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까지 몇 분 남지 않은 시간.


컵의 음료도 비워지는 타이밍에 남학생이 한 명 다가왔다.



"아사히나, 이 녀석이 아야노코지?"



"어? 타치바나 군? 그렇긴 한데..."



"방해 좀 하마."



난폭하게 의자를 당기고는 타치바나라고 불린 학생이 빈 손으로 앉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테이블에 팔을 올려놓고, 앞으로 쭈그리고 앉으며 말을 걸어온다.



"야마나카에게 무슨 볼일이냐."



타치바나 켄토. 3학년 D반의 야마나카와는 같은 반 친구가 된다.


아나자이가 등장하는 것 정도는 예상범위에 넣어뒀지만 또 새 학생인가.



"잠깐, 어떻게 그걸...?"



"야마나카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은건가요. 상황을 좀 봐달라는 부탁이라도 받으신건지?"



"앙? 묻고 있는건 이쪽이잖아."



선배라는 점도 관계가 있는지, 강경한 자세를 무너뜨리는 모습은 전혀 없다.


아마 아나자이보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월등한 학생이겠지.



"대답을 미루는 시점에서 추측은 맞는 것 같은데, 키류인 선배 건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진상을 확인해 달라는 키류인 선배의 부탁을 받고 있습니다만."



"탐정놀이라도 하시나? 그럼 키류인한테 전해. 전에 말했던 대로라고."



"나구모 선배의 지시대로 도둑질을 덮어씌우려고 했다, 였나요."



"그렇지."



"저기, 그게 사실이야, 타치바나 군? 미야비가 그런 일을 시킬 것 같지는 않은데."



"못 믿겠나? 나구모는 그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키는 놈이잖아. 우리를 노예로 삼아 손발로 쓰면서 말이야."



이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적어도 나구모를 지지하는 일파와는 다른 것 같다.


그야말로 반 나구모 일파라고 자처해도 위화감이 없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따를 수 밖에 없단 말이지, 우리는. 야마나카처럼."



지루하다는 듯 숨을 푹 내쉬며 삐딱하게 고개를 젖히는 타치바나.



"알아들었으면 앞으로 야마나카한테 관여하지 마라. 알았냐?"



"죄송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나구모 선배는 이번 일에 대해 인정하고 있지 않다보니."



"의심하는 건 네 멋대로지만 이게 사실이다. 우리는 나구모를 거스를 수가 없다니까."



"들었습니다. 나구모 선배와 계약을 하셨다고 하니."



타치바나는 아사히나를 노려보며 그런 말까지 입에 담았냐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 이해했을 거 아냐."



"프라이빗 포인트를 모아서 반을 이동할 수 있을 만큼의 큰 금액으로 재분배하는 방법은 각자 반 별로도 가능했을 텐데, 굳이 많은 학생들이 나구모의 지시를 따랐던 이유가 뭔가요?"



"영 잘 모르고 있구만. 계약하기 전까지 우리 D반이나 C반에는 제대로 된 반 포인트라곤 남아있지 않았어. 반 전체가 1년동안 협력해도 2000만 포인트는 모일 일이 없었다고. 그러니까 A반에서 졸업할 확률은 0이야. 하지만 계약하면 적당히 특별시험에도 유리하게 해준다. 즉, 반 포인트를 받을 수 있게 해준다는 거지.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나? 게다가 만약 반 전체에서 나구모의 계약을 무시한다면 어디까지나 우리는 나구모와 철저하게 대립하게 돼.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아? 남은 반 포인트란 죄다 뜯기고 매달 지급되는 프라이빗 포인트도 0이 돼선 그대로 끝났을 거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구모는 자신이 속한 반의 강점과 어드밴티지를 철저히 살렸다.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데다 나구모한테 인정받으면 A반으로 졸업할 기회까지 주어진다. 이걸 거부하는 건 키류인같은 바보밖에 없지."



나구모의 휘하로 들어감으로써 어느 정도 반 포인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건가.


75%를 뺏긴다고 해도 매달 빠듯하게 쓸 포인트는 남는다.


일단 계약을 맺어버리면 그 내용상 파기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한 두명이 반발해봤자 누군가에 밀고에 의해 들켜버릴 테고.



"그 큰 금액을 나구모 선배가 써버린다고 해도 아무도 불평할 수가 없는 상황이네요."



"그야... 불만이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네 말대로 불평할 수는 없어. 실력 있는 놈은 괜찮다 쳐도, 나 같이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A반으로의 희망이 없는 인간에게는 남겨진 제비뽑기가 최후의 보루야."



졸업할 때까지 끊임없이 프라이빗 포인트를 착취당하는 한이 있어도, 복권에 배팅한다.


티켓이 단 한장이라고 해도, 100분의 1정도로 당첨되는 거라면 나쁘지 않을지도.



"이번 키류인 선배에게 절도죄를 뒤집어씌우라고 한 것도 지시 중 하나였다는 건가요."



타치바나는 순간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중간역 중 한명이야. 만약 키류인에게 절도죄를 덮어씌울 수 있다면 평가에 반영해 준다면서."



"그 중간역이라는게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사이에 사람을 끼우면 끼울수록 도둑질을 덮어씌우려던 사실은 새어나갈거고, 게다가 한 가지 사건에 여럿이서 도전하면 당연히 개개인의 기여도도 분산될텐데요."



나구모 입장에선 처음부터 야마나카처럼 뒷배가 없는 여학생에게 접근하는 것이 수고도 위험도 적다.


이 점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지워지질 않는다.


나구모에게서 타치바나, 타치바나에게서 야마나카로 바톤을 넘길 필요성이 어디에 있는가.


게다가 이 타치바나의 말도 모든 것이 믿을 만 하냐에 대해서는 물론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진실을 말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런 것 치고는 지나치게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나구모 학생회장이 제대로 입막음까지 시키지 않았습니까?"



"무, 물론이야. 다만 여차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그 녀석의 이름을 말한다든가 진상을 털어놓더라도 책망은 받지 않게 되어있어. 나도, 야마나카도... 스스로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책임감 같은 건 없다고나 할까..."



이렇게 조금만 몰아붙여도 금세 전부 털어놓는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강경 일변도였지만, 찔리는 부분이 있는지 약한 모습이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타치바나 선배, 당신은 실행범은 아닐지 몰라도 이 일이 공개되면 학교는 같은 책임을 지울겁니다. 그럴 각오는 있으신지?"



"뭐? 나구모가 이 일을 겉으로 드러낼 리가 없잖아."



"나구모 선배는 그럴지 모르지만 키류인 선배는 화가 나 있어요. 그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상대가 누구든 물어뜯는 것 쯤은 3년동안 보아오셨으니 알고 있으시겠죠?"



"그건... 아나자이도 엄청 겁에 질려있었지..."



"당신은 나구모 학생회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키류인 선배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여자로서 야마나카 선배를 선택해 상담을 제의했다. 성공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부추기면서. 그게 모든 진상, 일절 틀린 점 없다고 맹세할 수 있나요?"



나는 휴대폰을 동영상 촬영 모드로 만들어 그 카메라를 타치바나의 눈 앞으로 가져갔다.



"그러니까, 그건..."



"맹세하시죠?"



다시 한 번 단호하게 휴대폰을 가까이 들이대자 타치바나는 강한 힘으로 밀쳐냈다.


그리고는 강제로 녹화를 정지시켰다.



"틀림없다잖아."



"그럼 당황할 필요는 없을텐데, 왜 녹화를 싫어하시는지?"



"그건... 그... 이제 용서해 줘!"



"아, 잠깐 타치바나 군!?"



붙잡아보려는 아사히나였지만, 뒤돌아보지도 않고 이 자리를 떠났다.



"뭔가 말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했는데... 뭐였을까?"



"괜찮습니다. 방금 반응으로 대충 파악했으니."



"그래? 누가 타치바나 군에게 지시했는지 알았다는거야?"



타치바나는 그 지시를 순순히 듣고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실패해서 키류인에게 추궁당했을 땐 나구모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자신의 입장이 불리해질 리스크를 안고서도 그 사실 외에는 인정하려 들지를 않았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아사히나 선배. 이제 곧 수수께끼가 풀릴 것 같아요."



"으응. 아야노코지 군이 알아냈다니 다행인데... 나한테도 가르쳐 줄 수 있어?"



"지금은 그만두죠. 섣불리 아사히나 선배를 끌어들이는 것도 좀 그렇고."



아사히나는 궁금한지 시종일관 신경쓰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나 스스로만 알고 있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