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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첫날. 그날 하늘은 두꺼운 구름으로 뒤덮이고 아침부터 눈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기다리던 시간이 10분쯤 지나자, 류엔이 우산을 쓴 채 다가온다. 먼저 기다리던 이치노세는 조용히 류엔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윽고 빗소리를 지나, 서로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멈춰섰다.


"요즘 날씨가 자꾸 이러네"


 류엔이 늦은 것에 대한 추궁은 일절 하지 않고, 이치노세는 그렇게 말을 건다.


"늦은 것에 대한 불만은 없는거냐?"


"별로 신경 쓰지 않아. 류엔 군과 만나는 시점에서 30분은 각오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그래도 나타나지 않았다면 사양하지 않고 돌아갈 생각이었고"


 여유롭게 답을 준 이치노세는 류엔보다 하늘의 모양이 더 신경쓰이는 듯했다.


 우산을 기울여 비오는 하늘을 조금 올려다본다.


"오늘은 그치지 않을 것 같네"


"굳이 내 부름에 답하다니 여전히 호인인가"


 그런 이치노세의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류엔은 이치노세에게 묻는다.


"친구라고 말하면 류엔 군이 납득할지는 모르겠지만, 부르면 응하는게 보통 아닐까. 이 시간은 예정도 잡지 않았고. 그래서 용건은 뭐야?"


"내 계획이 좀 꼬여버렸거든. 그 원인을 찾아두려고"


"그거 특별시험을 말하는거야? 괴롭힘은 조금 당황했어"


"전과 비슷한 행동을 해도 재미없을거라 생각했겠지만, 우리쪽 말에는 성에 맞다. 그게 가장 편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면 반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류엔은 클래스메이트에게 지시를 내리고, 이치노세 반 학생들에게 집요한 압박과 방해를 하고 있었다. 교실이나 도서실, 혹은 노래방 등에 모여 스터디 그룹을 하는 이치노세 반 학생들 사이에 억지로 난입해 소란을 피우고 공부를 방해했다.


 아야노코지네가 알 도리는 없지만 그 외에도 류엔은 위험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고학력의 학생에게 돈을 제시하고 모든 문제를 틀린다면 보수를 준다.


 아니면 모든 문제를 맞힌다면 네 친구가 곤란해질거다, 라는 위협도.


 그렇게 계속 공격한다면 결속이 단단한 반이라도 구멍을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해 실행한 전략.


"모두에게 폐를 끼친 건 분명하니까"


"그렇겠지"


 다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애초에, 학력 승부에서 정공법으로 해도 류엔의 승산은 희박하다.


 그걸 알기 때문에 장외에서 싸워 쓰러뜨릴 전략을 세웠다.


"그 방법으로 진심으로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래, 생각했다"


 그런게 뚜껑을 열고 보니, 이치노세네에게 어떠한 전략도 통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솔직하게 칭찬을 하러 온 거다 이치노세. 너희 반은 이 정도면 무너질거라 생각했는데, 1학년 때보다는 커졌구나"


 류엔의 아래에서 올라오는 이시자키네의 보고에서는 이치노세 반에 대한 방해 행위는 성공했다는 소리뿐이었다. 유혹이나 협박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학생은 없었지만, 보이는 동요 등에서 어느정도 효과가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치노세 반은 겉으로만 힘든 기색을 보일 뿐, 뒤에서는 착실히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하고, 일부러 협박에 겁먹은 연기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조언이라도 했나? 예전의 너라면 겉에 드러난 스터디 그룹은 중지시키고 쓸데 없는 노력에 할애하지 않고 일찌감치 틀어박혀도 이상하지 않아. 협박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거절을 표시했겠찌. 그걸 일부러 이쪽 전략에 걸려든 척을 하다니"


 이것은 사카야나기나 아야노코지가 상대였다면, 류엔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당연한 대책으로 받아들여, 더욱 강력한 한 수를 들이는 것도 고려했을 것이다.


 궁지에 몰린 약자의 역습인가.


 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류엔은 이 자리로 이치노세를 유인했다.


"조언 같은 건 받은 적 없어 류엔 군. 우리는 그 소란 속에서 괴로워하며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을 뿐. 협박 같은 말은 모두 무서워하고 있었거든. 우연히 무너지지 않았을 뿐이야"


"이 자리에서 그런 겸손을 떨 필요는 없다고 이치노세. 너희 반은 분명히 뭔가 달라졌다"


"그건 직접적인 패인이 아니야. 류엔 군네도 우리나 다른 반처럼 진지하게 임했어야 했어. 공부를 해서 득점을 따려해야 했어. 호리키타 씨가 사카야나기 씨를 쓰러뜨린 것처럼 말이야"


"유리한 시험에서 이긴 것 뿐이면서 꽤 위에서 보는 듯한 말투잖아. 뭐, 이번 특별시험은 미지근했으니까. 누구도 퇴학당할 위험이 없고 그저 펜을 쥐고 팔을 움직이기만 하는 시험. 나도 진심이 되기에는 열이 부족했어"


"모두가 취한 평범한 방법으로는 안되는거야?"


"바보들을 1주 2주 가르쳐봤자 눈에 띄는 향상을 바랄 수 없어. 주위를 끌어내리는 것이 편하고 빠르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류엔은 이치노세와 마주한 채 웃는다.


"하지만 그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지"


"성실만이 장점인 녀석에게 당했으니, 다음에는 더 성대하게 방해해야지"


"만약 같은 특별시험이 반복되더라도, 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다는거야?"


"그래, 바꾸지 않는다. 장외에서 끌어내려주마"


 그것이 자신의 방식이라는 듯 류엔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렇구나. 이 이상 무슨 말을 해도 의견이 일치할 것 같지는 않네"


"근소한 차이로 일시적으로 C반에 복귀할 수 있었다. 설마 그걸로 다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너는 늪에 빠진 불쌍한 양이다. 아무리 진흙 속에서 발버둥치면 칠 수록 가라앉은 운명이야. 그렇지?"


"요즘 계속 지고 있었으니까. 귀가 따가웠어"


"다시 말하지만, 너희는 이번 특별시험 내용에 구원을 받았을 뿐이다"


"부정하지는 않을게"


 집요하게, 그리고 억지로 이치노세를 물어뜯는 류엔 나름의 노림수였다.


 이렇게 주고받음으로써 상대방을 궤뚫어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이치노세라면 보였을 빈틈이 일절 나타나지 않는다.


"네가 학년 말 시험에 상대하게 될 반은 아야노코지의 반이다. 그 반은 성가실걸? 내가 쓰러뜨릴 예정인 사카야나기보다도 말이야. 즉 패배는 불가피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사카야나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학년 말로 이치노세 호나미는 끝이라고"


 이번에 이긴 것은 아무 의미 없다. 희망을 품지 말라고 압박한다.


 이치노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멈춰 선 채 류엔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야노코지네한테는 좋은 일이지. 나나 사카야나기를 상대하지 않고 송사리와 싸워 높은 클래스 포인트를 얻어가니까 말이야. 이렇게 운이 좋을 수도 없네"


 집요하게 이치노세를 공격하며, 반응이 없자 무시하고 더욱 몰아 넣는다.


"확실히───학년 말 시험에서 지는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끝장날지도 몰라"


 맞대결에서 지금보다 더 큰 차이가 벌어지면 1년 만에 되돌아오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까 너에게 A반으로 졸업하는 방법을 알려줄게"


"그런 방법이 있어?"


"학년 말 시험에서 너는 A반으로 가는 길이 끊어진다. 그러면, A반으로 졸업하기 위해서 프라이빗 포인트를 모으는 수 밖에 없겠지"


"40명을 전부 구하려면 월등히 많은 돈지 필요해. 그건 무리가 아닐까"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1명이라면 어떨까? 단돈 2000만 포인트면 된다. 너는 클래스 메이트로부터 돈을 모을 능력이 있어. 믿음을 담보로 놈들은 100만이든 200만이든 너에게 맡겨 올거다. 최종적으로 그 돈을 쓰면 돼"


"모두가 맡긴 돈을 써서 반 이동이라니 그건 횡령이야. 학교가 인정하지 않아"


"어떠려나? 확실히 나나 사카야나기 같은 인간이 그런 짓을 하면 처벌 대상이다. 문답무용 즉시 퇴학이지. 하지만 너라면 그럴 가능성이 낮다"


"어째서?"


"좋은 사람인 너라면, 너의 마음을 동정해서 헤아리기 떄문이다. 횡령당한 줄 알아도 『저건 내가 준 돈』이라고 학교에 말한다. 신고할 놈이 하나도 없으면 횡령도 뭣도 아니다. 100%라고는 할 수 없지만, A반으로 가는 도박으로서는 충분한 확률이야"


"재미있는 얘기네. 하지만 이미 배는 충분히 부르거든"


 불러낸 이유를 짐작한 이치노세에게, 더 이상 이 자리에 머물 이유가 없게 된다.


"슬슬 헤어질까"


"앞으로는 스즈네나 사카야나기와 놀 생각이었는데, 앞으로 퇴학이 얽힌 싸움이 벌어지면 너희 반도 타깃이다. 필사적으로 지켜온 네 동료들을 내가 없애주마"


 이 말의 반은 블러프. 류엔에겐 아직 이치노세가 장애라고 인식되고 있지 않다.


 얌전히 있으라고 충고하는 협박.


 그 위협을 정면으로 전해들은 이치노세는 미소짓는다.


"그렇다면 나는 그 전에 막을 뿐이야. 필요하다면 류엔 군이 퇴학당하게 할뿐"


"크큭. 너한테 내가, 아니 내가 아니어도 없애버릴 수 있나?"


 끝이 안보이는 호인인 이치노세는 나밍 상처받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그것은 지난 2년간 류엔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 모두가 봐 온 일률적인 감상.


"당당히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상당히 진보했네"


"나 뭔가 꽤나 얘기를 많이 하네. 사카야나기 씨도 류엔 군도 뭘 그렇게 경계할 필요가 있을까. 말하는 대로 나에겐 이제 뒤가 없어. 신경 쓸만한 존재가 아닐텐데"


 두터운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빗소리는 더 강해진다.


 어느새 류엔에게서 미소가 사라지고, 이치노세의 말에 생각을 한다.


 눈앞의 여자는 내게 장애가 될 자격이 없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냉정해지고 보니 어떻게든 상대를 내려보려 고집하는 자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앞으로 상대가 누구든 용서하지 않을 거야. 이기기 위해 수단을 가릴 생각도 없어"


"허세라곤 해도 너답지 않은 발언이군"


"고민할 시간이 없다는걸 이제서야 깨달았을 뿐이야. 정말 그냥 그것뿐"


 류엔 안에서 경솔한 생각이 조용히 빠져나간다.


"누가 상대라도 용서하지 않는다, 라. 최근에 상당히 아야노코지에게 집착하는 것 같고. 그렇다면, 네가 우선적으로 배제해야 할 것은 카루이자와의 존재인가?"


 그저 농담. 정신적으로 동요시키기 위한 류엔 나름의 괴롭힘.


 그 정도의 발언이었지만, 이치노세는 부드럽게 웃는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집착이라니?"


"이 학교는 좁으니까 소문이 금방 나돌거든"


정보 수집을 하는 과정에서 양측의 접촉이 늘어나고 있음을 류엔은 이미 파악하고 있다.


이치노세의 일방적인 감정도 짐작의 영역이지만 확신을 갖고 있다.


"사양하지 말고 좀 더 타산적으로 움직이면 어때? 카루이자와의 배제가 목적이라면 도와주지"


 초조, 분노, 불만이나 혐오.


 어떤 감정이든 상관없으니 보여줘라. 그런 류엔의 노림수가 담긴 부추김.


"벌써 류엔 군에게도 들켰네. 그럼 숨길 필요도 없겠지"


 엷은 웃음을 머금고 있는 이치노세는 류엔의 눈을 보고 망설임 없지 대답한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카루이자와 씨를 퇴학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건 얘기가 다르니까"


 강경한 말을 하면서도 결국은 호인인가.


 그렇게 류엔이 다시 생각을 고치려 했지만......


"하지만 류엔 군은 착각하고 있어. 나는 충분히 타산적인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고, 이치노세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미소짓는다.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면 생각하면 돼. 생각하고 답을 도출하면 돼. 그래도 답이 안나오면 행동으로 옮기면 돼. 그러면 웬만한 길은 열릴거야"


"무슨 뜻이지?"


"글쎄 무슨 뜻일까나?"


 이치노세는 생각한다. 수학여행의 밤을.


 그때부터 내 안에서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약간의 가능성. 아니, 가능성조차 고려하지 않은 본능에 의해 도출된 결과.


 전원이 숙소에 모인 새벽 상황. 눈보라. 사라진 자신.


 그것이 소동으로 발전하면 클래스메이트는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될까.


 아야노코지가 자신을 찾아낸 것은 특별히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 시간, 그 순간의 모든 것은 필연이었다는 것.


 류엔의 우산을 든 손, 그리고 온몸으로 기분 나쁜 무언가가 휘감긴다.


"이제 괜찮지? 지금부터 짐에 가야하거든. 행복한 시간을 1초라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지금까지 품고 있떤 이치노세의 분석, 그 모든 것이 부정된 감각.


 이치노세는 이제 류엔에게 한 조각의 흥미도 없다.


 걷기 시작해 류엔의 옆을 지나 케야키 몰로 향한다.


"전언 철회다 이치노세"


 이치노세의 등을 향해 류엔은 뒤돌아보며 말을 건넨다.


"학년 말 시험에서 내가 너를 상대하지 않는 건 우리에게 행운이 될 수도 있겠군"


 그건 하나의 예감.


 한순간이지만, 사카야나기보다 더 성가실거라 생각하게 만든 그 꺼림직한 기분에 경의를 표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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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노세 그냥 흑화가 아니라 코지 때문에 애가 망가진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