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야키 몰 안에는 다양한 상업시설이 존재하며, 대부분은 나도 발을 들여본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런 나도 아직 체험해보지 못한 시설은 몇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2층에 있는 헬스장이다.



"휴일인 주말에만 다니고 있어. 은근 몸치인 부분이 있어서 그걸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었으면 하거든."



바로 그 헬스장 앞에 도착해서 이치노세가 학생증을 꺼냈다.



"아야노코지 군은 헬스장 같은거 다니지 않지?"



"응. 들어가 본 적도 없어."



"그럼 잘 됐네."



"그렇다고 해도 이치노세가 헬스장이라니, 놀라운데. 언제부터 다녔어?"



"무료 체험을 9월 중순에 했고, 정회원이 된게 10월 초 부터였나?"



벌써 두 달 가까이 헬스장에 다녔단 말인가. 


그건 전혀 몰랐다.



"혼자서 시작한거야? 나는 이런 곳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서투르다고나 할까..."



막상 가입하고 다니기 시작하면 신경쓰이지 않겠지만, 처음 한 번, 두 번의 허들이 높다.



"나도 그래. 그래서 친구랑 시작한거야. 혼자서는 용기가 부족해도 둘이면 꽤 과감해질 수 있으니까. 오늘은 같이 어울려주는 거, 맞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그대로 이치노세에게 이끌려 시설 안으로 발을 들여놓게 됐다.


접수대에 서있는 붙임성 좋은 여직원에게 인사를 건넨 이치노세가 학생증을 제시하며, 동시에 뒤에 선 나에 대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학생증 있어?"



"응."



아무래도 학생증을 제시하면 세세한 가입절차를 생략하고 무료체험을 쉽게 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럼 이따 봐, 아야노코지 군. 여기서부터는 직원들에게 설명을 들어 줘."



이후에는 남성 트레이너로 안내가 바뀌어 사물함과 갈아입기, 샤워실 등의 설명을 대충 들은 뒤 옷을 갈아입을 것을 요구받았다.


헬스장은 굳이 짐을 들도 드나들지 않고 편하게 빈손으로 다닐 수 있게 되어있는 것 같다.


사물함에서 사복을 벗고, 빌린 렌탈 트레이닝복을 입은 나는 안쪽 트레이닝 룸으로 향했다.


아직 이치노세는 옷을 갈아입지 않은건지,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뭐, 오픈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당연한 건가.


하지만 무료체험을 하는 내가 첫 방문자라니 그것도 좀 어색한 일이다.


남자 트레이너가 이것저것 가르쳐주려는 것 같았지만 그 쪽은 거절한다.


모처럼이니 그 부분도 이치노세에게 배우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감이 잘 서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적당히 기자재를 둘러보기로 했다.


나는 훈련기구 자체에 익숙하기 때문에 위화감이 적다.


화이트룸에 있을 때는 몸을 단련하기 위한 최신 설비가 모두 갖추어져 있었으니까.


제조사나 연식은 조금 달라도 어느 것도 다루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보인다.


그런 감상을 품고 있자니 뜻밖에도 속속 이용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보통 한산한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인기가 많은 시설이군.



"기다렸지, 아야노코지 군! 아, 남자들은 벌써 시작했나 봐."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이치노세의 모습에 조금 놀랐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여자 라커룸에도 몇 명인가 있었거든."



"라커룸에선 어른도 몇몇 보이던데, 꼭 학생이 아니라도 이용할 수 있구나."



영화관이든 슈퍼마켓이든 모든 것이 학생 전용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헬스장도 예외는 아닌 셈이다.



"마시마 선생님이라든가, 종종 뵙기도 해."



그렇군. 교원들도 이용할 수 있는건가.


학교 부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몸을 단련하는 장소의 유무도 중요하기 마련이다.


그동안 접근하기 어려운 시설로 받아들여 오랫동안 꺼려왔지만, 이치노세처럼 친숙한 학생이 다닌다면 다녀도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에 빠져있자 이치노세가 친절하게 기자재에 대한 설명을 시작해 주었다.


'이건 이렇게 쓰는 것' 이라든가, 약간의 시연을 섞어서.


설명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굳이 꺼내지 말고 여기선 얌전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해설에 귀를 기울여보자.


지식으로서는 나름 익히고 있는 이치노세였지만 아직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실제로 잘 다룰 수 있는 건 적은 것 같다.


그로부터 10분정도 기자재 사용법을 배우다 보니, 헬스장에 오는 학생들도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해 우리를 제외하고 남녀 7명 정도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슬슬 우리도 뭔가 해ㅡ 아, 마코 쨩, 안녕ㅡ!"



몸을 움직여볼까 하는 타이밍에 이치노세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어, 아, 호나미짱!?"



그건 옷을 갈아입고 라커룸에서 막 나온 아미쿠라였다.


오늘 내가 이치노세와 만날 예정이라는 걸 알고 있기도 해서, 진심으로 놀란 것 같았다.



"뭐야, 하필 왜 헬스장에?"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 그대로 흘러나왔을 것이다.


도움이 되지 않는군, 침착하지 못하다.



"휴일에 헬스장 다니기 시작했지? 아야노코지 군에게도 좀 소개해주려고."



"그, 렇구나..."



설마 집회 장소가 헬스장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이치노세는 아미쿠라의 그런 심정은 알 리 없으니 이쪽은 우선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정해두자.



"으음, 나는 방해되겠네."



"...별로 그런건 아닌데."



내 만류에 아미쿠라는 시선으로 '이 타이밍에 괜한 소리 하지 마라'는 듯 못박아온다.


괜한 소리라는 건 당연히 지난 번 노래방에서 만났을 때의 일 전반일 것이다.


물론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지만, 이 쪽도 시선으로 대답해주자.



"아야노코지 군과 헬스장이라, 뭔가 위화감이 대단하네."



"그래?"



"그런 이미지라고는 없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싫어할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건 단순한 편견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정답이다.


평범한 학생들 앞에서 몸을 단련하는 행위에는 약간이지만 거부감이 있다.


게다가 이런 헬스장은 뭐랄까, 묵묵히 훈련에 힘쓰는 분위기라기보다는 친구들과 수다를 병행해야 하는 이미지가 있어 좀처럼 다가가기 어렵다.


그런 이유로 꺼리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저기, 잠깐, 호나미짱..."



그렇게 말하고 뭔가를 알아차린 아미쿠라가 이치노세의 팔을 잡아당겨 나로부터 거리를 두게 했다.


그리고는 귓속말을 하며, 두 사람의 시선은 왠지 이 쪽을 향하고 있다.



"......!?"



펄쩍 뛸 듯이 놀란가 싶더니, 왠지 아미쿠라 뒤에 숨듯이 몸을 감췄다.



"나도 잠깐 눈치 못채고 있었어 호나미짱..."



그렇게 말하는 아미쿠라도 어딘가 쑥쓰러워하는 분위기였다.



"뭐야...?"



"아아니, 그, 뭐랄까... 남자 앞에서 이런 차림은 막상 익숙하지 않으면 부끄럽다고나 할까, 그렇지?"



눈치 좀 챙겨라, 그런 시선을 받았다.



"그렇구나."



아무래도 헬스장용 웨어를 남자들이 볼 수 있어서 부끄럽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다만 헬스장의 특성상 움직임의 용이성, 땀 흡수 등을 고려하면 어느정도 의상의 제약은 어쩔 수 없다.


부끄럽다는 수치심의 개념은 가져오지 않는 쪽이 좋다.


이치노세는 처음엔 신경쓰지 않고 있었지만, 아미쿠라의 말로 한순간에 부끄러워진 모양이다.


노골적인 이치노세의 반응에 아미쿠라의 얼굴에도 괜히 말을 꺼냈나 하는 후회가 알기쉽게 드러났다.


뭐, 이성의 시선을 아예 무시하는 것도 무리겠지만, 아무튼 여기는 헬스장이다.


그런 쪽은 과감하게 신경을 끄는 편이 최고라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데.



"이럴 때는 확 땀을 흘려보는게 좋지 않을까? 여러 가지 알려 줘, 해 보고 싶어."



남녀사이의 시선이라는 포인트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여러모로 한도끝도 없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이치노세의 주의를 돌려놓으려 했다.


그 말로 이치노세도 일단은 각오를 다지는 듯 했다.



"그, 그렇네. 음... 그럼... 어떻게 할까, 마코 쨩?"



"왜,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아무래도 아직 패닉이 가시지 않은 상태인지, 아미쿠라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치노세.


둘이서 다시 귓속말하듯 대화를 나누고는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여 서로의 의사를 확인한다.



"우리는 아직 초보라서... 익숙한 런닝머신부터 어때?"



"물론, 전혀 상관없어."



헬스클럽의 정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런닝머신에 올라탄 두 사람이 각자 자신에게 맞는 모드로 달리기 시작한다.


메이커 등은 물론 다르지만, 어릴 적 나도 반복해서 사용한 적이 있기 때문에 당혹감은 없다.


실내 훈련에 빠질 수 없는, 유산소 운동의 정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자재다.


이치노세와 아미쿠라는 거의 같은 수준의 속도라든가 강도였기 때문에, 이 쪽도 비슷한 정도로 설정해둔다.



"헬스장은 처음이지? 무리는 하지 마, 아야노코지 군."



아미쿠라가 배려하듯 던져준 말에 가볍게 손으로 괜찮다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잠시 런닝머신 위를 걸으며 묵묵하게 훈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치노세도 긴장과 약간의 부끄러움이 풀리지 않았던 것 같지만, 서서히 그 감각도 희미해졌는지 30분 쯤 지날 무렵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았다.


설정해둔 30분이 지나, 런닝머신이 멈춘 후 이치노세가 고개를 들었다.



"후아...! 힘들어라."



스스로 운동을 잘 하는 편이 아니라고 했던 말대로, 아미쿠라보다 피로감이 더 큰 듯 숨을 깊이 내쉬며 어깨를 들썩인다.





"물 좀 마시고 올게!"



그렇게 말한 이치노세가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떴다.


확실히 라커룸 옆에 보틀에 물을 담을만한 정수기가 있었던 것 같다.


나와 아미쿠라, 단둘이 자리에 남겨졌으니 잠깐 말을 걸어볼까.



"잠깐이라고는 해도 다녔던 만큼 둘 다 익숙해보이네."



"전혀 그렇지 않아... 오히려 아야노코지 군은 우리랑 같은 속도였는데 하나도 힘들어보이지 않네."



"일단은 남자니까, 여자보다는 기초적인 체력은 있는 편이라고 할까."



"그렇구나. 그나저나 놀랐어, 케야키 몰에서 만날지도 모른다고 상상은 했지만, 아침부터 헬스장에서 마주칠 줄은 전혀 몰랐네."



역시 이 장소에서 마주치는 일은 아미쿠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인듯 했다.



"어때? 뭔가... 호나미짱에게 들었어?"



"아직 아무것도. 만나자마자 헬스장으로 와서 아미쿠라를 만났고, 지금 이 상태야."



"그렇구나. 그래도 호나미 쨩이 즐거워보여서 좋네."



땀을 수건으로 훔치며, 아미쿠라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것도 친한 친구라면 눈치채는 거구나."



"확실히 보여. 호나미는 평소에도 항상 웃고 있지만, 오늘은 뭐랄까, 풋풋함 폭발이라는 느낌?"



이치노세가 자리를 비워준 덕에 단둘이 남은 지금, 와타나베와의 약속을 위해 여기서 살짝 정보를 이끌어내보도록 할까.



"곧 크리스마스네."



"그렇지. 아야노코지 군은 카루이자와 씨랑 보내는 거지?"



이쪽이 자세한 내용을 캐내기도 전에 역으로 질문을 받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응? 뭐, 일단 그럴 생각이야."



"저기, 솔직히 물어보겠는데, 호나미에 대해선 어떻게 할 생각이야?"



"어떻게 하다니?"



"왜냐면... 구체적인 마음은 알고 있는거지? 그러면... 응?"



아미쿠라는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망설여졌는지, 말을 흐리며 전하려 든다.



"아미쿠라는 내가 어떻게 하는게 좋다고 생각해?"



"뭐!? 그걸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묻는다기 보다는,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상상쯤은 해보지 않았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땀이 났는지, 목에 걸고 있던 수건으로 이마를 가볍게 닦는다.



"나는... 역시 호나미 쨩이 웃는게 제일 좋아, 친구로서는 말이야. 하지만 지금 아야노코지 군에게는 카루이자와 씨가 있어. 그걸 헤어지면서까지 이뤄달라는 건 또 다른 이야기네. 가장 좋은 건 호나미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그 사람과 행복해지는 걸까나."



스스로 이상적인 결말을 상상해보고, 이리저리 고쳐가며 결론에 이른다.


확실히 아미쿠라의 말처럼, 지금 이치노세가 나에게 호의를 표하고 있는 상황은 솔직히 귀찮다.


그러니까, 무관한 제 3자에게 그 호의를 돌려준다면 문제가 단번에 일단락될 가능성이 있다.



"글쎄, 나도 다른 남자들을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와타나베 같은 타입이라면 같이 지내기 편하고, 이치노세랑도 어울릴 것 같은데."



나는 여기서 아미쿠라의 대화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올라타듯이 와타나베의 이름을 던져보았다.


여기서의 반응에 따라서 아미쿠라가 와타나베에게 품고 있는 인상을 캐치해낼 수 있을 지 모른다.


어디까지나 휴일에 와타나베와 쇼핑에 어울렸던 만큼, 아미쿠라도 그를 나쁘게 평가하는 건 아닌 듯 하니.


가능성을 살피는 데는 이 정도 확인으로도 충분할 지 모른다.



"와타나베라면, 그 와타나베 군 맞지? 우리 반의."



"응. 수학여행에서도 같은 방에서 얘기할 기회가 많았으니까. 이치노세랑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음... 뭐랄까..."



조금은 생각에 빠진 듯한 내색을 보인다.


호의적이든, 부정적이든 한 쪽으로 정하기 힘든 애매한 사이에서 고민하는 듯 하다.



"나로서는ㅡ 호나미 쨩이라면 조금 더 위를 목표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구나. 와타나베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건가."



"와타나베 욕을 하는건 아니다? 평범한 여자애라면 와타나베한테도 충분히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렇구나. 아미쿠라는 어때?"



소득을 얻기에는 살짝 애매한 대답을 들었기에, 여기서 살짝 악셀을 밟아보기로 했다.


너무 느긋하게 시간을 들이고 있으면 이치노세가 돌아와 버린다.



"나?"



"연애에 대해서 잘 알 것 같은 이미지라서."



"전혀 아니야. 나는ㅡ 뭐랄까, 쭉 짝사랑중이라고나 할까."



"따로 좋아하는 상대가 있구나."



"뭐, 그렇지. 이래뵈도 나도 고등학생이라고?"



상대가 누구인가, 그걸 알아낼 수 있으면 좋을텐데.



"벌써 5년 가까이 짝사랑 중이니까. 언제 쯤이면 다음 사랑으로 넘어갈 수 있으려나."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


5년, 즉 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계속되어온 사랑이라는 것.


아무래도 이 이상 파고드는 건 불필요할 것 같지만, 와타나베에게 있어서 희소식인지 아닌지는 애매하다.


적어도 사랑의 라이벌이 같은 학교엔 없는 건 메리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떤 타입인지만이라도 더 물어서 알아볼까 생각하던 차에, 이치노세가 돌아와버렸다.


이치노세의 연애 이야기를 멋대로 하고 있었던걸 들켜선 곤란하니까, 아미쿠라는 황급히 나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미안해. 기다렸지~"



"아니, 전혀. 이제 괜찮아?"



여기서 물고 늘어지면 오히려 수상해 보일 뿐이다.


나중에 대신 이치노세에게 조금 더 캐내볼 수 있을 것 같을 때 물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