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메노와 기숙사까지 걸어가는 도중,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 케이를 발견했다.



"그럼, 다음에 봐."



이내 분위기를 읽은 히메노는 내 옆을 벗어나며, 걸음을 재촉한다.


벤치에 앉은 케이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그대로 기숙사로 돌아갔다.



"이런데서 뭐하는 거야? 방에 돌아간 거 아니었어?"



"뭐하냐고? 뭐하는것처럼 보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군."



"정답. 그럼 그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1. 이케 군, 2. 미나미 군, 3. 키요타카"



그러면서 손가락을 하나씩 들어올리며 퀴즈를 냈다.



"지극히 어려운 문제로군. 1의 가능성이 높아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틀리면 벌칙게임이야."



"대답하기 전에 벌칙의 내용이라도 들어둘까."



"글쎄에. 이마에 「케이 러브」 라고 매직으로 써둘까? 그 상태로 통학하는 것 말이야."



"좋아, 3번으로 고를래."



"에엣, 그렇게나 벌칙이 싫은거야!?"



약간 화를 내면서도 벤치에서 일어나 내 옆에 섰다.



"그래서? 아까 그 여자애, 히메노 씨지? 왜 키요타카랑 걷고 있었어?"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 이유를 말하라는 듯 강한 압박이 느껴진다.



"칸자키와 만난다는 건 말했잖아. 히메노도 그 중 한명이야."



"으음? 근데 칸자키 군은 없었지."



"일단 해산했어. 그리고는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히메노를 만나서, 가볍게 잡담한 것 뿐이야."



"흐응? 으음? 뭐, 여자친구니까. 남자친구의 발언은 일단 믿겠는데~?"



그렇다고는 하지만, 의심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듯 했다.



"뭔가 사이가 좋아 보이던데."



"그렇게 어두웠는데, 그런 것 까지 보일리가."



"으으... 그치만 왠지 전해져 오는 게 있었어! 이젠 됐지만 말야!"



내 옆은 자신의 자리라는 듯, 팔짱을 끼며 달라붙는다.



"그냥 재밌는 얘기나 할까?"



"같은 생각이야."



"내일 케야키 몰에나 갈까? 곧 크리스마스도 얼마 남지 않았어."



그렇게 꼬시고는 히죽 웃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지? 그런 말을 하는 듯한 표정이다.



"스도의 고백이 실패로 끝났으니까, 크리스마스 선물이지?"



"정답! 서프라이즈 선물도 좋지만, 갖고 싶은 걸 남자친구랑 함께 사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거든."



나 혼자서 뭘 사줄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보다 나은건 틀림없으니까, 이 쪽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만, 내일은 무리야. 다음 주로 해줘."



"에ㅡ? 설마 또 다른 약속이 있는거야?"



오늘 칸자키와 아이들을 만난다는 건, 케이에게 미리 알렸었다. 


케이는 칸자키쪽과 접점이 없는데다 나와의 관계도 잘 모르기 때문에, 조금은 궁금해 하면서도 특별히 심하게 신경쓰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런 거야."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줄 순 없는거야? 내일 무슨 일인데?"



이치노세를 만난다. 그걸 전하지 않고 속이는 것 쯤이야 쉽다.


하지만 숨기는 것의 디메리트 쪽이, 칸자키 녀석들에 대한 얘기를 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크다.


그렇지 않아도 눈에 확 띄는 이치노세의 존재감, 내가 곁에 있으면 좋지 않은 소문도 퍼질 것이다.


게다가 케이에게는 친구도 많으니, 그 학생들 하나하나가 눈이 되고 귀가 된다.



"이치노세를 만날거야."



"...이치노세 씨를 만난다고?"



칸자와 만난다고 전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으로, 케이는 걸음을 멈춘다.



"또 누가 있어? 칸자키 군이나 히메노 씨?"



"일단은 아무도. 이치노세 뿐이야."



"그게 뭐야. 잘 모르겠는데? 여자랑 단둘이 휴일에 만난다고?"



노골적으로 기분이 나빠진걸 알았지만, 무리도 아닌 이야기다.


이게 만약 반대의 상황이었어도 보통의 남자라면 같은 반응을 보였겠지.



"그렇게 되겠군."



케이의 반응을 주의깊게 살피고, 그 시선을 스스로 온전히 받아내본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보통 말이야, 이유를 제대로 얘기하잖아. 「둘이 만나기로 했는데, 오해는 하지 말아줘, 이런이런 사정이 있으니까 만나는 거야.」 라든가. 여자친구를 불안하게 하는 건 절대 안되는 거라구."



"하긴 그렇지. 이치노세를 만나는 건 몇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선은 칸자키 쪽의 부탁을 받았어."



"...칸자키군에게 부탁을 받았다고?"



여기서 칸자키의 이름이 나온것에 조금은 안도한 케이.



"아직 공개되진 않았지만, 이치노세가 학생회를 그만뒀어. 지금 그 일로 혼란이 일어나고 있고."



"자, 잠깐만. 그래? 왠지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어째서?"



"신기하지? 칸자키 쪽은 그 진상을 알고 싶어해. 학생회에 속하는 건 나름대로 반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니까. D반으로 떨어져버린 지금, 조금이라도 득점을 하고 싶어하는 상황에서 반의 리더가 학생회에서 이탈해버리면, 반 친구들이 동요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지."



이만큼의 설명이라면, 칸자키 쪽이 느끼는 불안을 케이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칸자키 쪽은 이치노세에게 직접 이유를 추궁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어. A반을 목표로 하는 걸 포기하겠다는 말을, 리더의 입에서 듣는 건 분명 견딜 수 없는 일일테니까."



"그래서ㅡ 대신 키요타카가 이유를 묻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겠네."



"사정은 알았지만... 왜 키요타카가 이치노세 씨의 반에 엮인거야? 내버려두면 되잖아. 그래도 경쟁상대인데, 섣불리 돕는다면..."



그런 의문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오히려 이건 호리키타 쪽에는 더욱 들려줄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적을 돕는 짓을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지. 하지만 그건 너에게도 아직은 말할 수 없어."


  

"나한테 말할 수 없다고...? 내가 다른 사람한테 말할 거라고 생각해?"



"그런 건 아니야. 네 입이 무거운 건 잘 알지. 다만 내가 하려는 일을 지금 단계에서 누군가에게 말해줄 생각이 없을 뿐이야."



단호하고, 엄하게 내던진 말에 케이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케이는 엄연히 케이다. 이런 걸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다.


애써 참아보려고 하는 모습이 잠깐 보였지만, 결국 머릿속에 담긴 말들이 어쩔 수 없이 내게로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키요타카가 여러가지 생각하는 건 알아. 분명 내가 모르는 곳에서 반을 돕고 있는 거라든가, 칸자키 군의 부탁을 받고 이치노세 씨로부터 사정을 들어보려고 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란 것쯤, 알고 있어. 그래도 말이야... 싫잖아, 여자랑 단둘이 휴일에 만난다는 건. 적어도 학교에서 만난다든가, 점심시간에만 잠깐 만난다든가, 다른 방법도 분명히 있잖아?"



케이는 입술이 튀어나온 채로, 삐졌다는 듯 고개를 돌린 채 그렇게 말했다.


여기서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내게 중요한 건 케이 뿐이라는 등의 말로 수습하는 건 간단하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한마디를 건네며 안도시켜 주는 것이 연애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건 이미 배워서 아는 것.


그렇다면, 청개구리처럼 아예 반대로 행동해보면 어떻게 되는가.


답은 머릿속에 이미 떠올라있지만, 실제로 도출해보지 않고서야 연애라는 것을 이해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방해해보든가. 휴일에, 그러니까 이치노세랑 만나고 있는 중에 난입해 오면 돼."



"그, 그런거..."



"못하겠지? 그런 짓 해봤자 메리트가 없으니까. 그러면 이 얘기는 여기서 끝이야. 크리스마스 선물은 다음 주에 같이 사러 가는걸로 해."



험한 말로 몰아붙이는 것 만으로, 자리의 공기는 이렇게나 순식간에 숨막힐 듯 무거워진다.


추운 날씨에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의 즐거워 보이던 케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됐어. 키요타카에게는 키요타카의 생각이 있잖아.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도 없고."



케이의 표정, 그 뿐 아니라 케이의 감정도 어딘가 붕 떠있다.



"나 잠깐 편의점 들렀다 갈게. 먼저 들어가."



그렇게 말하며, 이 쪽을 보지 않은 채 편의점 쪽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케이의 보폭은 빠른 듯 하면서도 느려서, 내가 쫓아오기를 바라고 있다는 걸 뒷모습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쫓아가 사과하고, 이치노세와 만나는 방법은 다시 생각해본다, 그렇게 전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케이의 기분도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뒷모습에서 시선을 끊어내고 그대로 기숙사로 돌아가기로 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케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그리고 나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행동하게 되는지.


그것들을 경험해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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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것부터 번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