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뿌린 씨앗이긴 하지만, 반쯤 관계없는 일에 휘말리고 말았다.
이왕이면 학생회 선거든 뭐든 해서 나구모와의 관계를 청산해버리고 싶었지만, 이치노세의 사퇴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니 어쩔 수 없나.
나는 기숙사에서 기다리게 한 그녀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기로 했다.
『아직도 안 돌아온거야?!』
통화가 시작되자마자 케이의 그런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지금 막 학생회실을 나왔어. 앞으로 15분정도면 돌아갈거야."
그래도 혼날 줄 알았는데, 시간을 확답받은 것의 기쁨 쪽이 승리한 것 같군.
『응ㅡ! 제대로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는데, 나 잘했지?』
갑자기 부드러운 어조로 바뀌어서, 그렇게 물어왔다.
"잘했어, 잘했어."
케이 같은 여자는 휴대폰을 잘 다룬다.
그러니까, 몇 초 간격으로 끊임없이 재촉하는 메세지를 보내오는 것도 식은죽먹기일텐데.
『에헤헤헤ㅡ』
딱히 칭찬할 일도 아니었지만, 내 '잘했어' 한 마디에 한없이 기뻐한다.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
그런 티키타카를 짧게 마치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정리한다.
연애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이제는 서로 대화의 긴 응수가 없어도 관계가 구축되어감을 실감한다.
종종 가족만이 자신에게 생긴 근소한 차이를 눈치채는건, 그들이 똑똑하거나 날카롭기 때문이 아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는 것으로 밖에 얻을 수 없는, 누군가의 사소한 변화를 깨닫는 능력.
그건 머리로 생각하고 상대방의 사고를 읽어내는 것이 아닌, 피부와 피부를 맞대고 느끼는 것이다.
한 순간의 험악함을 한 순간의 부드러움으로 바꿔낼 수도 있다.
그건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도 같은 것.
지금 언급한 것 이외의 여러가지 일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교과서의 나머지 페이지는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교과서란 무릇 종반으로 갈수록 난해해져, 서두보다도 시간이 더 걸리기 마련.
자ㅡ 다음 과제는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