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 https://www.pixiv.net/novel/series/1034371




<1. 프롤로그>


......흠, 과연

내 이름은 아야노코지 키요타카, 고도 육성 고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이제 막 만화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이 세계를 배우고 싶은 나는 친구인 이케와 야마우치에게 몇 종류의 만화책을 빌려 방에서 읽고 있었다.

얀데레, '병(야미)'과 '데레'의 둘을 합친 준말인 것 같다. 단적으로 설명하면 상대방에게 지나친 애정을 품은 나머지 비정상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애 만화라고 해서 예상은 했지만 꽤나 과격한 장면이 많았다. 만화여서 그림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시이나에게 빌린 책을 돌려주는 김에 도서관에서 읽을까도 생각했지만 혹시 몰라 방으로 돌아가길 잘했다. 이런게 서점에 평범하게 놓여져 있다니, 어린이라도 살 수 있다는 걸까.

현실이 소설보다 기이하다지만 역도 마찬가지다. 만화이기 때문에 캐릭터의 표정이나 생각을 읽기 쉽고,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배울 수 있어 의외로 즐거웠다. 뭐 결국은 만화. 이런 얀데레 같은 게 실제로 있을 리가 없겠지



다음날, 나는 평소처럼 등교했다. 또 호리키타에게 잔소리를 들을 걸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온다. 이것도 저것도 클래스 간 다툼이 있는 탓이지만 학교에 불평을 말해도 소용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타면 쿠시다와 호리키타가 타고 있다. 내 고민거리 둘과 아침부터 마주치다니 나도 운이 없다.


"안녕 아야노코지군!"


"안녕..."


쿠시다는 활기차게, 호리키타는 평소처럼 무덤덤하게 인사를 한다. 쿠시다가 검은 부분이 없었다면, 호리키타가 귀여움이 있었다면 지금이 기쁜 상황이었겠지만


"아야노코지군, 같이 가자!"


쿠시다가 내 팔짱을 껴 호리키타에게 보여주듯 사이좋은 척 한다. 적대시하고 있는 호리키타에 대한 약간의 앙갚음인 거겠지. 나로서는 어느 한 쪽 편을 들고 싶은건 아니지만, 서로 아무 감정도 없는 사이에 그런 일을 당해도 어색하고 호리키타의 분노를 사면 곤란하기 때문에 떼어내기로 했다.


"같이 가는건 상관없지만 걷기 힘드니까 떨어져"


"에~? 무정하네~"


쿠시다는 일부러 불만인 것 같은 태도를 보이며 손을 뗐다. 호리키타는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노려보고 있다. 이건 나중에 비아냥이나 뭔가가 날아올지도 모르겠네. 적당히 흘려듣기로 하자.

그리고 언제나처럼 학교에 도착했다. 하지만 거기부터의 사건은 결코 평소답지 않았다. 나는 대체 어디서 선택을 잘못한걸까...






<2. 어느쪽도 꽝인 부조리한 선택지>


학교에 도착한 뒤 별다른 일 없이 담담히 수업이 진행되고 점심시간이 됐다. 호리키타도 쿠시다도 특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호리키타는 내가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쿠시다와는 드라이한 관계이므로 당연하다고 말하면 당연하지만, 뭔가 위화감을 느낀다.

호리키타는 타인에게 배려없는 녀석이고, 쿠시다는 누구에게나 밝게 대하기 때문에 나와 조금 이야기를 해도 문제 없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두 사람 모두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서 오히려 기분이 나쁘다.

점심시간 벨이 울리자 아이리와 하루카가 다가왔다.


"키, 키요타카군, 식당에서 같이 점심 먹지 않을래?"


"괜찮지? 키요뽕"


오늘은 바쁜 일도 없고 권유받아 기쁘기 때문에 솔직하게 승낙해 둔다.


"응, 상관없어."


"고, 고마워!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릴게?"


"빨리 와~"


두 사람은 기뻐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나도 곧 가려고 하면


"아야노코지군,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호리키타 너 설마, 내가 얼마 없는 친구의 권유를 받은 타이밍을 재서 말을 건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너는 상당히 지독한 녀석이야?


"뭐야? 가능하면 짧게 해줬으면 하지만"


"그건 당신에게 달렸네."


그렇게 말하며 호리키타는 내게 몸을 돌려 물었다.


"아침 일이야. 쿠시다씨와 꽤 사이가 좋네?"


뭐 그 일이겠지. 예상했다.


"별로 그런 일은 없어. 쿠시다는 항상 그런 느낌이고"


"어라, 당신은 항상 쿠시다씨와 팔짱 끼고 있는거야?"


"물론 그건 지나친 생각이지만 저 녀석은 누구에게나 거리를 좁히는 타입이야. 내가 항상 무뚝뚝하니 조금 대담하게 접하려 생각했겠지."


이런 즉흥적인 변명이 통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다. 호리키타는 머리가 좋으니까. 이 녀석을 논파하는 건 나도 힘들고, 솔직히 상대하면 할수록 쓸데없다는 거다. 여기선 적당히 압박하고 빨리 도망가는게 상책.


"그럼 이만..."


"잠깐 기다려."


내가 도망가려는 순간 호리키타가 내 팔을 붙잡았다. 설마 이정도로 끈질길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도 조금 놀랐다.


"무슨..."


"이유야 어떻든 상관없어. 문제는 당신이 나 이외의 여성과 몸을 접촉했다는 사실이야."


잠시 호리키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사고가 정지됐다.


"이유가 있다면 아무하고 접촉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래서 남자란..."


"기다려, 거기까지 말하진 않았어."


내가 부정하려하자 갑자기 쿠시다가 끼어들었다.


"멈춰 호리키타씨, 아야노코지군은 그렇게 빈틈투성이인 사람이 아니야?"


아마도 호리키타에게 뭔가 하나라도 공격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덕분에 살았..


"아야노코지군이 나와 팔짱 낀건 그만큼 나와 친하기 때문이야. 머리 좋으면서 그것도 모르는거야?"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팔짱을 꼈다. 전언철회, 불에 기름을 붓지마 쿠시다. 그리고 부드러운 게 닿고 있어.


"어머, 나보다 아야노코지군과 친하다고 생각해?"


"응! 왜냐면 호리키타씨 성격 나쁘니까"


쿠시다 너도 비슷하지만


"아야노코지군, 나와 쿠시다씨 중 어느 쪽과 더 친하다고 생각해?"


"대답해 아야노코지군?"


왜 이런 상황이... 마치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잖아.


"두 사람, 친구 사이라는건 우열을 가리게 아니라..."


"친구도 적은 주제에 잘난 척 말하지 말아줄래."


"지금 질문하고 있는건 우리야? 빨리 대답해?"


두 사람 모두 나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고 나를 똑바로 응시한다. 이제 도망갈 곳이 없다. 포기하려던 그 때...


"저기저기 둘 다, 잠깐 와줘?"


내 파트너인 케이가 두 사람의 팔을 당겨 떼어 주었다. 멋대로 행동하는 건 곤란하지만 그대로 두 사람에게 추궁당하고 있는 상황을 많은 사람에게 보이는 것도 위험했다. 이는 좋은 판단이다.

나는 그 틈에 교실을 빠져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케이에겐 나중에 감사를 표하도록 할까.



식당에 도착해 나는 아이리와 하루카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왔다. 그러자 우연히 아는 사람이 보였다.


"시이나..."


"아, 아야노코지군 안녕하세요."


지금 생각하면 이때의 나는 어리석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가끔 만나는 친구를 발견해 무의식적으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이 행동이 큰 후회를 낳을 줄은 화이트룸에서 단련된 나도 예상할 수 없었다.






<3. 문학소녀는 사랑을 전한다>


시이나를 발견한 나는 무의식적으로 말을 걸었다. 저쪽도 이쪽을 알아차리고 인사를 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향한다.


"식당에 와 있었네"


"네, 저번에 아야노코지군이 함께 와준 덕분에.. 서 있지 말고 앉는게 어때요?"


눈 앞에 와서도 계속 서 있는 나에게, 시이나가 앉으라며 재촉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리들과 약속이 있다. 인간은 동작을 시행하면 그 쪽으로 의식이 향하게 된다. 몸을 쉬려고 잠시 누우면 그대로 잠드는 것과 같다. 바쁘지는 않아 두 세마디 나눌까 생각했지만 앉을 정도는 아니다.


"미안하지만 사양할게..."


"식당에 왔지만 오늘은 도시락이에요. 아야노코지군 반찬 드셔봐 줄래요? 자신작이에요."


내가 거절하려는 순간 시이나는 책상 밑에서 도시락을 꺼낸다. 다채로운 느낌에 영양 균형도 잡혀 있어 맛있어 보인다.


"언제나 친하게 지내주는 아야노코지군에게 꼭 먹여주고 싶어서..."


시이나는 평소 그다지 바꾸지 않는 표정을 온화한 미소로 바꾸고, 나의 눈을 바라보며 도시락통을 내민다. 보기만해도 식욕을 자극하고 시이나의 눈동자가 눈부셔 거절하기 힘들다.


"...알았어 고맙게 받을게."


나는 승낙하고 시이나의 옆에 앉았다. 뭐, 한입 먹는 정도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겠지. 


"감사합니다♪ 그럼 아~앙♪"


또 나는 순간 사고가 정지됐다. 지금 일어난 일을 그대로 말할게. 시이나가 젓가락으로 한입 크기의 오믈렛을 내 입가에 가져오고 있다. 물론 내 것이 아닌 시이나의 젓가락이다. 딱히 나는 스스로 먹을 수 있다.


"시이나, 나무젓가락 가져올테니까..."


"아~앙♪"


"아니, 직접 먹을게..."


"아~앙♪"


어라, 이상해. 대화가 성립하지 않아. 내가 아는 시이나는 현명하고 독서를 좋아하며 어휘력도 높다. 아니 애초에 평범한 고등학생이면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것은 연애만화에서 나온, 상대에게 먹이는 것으로 애정을 전하는 행위 『아~앙』이란 것인가. 시이나가 나에게 애정을 품는 요소를 모르겠다. 아니면 다른 상대를 위한 연습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장난인가?

주변을 보니 다행히도 사람이 적다. 이정도라면 몰래 한다면 목격되지 않을테고, 큰 소리가 아니라면 대화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거기까지 친한 관계라고는 생각되지 않겠지.


"...그럼. 아~..."


"아~앙♪"


결국 시이나의 젓가락을 통해 오믈렛이 내 입으로 들어갔다. 그 젓가락을 시이나가 사용하면 간접키스지만 뭐, 나는 나쁘지 않으니까 신경 쓰지 않도록 하자.


"맛있나요?"


"응 맛있어, 잘 만들어졌네"


내가 칭찬하자 시이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사랑스럽게 웃었다. 이렇게 귀엽고 머리도 좋다면 쿠시다처럼 주위에 사람이 많은 인기인이라도 이상할 게 없지만 역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나 적극성이 중요한가.

뭐, 그 이전에 시이나는 혼자인걸 좋아하는 듯 하고 내가 이러쿵저러쿵 할 게 아니다.


"잘 먹었어 고마워. 그럼 이만..."


"아, 기다려주세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시이나에게 만류되었다. 왠지 오늘은 꽤나 내 발언이나 행동이 막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뭐, 원래 내 취급은 결코 좋지는 않았지만


"실은 저, 아야노코지군에게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때, 난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감지했다. 목소리 톤이 미묘하게 다르다. 위화감이 든다.

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한걸까. 어째서 누구와도 약속하지 않았는데 일부러 혼자 도시락을 들고 식당에 왔을까. 그리고 마치 내가 여기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나에게 도시락을 나누어 주었다. 어쩌면 마음 놓는 친구인 시이나에게 방심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야노코지군, 어제 도서관 앞까지 왔다가 들어가지 않고 돌아갔죠?"


...어쨰서 알고 있지. 확실히 시이나는 자주 도서관에 있지만 그 안이 아니라 앞을 지나간 날 눈치챌리 없다. 시이나도 도서관에 있었다가 우연히 날 발견했나? 아니, 그렇다면 말을 걸어줬으면 좋았다. 


"어제는 들어갈 이유가 없었어."


"친구에게 빌린것 같은 책을 갖고 있었지요? 아직 읽지 않았나요?"


시이나의 목소리 톤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호리키타같은 노골적인 위압감도, 쿠시다같은 살짝 어두운 위압감도 아니다. 나쁜 의미로 순수한 것. 그리고 정확한 추리에 내가 기댈 곳은 무너져 간다.

사실대로 말하면 납득하겠지만 나에게도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마음은 있다. 독서 친구, 게다가 여자. 음란한 만화책을 읽고 있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방에 있었다고 생각되기 싫다.

이 저렴한 프라이드를 가졌던 것을 후회하게 될 줄은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책은 빌린게 아니라, 돌려줄 참이었다."


"즉 아야노코지군은 그런 애니메이션의 미소녀를 좋아해 그것이 그려진 봉투를 사용하고 있었네요?"


이케, 야마우치. 만화를 빌려 놓고 이런 말은 너무하겠지만 일부러 그런 껄끄러운 봉투를 넘겨준 너희를 원망한다고.


"...그렇지는 않아."


시이나에게 웃는 얼굴로 성벽을 의심받은 나는 부정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거기서 긍정했더라면 나중에 편해졌을테지...





<4. 도망갈 수 있었지만 원한을 남기다>


"그럼 어째서인가요?"


시이나는 다시 물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내가 도서관에 들어가지 않고 지나쳤던 일로 시이나에게 어떤 불이익이 있을까? 내 변명은 논파당했지만 독은 독으로 제압하듯, 질문에는 질문이다. 참고로 국어 시험에서 질문에 질문으로 돌려주면 오답이니까 절대 하지 말자.


"그런 말을 들어도... 애초에 내가 도서관에 들어가든 말든 상관 없겠지?"


완벽하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내 주장은 처음으로 느낀 시이나의 이질적인 분위기에 삼켜졌다.


"확실히 아야노코지군이 도서관에 들어올 의무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오지 않는 날에도 뭔가 용무가 있을거라 묵인하고 있었어요..."


묵인? 무슨 소릴 하는거야


"그러나 어제는 달라요. 일부러 도서관 앞까지 왔다. 즉 여유가 있었던 거에요."


뭐, 그건 그렇지만


"도서실에 올 수 있는 날인데도 저를 만나지 않고 돌아가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가요?"


...응? 그건 즉, 시이나를 만나지 않고 돌아간 것에 화내고 있는 건가? 어째서지?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반도 다른데다, 반 사이의 대결도 있어 쉽게 만나기 어렵지요? 그래서 저는 당신과 얘기하는 시간을 1분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시이나는 돌연 거침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다른 반 학생, 특히 시이나와의 교류는 소중히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까지 열변할 일인가?


"그런데도 당신은, 저와 얘기할 기회를 빤히 알면서도 버리고... 저는 책을 좋아해 대개 도서실에 있는 걸 알고 있죠? 알면서 그냥 지나치다니 저를 싫어하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여성을 만나고 있다던가..."


"아니, 그렇게까진 말하지 않았어..."


화가 나서 그런지 나를 거들떠보지 않고 피해망상에 빠져 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여자를 만나도 시이나와 아무 상관 없다. 나는 그 무기질적인 방에서 동요하지 않는 마음을 배웠지만 보통 사람들은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면 이렇게 되버리는 건가?


"솔직히 대답해주세요 아야노코지군, 당신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좋다 싫다로 대답해 주세요. 그리고 여성과의 교우관계를 전부 알려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얘기는 끝나지 않아요? 자... 아야노코지군"


시이나는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빛을 잃고 무겁게 짙은 어둠이 감돌고 있다. 거기에 비치는 건, 빛의 반사로 인한 내 모습 뿐. 아까 나는 대개의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금 틀림없이 동요하고 있다. 호리키타나 쿠시다처럼 여자의 돌변을 목격해 그 갭이 상상이상이다.

어떻게 변명할까 눈을 돌리자 시계가 보였다. 어느새 꽤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리고 아이리들이 기다리고 있는게 생각났다.


"미안 시이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얘기는 다음에 하자."


억지로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시이나가 마지막에 내 이름을 부른 것 같았지만 이대로는 아이리들에게 미안하다. 급히 식당 안을 돌아 저 멀리 아이리들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아야노코지군, 놓치거나 하지 않으니까요? 아야노코지군아야노코지군아야노코지군아야노코지군아야노코지군아야노코지군..."



"미안 늦어서."


"정말~ 진짜로 늦었어 키요뽕! 이제 우리들 다 먹어버렸다고?"


"키요타카군, 무슨 일 있었어?"


보면 하루카도 아이리도 식사를 끝내고 있다.


"호리키타에게 잡혀버려서, 정말 미안. 좀 봐줬으면하는데 정말이지..."


실제로 호리키타에게도 멈춰졌고, 절반은 사실이니 녀석 탓을 해도 상관없다. 거짓말을 하려면 진실을 섞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렇구나~... 난 조금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갈게. 키요뽕은 아이리와 사이좋게 있어~♪"


하루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2인분의 식사를 정리하러 갔다. 지금은 나와 아이리 단 둘이 있다.


"그럼 뭐라도 사올게."


"아, 기다려 키요타카군! 사실 오늘은..."


내가 정식을 사러 가려고 하자 아이리가 날 멈추고 책상 위의 주머니를 열었다. 안에는 도시락통이 들어 있다.


"시, 실은 키요타카군에게 주고 싶어서 만들었어... 먹어줄래?"


점심시간이 되고 난 아직 오믈렛 한 개 밖에 먹지 않았기 때문에 배가 고프다. 게다가 아이리가 만든 도시락은 맛있어 보여 거절할 이유가 없다.


"물론이지. 만들어줘서 고마워."


아까 전의 시이나와의 대화로 지쳐 있었기 때문에, 아이리와의 대화로 조금은 위로가 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나의 요망에 불과했다. 아이리의 온순함에 나는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5. 아름다운 꽃에는 가시가 있다>


"자, 아~앙..."


어라, 데자뷰인가? 방금 전에도 같은 말을 들었다고. 아이리는 반찬을 자신의 젓가락으로 집어 내 입가로 가져왔다. 이건 먹으라고 말하는 거지? 날 위해 만들어 준거잖아? 즉 이건 『아~앙』이라는 건가. 아니, 그러니까 어째서냐. 이건 상대에게 애정을 전하는 행위라고? 그렇게 가볍게 이성에게 해도 좋은 일이 아니다. 아이리, 순수하고 얌전한 네가 어째서 이런 일을... 나는 슬프다고.


"자, 아~앙..."


"아~..."


결국 나는 체념하고 아이리의 『아~앙』을 받았다.


"마, 맛있을..까나?"


"응, 맛있어. 꽤나 잘 만들었네."


인사치레 없이 칭찬하자 아이리는 얼굴을 붉히고 상냥하게 웃으며 매우 기뻐했다. 노력과 결과에 기뻐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나는 무르게 접촉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잘 먹었습니다. 덕분에 만족했어."


"처, 천만에요. 차 마실래?"


몇 분 후,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내 배고픔이 진정됐다. 아이리도 자신이 만든 요리가 칭찬받아 만족스럽게 미소를 짓고 있다.


"키요타카군, 식사도 끝났으니 조금 이야기 좀 해도 괜찮아?"


"응, 뭔데?"


아이리는 어째선지 정색하고 나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왜 늦은거야?"


"그건 아까 설명했겠지. 호리키타에게..."


"시아나씨와 대화는 즐거웠어?"


그 한마디에 난 일순간 심장이 멈춘 줄 알았다. 보이고 있었나... 허나 도망칠 방법은 있다.


"미안, 또 저번처럼 반 정보에 대해 물어봤어. 걱정 끼치기 싫어서 말하지 않았어."


"그런 사람에게 점심 얻어먹은 거야?"


...위험하다. 예측 못한 사태에 곤혹스러운지 머리가 돌지 않는다. 이래서는 평범한 인간의 변명과 다르지 않고, 이대로는 아이리에게 논파당해 버린다.


"...길들여지고 있어."


아 정말, 오늘의 나는 안된다. 어디의 누구처럼 폐품이 되어 있다. 아침부터 여성진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나도 모르게 패닉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사실대로, 말해?"


나의 서투른 변명이 통할리도 없고, 아이리는 고개를 들어 빛을 잃은 슬픈 눈으로 날 바라본다. 그 시선이 아파 나는 자백해버렸다.


"사실, 시이나와는 친하게 지내고 있어."


조금 불쾌한 기분이 들겠지만 이렇게 돼 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금방 수습되겠지.


"어째서...어쨰서 거짓말을 했어? 어째서 시이나씨와 친해지고 있는거야? 저기 어째서?"


하지만 나의 예상은 너무 물렀다. 아니 이제 이거 회피 불가능하겠지. 아이리는 빛을 잃은 눈을 유지하며 몸을 떨고 금방이라도 울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


"아, 아이리 진정해줘..."


나의 제지는 통하지 않고 아이리는 의문사만을 되뇐다. 이대로는 주목받기 때문에 나는 아이리를 데리고 인적 없는 장소로 향했다.



내가 대체 뭘 했다는 거야. 아이리를 데리고 인적 없는 학교 뒷편으로 가니 사람이 있었다. 그것뿐이라면 다행이지만


"아야노코지군? 그리고... 사쿠라씨?"


사토 마야... 내가 크리스마스의 더블 데이트 후 찬 상대다. 반대로 왜 그녀는 혼자 이런 곳에 있는지 의문이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어째서 사쿠라씨와 손잡고 인적이 드문 곳에...?"


"키요타카군, 언제 사토씨와 알게 됐어?"


두 사람 함께 나를 추궁해 온다. 어느쪽부터 대답할까...


"아야노코지군, 사귀는 사람은 없다고 했지? 그런데도 사쿠라씨와... 나를 차버리고!"


"에? 키요타카군, 고백받은거야? 그것도 지금까지 말하지 않고 있었어?"


사토, 멋대로 중요한 이야기를 누설하지 말아줘. 사쿠라, 너는 조금 기다려줘 부탁이니까.

갑작스러운 사태에 혼란하다. 이대로는 두 사람 다 무엇을 해올지 알 수 없다. 나 혼자서는...


"이런 데서 뭘 하고 있어?"


희망을 잃을 뻔한 그 때, 케이가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잠깐, 두 사람 왜 울고 있어!?"


케이는 둘에게 달려가며 나와 엇갈리는 순간 이쪽에 윙크를 해왔다. 여긴 나에게 맡기라는 뜻인가? 녀석이 파트너라 정말 다행이다. 솔직히 지금 상황은 케이 혼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도망치면 더욱 악화할 것 같다. 하지만 난 지금 정신이 맑지 않다. 한번 정비할 필요가 있다.


"키요타카군, 나에겐 당신밖에 없어. 당신은 내 전부야. 키요타카군키요타카군키요타카군키요타카군..."


"아하, 아하하 아야노코지군이 날 찬건 아직 서로 잘 모르기 때문이지? 즉 서로 알게되면 가능성이 있단 거네? 이 어플 덕에 여기 오는 것도 알게 됐고, 조금씩 거리를 좁혀 갈게...아야노코지군♡"






<6. 아무래도 내가 뭔가 저지른 것 같네요>


아이리와 사토의 심문에서 도망친 나는, 적당히 달려서 먼 벤치까지 왔다. 교실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아직 호리키타와 쿠시다가 있을지도 모르고 하루카도 돌아왔을테지. 게다가 오늘은 피곤해서 뭔가 마시고 진정하기로 했다.


"하아..."


무심코 한숨이 새어나왔다. 오늘 다들 정말로 왜 그러는 걸까. 왠지 사람이 변한 듯 해, 멋대로 내 여성관계에 신경 쓴다. 어두운 나에게 여자가 접근하는 게 그렇게 마음에 안드는 걸까?


"아야노코지군, 한숨 같은걸 쉬고 무슨 일이야?"


자판기 앞에서 고민하고 있으니 뒤에서 말을 걸어온다. 돌아보면 눈부신 미소를 보내는 이치노세가 있다.


"피곤해보이네? 뭔가 있었어?"


"...뭐, 여러가지"


아이리까지 저렇게 되어버려, 내 마음의 안식처는 이치노세밖에 없을지도 몰라. 누구에게나 밝고 상냥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배려 넘치는 이치노세. 그녀와의 대화에서 피로를 느낀 적이 없다.


"혹시 괜찮다면 상담이라도 해줄까?"


"...그럼, 가볍게 푸념이라도 들어줄래?"


그녀가 바쁜지 어떤지도 확인하지 않고 무심코 호의에 기대고 말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정말 피곤한 것 같다. 나는 이치노세의 주스도 사고 둘이서 벤치에 앉았다.


"뭔가 미안해. 이야기를 듣는 것 뿐인데 얻어마셔서"


"별로 그럴 생각은 아니고... 뭐, 이치노세의 귀중한 시간을 쓰는거니까, 약간의 상담료라고 생각해줘."


"너무 겸손하네~ 거기에 상담료를 내지 않은건 내 쪽이고..."


이치노세는 미안한 듯이 말했다. 분명 저번 소문의 건에 대해서겠지


"나야말로, 아직 감시카메라의 건에 대해 갚지 못했어. 시작이 늦은 만큼 아직 안정되지 못해서. 빌린건데 미안."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좋아. 빌려준 건 내 몫이고 아야노코지군의 그때 상황을 알고 결정한 거니까"


...짓궃은 세상이다. 난 그렇게 느꼈다. 이치노세와 사이좋게 지내는 나는 명실공히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학급 대항 시스템이 있는 한 싸우게 되고 그 이상 친해질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만난 계기는 그 시스템이다. 우리들은 가능한 한 만나고 대립하게 된다. 챠바시라의 거짓말이 탄로난 지금, 나로서는 A반에 올라갈 이유는 없다. 나구모도 사카야나기도 정리하면 뒤는 어떻게든 된다.


"게다가 감시카메라는 제대로 용도를 찾았으니까, 오히려 도움이 되어 요긴했고, 괜찮은 쇼핑을 했다고 생각해. 돌려주지 않아도 좋을지도."


"그렇다면 다행이네."


"뭐 그치만 아야노코지군이 상대라면 빌린걸로 해둘까나~ 연결고리는 많이 갖고 있는게 좋고..."


이치노세의 마지막 말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장난스럽고 밝게 웃는 그녀를 보고 안심했다. 이제 이치노세는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로 행동할 수 있다. B반의 단합도 공고해졌고 걱정할 일은 없다.


"아 맞아맞아, 아야노코지군의 고민을 들으려고 앉은거였지. 뭘까나?"


"아, 그랬네. 실은..."



난 이치노세에게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전부 이야기했다.


"...라는 일이다."


"......"


이치노세는 내가 말하는 동안 계속 잠자코 있었고, 이야기가 끝나도 뭔가 생각에 잠겨 있다. 뭐, 알 리가 없지. 원래 푸념만 할 생각이었고 더 이상 시간을 뺏을 순 없다.


"들어줘서 고마워. 너한테 얘기하니 좀 편해진 것 같아. 그럼 이만..."


"...기다려"


감사를 표하고 일어서려 하자 이치노세가 내 팔을 붙잡았다. 평소보다 낮은 톤의 목소리에서, 묘한 분위기를 느낀다.


"아야노코지군의 고민은 제쳐두고, 듣고 흘릴 수 없는 일이 있네."


아니, 동의를 구해도 곤란하지만. 그보다 듣고 흘릴 수 없는 일이 뭐야?


"나 이외의 여자와 많이도 친해진 일이야. 그런거 듣지 못했어?"


...아니, 그치만 말하지 않았고


"그정도로 곁에 두면, 그야 그런 사태가 되겠지... 좋지 않아, 그런거."


평소와 다름없이 부드러운 말투. 그러나 뭔가 이질적이다.


"이상하네~ 내가 조사한 정보보다 아야노코지군과 접촉한 사람이 많네... 뒤에서 살금살금 뭔가 하고 있었어?"


생각해보면 그녀는 아까 신경쓰이는 말을 했다. 감시카메라의 용도를 찾았다고, 평소 쉽게 볼 수 있으나 그 소유자나 목적은 특별히 신경쓰지 않는 물건. 이치노세는 학교 비품이란 명목으로 숨기고 있었다. 나를 감시하기 위한 카메라를.


"아야노코지군, 장래의 상대는 신중하게 선택해야해. 나, 자신있어? 스스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가사 전반, 주부로서의 일은 특기인거야."


그렇게 말하고 이치노세는 일어나 앉아 있는 내 무릎에 올라왔다. 내 양 손목을 누르고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댄다.


"저기 아야노코지군, 나 이런 기분은 처음인거야. 치사해, 그렇게 관계를 만들고... 아니면 날 질투하게 하려 일부러 그러는 걸까아?"


이치노세는 눈의 빛을 잃고 뺨에서 귀까지 빨갛게 물든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느새 숨도 거칠어져 있고 숨결이 얼굴에 닿아 뜨겁다.


"나 있잖아, 아야노코지군 때문에 이렇게 가슴이 아파? 봐, 느껴져?"


"!?"


이치노세 가슴의 고동에 반비례하듯 나의 심장은 순간 멈출 것만 같았다. 그 때의 쿠시다처럼 이치노세는 내 오른손으로 자신의 가슴에 댔던 것이다.


"자아... 알고 있지? 알겠지? 이런 아픔, 아야노코지군 때문이니까...♡"


너무나 예상 밖의 일에 내 사고는 완전히 정지했다. 아무 속셈 없이 내 오른손은 그녀의 가슴을 움켜쥔 채 당분간 움직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의 '당분간'는 실은 아주 순간이었던 것 같다.






<7. 누구나 말한다, 그것은 포상이라고>


"읏!"


나는 팟하고 정신을 차리고 급히 이치노세의 가슴에서 손을 떼었다. 억제된 왼손도 풀어 이치노세의 어깨를 잡아 무릎에서 내리게 한다.


"아야노코지군도 당황하는구나. 레어한 장면을 봐 버렸네~♪"


이치노세는 나에게 떼어져도 여전히 변함없는 어조로 기분 나쁘게 웃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쥐어졌던 가슴을 스스로 만진다.


"아야노코지군의 손으로, 내 가슴이...♪ 아야노코지군의 처음...♡"


여기서 내가 쿠시다의 것도 만졌었다라고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될까


"아야노코지군, 주스 교환할래?"


갑자기 이치노세는 내 옆에 놓여 있던 마시다 만 캔을 집어 입에 댔다. 내가 뭔가 말하기 전에 그 행위는 고조되어 갔다.


"응..음..하앗..앗..."


이치노세는 캔의 마시는 부분에 입술을 붙여대고 끝내는 혀로 핥아댔다. 그리고 입 안에 침을 머금고 캔 안에 부어 넣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캔에도 같은 처리를 해, 나에게 내밀었다.


"자, 마셔♪"


"아니, 자 마셔, 라고 들어도..."


이치노세는 누구나 인정하는 미인이니 그녀와 간접 키스 하는 것을 불쾌히 생각하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야마우치 따위는 울면서 감사의 말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침 투성이의 캔을 건네받으니 역시나 저항을 느낀다.


"사양 안해도 좋아? 원래 아야노코지군이 사준거니까."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치노세는 마시라는 듯 나에게 캔을 내밀어 온다. 거절하면 나는 어떻게 되어 버리는 걸까. 아니, 역시 이건 거절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미안, 이제 돌아가야해서..."


"아, 기다려!"


이치노세는 도망치려고 일어나 달리기 시작한 나에게 달려들었고, 서로 균형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아야노코지군!? 미안, 괜찮아!?"


이치노세는 당황하며 내 안부를 확인하고 나의 뺨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


"사, 상처가! 큰일이야 치료하지 않으면!"


"진정해 이치노세, 침이라도 발라놓으면 나아."


냉정을 잃은 이치노세에게 나는 괜찮다고 타일렀다. 그러자 그녀는


"그런가, 그럼..."


내 머리를 내려 뺨을 할짝인다.


"이, 이치노세, 지, 진정해, 진정하는거야. 우선 냉정하게 생각해..."


"진정 못한 건 아야노코지군 쪽이야? 호흡 이상한데? 가만히 있어..."


이치노세는 이상하게도 냉정하게 그저 내 뺨을 계속 핥는다. 나는 이제 저항할 생각도 없어졌다.


"...이제 맘대로해. 지쳤어..."


이치노세의 혀는 따뜻한 듯, 부드러운 듯, 축축한 듯, 기분 좋은 듯, 나쁜 듯, 창피한 것 같기도..

그런 감촉을 이치노세 기분이 풀릴 때까지 느끼며, 끝날 때까지 마음을 비우고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치노세는 나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자, 내 타액으로 듬뿍 코팅해줬어♡"


"고, 고마워.."


이제 더는 이치노세의 기세에 따라갈 수 없다, 이번엔 무조건 도망가려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서 손을 떼는 순간, 나는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체육대회 릴레이에서 보여준 최고속도보다도 빠르게 저 멀리. 이것이 화재 현장에서의 괴력이라는 건가. 그 속도는 내 상상 이상이었다.


"아야노코지군, 나를, 거절했어...? 아하, 아하하♪ 그럴리 없어. 아야노코지군이 그럴리 없어. 아하하♪ 분명 부끄러웠기 때문이야. 정말, 부끄럼쟁이라니까♡ 혹시 나와 똑같이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걸까나? 분명 그럴거야! 아야노코지군이 가르쳐준 이 멋진 마음을, 이번엔 내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도주한 나는 체육관까지 왔다. 오랜만에 전력을 다한 나는 숨이 차서 인적 없는 창고에서 쉬기로 했다.

이제 난 여자에게 트라우마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보다 앞으로 이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면 좋은거야. 같은 학교, 같은 기숙사에서 지내는 한 마주치는 걸 피할 수 없다.

한참 고민하던 중, 창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안녕하세요, 아야노코지군" 


한 손에 지팡이, 다른 손에 카메라를 든 A반의 가련한 소녀


"...사카야나기,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냐니 너무하네요. 전 당지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에요? ...아까 전에는, 이치노세씨와 꽤나 즐기고 있었네요."


카메라에 비친 나와 이치노세에 투 샷을 보이며, 그녀는 창고에 들어가도록 눈짓한다. ...정말이지, 재난 이후에 재난이구나.




다음편 - https://arca.live/b/youjitsu/25468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