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소설의 모티브는 '제 2회 차원전쟁'에서 가져왔습니다.

※ 해당 소설에 등장하는 카드군은 기존의 공식 설정과 다른 2차 창작입니다.

※ 해당 모티브가 된 듀얼 로그는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각색을 더했습니다. 



- 지난 화 -


차원 전쟁 - 1 -

차원 전쟁 - 2 - 

차원 전쟁 - 3 - 

차원 전쟁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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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메이슨의 지하 깊은 곳에 있는 어느 실험실, 차가운 유리관 안에 한 사내가 들어있다.
거대한 붉은 오른팔, 빛나는 눈동자, 부러진 머리의 양뿔. 악마와 절반씩 섞인 듯한 모습인 그는 그저 허공만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앞에는 엔디미온이 서 있다. 두 사람의 눈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예상보다 많이 늦는군."


한숨을 쉬며 엔디미온이 말했다. 한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진전은 전혀 없었다.
이 유리관은 사내를 가두기 위한 감옥이자 마력을 뽑아내는 기계이다. 그는 앞으로 영원히 라메이슨에 동력원으로 살아야 한다. 세계를 위험에 빠뜨린 죄로 그에게 내려진 처벌은 '동력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한 회복장치이기도 했다.

악마와 융합한 듯한 모양새의 그는 이 기계 덕분에 조금이나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딱 그정도 뿐이었다. 본래라면 이미 인간으로 돌아와 대화가 가능할 수준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라메이슨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을 보면 기계는 정상 작동하고 있다.

"고집이 세구나."

기계나 술식의 문제가 아니다. 사내의 내면 깊은 곳에서 오는 강한 의지. 무의식적인 저항이 치료를 거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원인은 엔디미온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엔디미온은 고개를 저었다.

"크로울리."

그의 이름을 부르자 엔디미온의 목이 막혔다. 메가라니카 대륙 그 자체가 거인이 되어 마도국을 쳐다보던 그 날이 떠올랐다.
칼리굴라와 융합한 크로울리가 포효하며 외쳤던 대답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왜 나에게는 대답해주지 않는 거냐. 엔디미온이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플라스크 속 난쟁이에 불과한 것을…"

엔디미온이 돌아섰다.

"그러나 나는 군주로서 나라를 지킬 의무가 있다. 악마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내야만 한다. 오직 그 뿐이다."

'그것'이 차원 저 너머에서 엔디미온을 바라봤을 때.
'그것'이 세계로 오고 있을 때부터 엔디미온의 운명은 결정됐다.
엔디미온은 운명에 저항하려 했다. 그 대가가 어떠한지 따질 여력은 없었다.
망설일 때마다 멸망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엔디미온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전력을 아무리 긁어모아도 그것에 비하면 한없이 모자라다는 것을. 그래도 엔디미온은 포기할 수 없었다. 가진 것만으로 어쩔 수 없다면 뺏어서라도 채워넣어야 했다.

"이제 너를 만날 날은 다신 오지 않겠지."


말이 끝나자 엔디미온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엔디미온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적어도…내가 먼저 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엔디미온의 몸이 완전히 사라졌다. 실험실에는 오직 크로울리 만이 남았다. 

배양액이 끓어오르고 유리관에서 빛이 났다. 크로울리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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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디미온, 너는 위대한 마법사다.


너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세우고 원천마력을 결정화해서 마법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도 마법의 수혜를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다른 마도국들의 영토를 차지하고 다른 문화의 마술까지 흡수한 엔디미온은 몇 십 년만에 세계에서 가장 강한 마도국이 되었다. 너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도왕이다. 

그런데 세계를 손에 넣고도 너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부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도시의 모든 마력에 무력통제를 감행했고 마력 결정 응축 실험을 강행해 '라보 마력유폭 사건'을 일으켰다. 명령에 저항하는 라메이슨을 지속적으로 압박했고 금기라 불리는 생물의 융합을 비밀리에 진행해 매직비스트 들을 만들어냈다. 어떤 비난에도 마다하지 않고 끝임없이 군사력을 키워나갔다.

너를 위협할 세력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왜 이렇게 까지 힘을 모으는 것일까.
그토록 바라던, 마법으로 모두가 윤택해지는 세계, 평화로운 세계를 이뤄냈을텐데.
왜 너는 돌아선 것일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는 너를 막아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비등해져야 한다. 그래서 나도 금기에 손을 댔다. 그럼에도 여전히 너는 뛰어넘지 못했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 날, 너의 인기척을 느끼고 깨어났을 때 나는 마지막 발악으로 마도서원인 라메이슨과 융합해 탈출을 시도했다. 매우 비효율적이고 실패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었지만 너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일념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소란을 피웠어도 너는 끝까지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한 가지 단서를 잡을 수 있었다.
라메이슨과 융합했던 영향으로 나의 머릿속엔 새로운 지식, 차원 너머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이제서야 너에게 다가갈 수 있는 무언가를 잡은 느낌이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예전에 비해 마력은 한 없이 약해졌지만 나는 곧바로 여행을 떠났다. 너가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를, 너를 막아낼 힘을 다른 차원에서 찾아야 했다.


그러나 여행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오직 '무력감' 뿐이었다.

차원을 넘어 수준 높은 문명을 목격하고,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위험을 겪고, 나를 신으로 여기는 세계를 만났을 때.
비로소 조금이나마 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너는 무언가에 쫒기고 있던 것이다.


인간의 상상보다도 넓고 영혼보다도 깊은, 수 많은 우주 속에서 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 무언가가 실존하는 것인지 너 스스로 만들어낸 공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신했다.
너는 그 '무언가'에 대항하기 위해 각오를 다졌다는 것 뿐이다.

지금까지 이뤄낸 것들을 모두 무의미로 만들더라도, 
한낱 인간으로서는 감히 뛰어넘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도,
그토록 사랑하는 셀레네를 떠나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것을 바쳐 오직 혼자서 마주하겠다는 각오.




엔디미온,
…나는 너에게 묻고 싶다.


너는 대체 무엇을 본 것이냐.
왜 나와 산드리용에게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은 것이냐.
내가 라메이슨에서 탈출 할 때, 너는 왜 나를 막으러 오지 않은 것이냐.



함께 마법을 연구하고 서로 죽일듯이 싸우다가도 위험할 땐 어깨를 부축해주던 처음이자 마지막 친구로서, 



나는 반드시 너의 대답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