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 내가 해줄까?"


"그래도 괜찮아?"


 짐 정리를 마친 아마사와가 그런 말을 했다.


"당연하지. 공짜로 묵을 생각도 없고. 냉장고의 식료품들 보니까 컵라면이랑 냉동식품밖에 없잖아"


"만드는 건 귀찮고"


"그러다간 언젠가 영양실조로 쓰러질거야"


"화이트룸에서 나온 밥보다는 100배 나을텐데..."


"....음. 그건 그러네"


 맛을 둘째고, 영양 균형으로만 생각하던 화이트룸의 식사를 떠올렸는지, 아마사와는 조금 씁쓸한 추억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후, 나와 아마사와는 방의 정리부터 시작해, 잡담을 나누다 보니 벌써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럼, 오후에 말한대로, 오늘은 내가 저녁을 만들어줄게"


"맡길게"


"네네~"


 아마사와는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를 부르며 부엌으로 향한다.


 몇 가지 가져온 식재료가 있었는지, 쇼핑백에서 식재료를 꺼내 진열한다.


 남은 재료 몇 개는 내일 쓰려는 생각인지,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냉장고에 수납하고 있었다.


"아마사와, 하나 물어봐도 되냐"


"뭔데, 선배?"


"이렇게나 식재료를 가져왔다는 건, 처음부터 여기 묵을 생각이었단 거겠지?"


"그런데? 아까도 말했잖아"


"만약 내가 무리라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야채를 자르던 아마사와는 움직임을 멈추고, 조금 생각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럼, 다른 남자의 방에 가서 몸을 팔았을지도 모르지"


"........"


 나를 동요시키고 싶은건지, 아마사와는 장난을 생각해낸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전혀 반응이 없는 나의 얼굴을 보고, 재미없는 농담임을 깨달았는지, 아마사와가 곧바로 정정해 왔다.


"농담이야 농담. 살 곳을 찾을 때까지는 가까운 캡슐 호텔에서 지내거나, 대학에서 여자 친구를 만들어서 그 애를 방해하거나 했겠지"


"그래, 그거라고. 남자인 내 방에 들어오는 것보다, 네 여자 친구한테 묵게 해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냐?"


"아닌게 아니라, 만난지 며칠 안 된 동성 친구를 재우는 건 망설여지잖아. 그리고, 선배와는 2년 간의 교제도 있었으니까. 선배를 더 믿을 수 있고"


"하아....너한테는, 나한테는 여자친구가 있으니까 방에서는 못재운다고 말할 걸 그랬어"


"────응?"



 쿵 하고 아마사와가 식칼을 내리쳤다.



"....선배, 여자친구 있어?"


"...."


 자신의 말실수를 이렇게나 저주한 적이 없다.

 농담이라고 해도, 해도 되는 말과 안 되는 말의 판별 정도는 했어야 했나.


"뭐야, 못 들었는데, 그거. 카루이자와 말고도, 또, 이상한 여자를 만들거야?"


 텅 텅, 천천히 차가운 발소리를 울리며 아마사와가 휘청휘청 나에게 다가온다.



 ──왼손에 칼을 들고



"잠깐, 잠깐 기다려 아마사와. 무표정한 얼굴로 식칼을 들이밀지 마. 진짜 무서우니까"


 갑자기 상태가 이상해진 아마사와가 요리를 멈추고, 식칼을 들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니 진짜 호러영화 같으니까.


 ....가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누구야? 선배의 여자친구라니....내가 없어지자 마자, 바로 그런 짓을 하고....카루이자와는 놓쳐버렸지만, 이번에는 절대 그냥 안둘거야. 오늘밤 저녁은 그 여자로────"


"침착해 아마사와. 가상이라고, 가상"


 아마사와가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하자, 나는 서둘러 가상의 말임을 전했다.


"....진짜?"


"진짜야, 진자. 동아리 안에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대학에서 인기 있을 리가 없잖아"


"....정말이지? 카루이자와라는 전례가 있으니까 신빙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아마사와, 나를 못 믿는거야?"


 내가 진지한 표정을 짓자, 칼을 들고 다가오던 아마사와의 움직임이 멈췄다.


 조금 전까지 엄청나게 흘러나오던 살기가 사라지고 요리를 하던 때의 미소로 돌아가 있었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놀란 건 이쪽이다. 갑자기 상태가 이상해지고"


"아하하, 선배한테 새 여자친구가 생긴 줄 착각했잖아. 부탁이니까, 내 앞에서 헷갈리는 말은 하지 말아줘"


 5초 전 사건을 완전히 없던 일로 하는 듯한 함박웃음이다.


 오히려 이게 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서 무섭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부엌으로 돌아가는 아마사와를 보며, 나는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리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선배, 같이 씻자"


"문맥이 이상한 것 같은데"


 저녁식사 후에 책을 읽고 있는데, 아마사와가 이상한 말을 해서 놀라 기침을 했다.


 보통 같으면 「선배, 목욜 좀 할게」라는 대사가 나올텐데.


"여자친구 없는 거지? 그럼 나랑 같이 들어가도 아무 문제 없지 않아? 아니면 아까 했던 말이 가상이 아니었던 거야? 설마 진짜로 새로운 여자친구라던가──사귄 건 아니지?"


"....얼른 들어가. 난 30분 정도 가까운 편의점에 가 있을게"


"아, 잠깐! 선배, 도망치지 마!"


 더 이상 어울릴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아마사와에게 목욕 타올을 던지고 방을 떠났다.




"그런 이유니까, 도와줘 도라에몽"


『누가 도라에몽이냐, 죽고 싶냐』


"드래곤 보이니까 도라에몽도 해도 상관 없잖아. 쩨쩨한 소리는 하지 마, 류엔"


『너 이 새끼 지금 어디냐. 지금 우리쪽 애들 전부 데리고 가서 죽이러 가주마』


 아마사와가 목욕을 하는 동안, 나는 근처의 편의점 앞에서 옛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낡은 아파트인데, 지금 올래?"


『앙? 아직도 그런 귀신의 집에 살고 있었냐. 그럼 갈 생각은 없네』


 그래.

 고도 육성 고등학교의 지인 중에서, 유일하게 류엔 카케루만이 내가 사는 곳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일부러 내가 가르쳐준 것은 아니다.

 동아리에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류엔과 재회하게 돼, 근황보고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나 할까.


 류엔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 주소를 말하지 말아달라고 못을 박아두었다.


 그리고, 아직 아마사와 이외에는 아무도 나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을 미루어 보아, 류엔은 입도 뻥긋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전화를 건 거라면, 무슨 용건이라도 생긴거냐. 빨리 말해. 나도 한가하지 않다고』


"....내 집이 들통났어"


『....누구한테?』


"아마사와 이치──"


 뚜우, 뚜우, 하며 전화가 끊기는 소리가 났다.


 저 녀석, 분명 귀찮은 냄새가 나니까 끊은게 틀림없다.


"여보세요"


『뭐냐, 다시 걸지 말라고. 아마사와 관련이라든가 100% 귀찮은 일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가진 연락처 중 유일하게 아마사와를 알고 있는, 도라에몽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잖아. 저기, 네가 사는 곳에 잠깐 머물게 해주면 안 될까? 첫날부터 평온이 박살날 위험이 생길 것 같은데"


『내 알바냐. 그 근처 노숙자랑 함께 노숙이라도 해. 그리고 다음번에 나를 고양이형 로봇의 이름으로 부르면, 너는 진짜 뒤질 줄 알아라』


 내가 한 농담에 류엔이 웃어본 적은 없다.


 더 이상 이상한 일로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도 좋지 않겠어.


"....이제 아마사와하고 어떻게 해야할까? 그 녀석 콘돔 같은 것도 갖고 왔고, 완전히 정조의 위기라고 생각하는데"


『아앙? 너 동정도 아니면서, 뭘 겁먹고 있는거냐』


"아니 그냥 무섭잖아"


『시끄러. 그냥 적당히 하면 얌전해지겠지. 잘가라』


"아, 도라에────"


 뚜우, 뚜우, 이번에야말로 정말 전화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재차 걸어 보았지만, 거신 전화번호는──라고 되어 있다.


 착신 거부 당해 버렸네.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아마사와 이치카.


 확실히 엄청나게 귀찮은 여자고, 그 취급법도 잘못 건드리면 주위에 엄청난 피해가 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오늘 건강해 보이는 그녀를 보고.


 나도 조금, 오랜만에 만나서 기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후기


지난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2021/7/17 0:00 정각 결과.


・히라타 9표 14%

・코엔지 10표 16%

・류엔 43표 57%

・이시자키 2표 3%

・카츠라기 0표 0%


여기에 아야노코지를 추가하면, 인기 있는 남자 캐릭터의 인기 순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과는 참혹하네요.

류엔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역시나 다를까, 카츠라기는 자기 머리카락처럼 투표 수도 0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