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상대인 류엔과 이치노세가 충돌해 한바탕 홍역을 치른 그 날 방과 후.


호리키타에게서 스터디 그룹에 초대받았지만, 당연하다는 듯 거절했다.


아침부터 케이는 이 쪽을 신경쓰면서도 말을 걸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고, 나도 특별히 이후에 예정은 없다.


그 덕에 귀찮은 문제를 매듭짓는 데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됐다.


요 근래 유난히 도둑질이라는 단어가 남용되고 있는데, 그 발단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사건.


키류인 후우카가 왜 도둑질의 누명을 쓸 뻔 했을까.


그녀의 언행이나 행동을 지켜보면, 친구가 한 명도 없다고 잘라 말한것도 사실일 것이다.


당연히 반 친구 뿐 아니라, 3학년 전체로부터 성격상 미움을 받고 있는것도 사실일 테고.


다만 그렇다고 해서 죄를 뒤집어 씌우자는 발상까지는 보통 쉽게 이르지 못한다.


가령 키류인이 A반 싸움을 벌이는 데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인식됐을만한 1학년 시절이었다면 옳고 그름을 떠나 일종의 전략으로서 여겨졌을 지 모르지만, 이미 승패가 결정된 지금 일부러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의미는 무엇일까.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부상하고 있는것이 나구모로부터의 간접지시에 의한 괴롭힘.


승부에 굶주린 나구모가 키류인에게 시비를 걸어 관심을 끌기 위한 것.


그러나 지난번 학생회에서 그녀를 귀찮다는 듯 쳐낸 나구모의 모습을 보면 그렇다고 단언하기도 애매하다.


의도를 드러내고 승부를 걸기엔 최적의 타이밍이었을 터.


그래서 키류인도 정확한 판단을 망설이는 중일 것이다.


내가 조사를 진행시켜 나가는 데에 있어서 취할 수 있는 선택지라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최유력 후보인 나구모를 상대로 이번 건에 대해 맞서보는 것.


혹은 키류인의 가방에 물건을 넣어놓으려 했던 야마나카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3학년의 실태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제 3자로부터 정보 제공을 요청하는 것.


그렇지 않아도 나와는 극히 교류가 희박한 3학년 학생들이다.


연락처를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나구모나 키리야마 등 전직 학생회 구성원들 뿐.


그렇다면 직접 발품을 팔아 정보를 얻어보는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아도, 이렇게 하는 데에 나름의 이유는 있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가장 유익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 같으면서도 키류인을 몰아넣은 인물과는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사람.


몇 명 단독으로 행동하고 있는 3학년 학생이 떠올랐기 때문에, 나는 나름의 정보 수집을 해보았다.


그렇게 모은 정보를 통해 내가 원하는 그 인물이 체육관 쪽으로 향했다는 걸 알고 바로 발길을 옮겼다.


다만 가는 길에 마주치지는 못했고, 그대로 체육관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미 동아리 활동은 시작된듯, 반 친구 스도가 남다른 목소리를 내며 성실하게 기초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없나..."



속속들이 체육관에 동아리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해서, 방해되지 않도록 일단은 돌아가기로 했다.


체육관으로 향하는 학생에게 물어봐도 새로운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결국 바라던 만남은 이루지 못했지만, 현관으로 돌아와 신발을 확인해보니 아직 학교 안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였다.


모습은 감췄지만 아직 학교 안에 있단 말인가.


오후 5시도 가까워지면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 이외에는 교내에 남아있을 인원이 적어지는 시간.


다소 눈에 띌 리스크도 있지만, 3학년 교실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오늘은 날이 아닌건지, 네 반을 전부 둘러봤지만 모습은 역시 없다.


이쯤되면 조용히 현관에 모습을 감추고 매복해보는 편이 현명할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을 무렵, 내가 찾는 사람이 교무실로 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교무실에 도착한 나는 복도에서 상황을 살피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 사람을 발견하는데에 성공했다.


방과 후 이 시간은 교원들의 출입도 많기 때문에 섣불리 눈독을 들이지 않도록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로부터 10분쯤 지나서야 그 학생이 교무실에서 빠져나왔다.


평소에는 늘 밝은 이미지였지만, 오늘은 유난히 표정이 어두운 채로 고개를 숙이고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대로 교무실을 지켜보던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가로질러 갔다.


말을 걸 타이밍을 놓친 나는 조금 망설인 뒤, 거리를 두고 쫓아가기로 한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타이밍 즈음에 말을 붙여봐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현관으로 향하지 않고, 계단을 올라가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으로는 갈 수 없는데, 만날 사람이라도 있는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이윽고 멈춰서서 희미하게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반대로 아무도 마주치지 않기 위한 장소였던 것 같군.


고요해진 학교 안, 참고 있어도 울음소리는 묘하게 귀에 와닿게 된다.


만약 사정을 모르는 누군가가 이곳에 오면 내가 울렸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는 상황.


눈치채지 못하게 떠날 수도 있었지만, 이쪽으로서도 용건이 있다.



"저기..."



짧게, 최대한 놀라지 않도록 말을 걸어본다.


하지만 곁에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는지, 지나치게 놀라는 모습.



"헉!? 에, 에, 아야노코지 군!?"



"죄송합니다, 놀라게 해드려서."



"미안해, 미안해. 잠깐만!"



"별로 사과받을 입장은 아닙니다만..."



그녀는 여전히 놀란 채였지만 뒤늦게 얼굴을 가리고,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황급히 닦아냈다.



"타이밍이 나빴다면 다음에."



"괜찮아, 괜찮으니까!"



돌려보내지 않으려는 듯 소매를 잡아당겼다.


이런 행동은 예상 밖인데.


어쩌면 나를 이대로 돌려보냄으로써 울고있었다는 사실이 다른 학생들에게 알려지는 리스크를 본능적으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사히나가 진정될 때 까지 몇 분 동안 조용히 기다렸다.



"...응, 이제 괜찮아."



그렇게 대답한 아사히나가 기침 한번을 하고는 부끄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미안해."



"또 사과입니까. 놀라게 해드린 제 쪽의 잘못인데."



"그거랑 상관없는 얘기야. 흉한 모습을 보였으니까."



섣불리 무관한 일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눈물의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게 반대로 신경이 쓰였는지, 아사히나는 스스로 그 이유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슈치...가 아니라, 모에카가 학교를 그만뒀어. C반의 슈치 모에카."



"이 맘때에 퇴학이요? 특별시험 페널티가 아니라, 자퇴라든가?"



요 근래 3학년들 사이에서는 특별시험이 치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퇴를 부정하듯 아사히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유는 중대한 위반을 저질렀기 때문이래. 규율을 어지럽히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한 처분이라는 거야.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 선생님께 여쭤봤는데,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어."



그것이 교무실에 들른 이유인가.


A반인 아사히나 입장에서는 C반에서 퇴학자가 나온들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반의 경계를 넘어선 친구 사이였음은 들을 필요도 없이 분명했다.



"본인한테 직접 얘기 들은 건 없습니까?"



"모에카가 퇴학한 건 어제였고, 오늘 아침에 알려졌을 땐 이미 기숙사에 없었어. 연락 같은 것도 일절 안 와서... C반 애들이라면 뭐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봤는데 아무것도 알아낸 건 없었어. 다들 떠나는 친구에 대해서는 그닥 관심이 없나 봐."



아무도 슈치(須知, スッチー)라는 선배의 퇴학 이유를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도 숨기고 있는 사람이 있는걸까.


호리키타 마나부의 학년, 나구모의 학년, 호리키타의 학년, 그리고 나나세와 아마사와 등의 1학년.


나는 이렇게 네 학년밖에 모르지만, 분명히 나구모 학년 쪽은 유독 퇴학자가 많다.


그래도 특별시험과 관계없는 곳에서 퇴학이라는 건 역시 마음에 걸린다.


학교 측이 세부사항을 덮고 있는 건 그만큼 중대한 위반이고,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터.



"내 멋대로의 상상이고, 뭘 위반했는지는 아무것도 몰라. 근데 이유는 왠지 알겠어. B반 아래의 학생들은 모두 매일 A반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 분명 그 과정에서 모에카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른 것 같아."



"아사히나 선배의 학년이라면 모든 주도권은 나구모 선배에게 있지 않나요?"



나구모에게 인정받았다면 A클래스, 그 외에는 탈락.


그것이 그동안 겉으로 드러난 3학년 학생들의 살 길이다.


하지만 아사히나의 흐린 얼굴을 보니, 그 외에도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A반에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 있군요."



"...굳이 말하자면 샛길이라고나 할까, 그... 아야노코지 군, 미야비와는 관계가 어때?"



"어떠냐는 뜻은? 굳이 말하자면 좋지 않은 편이고,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만."



"이 일은 다른 학년의 학생들은 모르는 얘기야."



"그런가요, 누군가에게 말하는 일은 없도록 하죠."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전하자 아사히나는 안도하며 3학년의 실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친구가 퇴학당해 버렸으니, 쏟아내고 싶은 말도 많았을 것이다.



"작년 이 맘때 미야비가 학생회장이 되고 A반의 승리는 확실해져서, B반 이하로는 희망이 사라졌어. 그래서 미야비가 실력이 있고 활약을 보이는 학생은 A반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을 때 모두 기뻐했어."



하지만 그렇게 달콤하기만 한 이야기는 세상에 잘 없다.


이 학교의 시스템 상 반 포인트를 박박 긁어모아도 이동이 가능한 학생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야기 도중 아사히나는 후후 하고 숨을 내쉬며 몸을 약간 떨고 있었다.



"모에카도 그랬어. 어떻게든 함께 A반에서 졸업하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거든."



결국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졸업을 앞둔 시기에 퇴학이라는 결말인가. 



"나구모 선배는 슈치 선배의 퇴학에 대해 뭐라고 말했나요?"



"아무 말도. 그렇다기 보다는, 신경쓰지도 않는 것 아닐까. 선생님의 공지라면 있었지만, 한 귀로 흘려버렸을지도 몰라."



떠나는 물고기에겐 의식을 돌릴 가치도 없는 셈인가.


나구모의 그 사고방식은 싫지 않다.

 


"괜찮다면 장소 좀 바꾸지 않을래? 왠지 추워져서."



교무실에 있었던 동안 아드레날린이 한껏 분비된건가, 그게 진정되면서 추위에 몸을 떨고 있는 것 같다.


난방이 잘 되는 교실이나 교무실과는 달리 복도는 역시 쌀쌀하니까.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쪽도 아사히나에게는 궁금한 점이 여럿 있어서, 조금 멀지만 케야키 몰 안에 있는 카페로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