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소설의 모티브는 '제 2회 차원전쟁'에서 가져왔습니다.

※ 해당 소설에 등장하는 카드군은 기존의 공식 설정과 다른 2차 창작입니다.

※ 해당 모티브가 된 듀얼 로그는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각색을 더했습니다. 



- 지난 화 -


차원 전쟁 - 1 -

차원 전쟁 - 2 - 

차원 전쟁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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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착상태가 지속되었다.

스스로를 마도왕이라 불린 남자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웨더를 내려다보았고
웨더도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 이후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던 하얀 갑옷의 마법사들이 마도왕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웨더가 입을 열었다.

『 이 앞은 교도국가 드래그마의 영토입니다. 교주 막시무스의 허가가 없으면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

결정은 짐이 한다.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를 기준으로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려퍼졌다.
미지의 기술을 목격한 웨더의 머릿속에 자동으로 계산식이 떠올랐지만 잠시 접어두었다.
지금은 상대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보다 상황을 무마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 신원불명인 다수의 인원을 함부로 들일 수는 없습니다. 아침이 되었을 때… 』

웨더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장병이 웨더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약간의 지진이 일더니 땅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웨더의 머릿속에 위험신호가 울렸지만 대처하기엔 너무 늦었다. 웨더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었던 바닥은 그대로 가라앉았고 균형을 잃은 웨더는 뒤로 넘어지며 땅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또 다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지금부터 알아두거라.
짐은 창성마도왕 엔디미온.
그대 같은 미물이 함부로 영접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땅 속으로 가라앉으며 웨더는 생각했다. 이 세계의 역사에는 마도왕, 엔디미온이라는 사람은 없다. 막시무스에게서 들었던 령신의 성전을 찾아왔다는 '그 마법사' 처럼 차원 바깥에서 온 인물임이 확실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는 존재다. 에클레시아와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왕도에 걸리적거리는 인물은 가차없이 처리하는 자다.




진군하라.


웨더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엔디미온이 말했다. 무너진 땅이 다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틈새가 메워지고 같이 휩쓸렸던 잡초나 돌멩이 같은 것들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오직 웨더만이 돌아오지 않았다. 엔디미온의 부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열을 갖췄다.
말하는 돌멩이 따위가 마도왕을 가로막다니. 이런 것은 우리에게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다. 그는 영원히 땅 속에 파묻힐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 토질 분석 완료.
활용 가능한 화석 수 파악 완료. 
기동에 필요한 에너지 축적 완료.
프로세스 활성화 까지 
22초 ── 』

『 ── 화석 융합 실행』


엔디미온의 부대는 진군을 계속할 수 없었다.

주변에 갑자기 뼈로 이루어진 공룡 세 마리가 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 중 한 마리의 머리 위에는 웨더가 앉아 있었다. 푸르게 빛나던 관절은 아예 불꽃처럼 일렁이며 치솟았다. 웨더의 손짓에 따라 공룡들이 일사분란하게 하지만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무표정을 유지하던 엔디미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포효 대신 덜그럭 소리를 내며 화석 공룡들이 부대를 향해 고개를 뻗었다.
녹빛 갑옷 부대는 엔디미온을 보호하기 위해 원형으로 무리를 지어 공룡을 막아섰다.
그들은 단순한 병사들이 아니다. 한 명 한 명이 나무를 뿌리채 뽑는 괴력을 지녔고 평범한 날붙이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는 갑옷을 입은, 전투 중에는 항시 엔디미온에게 마력을 공급 받는 직속 정예부대다. 일반적인 대결이라면 그들은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공룡 조각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달랐다.


무적의 군대는 뼈로만 이루어진 공룡 세 마리에게 어떠한 압력도 가하지 못했다. 마법은 전혀 통하지 않고 금방이라도 부식될 것 같은 뼈는 그들의 무기보다도 단단했다. 병사들이 아무리 들러붙어도 다가오는 공룡을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공룡이 세차게 고개를 흔들자 낙엽처럼 맥없이 나가 떨어질 뿐이었다.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엔디미온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두 가지는 확실했다.
한 가지는 정체불명의 돌무더기가 자신의 직속부대를 상대로 명백하게 우위를 점했다는 것.

다른 한 가지는 그 돌무더기가 지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


엔디미온이 지팡이를 높게 치켜들었다.


짐의 군사를 능가하는 힘이라
건방지구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엔디미온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것이 일렁였다.
엔디미온의 대규모 마법을 감지한 병사들은 공격을 멈추고 순식간에 대열을 갖춰 엔디미온의 근처로 모였다.

웨더는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과 태양이 한 자리에 있다. 엔디미온을 중심으로 웨더가 있는 곳은 밤, 그 건너편은 석양이 지는 하늘이었다. 황야였던 들판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산맥, 어느새인가 주변은 산맥 사이의 골짜기로 변해 있었다.
마치 달이 떠 있는 황야를 배경으로 한 퍼즐에 석양과 골짜기가 그려진 조각을 억지로 끼워넣은 것처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공간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 대규모 마력의 파장을 감지. 지정된 인원을 특정 공간으로 이동… 정정합니다. 특정 공간 자체를 소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결론을 내고서도 웨더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공간을 찢고 다른 공간에 억지로 끼워 넣는다. 그림으로나마 표현할 수 있는 추상적인 배경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창성마도왕 엔디미온은 대체 어떤 자인가?

엔디미온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왕의 무덤을 지키는 묘지기들의 신성한 땅,
세상 그 어떤 이도 네크로밸리를 파헤칠 수 없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웨더가 불렀던 모든 공룡들이 일제히 무너져 내렸다. 그 자리에는 깨지고 부식된 화석의 잔해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웨더와 화석 사이를 연결하고 있던 신호가 완전히 끊겼다. 공간이 달라졌을 때부터 짐작하긴 했지만 어떤 대처도 하지 못했다. 웨더의 능력으로는 엔디미온을 저지할 수 없었다.

선두에 있던 병사 둘이 웨더를 향해 달려들었다. 웨더는 조금이라도 공격 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크게 기울였다. 그들의 무기는 웨더의 몸보다도 강도가 높다. 정면으로 맞설 방법은 없다. 다른 방법을 찾기 전까진,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했다.
병사의 칼이 웨더의 오른쪽 관절을 베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함. 오른팔은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또 다른 병사는 자신의 몸보다도 큰 둔기로 웨더의 왼쪽 무릎을 찍었다. 무릎은 그대로 짓이겨졌고 웨더는 결국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세차게 일렁이던 웨더의 푸른 빛이 어느새 반딧불만큼이나 작아졌다. 단 두 대 만으로 웨더는 전투불능이 되었다.

『 시스템 저하… 위험… 우측 팔 관절… 신호 정 』

묵직한 파열음.
웨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병사가 웨더의 목을 둔기로 내리쳤다. 확인사살.
웨더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푸른 빛도 나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

웨더였던 돌무더기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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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가 계산 범위 안이다.
웨더는 엔디미온을 마주했을 때부터 이 사태를 예상했다.
자신은 패배하고 최악의 경우엔 파괴된다.

그래서 자신이 파괴될 경우, 잠금이 해제되도록 설정해두었다.


잠금 해제


의외로 쉽게 해제되었다.
오히려 이만큼 망가진 것이 다행이었다.
내제된 시스템이 잠금을 해제하지 못하도록 방해 했을테니.
잠금이 해제된 이상, 이 이후로는 웨더도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

웨더는 계산을 포기했다.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하나, 에클레시아에 관한 계산식은 남겨두었다.
풀고 싶다.


풀게 된다면
에클레시아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에클레시아 조차도 알지 못한 웨더의 비밀.


웨더의 근처에 있던 두 병사들이 갑자기 온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무기를 떨어뜨리고 갑옷을 벗어던졌다. 손 끝부터 천천히 그들의 몸은 붕괴되고 있었다. 흩어진 먼지는 허공에 흩날리고 그들의 단말마가 이어졌다.
예상 밖의 상황에 다른 병사들이 움직이려고 했지만 엔디미온이 저지했다.
자신의 군대를 능가한 것보다도 더 말이 안되는, 더 폭력적이고 더 잔인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웨더의 머리 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분자화 되가던 두 병사는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소용돌이 안에서 번개가 솟구치고 돌풍이 불었다.
일대를 흔드는 진동. 엔디미온은 막지 못했다. 막을 수 없었다.
병사였던 분자들은 한데 모여 새로운 모습으로 재구성되었다.




뱀, 아니 용이었다.
보라색, 몸 곳곳에 입이 달려있다. 모든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머리에 달린 악마를 연상시키는 뿔, 발광하는 적색의 구체, 번뜩이는 꼬리의 칼날,  
날개의 모습을 한 커다란 입이 한 번 벌어질 때마다 주변에 독기가 퍼졌다.



웨더의 머리 맡에서 새롭게 재탄생한 용이 하늘을 보며 포효했다.




용의 눈동자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