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드라이브/ 이치카 쨩의 한마디 일기-



1



"‥‥"


"그만 기분 좀 풀어주지 않을래? 아마사와"


"흥"


사카야나기를 배웅한 우리들은 냉방이 잘되어있는 아파트로 돌아와 있었다.


그대로 준비하고 대학을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아침부터 아마사와의 기분이 언짢다.


아니 나쁘다니 레벨이 아니다. 눈만 마주치면 발칵 뒤집히고 조금이라도 입을 열면 무시다. 그녀를 만지려고 하면 이상한 속도로 회피된다.


"선배 내가 왜 기분 나쁜지 알아? "


"‥‥"


제일 귀찮은 타입이군. 화를 내는 이유를 말해 주면 좋겠지만, 굳이 나에게 대답해보라고 한다.


뭐,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보기에도 검토가 되고 있다.


"사카야나기 때문인가?"


"왜 그사람이 오는거야. 선배, 이 아파트에 대한 건 나 말고는 모르지 않아?"


"아마사와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의 동창생은 류엔과 사카야나기에게만은 들켰어"


"하아?"


류엔은 지난해 동아리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 연락처를 교환했고, 사카야나기에게는 류엔으로부터 거처를 들켰다고 솔직하게 전했다.


"아니 그건, 사카야나기 이사장은 자기 딸에게도 편애하지 않는 타입이라 쉽게 아야노코지 선배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류엔 선배도 알고 있었다니"


"둘 다 우연에 가까운 방식으로 내가 있는 곳을 알아낸거야. 결코 내가 가르쳐준 게 아니야"


"....류엔 선배뿐이라면 좋았을텐데"


불만을 감추려고 하지 않는 아마사와는 낮은 목소리로 나와 보폭을 맞춰 뒤를 따라온다.


"자신 이외의 여자에게 내 주소가 알려지는 게 그렇게 싫어?"


아마사와의 기분이 나쁜 가장 큰 이유를 찔렀다. 그녀의 호의를 아는 몸으로 있으면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당연히 싫어할게 뻔하잖아. 카루이자와가 아닌게 것 더 낫지만 하필이면 왜 아리스 선배야...."


"별로 나도 사카야나기도 서로 마음이 있는 건 아냐. 아마사와가 신경 쓸 정도도 아니잖아"


"....!"


내가 그렇게 시선을 보내면, 아마사와는 울것 같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들은 연인이 아니라서 너에게 두말할 이유는 없다,는 시선을 보낸 게 제대로 전달된 것 같다.


"....나, 먼저 갈게"


고개를 수그리고 아마사와는 빠른 걸음으로 나를 앞질렀다.


좀 고집이 심했다고 생각하지만, 이 주고받기로 나를 떠난다면, 아마사와에게도 이것이 좋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나 혼자에게 얽매이지 않았으면. 화이트 룸이 궤멸한 지금 아마사와에는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치 오빠 졸업을 못하는 여동생의 버릇을 고치는 것 같지만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마사와의 기분이 그대로라면 조금 힘들지도.."


폭발한 순간에 무엇을 할지 모르는 것은 고교 시절부터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사와가 보내는 애정은 조금 무거운 면도 있으니까.


그 점을 포함해서 대처 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2




밤이 되어도, 아마사와는 내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과연 오늘 아침의 주고받기가 잘 되었는지, 방에서 얌전히 있는 것 같다.


"어쩐지 오랜만에 조용한 밤이 되었네"


이렇게 조용한 하루는 아마사와가 이곳에 온 이후일지도 모른다.


옆 아마신와의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텔레비전 소리도 샤워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뭐하고 있는지는 모르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아마사와의 방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거야?"


아마사와가 나를 떠난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의 성장으로 연결되고 나 개인의 시간도 늘어난다.서로에게는 win-win일 것이다.


그런 때였다.


"....류엔인가"


핸드폰이 울려서 확인해보니 류엔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 한마디쯤은 불평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딱 좋은 타이밍이네.


"요 아야노코지"


"네가 전화를 하다니 신기하다. 류엔"


"지금 너네 낡은 아파트 밑에 와있어. 한가하면 빨리 와라"


"갑자기 너무 갑작스럽잖아"


"한가하지 않으면 이대로 돌아갈건데, 어떻게 할거냐?"


"...갈게"


"알았다. 그럼 3분 기다려줄 테니까 냉큼 내려와"


간결하고도, 꽤 급한 전화였네. 적당히 반팔로 갈아입은 나는 지금 시간을 확인한다.


현재 시각은 21시 반. 늦어도 날짜 넘기 전에는 돌아올 수 있을까.


문을 열었을 때, 일단 옆방인 아마나와에게 말을 걸까 생각했지만, 따라와도 곤란해서 그만 두었다.


아파트 아래에는 보라색 베르파이어가 서 있었다.영락없이 류엔의 애차다.


"....잠깐만"


멀리서 보면 운전석에는 류엔답게 생긴 인물이, 뒷좌석에는 낯익은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내가 차 옆에 다가오자 창문이 자동으로 열려 왔다.


"크큭, 오랜만이다. 아야노코지"


"엣, 아야노코지예요? 류엔씨!"


"...oh, he lived in a place like this.(이런 곳에 살고 있었던건가)"


"이시자키와 알베르트?"


이마에 손을 얹고 류엔 쪽을 보자, 놈은 완전히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아야노코지!"


"... 그렇구나. 이시자키"


"아? 너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더 기뻐해라, 그렇지 알베르트?"


기쁜듯한 이시자키의 목소리에 알베르트가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식, 언제까지 그곳에 서있을거야? 이 유령의 집 옆에 멈추고 있으면 심령 명소 순례나 뭔가로 착각되잖아.빨리 타라"


좀처럼 차 안 타는 나에게 화가 치밀언 류엔이 재촉한다.한숨을 내쉬고 포기한 나는 조수석에 승차했다.


갑작스러운 밤의 드라이브였지만 기분 전환이 될수있을까.




3




차가 10분 정도 나아가고 있자, 뒤에 있는 이시자키로부터 말이 걸려왔다.


"진짜 오랜만이구나. 아야노코지"


"나도 이시자키. 잘 있었냐?"


"오우, 그래봤자 지금은 매일같이 류엔씨한테 혹사당하고있지만"


"크큭, 이시자키. 너 말하게 됐잖아"


"엣!? 아, 아니, 그다지 나쁜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에요!?진짜로요!"


이시자키가 황급히 다시 말하지만, 이 녀석의 입지는 고교시절부터 변함없이 류엔의 보좌를 맡고 있는 것 같다.


내 뒷자리에 있는 알베르트도 마찬가지로, 류엔의 회사를 이시자키와 함께 지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기보다는 너희는 왜 여기까지 왔냐?"


"갑자기 류엔 씨가 나갈 테니 준비하라고 해서 말이야.3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타고 시골 곳에 왔더니 네가 있던거야"


"류엔, 너 이시자키와 알베르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


"크큭, 좋은 서프라이즈가 됐잖아"


"진짜로 때린다, 너"


여전히 류엔의 폭주에 휩싸여 있는 두 사람이 불쌍해 보였다. 아니, 이 두 사람이기 때문에 같이 있을수 있는것 같지만.


"있지 아야노코지. 너 정말 저런 낡아빠진 아파트에서 사는거냐?"


"그래. 값이 엄청 싸고 사람도 없으니 살 만하지. 자꾸 이상한 벌레가 생기지만"


"ㄴ, 나 같으면 그런 데 못 살 거야. 고등학교 기숙사가 그립거나 하지 않냐?


"가끔씩 하지"


적어도 화이트룸보다는 고등학교 기숙사가 압도적으로 애착이 간다. 졸업할 때 조금 쓸쓸했던 것은 자신만의 비밀로 하고 있다.


"그래도 아야노코지는, 화이트룸? 이라는 곳과 다투고 나서, 어디 갔는지 나도 알베르트도 몰랐었지."


"뭐, 이런저런 일로 모습을 감춘 건 미안했어. 일단, 일주일 전만 해도 내 주소를 알았던건 류엔뿐이었어"


"류엔씨, 왜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까!"


"말하면 너, 가고 싶다 가고 싶다며 난리 칠거잖아. 이런 시골집을 당일치기로 갈 수 있을 만큼 우린 한가하지 않아"


알고 있던 것은 류엔뿐이었지만, 어제는 사카야나기가 찾아왔고, 오늘은 또 새롭게 두 사람에게 들켜 버렸다.


"그런데, 왜 아야노코지는 신원을 숨기고 있는 거야? 딱히 숨길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한번은, 인간관계를 리셋할 생각이었다.화이트 룸이 없어진 지금, 내가 돌아갈 곳은 없어졌으니까"


"하아? 너, 그거 진심으로 말하는거면 진짜로 화낼거다"


"네가 왜 화를 내는건데?"


"하지만 그렇잖아. 그 말은 우리가 친해진 3년간은 아무 일도 없었던 일로 한다는 거잖아. 그런 말을 하면 알베르트나 류엔 씨도 평범하게 화가 난다고"


알베르트를 쳐다보니 말없이 조용히 주먹을 불끈거렸다. 류엔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이시자키의 말은 똑똑히 듣고 있는 듯했다.


"....미안했어"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이부키나 시이나도 만나줘"


"그 두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있어?"


슬며시 류엔에게 물어보았다.


"이부키는 스즈네와 같은 대학에 들어가 있어 .고등학교때부터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매일 무언가를 겨루고 있는 것 같아. 뭐, 스즈네 쪽은 네 녀석의 신원을 캐고있어서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지만"


"호리키타가?"


"크큭, 화이트룸 부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없어졌으니까.많이 쌓였을걸? 다시 만나면 얼굴 한 방쯤은 각오해 둬야할거다"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으로서는 고교시절의 누군가를 만날생각은 없어"


"하아? 왜 그런데?"


이시자키가 반응한다.


"하긴 이렇게 동창회처럼 모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있어. 하지만 나에게도 내 형편이나 사정이 있어. 신원을 숨기는 것은 그런 귀찮은 일을 피하는 의미도 있어"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애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건가?"


"간결하게 말하면 그런 거야. 아직 시기가 아니야"


이건 평범한 속마음이다. 지금은 지금의 환경이 있으니까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래서는 이 대학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온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이부키는 호리키타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히요리는 어때?"


" " "‥‥" " "


내가 히요리에 대해 묻자 세 사람 모두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야, 왜 일제히 입을 닫는거야? 히요리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


"아아, 무슨 일이 있었지. 너 때문에"


"부탁할게 아야노코지. 시이나만큼은 만나주면 안 될까?"


"I also ask. (나도 부탁해)"


왜 이녀석들 이유를 말 안하는거야? 히요리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너, 졸업식 때 시이나 찼었지?"


"...그런 일도 있었지"


아마사와에게 들키면 귀찮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잠자코 있던 사건 중 하나다.


"설마, 아직 나에게 미련이 있는 건 아니──"


" " "‥‥" " "


"어이, 그러니까 왜 거기서 입을 닫는거야"


....정말인가.


히요리와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었지만, 그렇게 되면 이시자키들이 만나게 하고 싶은 이유는, 히요리에 미련이 남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지금 아야노코지가 아마사와하고 반동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히요리는 너를 찔러 죽이는 거 아냐?"


"바, 반 동서라니요?"


"아, 말하지 않았었나. 지금 아야노코지는 한 살 아래인 아마사와 이치카와 방 이웃이다"


"에엣!?"


"정말 입이 참 가볍구나 류엔. 진짜로 막아도 괜찮다고"


"좋지 않은가. 나랑 너 사이잖아"


"그것과 이것과는 이야기가 별개다"


아마사와하고 방이 근처라고 할 뿐인데, 이시자키와 알베르트가 뒤에서 몹시 놀라고 있었다.


"....야 알베르트 들었냐? 아마사와와 반동서라는 것도 깜짝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게 류엔 씨와 아야노코지가 사이 좋음을 서로 부정하지 않았어"


"YesYesYesYesYesYesYesYesYesYes"


잘 모르겠지만, 이시자키와 알베르트의 텐션이 이상하다.


그렇게 한참 잡담을 나누다 보니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


"밤바다는 꽤 좋은 초이스구나"


"가벼운 드라이브라면 바다잖아"


"뭐 우리들 3시간 넘게 차를 타고 있지만요."


"어? 뭐라고 했냐, 이시자키?"


"아무말도 안 했습니다!"


이시자키가 류엔에서 도망치듯 바다 쪽으로 향했다. 알베르트도 이시자키를 따라가, 둘이서 바닷물을 만지며 놀고 있는 것 같았다.


류엔 쪽을 바라보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라이터를 켜고 있었다.


"아? 뭐냐 그 눈빛? 한 대 달라는거냐?"


"아니 미성년자인데 그냥 피우는구나 해서"


"올해는 스무 살이라 괜찮은거야"


"나랑 같은 생일이니까, 아직 스무 살은 아니지만"


"여전히 꼼꼼한 놈이야"


류엔은 옆에 내가 있다는 것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거리낌없이 담배를 피우고, 맛있는 듯 연기를 입 밖으로 뿜어냈다.


"왜 이시자키와 알베르트를 데리고 왔어?"


"사카야나기에게 알려진거면 누구에게 걸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게다가 그 녀석들은 저렇게 보여도 나보다 입이 무겁다. 아무한테도 말도 하지 않는다고 믿는 때문이다"


"...."


"그리고 너도 저녀석들하고 만나서 좋지 않았냐?"


좋았다 좋지 않았다로 말하면, 물론 좋았다고 생각한다.류엔이 없었다면 이런 기회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


"그러면, 뭔가 인간 관계를 리셋 하던 내가 바보스러운 데"


"정말 그렇다. 그리고 내가 데리고 오지 않아도 그 녀석들은 멋대로 조사하고 멋대로 너에게 왔을 거야. 사카야나기가 그렇게 한 것 처럼"


"아니 말을 바꿔칠려고 하고 있지만, 사카야나기에게 털어놓은 건 너니까"


"글쎄, 무슨 일인지는 모르네"


사카야나기의 얘기를 꺼냈을때, 류엔의 얼굴이 악랄하게 비뚤어졌다.


"그런데 사카야나기하고 했냐 너?"


"크큭, 그 로리에게 T렉스가 수납했는지 궁금하다만"


"부주의로 그런 말 하면 사카야니기한테 살해당한다. .....별로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만나고 평범하게 밥을 먹었을 뿐이다"


"아? 밤새 지붕 밑에서 남녀 대학생이 아무것도 없었냐?"


"아마사와가 있어서 말이지. 우선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아"


류엔는 떠올렸는지 납득한다.


"그래서 아마사와는 아침부터 저기압이어서 너는 아마사와의 기분을 어떻게 취할지 고민한다, 고"


"그렇다. ────근데 어떻게 알았어?"


"크큭, 그 정도 원숭이라도 알겠지. 덧붙여서 너는 아마사와에서 거리를 취하고 싶지만, 저쪽에서 다가온다 인가?"


"....무당인지 뭔지가 되었냐?"


"얼렁뚱땅하고 있으면 안 되지. 인간 관계를 변경한 너의 고민은 그 지뢰 여자 이외 반대로 없잖아"


"확실히"


"...."


담배를 다시 피는 류엔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밤 바다에서 놀고있는 이시자키와 알베르트를 보고 있었다.


"우리들은 이제 애가 아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한 명씩 나아가려고 하고있어"


"‥‥"


"아마사와도 화이트룸 같은 건 애당초 상관없어. 그런게 아니면 화이트룸 망했는데 너를 쫓아 대학까지 쫓아오지않아"


"‥‥"


"아직 애 인건 너 쪽이야, 아야노코지.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인간들이 원하고 있어. 그걸 잊지 마라"


담뱃불을 끄며 버린 류엔은 답지 않게 말했다며 머리를 긁으며 두 사람을 부르러 갔다.


....많이 어른스러워졌네, 류엔. 류엔뿐 아니라.이시자키에 알베르트도 앞으로 나아가고있다. 어제는 사카야나기도 그랬다.


아마사와의 나에 대한 연모도 화이트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진작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귀찮아하며 진지하게 마음에 답하지 않았던 점을 애 라고 류엔은 말했다.


"....앞으로 나아간다, 라"


류엔에게 들은 말은 특별히 특별한 의미가 없었는데도, 지금의 내게는 그 어떤 설교보다도 울렸던 것 같았다.




4




"아마사와, 있니?"


류엔에게 집까지 바래다주자 마자, 나는 아마사와의 방을 찾아가고 있었다.


별다른 대답은 없었지만 문고리를 만지고 천천히 누르자, 그냥 열려 있었다.


"...무서워"


방안은 캄캄했다.


캄캄할 텐데, 방의 커튼은 활짝 열려 있고, 달빛이 침대에서 체육자세앉기(쭈구려 앉기?)로 있는 아마사와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평소의 양갈래는 침울해 보였다.


"아마사와?"


"....선배?"


"혹시 자고 있었어?"


"....아하하. 체육자세앉기로 잘 리가 없잖아. 조금 생각을 하고 있었어"


"대답이 없길래 깜짝 놀랐어. 방도 잠그지 않고 뭐하는 거야?"


"‥‥"


"아마사와?"


그녀의 허락도 받지 않고 방으로 올라가 침대로 다가갔다.


"──미안해"


딱 걸음을 멈추었다. 체육자세 앉기에서 고개를 든 아마사와가 나를 보며 사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든 아마사와의 눈매는 울어서 퉁퉁 부어오른 후여서 매우 붉었다.


"....나, 선배의 여자친구도 아닌데, 그렇게 아리스선배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서. 정말 민폐였지. 나, 선배의 짐이 될 생각은 없었어. 그게 진짜로 진짜란 말이야"


"‥‥"


"미안해....못 참아서. 미안해, 미안해요 선배...."


"그렇게 사과할 필요 없어"


"아니, 내가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어. 미안해요...몇 번이라도 사과할테니까, 싫어하지말아줘...."


"‥‥"


"미안해요, 미안해요. 사과할게, 선배가 용서해 줄 때까지 계속 사과할게. 그러니까...나로부터 거리두거나 하지 말아주세요....미안해요"


나의 얼굴을 본 순간에, 뚝뚝 눈물을 흘리며 아마사와는 사과해 왔다.


"그렇게 사과하지 마. 나도 오늘 아침은 조금 심술궂었었어. 미안했어"


"....선배"


"이제 서로 사과했으니 화해다. 어제 일은 딱히 말하지 않을게, 이걸로 됐지?"


"고마워...."


조금 전까지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던 아마사와는 단번에 안도한 듯 표정을 지었다.


....이거, 내가 아마사와로부터 거리를 두면 큰일나는거 아냐?


지금조차도 조금 정신나간 것 같은데, 더 이상 거리를 두면 무엇을 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싫어, 라고 말할 때에는 내 목숨이 보장되어 있을 가능성조차 낮다.


아마사와와의 거리감은 좀 생각해야겠다.


갑자기 뿌리치면 나에게 너무 의존하고 있는 아마사와는 자신을 몰아붙이게 된다.


"선배님 너무 좋아. 정말로 좋아해. 사랑해"


"....아니 어제도 말했지만, 나는 "


"아니, 대답은 필요 없어. 내 마음을 말한 것뿐이니까"


"그렇구나. 그렇다면 좋을 텐데"


"이제 좀 진정이 됐으니까 씻고 있을게. 아, 선배는 방에 돌아가 있어도 되니까"


"알았어"

아마사와의 멘탈이 조금 더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다. 불을 밝히고, 아마사와가 샤워실로 향했을 때였다.


"....뭐야 이거?"


아마사와의 학습 책상에 한 권의 노트가 보였다.


노트의 표지에는『이치카 쨩 의 한마디 일기』라고 보기에도 지뢰 같은 제목이 실려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마사와를 갑자기 뿌리치면, 저런 느낌이 드는 것은 오늘로 알았다. 다시 한 번 아마사와와의 거리감을 재기 위해 아마사와에 대해 알 수 있는 한마디 일기를 보는 것은 좋은 기회다.


분명히 지뢰라는 걸 알지만 시험 삼아 넘겨본다.



『오늘부터 선배 옆방으로 이사왔다! 내일부터 선배와 함께 할 수 있는 게 기대돼!』



『오늘은 내가 만든 빠에야를 선배가 맛있게 먹어 주었다. 항상 선배가 해주는 밥도 맛있으니까』



『선배가 아이스크림을 사다 줬다. 아이스크림 말고 선배를 달라고 했다가 그냥 가볍게 맞았다. 전혀 농담 같은 게 아닌데』



....여기까지는 정상인데?


뭐 마지막 글은 사랑하는 처녀로서는 보통 부류에 속하는지도 모른다.



『.....오늘 점심시간에 선배가 내가 모르는 여자와 점심식사를 했다. 여자의 이름은 스즈키라고 하는 것 같다. 가슴크고, 분명히 선배 노리고 있으니까 숙청대상』



『선배와 목욕을 하려다가 혼났다. 이렇게 귀여운 여자가 들어가려고 하는데 목욕 거부라니 정말 말도 안 돼』



『유혹하고 있는데 안 덮쳐준다....나는, 혹시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매력없는걸까』



『선배 옷에서 여자 냄새가 났다. 넌지시 물어봤는데 선배한테 무시 당했다. 지금 당장 선배를 덮쳐서 덮어쓰고 싶다』



『이번 신입생 환영회는 2학년 여자들이 모두 참가하나봐. 선배를 노리고 있는 암퇘지 들을 제대로 메모하지 않으면』



『선배한테 차였다. 죽고 싶다』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사카야나기 아리스가 방에 들어왔다. 왜 서로 껴안고 있는지 정말 의미를 모르겠다』



『나는 그녀가 아니기 때문에 선배에게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다. 알지, 아는데 힘들어. 선배를 원해. 선배, 어떻게 하면 나만의 것이 되어줄까』



『선배가 누가 차에서 불렸다. 누구인가 해서 문으로 들여다봤다. 남자의 목소리가 났다. 다행이다, 일단 안심이다』



『선배, 선배, 선배, 선배, 좋아해좋아해좋아해좋아해.선배 사랑해 선배 너무 좋아. ...일단 흑마술 책 샀는데 정말 효과가 있을까』









....oh, 전언 철회.


역시 지금의 아마사와 하고는 조금 더 거리를 두자.


진짜 무서워서 앞으로 못 나아가겠어. 미안 류엔






이게 체육자세앉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