 여기 오자고 고집을 부렸을텐데”

 

“안 될까요? 모처럼 만났는데, 잠깐 아마사와 양과 이야기하면 안 되는건가요?”

 

“....시간은 몇분으로──”

 

“──한 시간 정도만 주세요”

 

“....알았어. 그럼 빨리 끝내”

 

“네. 아마사와 양도 아야노코지 군도, 지금 시간 괜찮으신가요?”

 

시이나 선배가 그렇게 물었다.

온애지 류엔 선배도 그녀의 말에는 따르고 있어, 이 후의 예정은 취소하는 것 같았다.

 

“나, 나는 좋은데....”

 

키요타카 선배의 얼굴을 흘끗 올려다보았다.

어딘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못브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던 그는, 나의 시선을 눈치채고, 그 제안을 받아주었다.

 

“나도 상관없어. 그럼 히요리, 잠깐 류엔을 빌려도 될까?”

 

“네, 괜찮습니다. 그럼 아마사와 양, 잠시 아야노코지 군과 떨어져 버립니다만, 괜찮을까요?”

 

“네....선배랑 멀리 떨어지는 곳이 아니라면”

 

“예, 그러면 따라오시죠. 답사를 갔던 카페가 근처에 있어서요”

 

조금 불만인 듯한 류엔 선배를 키요타카 선배와 단둘이 남겨두는 것은 불안했지만, 나는 시이나 히요리나 다른 여자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얌전하게, 나는 시이나 선배를 따라갔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류엔 선배가 키요타카 선배를 불러 어딘가로 데리고 나가는 것이 보였다.

 

“류엔 군이라면 괜찮습니다. 오랜만의 재회로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아,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아야노코지 군에게 손을 대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네....”

 

한가로운 말투에 경계가 풀리면서, 나는 시이나 선배에게 끌려간 카페로 들어갔다.

 

 

 

“....춥지. 이동하자”

 

“그래”

 

류엔의 한마디를 들고 나는 놈을 쫓았다.

 

잠시 이동하자, 근처에 커피숍이 있어, 류엔과 함께 그곳 카운터로 향했다.

 

“오랜만이네, 그렇지?”

 

“그래”

 

나의 말은 류엔의 그런 대답으로 끝났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이게 오랜만에 다시 만난, 싸워서 헤어진 지인의 어색함이란 건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뭐냐, 정색을 하고”

 

“내가 없어진 후의 고등학교의 모습을 쭉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어. 저기, 류엔. 내가 없어진 후 고등학교는 어떻게 변했지?”

 

“....”

 

류엔은 뭔가 아픈 추억이라도 떠올리는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괜찮냐, 그걸 물어봐도”

 

“그래. 일단, 코엔지 로쿠스케나 호리키타 마나부와는 연락을 하고 있지만, 녀석들에게 물어봐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말이야. 다른 애들의 연락처는 모르고 너도 우연히 만난거야”

 

“....일단 말해두지만, 이걸 듣고 넌 어떻게 할거지?”

 

“어떻게 한다니....”

 

“들어봤자, 이미 끝난 얘기뿐이야. 누구나 과거를 보고 나아가는게 아니니까. 나도, 히요리도. 그러니까, 지금 아마사와와 살고 있는 네놈을 보면, 필요없는 얘기야”

 

“....”

 

“자기가 전부 버린 것들의 뒤처리 얘기를 듣고 싶냐?”

 

류엔다운 심한 말투였다.

 

나를 상당히 원망하고 있는 것일까.

어딘지, 녀석의 말투에는 초조함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물을게. 들어야 해. 이제 와서 버린 것의 이야기를 듣는 건, 조금 마음이 괴롭기는 하지만”

 

“──마지막 경고다. 되돌아가려면 지금뿐이야”

 

류엔답지 않은 나약한 대답이었다.

 

역시 내가 떠난 뒤 고등학교에서 뭔가 엄청난 일이 생긴 걸까, 그러는 사이에 나와 류엔이 주문했던 커피가 도착해 있었다.

 

“나는 들을거야. 묻지 않고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까”

 

“....”

 

류엔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하얀 입김을 내쉰다.

내게 말하는 것을 주저하는 듯 류엔은 천천히 입을 열어갔다.

 

내가 없어진 후의 고도 육성 고등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키요타카 선배가 자퇴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시바 선생님 대신 새로 부임해 온 선생님이 담담하게 소식을 전했다.

 

무인도 서바이벌에서 호센 군에게 선배의 존재를 들은 학생들 이외에는 누구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원래부터 눈에 띄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타학년 중에서도 히라타 선배나 이치노세 선배 쪽이 유명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 어이! 나나세, 어디 가!”

 

나는 뒤에서 부르는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고 곧장 교실을 뛰쳐나갔다.

 

믿어지지 않았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무단 조퇴하면 미미하지만 클래스 포인트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복도를 달리고 있는 도중에도, 다른 반에서 선배가 퇴학한 것을 듣고 분노나 놀란 듯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나는 안절부절 못하며 2학년 기숙사로 향했다.

 

그 401호실.

인터폰을 눌러도 아무도 나오는 것 같지 않다.

 

“어머....2학년 애가 아니네?”

 

“실례합니다. 여기 2학년 방의 볼일이 있는데 나오지 않네요. 이분이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아시나요?”

 

나를 발견한 기숙사 관리인에게 물었다.

 

그것을 들은 관리인 씨는, 나의 사정을 살폈는지, 약간 고개를 숙여 입을 열었다.

 

“거기 학생이라면....어제 저녁 7시 반에 방을 나갔어. 자퇴한 걸로 알고 있는데”

 

“에────────”

 

관리인 씨가 한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선배가 없어? 어째서? 그럴 리가 없어. 왜냐면, 아직 선배는 이 학교에서 남겨진 것이──────

 

“무, 무슨 말씀인가요!?”

 

“....나도 잘 모르지만, 뭔가 집안 사정이라는 것 같더라고”

 

“집안 사정이라면────”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선배가 향한 곳이.

 

“....화이트룸?”

 

나는 그때 무릎부터 무너져 내렸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선배가 거기에?

왜? 왜 나를 놔두고?

 

말도 없이, 혼자 사라진 거야?

 

걱정하는 관리인 씨를 무시하고 나는 학원섬의 끝가지 온 힘을 다해 달렸다.

 

“....”

 

외부 주차장에는 한 대도 서있지 않았고, 그것은 이미 선배가 이 섬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화이트룸의 관계자....

 

머리를 짜낸다.

아마사와 양은 이제 없다.

 

사카야나기라 했던 2학년은, 분명 키요타카 선배의 과거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2학년 D반의 칸자키 선배도 전 화이트룸의 낙오자.

 

그들에게 물어보면────

 

──물어봐서 어쩔건데.

나는 거기서 멈춰섰다.

 

들어봤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제 이 학원섬에는 츠키시로 이사장 대행도, 시바 선생님도 없다.

사카야나기 선배도 원래는 화이트룸과는 무관하고, 나는 그 화이트룸이 일본의 어디에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리고 분명 키요타카 선배의 말로는 칸자키 선배를 화이트룸의 기억을 부모님이 약으로 막아놨다고 했다. 이제 와서 화이트룸의 위치 따위는 모르겠지.

 

“....아니”

 

딱 한 명 있어.

 

선배에 대해서 잘 알고, 그러면서도 화이트룸을 잘 아는 인물.

 

나는 곧장 1학년 기숙사로 가서 정학 중인 그녀의 바응로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가”

 

“부탁, 드려요....! 선배가, 선배가 이대로 가버리면 안되니까....!”

 

“몰라. 게다가 아야노코지 키요타카를 퇴학시킨다는 희망은 이미 이뤘어. 난 이제 화이트룸과는 무관하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화이트룸의 장소만으로도 좋아요....! 제발 가르쳐 주세요....!”

 

“아쉽지만 나도 학원섬에 들어오고 나서 화이트룸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몰라”

 

“거짓말 하지 마세요! ──츠바키 양!”

 

나는 1학년 C반 츠바키 사쿠라코 양의 방 앞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왜 이제 와서 그런 거짓말을 하는거야?

왜 그렇게 나한테서 선배마저 빼앗으려고 하는거야?

 

난 이제 아무것도 안 남았는데.

 

“부탁이에요! 부탁합니다! 제발 선배를 만나게 해줘! 만나게 해주세요!”

 

“....만나서 어떻게 하려고? 이미 나나세 씨가 바라는 아야노코지 키요타카는 거기에 없는게 아닐까”

 

“....무슨”

 

“말 그대로의 의미. 어째서 아야노코지 키요타카가 지금 시점에서 자퇴했다고 생각해?”

 

“....”

 

짚이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선배가 모든 걸 버리고 화이트룸으로 가버린 이유.

그건, 분명.

 

“나나세 씨가 그걸 모를 리가 없잖아. 나는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아야노코지는 아마사와 이치카를 위해 화이트룸으로 돌아갔다. 이제 와서 뒤쫓아도 이제 아야노코지는 나나세 씨를 구원할 수 없어”

 

“────────────”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었다.

계속 어디선가 알고 있었다.

 

선배는, 아마사와 양을 돕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됐지? 아야노코지 선배도 아마사와 씨도 없으니까, 나나세 씨는 자기 인생을 빨리 찾아보는게 어때?”

 

“....”

 

눈에서 빛이 사라진다.

츠바키 씨는 그런 나를 무표정하게 응시하고 방문을 천천히 닫아 잠갔다.

 

이제 나하고는 관계없다.

그런 것 같았다.

 

“....키요타카, 선배”

 

아아. 나는 그에게 의존하고 있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의존처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내 방으로 돌아온다.

 

커튼을 닫고 천천히 위에 밧줄을 늘어뜨렸다.

 

내 사이즈에 맞도록 둘레를 조절한다. 나머지는 방에 있는 의자를 가지고 와서 거기에 타기만 하면 된다.

 

“....”

 

이제 삶의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다.

 

키요타카 선배가 없어지고, 다른 의존처를 찾아보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 이상으로 내 마음을 구해주는 사람은 절대로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제와서 화이트룸의 위치를 알아내, 키요타카 선배를 만나러 간다고 해도, 그의 마음은 아마사와 양의 것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째서?”

 

어째서 저는 항상 이럴까요.

가장 곁에 있고 싶을 때,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있어주지 않은데, 내가 약할 때만 마음의 안식처를 찾을 수 있도록 그 사람이 있어준다.

 

하지만, 내가 가장 도움을 원할 때 그는 항상 『그녀』를 우선시했다.

 

지난 두 달 동안.

매일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의 품에 안기고, 그대로 방치되어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여기에 와서, 겨우 키요타카 선배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나를 여자로서 사랑해줄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냥 말.

아마사와 양의 일로 떼를 쓰는 나에게 사탕을 주듯이, 선배는 자신의 몸을 하룻밤만 내게 주었을 뿐이다.

 

“아, 하하하”

 

이제 모든게 끝나버렸어.

구원따윈 아무데도 없어.

 

키요타카 선배는 이제 두 번 다시 이 학교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내 안에 깊은 절망과 슬픔이 동시에 엄습했다.

 

이제 『살아 있어도』 그를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죽는다면』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작년 발렌타인.

너덜너덜한 아파트 안에서 본 절망.

 

두 번 다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고 진심으로 맹세했었는데 나는 또 잃어버리고 말았다.

 

문화제 때 류엔 선배가 자신의 힘으로 키요타카 선배를 차지해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런 것은 무리라고 결론 짓고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열심히 어프로치했다.

 

그가 다시 안아줄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

필사적인 심정으로, 나는 그와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그의 옆에는 항상 카루이자와 선배가 있었고, 그의 마음에는 항상 아마사와 양이 있었다.

 

이제, 네가 있을 곳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나는 조금씩 마음에 금이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마음에 금이 간다.

 

아니 이미 산산조각이 났을지도 모른다.

 

“끝까지, 저는 선배에게 의존해야 살아갈 수 있는 여자였네요”

 

그렇게 천장에 매단 밧줄에 천천히 목을 넣는다.

 

의자에서 천천히 내린다.

 

“읏────────”

 

괴롭다.

 

괴로워요, 선배.

 

하지만 내가 이 방에서 아무리 울무짖어도 그는 이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괴로워, 괴로운데, 괴로울텐데.

 

나는 이 행위를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대로 아무것도 없이 사는 것은, 계속 계속 괴롭다고 생각했으니까.

 

“....커, 헉....큭....”

 

소리 없는 소리가 입에서 나온다.

이제는 손발의 감각이 없어졌다. 목이 너무 괴로워서 시야가 흐려진다.

 

머리에 산소가 돌지 않았다.

 

에이치로 군.

당신도, 자신의 인생을 끝마칠 때 이렇게 혼자 괴로웠나요?

 

마지막으로 나는 그것이 떠올랐다.

 

살아도 『그』를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죽으면 『그』를 만날 수 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태어난걸까.

 

 

♢♢♢♢♢♢♢♢♢♢♢♢♢♢♢♢♢♢♢♢

 

 

“바보 같은 놈”

 

내 앞에서 정겨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립고, 그립고,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쁜 목소리였다.

 

“....오랜만이네요. 저 정말 죽었나요?”

 

“어째서, 너는 이런....바보같은 짓을”

 

“....후훗, 에이치로 군도 엄청난 바보에요. 저를 두고 혼자 떠나는 건 너무하잖아요”

 

캄캄한 세계.

 

위도 아래도 왼 오른쪽도 없는 캄캄한 세계였다.

 

나는 아무 옷도 입고 있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그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들은 재회할 수 있었다.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너는 내 몫까지 살아주길 바랬어. 날 잊은 채 행복하게 인생을 마치길 바랐는데....”

 

눈앞에서 내게 울며 화내는 그를 살짝 껴안았다.

아무 죄도 없지만 무리하게 인생을 마감한 한 소년이다.

 

“에이치로 군의 『대신』은, 제 앞에서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윽”

 

“에이치로 군도 계속 혼자였군요”

 

이런 캄캄한 세계에서 나를 계속 지켜봐 주고 있었어.

 

자기의 인생에는 말려들게 할 수 없다며.

 

오직 나만의 행복을 바라며.

 

“윽....으으윽....츠바사....”

 

“──이제 혼자가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함께해요”

 

떨리는 한 살 위 소년을 부둥켜안는다.

아아, 내가 갖고 싶었던 진짜는 분명 이것일 것이다. 계속 갖고 싶었어. 작년부터 지금까지 갖고 싶어도 구할 수 없었던 것.

 

내가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키요타카 선배가 살면서, 쭉 한 소녀의 곁에 있다면────

 

나는 앞으로 쭉, 영원히, 한 소년의 곁에 있자.

 

 

 

류엔이 이야기를 했다.

 

“....그런가”

 

“기숙사 관리인이 발견했을 때는 이미 떠난 뒤였다. 동기는....”

 

“나 때문인가”

 

“....”

 

류엔은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침묵은 긍정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류엔은 나를 비난하는 자세는 일절 보이지 않았다.

 

“옛날의 네놈처럼 이 이야기를 듣고,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았다면 네놈을 날려버릴 생각이었는데....”

 

“....”

 

“....아무래도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네”

 

류엔은 어딘가 안심한 듯이 나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커피에는, 어느 때보다 처량한 내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이게, 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감정을 엉망으로 섞을 내가 비치고 있었다.

 

“나나세의 자살은 정부에 의해 완전히 은폐됐다. 만약 정부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자살자 같은 게 나온다면 세상에서 국가 책임을 물을 수 있으니까”

 

“너희 학생들과, 고등학교 직원, 그리고 정부 관계자들만 알고 있는 사건이라는건가”

 

“세상이 얼마나 썩었는지 잘 알겠지?”

 

“....”

 

정부는 어떻든, 사카야나기 이사장 입장에서 보면 은폐를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류엔의 말로는, 이미 정부와 나나세의 친족간에 은폐 이야기가 오고 있는 것 같고, 나나세의 자살이 세상에 나돌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마 그런 것일 것이다.

 

“칫....처음부터 어두운 얘기 시키지 마라.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분위기가 되는 건 좀 그러니까”

 

“....미안해”

 

“사과하지 마. 따지고 보면 네 사정을 알면서도 보낸 내 탓도 있으니까”

 

“....”

 

류엔은 완전히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어딘가 먼 추억이라도 떠올리듯 천천히 중얼거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

 

“더 있어?”

 

“얘기해도 되는거냐? 지금의 너는 완전하진 않아도 죄책감이나 사람의 죽음을 슬퍼할 정도로 사람답게 되어 있어. 이 뒷얘기를 견딜 수 있겠어?”

 

....역시, 내가 없어지고 일어난 비극은 나나세 뿐만이 아니겠지. 그래도, 역시 만났기 때문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 마음속 어딘가에서 걸린 일이 있었으니까.

 

 

♢♢♢♢♢♢♢♢♢♢♢♢♢♢♢♢♢♢♢♢

 

 

“호나미~! 또 고등학교 애들이 와줬어~!”

 

엄마늬 그런 목소리.

나는 옆에 있는 그에게 말을 걸어, 둘이서 방에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아, 지금갈게! 저기, 키요타카 군도 가자!”

 

『응, 그래』

 

하지만, 내 몸은 침대에 뉘어져 있어서, 전혀 일어설 수가 없었다. 옆에 있는 그가 마음을 써준다.

 

조금 볼을 붉히지만,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나의 머리를 그가 쓰다듬어 주었다.

 

“어, 라....? 일어날 수가, 없어”

 

『괜찮아, 호나미. 여기에 가만히 있어. 곧 칸자키네가 올거니까』

 

“응. 키요타카 군은?”

 

『난 계속 호나미의 곁에 있을거야. 칸자키네가 와도 방에서 나가지는 않을거야』

 

“에헤헤....고마워”

 

그는 나에게만 웃으며 그렇게 말해준다.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키요타카 군에게 몸을 맡기고, 침대에 눕는다.

 

“오랜만이네, 이치노세”

 

“호나지 짱, 잘 지냈어?”

 

칸자키 군과 치히로 짱.

두 사람이 엄마에게 이끌려, 걱정스럽게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응, 오랜만이야! 자, 키요타카 군도 인사하자? 원수지간이긴 해도, 같은 학교였잖아?”

 

“....”

 

“....”

 

『오랜만이야 칸자키, 시라나미. 오늘 이치노세의 병문안을 와준거야?』

 

“....”

 

그래서 이치노세. 오늘은 문안 선물로 이걸 가져왔어“

 

옆에서 말을 건네는 키요타카 군을 칸자키 군이 무시했다. 왜일까? 둘이 싸움이라도 한 걸까.

 

칸자키 군은 그렇게 말하고, 치히노 짱이 도내 한정 디저트를 사다 준 것 같았다.

 

‘우와, 엄청 맛있겠다! 이거, 나 주는거야?”

 

“응. 그렇게 좋아해주는 걸 보니, 줄을 선 보람이 있었네”

 

“일부러 고마워....도중에 고등학교를 그만둔 나 같은 것 때문에....”

 

“괜찮아, 호나미가 어딜 가든 우린 계속 친구니까”

 

치히로 짱이 상냥하게 웃고, 고급스런 봉투에 들어있는 디저트를 내 침대 옆에 설치되어 있는 책상에 천천히 놓았다.

 

“지금, 먹지 않는거야?”

 

“에? 먹어도 돼?”

 

“무, 물론이지! 그게, 호나미 짱은 밖에 전혀 나가지 않았잖아? 이번이 아니면, 이런 거 못 먹지 않을까?”

 

“....”

 

칸자키 군이 조용히, 봉지로부터 디저트를 꺼내주었다. 치히로 짱은 어딘지 모르게 착잡해 보이는 얼굴을 보이고, 열어주었다.

 

“아, 키요타카 군....그, 평소처럼 먹여줄 수 있을까?”

 

『평소처럼? 두 사람이 있으니까 자중해줘 호나미』

 

언제나처럼 키요타카 군에게 아앙을 해달라고 했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 앞이라 부끄러워 해주지 않는 것 같다.

 

사귀고 있는데, 얼마나 지독한 남자친구인가. 그래도 키요타카 군에게 도망칠 길을 내누지 않을테니까.

 

“....키요타카 군은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거야?”

 

『....하아, 귀찮은 여자친구네. 알았어. 호나미의 부탁이니까. 시라나미, 건네줘』

 

“응. 치히로 짱, 키요타카 군에게 디저트 건네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칸자키 군을 조용히 나를 쳐다봤고, 옆에 있는 치히로 군은 어깨를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어째서일까.

 

역시, 키요타카 군.

두 사람하고 싸움이라도 한 걸까?

 

“....”

 

“내, 내가 호나미 짱에게 먹여줄게! 응? 괜찮지, 아야노코지 군?”

 

『....시라나미가 그렇게 말해준다면. 어이, 호나미. 친구가 해준다니까, 일부러 내가 나설 일도 없겠지?』

 

“정말....키요타카 군은 또 그런말을. 미안해 치히로 짱”

 

“아니, 괜찮아! 아야노코지 군은 언제나 호나미를 봐주고 있고.”

 

아무래도 내 생각이 너무 지나친 것 같았다.

그대로 키요타카 군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 내 옆에 서준다.

 

치히로 짱은 어딘가 부끄러워하면서도 숟가락으로 내 입까지 가져다 주었다.

 

잠시 후 두 사람과 바깥 이야기를 나누며 면회시간이 끝날 때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칸자키 군과 치히로 군은 계속해서 키요타카 군의 말을 무시하는데, 역시 무슨 일이 있는걸까.

 

“미안 둘 다....혹시 키요타카 군과 무슨 일 있었어?”

 

“에!?”

 

“그, 그치만, 아까부터 키요타카 군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 그렇지 않아!? 그, 그치, 칸자키 군?”

 

“....그래. 무시하진 않을 생각이야. 말이 맞지 않았다면 미안하다, 아야노코지”

 

“칸자키 군!!”

 

어딘가 언짢아 보이는 칸자키 군과 그것을 꾸짖기 시작하는 치히로 짱.

 

나는 그것을 보고 불안해 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어, 라....?”

 

“호, 호나미 짱?”

 

“키요타카 군은? 키요타카 군은 어디 갔어?”

 

갑자기, 병실 안에서 키요타카 군이 없어져 버려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어, 라? 키요타카 군은? 키요타카 군은 어디 갔어? 저, 저기, 나를 두고 멋대로 돌아가거나 한 건 아니지!?”

 

“아야노코지는 방금 화장실을 갔어. 곧 돌아오겠다고도 했고”

 

“그, 그렇구나....다행이야”

 

숨을 헐떡이며 그를 찾고 있자, 칸자키 군이 그런 말을 해주었다.

 

정말....키요타카 군은, 나한테 한마디라도 하고 화장실에 가줬으면 좋겠는데, 또 병실에서 난폭하게 굴어서 간호사 씨한테 불릴 뻔 했어.

 

“....이치노세. 왜, 네가 자퇴했는지 기억해?”

 

“카, 칸자키 군!!”

 

“에? 그치만, 그건 키요타카 군이 없어져서────에, 어라? 에? 어라? 왜, 나 고등학교를 도중에 그만둔거지?”

 

“....”

 

칸자키 군은 병실에 들어오고 나서 항상 무표정했다. 치히로 짱은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본다.

 

....그러고보니.

 

왜, 나, 모두를 놔두고 멋대로 학교를 그만두거나 한거지....?

 

“어, 라....? 어째, 서....”

 

“호나미 짱....”

 

“답은 하나다. 아야노코지는 이제────”

 

“──칸자키 군!”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칸자키 군에게 치히로 짱이 고함을 질렀다.

나는 깜짝 놀라 그것을 보니, 치히로 짱이 어깨를 떨며 칸자키 군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오려 하고 있었다.

 

“미, 미안해 호나미 짱! 우리, 조금 뒤에 볼일이 있어서....또, 또 올게!”

 

“....”

 

“으, 응. 바이바이 둘 다”

 

분주한 모습으로 병실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 방 밖에서는 치히로가 칸자키 군에게 화를 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였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옆에 계속 서 있었던』키요타카 군을 끌어안았다.

 

“둘 다 왜 저렇게 싸우는 걸까? 키요타카 군, 혹시 뭔가 했어?”

 

『아니, 아무것도 안했는데....혹시 동창회에서 얼굴도 안 비쳐서 그런게 아닐가?』

 

“아, 그거일 수도....미안해, 키요타카 군. 항상 내가 신세지게 만들어 놓고. 민폐, 겠지?”

 

『별로 폐를 끼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호나미가 퇴원하면, 우리 결혼하는거지?』

 

“그, 글쎄....응,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해. 키요타카 군”

 

『그래』

 

나는 안아주는 키요타카 군의 입술을 만졌다. 부드럽고 따뜻하다.

 

아직도 생각난다.

그와의 첫 키스

 

분명, 황혼의 공원에서 흐느끼는 나를 그가 안아줬을 때의 키스다. 그 후, 문화제 준비기간에 그의 방에 고기 감자조림이나 비프스튜라든가 가져다주고....

 

그리고, 그 문화제에서 아마사와 이치카 씨가 퇴학당했다.

 

그리고 다음은──────

 

“....어, 라. 무슨 일이 있었지?”

 

『억지로 생각해낼 필요는 없어, 호나미. 너의 곁에는 계속 내가 있을거야. 그걸로 충분하잖아?』

 

“그렇지. 사랑해, 키요타카”

 

다시 한번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갖다댔다.

입술을 맞대었을 텐데, 왠지 키스하는 감촉은 나지 않았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제부터는 키요타카 군이 계속 곁에 있어줄꺼고.

 

 

♢♢♢♢♢♢♢♢♢♢♢♢♢♢♢♢♢♢♢♢

 

 

“이치노세 씨. 저녁식사 시간이에요”

 

“네. 들어오세요”

 

간호사 씨가 차려준 밥이 내 책상에 차려졌다. 그것만을 한 뒤 그녀는 말없이 도망치듯 내 병실에서 사라졌다.

 

“키요타카 군. 아앙~해줘?”

 

『정말....어리광쟁이네, 호나미. 옛날에는 반의 리더였고, 내가 없어도 뭐든 할 수 있었잖아?』

 

“────반의 리더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는 A반으로 졸업하는 것보다 키요타카 군을 훨씬 더 원했으니까”

 

『그런 말을 들으니 나도 기뻐. 자, 입 벌려줘』

 

“응....아~앙”

 

에헤헤....키요타카 군이 내 입에 밥을 주고 있다. 밥이 차려지고 나서 전혀 줄지 않는 밥을 보며 키요타카 군을 쓰다듬었다.

 

『호나미. 언제쯤 퇴원할 수 있을까』

 

“그러네. 엄마라면, 틀림없이 키요타카 군도 인정해줄거야”

 

『그래....그러면 좋겠네』

 

“응....”

 

키요타카 군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지고 있다.

기분이 좋았다.

 

잠시, 키요타카 군과 함께 방에서 부비부비하고 있는데, 식기를 치우러 왔는지, 간호사 씨가 노크를 하고 방에 들어왔다.

 

“이치노세 씨! 아직 한입도 안먹었잖아요....정말, 어쩔 수 없네요. 오늘도 『제가』먹여드릴게요. 자, 베개 같은 거 끌어안고 있지 말고 이쪽을 돌아보세요”

 

“에, 그, 그래도....아까 키요타카 군이 먹여줘서 괜찮은데요? 어, 라? 왜, 밥이 줄지────”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음식을 보았다.

건강 위주로 만들어진 메뉴라 맛은 별로다. 하지만 매일 키요타카 군에게 먹여지고 있어서, 어떤 것이든 맛있게 느껴졌다.

 

그 밥이, 한 입도 대지 못한채 남겨져 있었다.

 

“어라? 키요타카 군, 아까 아앙하고──”

 

옆을 봤다.

 

키요타카 군이 없었다.

 

간호사 씨는 그런 나를 보고, 조금 숨을 삼킨 것 같았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밥을 먹이려고 했다.

 

“자, 이치노세 씨”

 

“왜────”

 

“이치노세 씨....?”

 

“──왜, 왜, 왜! 키요타카 군이 없어!!!”

 

“──앗”

 

나는 사라진 그를 찾기 위해 침대에 놓여 있는 책상 위에 놓인 음식이 방해돼 그것을 전부 던져버렸다. 큰 소리가 울리고 바닥에는 한입도 대지 않은 음식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아니, 아무래도 상관없어.

 

키요타카 군이 사라졌다.

내 옆에서 갑자기 없어졌다.

 

“키요타카 군, 어디야!? 키요타카 군, 어디에 있는거야!? 저, 저기! 나를 놔두고 멋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잖아!!”

 

“──긴급연락, 긴급연락. 네, 바로 502호실로 와주세요.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네 매우 시급────”

 

“──어디!? 어디야, 키요타카 군!!”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간호사 씨를 무시하고, 나는 어디론가 가버린 키요타카 군을 찾으러 가려고 했다.

 

다음 순간,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간호사 시가 침대로 강하게 밀어붙인다.

 

“날뛰지 마세요....! 지금 바로 안정제가 올거니까....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놔, 놔! 놔주세요! 키요타카 군이 없어! 키요타카 군이 없어졌어! 싫어! 싫어....! 어디야!? 키요타카 군!”

 

“이치노세 씨! 침착하세요!”

 

키요타카 군이 없어서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침대 위에 눌려지고 말았다.

 

잠시 날뛰고 있으니 곧바로 병원 사람들이 달려와 나는 순식간에 약이 먹여졌다.

 

의식이 몽롱해져,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바닥에 널려 있었을 음식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나를 누르고 있던 간호사도 사라져 버렸다.

 

“어, 라....?”

 

『일어났구나, 호나미』

 

“키요타카 군! 바, 방금....어디간거야? 도중에 사라져서 걱정돼서 계속 찾았잖아....병원사람한테 혼났고, 돌아갈 때는 말 해달라고 했잖아?”

 

『무슨 소리야? 나는 계속, 너의 옆에 있었는데?』

 

“에?”

 

『그러니까, 계속 이렇게 서로 안고 침대에서 잤잖아』

 

“어라....그랬었나?”

 

『이상하네 호나미. 내가 호나미 곁에서 아무말 없이 사라질 리가 없잖아?』

 

“아, 미안....그렇겠지. 에헤헤....걱정끼쳐서 미안해. 키요타카가 나한테 말도 없이 사라질 리가 없으니까”

 

『진짜....이런 상태라면, 퇴원할 수 없잖아』

 

“냐하하, 그래도 키요타카 군이 계속 함께 있어준다면, 나는 밖에 나가지 않아도 괜찮아. 키요타카 군만 있어준다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까”

 

『....』

 

“키요타카 군”

 

내가 눈을 비비니 키요타카 군과 함께 침대 안에서 잠들고 있었다.

 

그를 사랑스럽게 여겨 갈색 머리를 그대로 쓰다듬는다. 이미 마른 팔로 그에게 매달리며 약간 작아진 가슴을 그에게 밀어붙였다.

 

내 주변은 굉장히 이상하지만, 내 옆에는 항상 그가 있어준다.

 

그러니까 이걸로 된거야.

키요타카 군만 있다면 난 행복하니까.

 

“....계속 함께하자”

 

『그래. 약속할게』

 

“에헤헤....키요타카 군, 정말 좋아”

 

어리광 부리는 나를,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받아주는 그를 온 힘을 다해 끌어안는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분명 행복할 것이다.

 

 

 

“이게 지금, 이치노세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

 

“에로토마니아 클레랑보 증후군(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망상의 한 종류)에 가까운 정신병인 것 같아. 네게 사랑받고 있다는 망상을 정신병원 안에서 계속 하고 있어”

 

“....내가 없어진 8년 내내?”

 

“물어볼 필요도 없잖아. 네가 없어진 후에 이치노세는 발광했어. 반에서도 자꾸 날뛰니까, 결국 학교 측이 부모님께 연락을 한 거지”

 

류엔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 8년간.

계속, 이치노세는 나의 환영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망상을 하고 있었다는 건가?

 

내가 없어지자마자 살기를 포기한 나나세도 그렇지만, 이치노세의 그것에도 굉장한 광기를 느꼈다.

 

“나는....이치노세는 만나러 가는게 좋을ᄁᆞ”

 

“칫....네놈은 전부 버리고, 아마사와를 구하러 간거 아니었냐”

 

“....”

 

“이치노세가 그렇게 망가진 건 너 때문이 아니야. 그 녀석의 환경이 조금 이상했으니까. 우연히 그 사랑받는 자리에 너의 존재가 선택됐을 뿐이지”

 

위로와 동정이 함께 느껴지는 말을 류엔이 건넸다. 아니, 그건 내가 한거다.

 

그 정도의 일을 하고, 내가 없어진 후의 이치노세가, 남은 1년을 제대로 다닐 수 있을 리가 없다. 미쳐버린 이치노세는 부모에 의해 자퇴당하고 정신병원에서 8년 동안 있어야 했다.

 

“크크, 뒷맛 안 좋은 얘기지? 무슨 기분이냐 아야노코지. 네가 버린 여자가 정신병원에서 아직도 네 사랑을 받는다는 망상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그 짓궂음은 여전하네”

 

“뭐 그렇지. 그런 점에서 보면, 사카야나기는 오히려 나은 편이라고?”

 

“사카야나기?”

 

류엔에게서 나온 이름은 뜻밖이었다.

확실히, 류엔과 사카야나기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을 텐데....

 

“사카야나기도 네가 사라져서 꽤 정신적으로 그랬던 모양이야. 나나 스즈네에게 역전되는 것도 시간문제였어”

 

“사카야나기가? 내가 없어져도, 평범하게 너희들과 싸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놈은 정말 둔한 자식이다. 뭐 좋아. 어쨌든, 사카야나기는 사카야나기대로 쇼크를 받으면서도 어떻게든 근성으로 3년간 회복에 성공했다. 지금은 고도 육성 고등학교의 직원으로 있는 것 같아”

 

“류엔, 너 사카야나기랑 연락하고 있는거야?”

 

“뭐 그렇지. 그렇다고 해도, 정말 가끔 근황 보고를 할 뿐이야. 사카야나기라면 네놈이 만나러 가도 되지 않냐?”

 

그런 제안을 받았다.

 

류엔의 저 말투라면, 아마 사카야나기도──

 

“아니....좀더 생활이 안정되고나서 만나러갈게. 사카야나기도 지금의 나를 보면 분명 실망할테니까”

 

“아? 네놈, 코엔지놈 밑에서 일하지? 실망이고 뭐고 출세했잖아”

 

“확실히 네 말대로, 한명의 사회인으로서의 지위는 갖고 있어. 하지만, 이 일본에도 화이트룸의 잔당들이 몇 명인가 남아있거든. 고도 육성 고등학교 쪽에도 몇 명 붙어있을 거야”

 

“크크, 8년이 지난 지금도 연을 끊을 수 없다고?”

 

“차라리, 그쪽이 포기해줬으면 좋겠는데”

 

뭐, 그것이 실현된다면, 이렇게 코엔지 뒤에 몸을 숨길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류엔에게서 들은 고등학교의 비극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 밖에도 데미지를 입은 하생은 많았던 것 같지만, 죽음을 선택한 나나세나 아직도 미쳐 있는 이치노세보다는 낫다고 류엔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

 

“뭐냐”

 

“결국 A반으로 졸업한 건 어디지?”

 

“....”

 

류엔이 눈을 감고 입을 조금 다물었다.

내 모습을 살피는지 잠깐 커피를 입에 머금고는 숨을 한번 가다듬고 내뱉었다.

 

 

 

“────내 반이다”

 

 

 

“그렇겠지”

 

뭐, 알고 있었지만, 스즈네는 류엔에게 이길 수 없었던 것 같다.

 

“원인은 쿠시다야?”

 

“그게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모르겠네. 3학년 중반, 마침내 키쿄 녀석이 같은 반 녀석들에게 손을 대기 시작하자, 스즈네는 힘든 결단으로 퇴학시켰다”

 

“....”

 

“참 성가신 일이지. 배신자를 반에서 추방하면, 그 마이너스가 자신들에게 돌아온다니”

 

그런 의미에서 호리키타는 쿠시다와 같은 중학교라는 점에서, 입학 초부터 다른 반 리더들보다 훨씬 무거운 타격을 받았다는 얘기다.

 

“네놈이 퇴학한 것 때문에, 정리역인 카루이자와와 히라타가 기능하지 않게 된 것도 컸네. 코엔지도 문화제 이후에는 반에 협력하지 않았고, 실질적으로 스즈네 혼자 다른 반과 싸웠으니까, 엄청 고생했겠지”

 

“....”

 

케이뿐만 아니라, 나는 요스케도 버리고 가버렸다.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쿠시다는 당연하다는 듯이 배신했고, 내가 없어진 반에서 코엔지가 움직일 리 없다.

스즈네의 전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반에서 스도 정도겠지.

 

“하지만, 스즈네는 A로 졸업했다”

 

“....너”

 

“크크, 내가 주는 상 같은거지. 그만큼 즐겁게 해 준 건 네놈 이래였어. 설마 그 스즈네가 네놈 없이, 그렇게까지 나를 쫓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퇴학한 후에 어떤 시험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류엔의 말투로 보아 정말로 스즈네는 혼자서 건투한 것 같다.

 

“카츠라기에 이어, 스즈네도 데려온거냐?”

 

“스즈네도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무능한 반에 묻히기엔 아까운 놈이야. 하지만, 졸업직전에 살짝살짝 끌어들였고, 스즈네를 반대하는 녀석은 없었으니까 데려왔다”

 

“스즈네 『뿐』은 A반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는 건가”

 

“그런 의미에서는, 나구모가 하려고 했던 개혁은 의외로 옳았을지도 모르겠네”

 

뛰어난 재능이, 무능한 주위에게 묻히지 않도록 나구모는 모든 학생에게 평등하게 기회를 나누어 주었다.

 

그야말로, 실력있는 학생은 구하고, 실력 없는 학생은 나락으로 보내버린다는 나구모의 방식은 삐뚤어지긴 했지만 절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게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다. 네놈이 사라진 뒤에 망가진 여자도 있고, 반대로 변하는 학생도 있는 거다. 뭐 좋은 방향으로 변한 건 호리키타 스즈네뿐이었지만....”

 

“....”

 

아마, 그때 내가 퇴학한 것으로 인해 이렇게나 반의 위치가 급변한 것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를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좋다고 나는 선택했다.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인간에게 원망 받아도 좋다.

얕보여도 좋다.

매도당해도 좋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아마사와 이치카만을 도우려 했다.

 

“아야노코지”

 

“뭐야”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거냐”

 

류엔이 건네는 살피는 듯한 한마디.

아니, 살핀다기보다는 재차 확인한다고 해야 하나.

 

“정해져있잖아. 이치카와 함께 보낼거야”

 

“핫, 그렇지. 여기서 이제와서 아무생각도 없다는 소리를 했다면, 네놈의 금구슬을 차버릴 뻔했어”

 

“여전히 위험한 녀석이네”

 

“어른이 된다고 내 속이 변할 줄 알았냐?”

 

“그렇기도 하네”

 

인간, 어른이 되면 성격이 변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서 자라지 않는 자는 언제까지나 성장하지 못할 것이고, 아이면서 배우려고 하는 자는 어른 이상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뿌리 부분은 아이나 어른이나 다르지 않다.

 

류엔은 나에게 지고 틀림없이 변했다.

하지만 놈의 사나운 눈동자는 아직도 내가 어느정도인지 알아보는 것 같았다.

 

“야가미나 호센네는....?”

 

“뻔하잖아. 전부 때려부숴줬다”

 

“....굉장하네”

 

“원래, 문화제에서 우리 반을 노린 건방진 애새끼들은 예외 없이 내 처형 대상이었으니까. 한 반도 남기지 않고, 때려 눕혀줬다”

 

류엔이 들려준 말은 그런 말이었다. 역시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호센과 야가미를 꺾었는지는 궁금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이 정도다. 그런 송사리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아니 아무래도 좋지는 않아. 일단, 나는 신경 쓰여”

 

“....슬슬 시간인가”

 

시간? 이라고 중얼거리며 커피숍에 걸린 낡은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라고 해도 아직 3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 때였다.

 

 

 

 

“어라? 류엔, 왔네. 연락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8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속에 큰 통증이 느껴졌다.

 

“크크, 미안해. 잠깐 일행을 불러서, 갑자기 왔거든”

 

카운터 안쪽에서 한 점원이 왔다.

아무래도 류엔과 아는 것 같다.

 

“──────────에?”

 

“....오랜만이네, 케이”

 

한 번에 알았다.

 

그 소리를 듣고 알았다.

 

옛날과 같은 포니테일이 아니라, 2학년의 호리키타 스즈네처럼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고교시절과는 다른 사람이라고도 생각되는, 그런 쇼트컷으로 바뀐 카루이자와 케이가 이 가게의 앞치마를 입고 서 있었다.

 

“놀랐냐? 원망은 하지마. 나도 여기서 우연히 만났으니ᄁᆞ”

 

“....어째, 서”

 

“....”

 

케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나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케이는 꽤 어른스러워 보였다.

 

류엔은 그런 우리를 보고 다시 한 번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이제와서 뭐하러 온거야”

 

“....”

 

당연한 한마디였다.

 

케이에게서 들어본 적 없는 차가운 목소리가 나에게 울려왔다.

 

분노도 미움도 가리지 않았다.

또 다른 뒤죽박죽 섞인 감정을 목소리에 싣고, 내 얼굴에 눈을 쏘아대고 있었다.

 

“어이, 그렇게 말하지마. 아야노코지도 여기서 네놈이 일하고 있는 건 몰랐다고?”

 

“....네가 데리고 온거야?”

 

“그래. 매달 단골로 오니까, 이 정도는 봐줘”

 

케이와 류엔 사이에는 예전 같은 험악한 분위기가 없었다.

 

류엔은 내가 버린 것들을 어떻게든 짊어져 주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일에 대해서 안도했다.

 

케이는 나나세나 이치노세 같이 비극이 일어나지 않고, 일단은 사회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뭐야”

 

“아니....그....”

 

“....”

 

류엔은 잠시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냐, 라고 말하고 싶은 눈이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는 생각은 태어나저 처음이었다.

 

떨릴 것 같은 목소리를 짜내고, 내가 케이에게 말을 걸려고 했을 때였다.

 

“....마스터. 나 오늘 몸이 안좋은 것 같아. 돌아가도 돼?”

 

“에? 지금 막 왔잖아”

 

“미안....월급 줄여도 괜찮으니ᄁᆞ”

 

“....무슨 일 있었어?”

 

“죄송합니다....정말 무리니까....”

 

내가 말을 걸려고 하는 순간, 케이는 도망치듯 카운터에서 벗어났다.

 

마지막에 가게 뒤편의 휴게실려고 가려고 하자, 류엔의 눈이 마음에 걸렸다.

 

“──가버렸네”

 

“류엔....알면서 데리고 온거야?”

 

“그래.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해버렸나. 이 거리에서 네놈을 만나고, 이 거리의 가게에서 카루이자와가 일하고 있다. 이건 이미 만나게 할 수 밖에 없잖아”

 

“저기 말이야....”

 

저 모습의 케이와 이야기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도망치듯 뒤로 가버렸다.

 

“....이제 돌아갈 수 없는건가”

 

“....”

 

류엔은 옛날을 그리워하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녀석이 확실히, 고등학교에서 못다한 일이 없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나날을 보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성공한 날들, 노력했던 날들일수록 돌아가고 싶어한다.

류엔 또한 힘들게 바닥에서 올라오던 시절이 있었다.

 

어딘가 쓸쓸한 시선을 천장에 향한 것을 그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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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는 것 같아서 잊혀질까봐 하던거 올림


이치노세 정신병원 파트에서 멘탈갈리느라 좀 걸렸음


다음편으로 완전히 끝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