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 이야기 들어보니 이 날 유독 디코에 문제가 있었대요. 그게 트위치 방송 송출과 음질이랑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암튼 그랬다네요.



중계를 하기엔 여건이 좋지 않아 채팅으로 진행하려 했을 땐, 좀 기묘한 기분이었습니다. 기쁜데 안 기쁜...


제가 했던 듀얼 리플들을 보고 카톡으로 1분짜리 녹음 하면서 말 속도나 발음 정확도 같은 것도 살피긴 했는데.. 


처참하더라구요. 바둑 중계 하듯이 해설 해야되는데 무슨 축구 중계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계속 속도가 붙는 탓에 좀 난처했습니다.


중계 파트너와 멘트 주고 받으며 호흡도 맞춰야 하고 친목이 되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데 이대로 가면 혼자 열내며 지랄하다 끝나겠더라고요. 고치기 어려웠어요 은근히.



그런 걱정이 드는 와중에 중계를 할 수 없다?

안도했습니다 솔직히... 최소 중계로 갑분싸 되거나 하진 않겠구나.

그러면서도 동시에 쪼금 아쉬웠어요

내가 중계하려고 녹음을 몇 번을 했는데...

이런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까 싶기도 했고...

제 말재간이 어디까지 통하나 궁금하기도 했고..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과한 걱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비록 타이핑으로 씨부리긴 했지만 누구도 거슬린다고 타박하는 사람도 없었고, 덱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해서 무슨 말을 해야할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워낙에 명장면과 변수가 많아서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미래황으로 카맥드 훔치기,

그 카맥드와 아백룡으로 사이퍼 엑시즈 해서 상대 꺼 훔치기,

건치맨을 링크 소재로 라이너를 꺼내 상대 마하드를 훔쳐와 블랙 매지션 목 꺾기,

만죠메 최고 아웃풋 암드 캐터펄트 캐논 정규 소환하기,

비록 패배 했지만 시청자들이 1, 10, 100, 1000, 만죠메 썬더!! 외쳐주기,

쌍천 유저의 신들린 듀얼근,

엑소시스터 기믹으로 버틸 수 없어 용병을 꺼냈지만 파괴수로 잡아 먹히기,

온갖 정보의 불균형,

30분동안 4턴 진행한,

서로 덱이 0장이 될 때까지 전개한 카디언 막고라,

강덱이라 여겨졌던 마린세스와 이빌트윈, 카구야 령사의 초반 탈락 등등...



할 말이 없는게 오히려 이상한 소재들이죠?



3시간 동안 타이핑한 건 처음이라서 손목이 좀 많이 땡겼습니다만 경기들이 너무 재밌었고 기왕 말 붙인거 계속 말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말도 하긴 했습니다. 어차피 듣는 사람 없지만 말로 한번 뱉고, 뇌로 필터 거쳐서, 채팅으로 출력되는 전개가 꽤 쓸만하더라구요. 어느 순간부턴 기껏 써놓은 멘트들 하나도 안보고 그냥 되는 대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중계라기 보다는 그냥 미친 놈이 상황설명을 큰소리로 알려주는 정도라서 오히려 채팅인게 다행이었던...것..같기도...



아무튼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대회는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고, 채팅 중계도 그렇게 마무리 됐습니다.



채팅으로나마 중계를 할 수 있어서 나름 좋았고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었고...


아무튼 이것도 카디언 막고라 만큼이나

귀하고 가치 있지만 아무도 하고 싶진 않은 경험이니

여러모로 생각할 점이 많은 대회였습니다. 정말로요.



흔쾌히 2인 중계를 허락해줬던 주최자,

별생각없이 참여했지만 잘 부탁한다며 버거 준 후원자,

지루하지 않게 명장면을 보여준 32명의 참가자들,

그리고 시끄러운 중계 참고 끝까지 경기 봐준 시청자 들에게 감사하다는 말 전합니다.



기회가 되면, 이번엔 더 제대로 준비해서 중계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뒷북이지만 대단히 수고들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