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마지막으로 이거, 일단 선물이에요."



나는 여분으로 몇 개 사둔 홋카이도에서 산 선물을 꺼내, 봉투째 나구모한테 건넨다.



"상당히 묘한 부분에서 기특하구나."



"그래도 학생회장과 만나는 거니까요, 간단한 선물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런 선물을 언제 줘야 할지 타이밍을 잘 모르겠어서 마지막이 되어버린 것은 실패였지만.



"내 거는 없는 거냐?"



"키류인 선배가 여기 올거라곤 미처 상상하질 못해서, 원한다면 나구모 학생회장에게 나눠받으시길."



곁에 서있는 키리야마에게 선물을 건네고, 나구모는 무엇인가 떠올린 듯 중얼거린다.



"수학여행 후라고 하면... 슬슬 다음 특별시험이 발표할 때가 되었겠군?"



키류인과의 대화는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지 아직까지도 내게 말을 걸어온다.



"마침 오늘 발표됐습니다."



"수학여행 직후의 특별시험 발표는 뭐, 연례같은 거니까. 그렇다면 대전 상대는 A반의 사카야나기가 되는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겁니까."



나구모의 말로 미루어보자면, 매년 서로 상대하게 되는 조합도 상위끼리, 하위끼리로 정해져있는 것이려나.



"작년에는 나구모 학생회장과 키리야마 부회장의 반끼리 서로 상대한겁니까?"



"뭐, 그렇지."



"결과는 어땠는지?"



"이겼던 쪽은 너희 반이었지, 키리야마."



"...그래."



특별히 기뻐하는 기색도 없이 키리야마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같은 B반인 키류인은 전혀 생각하고 있는 게 없는건지, 이 건에 대해선 조용히 넘어가려는 듯 하다.



"평범하게 생각했을 때 A반을 상대로 이기는 건 힘들지만, 의외로 나름 기회가 있는 내용의 시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 시기에 열리는 특별시험이라면 네 반 모두를 팽팽히 맞서게 하기 위한, 하위권에 유리한 특별시험이 되지 않을까 하는데. 그것도 출발이 하위권일수록 이기기 쉬운 구조라는 말이야."



확실히 이번 특별시험, 열쇠를 쥐고 있는 쪽은 호리키타의 반과 류엔의 반.


둘 다 원래부터 하위권이다.


그 말은 곧, 나구모 역시 키리야마의 B반에게, 굳이 표현하자면 하극상이라고 볼 수 있는 형태의 패배를 당했다는 것이다.



"나구모 학생회장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이길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어느 쪽이 이기든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승부라면 영 진지하게 임하기가 힘들어서 말이지."



나구모의 반은 이미 독주상태였던만큼, 사소한 승리에 연연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호리키타 선배 시절엔, 그야말로 정석대로 A반이 스타트부터 독주했고, 그대로 끝났지. 나는 B반이었지만, 대신 빠른 단계에서 A반에 이른 뒤 마찬가지로 독주라고 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이 시기에 A반 이하와의 차이는 심했다는 얘기야. 하지만 너희들은 다르지. A반은 확실히 앞서고 있지만, 이전 학년들처럼 절대적인 안전권에 있는 건 아니니까." 



확실히 지금 호리키타 반의 동기부여가 상당한 이유는, 명백하게도 손을 뻗으면 A반이 닿을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시기, 이 시점에서 A반과 B반의 차이가 1000포인트에 이른다면 어땠을까.


단편적인 승리로 따라잡을 차이가 아니다.



"뭐, 힘내서 해봐라."



"네,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겨우 학생회실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허락되어 그대로 퇴실했다.



"하아... 겨우 풀려났다."



이치노세의 사퇴라는 형태로 학생회 선거가 흘러가버린 탓에 2000만 포인트 건도 없어졌다만.


그건 그것대로 계획에 지장을 주는 건 아니니까, 아무래도 좋을테지.


그런 안도도 잠시,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지켜보던 인물이 다가왔다.




"너는 바로 풀려나질 못했네."



"기다린건가."



"여러가지 궁금한게 많은 대화였는데, 무슨 지시라도 받은거야?"



"아니, 대충 이전의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게 됐다는 그런 말." 



"그렇다기엔 대화가 상당히 길었던 것 같은데."



"수학여행에서 사온 선물을 주거나, 뭐 그런 시시콜콜한 잡담이야."



호리키타를 도우라는 지시를 받은 건 지금은 언급하지 않는다.


나구모에게서 호리키타에게로 말이 건너가, 직접 부탁받는 형태가 좋을 것이다.


말하자면 귀찮은 일로부터 일단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리키타 입장에서는 학생회장 취임에 있어서 여러 의미로 큰 사건이네."



"설마 이치노세 씨가 사퇴, 아니, 학생회를 그만둘 줄은 생각조차 못했어."



"나도 그래. 학생회 자리를 건 승부의 승패를 떠나서, 학생회에는 끝까지 남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자신의 의사로 그 지위를 포기하는 건 내 예상에 없었다.


수학여행 때 보인 눈물의 이유 중 하나에는 이번 건도 얽혀있을 지 모른다.



"키류인 선배는 결국 남아서 나구모 학생회장과 계속 대화할 생각인걸까?"



"그런가 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는 건 너도 보면 알잖아."



"응. 저 사람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적으로 돌리면 귀찮을 것 같아. 무려 그 나구모 선배가 애먹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



학생회 멤버로서, 평소엔 항상 우위에 있는 나구모밖에 보지 못했을테니.


그런 인상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구모 학생회장이 같은 3학년을 시켜서 키류인 선배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 했다는 말, 어디까지 사실이라고 생각해?"



"글쎄. 적어도 야마나카라는 학생한테 죄를 뒤집어씌울뻔 한건 사실이겠지."



다른 제삼자가 관련되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나구모든 아니든, 키류인을 함정에 빠뜨릴 이유도 목적도 보이지 않아."



"그녀와 옥신각신했던 건에 대한 분풀이ㅡ 그러니까 복수 같은건 어때?"



"물론 가능성은 있지.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미움받을 만한 사람인건 분명하니까."



하지만 지금 이 일 쪽으로 우리가 생각을 돌린다는 건 의미가 없다.



"그런것보다 넌 학생회에 집중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



"그렇네. 아야노코지 군이 임원이 되어주면 이야기가 반쯤 정리되는걸? 너라면 틀림없이 나구모 학생회장이 원하는 조건도 충족했을 거고."



"어떠려나. 적어도 나는 나구모가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은 아니야."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그렇지도 않아. 나구모 입장에선 불쾌할거야, 분명."



"그거, 그냥 네가 학생회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거네."



"그래, 그런 거야."



학생회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자유시간은 많이 줄어든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럼 적어도 후보를 찾는 건 협조해 줄 수 있지? 애초에 넌 나를 학생회에 끌어들인 책임이 있으니, 거절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지만."



퇴로를 막아버리듯, 그렇게 단언한다.



"아니, 나는 그런 건 좀 그래. 미안하지만 패스할게. 학생회의 일이라면 거기 몸 담고 있는 네가 해결할 일이니까."



비협조적인 나에게 어느새부턴가 익숙해진 건지, 한숨을 내쉬고 일단 물러서는 호리키타.



"나로서는 역시 같은 반 친구부터 고려하고 싶어. 학생회장 본인도 말했지만, 학생회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반에 도움이 되는 일이야."



"이럴 때 요스케라면 기꺼이 협력해줄 것 같은데."



"그렇네. 하지만 그에게서 동아리 활동을 뺏어버리면 말짱 도루묵인걸."



분명 학생회와 동아리 활동은 병행할 수 없는데다, 요스케는 축구부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남겼다.


억지로 학생회로 빼낸다 한들 얻을 수 있는 메리트는 적을 것이다.

 


"나는 돌아갈거야."



일단 이 자리에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 전에 호리키타가 돌아서서 길을 막았다.



"학생회 일은 일단 좋아. 아야노코지군, 특별시험 말인데ㅡ"



"미안하지만 그 쪽도 내가 나서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어."



"학생회 건은 학생회가 해결할 일, 네 말이 맞아. 하지만 특별시험은 반의 문제야. 반 친구라면 여기선 협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의지해야 할 동료는 또 있잖아. 반 친구라고 한다면 40명 가까이 있는데."



그 어떤것이라 해도, 굳이 나만을 콕 찝어서 의지할 이유는 없다.



"정말, 결국 아무것도 도와줄 생각이 없구나."



"내가 협력한다고 해서 뭔가 크게 바뀌는거라곤 없어."



"겸손이 지나친 것 아닐까? 네가 도와준다면 든든해. 상대는 그 사카야나기 씨인걸. 네가 전략을 짜는 단계부터 머리를 맞대준다면, 체육제 때 처럼 빠져나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마련이야."



만약 진다면 A반과의 차이는 100포인트가 추가로 벌어져 버리기 때문에 질 수 없는 싸움.


하지만 진다고 한들, 만회가 가능한 범위이기도 하다.



"내가 조언할 건 아무것도 없어. 다만 반 친구로서 지시 정도는 따를게. 고난도 문제를 풀라하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사전 단계에서의 전략은 손대지 않지만, 시험에는 협력할 의사를 전한다.



"...과목이나 난이도에 상관없이 어떤 문제든 풀어준다는거야?"



"그래. 내 학력은 OAA상으로는 12월 시점에서 B등급. 고득점은 아니지만 클리어에 필요한 하한선인 2문항이든, 반대로 상한선인 5문항이든 원한다면 확실히 맞혀줄게."



이것은 호리키타에게는 소중한 득점이 되겠지.


그 부분만큼은 보증을 서두자.



"한 개인으로서는 의지해도 무방하지만, 그 전 단계에서는 도와줄 수 없다는거네."



"그런 거야."



"혹여나 틀릴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깝지."



기본교과와 관계없는 잡학 따위라도 출제되지 않는 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상당히 단언하는걸. 네가 뛰어나게 잘하는 건 분명 수학 뿐이라고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정말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제안을 받아들이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도와주는 걸로 할게. 학력이 B인 학생이 고난도에서도 확실하게 다섯 문제를 맞춰주는 걸 계산에 넣으면, 확실히 부담은 줄어들거야."



이건 리더로서 호리키타가 성장하는 데에 중요한 경험의 하나가 된다.


이기고 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을, 이 특별시험에서 배워주었으면 하는 바이다.



"일단 동정은 하고 있어. 힘든 타이밍에 학생회장을 맡았네."



가능하다면 바쁘지 않은 시기에 끝내고 싶었던 문제였을 터.



"어쩔 수 없지. 학생회에 들어가기로 한 이상 이런 문제는 늘 따라다니는 거니까."



따지고 보면 내가(엄밀히는 아니지만) 학생회로 이끈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다소 신경쓰는 부분도 있었지만, 옆을 걷는 호리키타는 비교적 긍정적인 모습이었다.



"나쁜 쪽으로 생각해봤자 별 수 없어. 여기선 긍정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잡을게. 학생회장이 되면 지금보다 학교의 평가는 올라갈거고, 어느 정도의 권한도 주어져. 직권남용까지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의 회색지대라면 건드려볼 생각이야."



A반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소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는 결의.


그거면 된다. 


호리키타의 경우는 좀 더 탐욕스러워지는 쪽도 좋을지도.



"너도 도와줄거지? 새 학생회 인선."



"자꾸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



"벌써 잊은 줄 알았네."



"계속 사양하는걸로 알아줘."



나구모가 도와주라고 했다는 사실을 들키기 전에, 단념해주기를 바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