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싱싱한 낙엽은 심심한 마음을 선동하고

씩씩한 식욕은 살살 사람 속을 헤집는 법이다.


독서의 계절! 사랑의 계절! 그리고 군것질의 계절!


남녀노소! 종족불문!


많은 이의 피와 로망을 들끓게 하는 마수!


무릇 가을이란 그런 계절이었다.



"하하... 으하하! 드디어 완성했도다!"



가을 저녁! 낙엽 위!


로브를 걸친 남성이 호탕하게 웃었다.


가을의 선동은 작은 저택의 주인까지도 제 손아귀에 넣은 것이었다.



"성공했네! 짐이 성공했다고! 여보! 메어! 우리 딸! 아들! 다들 내려와보시게!"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옛부터 아버지가 소란을 피우면 가장 먼저 받아주는 이는 누구던가.


사려 깊은 장녀!


제일 먼저 내려온 이는 남자의 딸이었다!



"이것 좀 봐라. 이 아비가 걸작을 하나 배출해냈다!"


"난 또... 뭐가 했더니 별 거 아니네요."


"별 게 아니라니! 이 영롱한 빛깔이 안 보이니? 이 웅장한 자태도 안 보이고?"


"주인님은 과장이 지나치십니다."



어느샌가 내려온 하인, 메어가 핀잔을 주었다.


하나 남자는 굴하지 않았다.


'남자는 항상 뼈대가 있어야 하는 법!'


이것이야말로 평소의 그의 신념이 아니던가!



"자네, 이 버섯이 뭔지 아나?"


"물론 모릅니다."


"그럴 줄 알았다네. 알면 절대 무시 못하지!"



하인이 뭐라 대꾸를 하기도 전이었다.


남자는 말을 이었다.


그저 무심히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세계 3대 진미라고 들어봤을 걸세."


"상어지느러미, 거위간, 흑돼지던가요?"


"흑돼지는 4대 진미에나 들어가는 거지. 나머지 하난 트러플일세. 버섯의 한 종류지."



남자의 의지마냥 뜨거운 꼬챙이가, 남자의 손에서 하인의 손으로 옮겨갔다.


하인은 엉거주춤 받아들었다.



"그리고 짐이 찾아낸 이 버섯이 바로 트러플이란 말이네."


"어딜 봐도 독버섯인데."


"딸아, 이 아비의 버섯덕후력을 얕보는 게냐?"


"이런 귀한 버섯을 어디서 찾으신 건가요 주인님?"


"정원에 피어 있었다네. 짐도 낙엽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했지."



장녀와 하인이 잠시 버섯을 바라보았다.


과연, 버섯에서는 알록달록한 때깔과 어우러져 무언가의 아우라 비스무리한 것이 느껴졌다.


품격! 고급품의 품격!


무시할 수 없는 압도적 품격!



"어떤가, 짐의 안목이. 마당 쓸던 중에 매의 눈으로 찾아냈단 말일세. 대단하지 않나?"


"대단하기야 합니다만..."


"애초에 이거... 못 먹잖아요."



둘이 떨떠름해하면서 입을 움직였다.


둘의 턱을 따라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생전이었다면 기뻐했겠지만..."


"지금은 차 한잔도 못 마시는걸요."


"어허! 향을 즐길 수 있지 않은가! 씹는 느낌도 있고!"


"그래도 냄새만 맡고 먹진 못하잖아요."


"먹어봤자 바로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신개념 고문일 뿐인데요."



위장이 없어서

식사를 하더라도 음식물이 곧장 밖으로 새어나가버리는 몸.


그렇다!


해골 가족에게 식사란 곧, 사치!





"에잉, 로망 없는 녀석들."



다시금 말하지만 그의 신조는 '남자는 뼈대가 있어야 한다' 였다.


그에게 있어서의 뼈대,

그것은 로망! 주로 로망!


... 적어도 비물질적 분야에 한정하였을 경우에는 그러했다.



"우리 아들은 어딨느냐? 프린스라면 나의 깊은 뜻을 알아줄 터인데."


"왕자님이요? 그러고보니 아침부터 못 봤군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줄 알았는데."



그때 저 멀리에서 들려온 것은 힘찬 울음소리!


그들이 키우던 애완견의 울음소리였다.



"왕! 왕왕!"


"아버지! 누나! 쟤 좀 잡아봐요!"



뼈로 전신을 이룬 강아지.


뒤에는 훌륭한 귀족의 옷을 빼입은 작은 인간형 해골.


인간형 해골은 절뚝거리며 뛰고 있었다!


부상에 굴하지 않고!


아아, 이 얼마나 뼈대 있는 모습이란 말인가!





"오, 프린스 잘 왔다. 이 아비가 마침..."


"왕자님 무슨 일 있으신지요."


"마론이 내 발꿈치를 가져갔다고요!"


"해골은 발꿈치 없어."


"발꿈치 뼈!!"



공주가 자세히 들여다보었다.


굵은 뼛조각이 마론의 입에 꿋꿋히 서 있었다.


요괴의 흉악한 입 속에 떨어져서도 뼛조각은 빛을 잃지 않고 서 있었다!


무척이나 뼈대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으리라.



"내놓으라고! 어차피 먹지도 못할 걸 왜 뺏어가는 거야...!"


"크르릉, 왕왕!"


"마론, 입에 든 거 뱉어내 어서."


"왕자야 보아라, 이게 그 귀하다는..."



쨍그랑-.


시끌벅적한 저택의 소동을 못 이기고

화분은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안주인의 짓이었다!


조용히 독서에 몰두하려던 안주인의 짓이었다!



"해골 못해먹겠네!!"





"정말이죠?"



프린스가 기쁜 얼굴로 떠들었다.


벌써 열번째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럼, 엄마 친구한테 들은 소식이야."


"다크 네크로피어 아저씨요?"



기대감에 흉골이 부푼 제 동생과 달리 장녀는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전 그 아저씨 솔직히 못 믿겠던데..."


"조금 음침하긴 해도 믿을 만한 사람이란다."


"누난 왜 그리 의심이 많아? 아저씨가 수술 한번이면 잘될 거라 했다잖아!"





DNA 개조 수술.


종족 자체를 변환시킨다는 궁극의 수술.


하나 수술의 높은 난이도로 인해 제대로 집도할 수 있는 의사는 적었다.


그런 와중

수술을 성공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병원 중 하나를,

해골 가족의 지인이었던 '다크 네크로피어' 가 소개해준 것이었다.



지금 유쾌한 해골 가족이 향하는 곳이,

해외에 있다고 들은 그 병원이다.



"옆 마을에 데블프랑켄 아줌마도 수술 한번 받더니 초능력 쓰고 다니게 됐잖아."



'아줌마? 아저씨가 아닌 게냐?'


저주받은 하인 킹이 뭐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정말? 요즘 피부가 탱탱해지신 것 같더라니... 그거 덕분이었구나."


"그렇다니까. 안심해도 된다고."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조금 기대가 되는 것도 같고..."



저주받은 하인 프린세스의 귀는 팔랑귀였다.


말로는 아직 툴툴대면서도 그녀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공항 내를 걸으며 그녀의 입꼬리도 슬슬 올라갔다.


그녀의 진짜 입꼬리는 썩어없어진지 꽤 되긴 했지만.



[안 됩니다.]



다만 현실은 때로 가혹한 법이다.



[탐지기에 반응이 와서요.]



공항 경찰이 가족의 행복한 기대를 막아세운 것이다.


언데드-인간 번역기가 공항경찰의 차가운 말투를 전했다.



[반응이라뇨?]


[혹시 몸에 쇠붙이 지니고 계신가요?]



부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보 혹시...?]


[짐도 없네만.]



갸우뚱.


두 부부가 두개골을 기울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으음...]



킹의 말에는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


그 무엇보다도 표정이 특히 진실을 가리키는 확실한 증거였다.


이 해골은 검문에 짜증이 나거나 숨기고 있던 비밀이 들킬까 걱정하는 얼굴을 하지 않았다.


단지 예상도 못한 결과에 당황한 낯빛만 보인 것이다.


물론 해골이기에, 얼굴근육은 없었지만

좌우간 그는 그런 얼굴을 지었다.


공항 경찰은 자기들끼리 한참을 쑥덕거렸다.



[실례지만 몸 수색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리하시게나.]



두 해골은 두개골을 끄덕여 수긍의 의사를 전했다.



[그럼 받아들이신 걸로 알겠습니다.]



경찰이 수상한 뼈다귀들을 한참동안 만졌다.


뭔가가 나오지는 않았다.



[애당초 이 몸 어디에 밀반입할 곳이 있단 거에요...]



프린스가 투덜거렸다.



[이상하네요. 분명히 철 성분이 측정되었는데.]


[짐도 영문을 모르겠다네.]


[어쨌든 저희는 결백하니 이제 가도 되죠?]


[아니요. 안 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어쩌면 공항 경찰이라는 족속들은 파렴치라는 단어에서 한치를 벗어나지 않는단 말인가.


남은 바빠죽겠건만 아무런 문제도 없는 선량한 언데드를 묶어두고 못 움직이게 하니.



[무슨 옛날 엑조디아가 담배 피던 시절도 아니고...]


[저 사람들도 일일 텐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프린스의 불평에, 프린세스가 주의를 주었지만 그녀도 답답한 건 매한가지였다.



[여보세요? 부장님?]



저쪽에서 들리는 전화 소리로 '잠시 후면 보내주겠지' 라고 여기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다만,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하던가.


불행은 하나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네. 네, 다름이 아니라 지그, 그, 그, 그그금 문제가가가아, 가각가가...]


[어어어? 무, 뭐야 이거 왜 이래?]


[그러니까 선배배, 제가 밧데, 밧데리 갈자고...]



번역기에서 나오는 기계음이 점점 늘어지다가 작동을 멈춰버린 것이다.


외국어 공부를 소홀히 한 언데드 일가에겐 있어선 좋지 못한 소식이었다.







"애시당초, 원인이 뭐에요."



한동안 조용히 있던 프린스가 볼멘소리를 했다.



"품에 뭘 숨긴 것도 아니고, 마약을 한 것도 아니고."


"실로 그렇구나. 짐도 당최 뭐가 문제인지..."


"아."



두개골을 싸매던 프린세스가 급히 탄성을 내질렀다.



"혹시..."


"뭔데? 알 거 같아?"


"으음, 아닌 것도 같고..."


"말해보거라 짐도 궁금하니."


"쇠... 라고 했잖아요?"



킹과 프린스가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잠깐만요."



프린세스가 가까이 다가와선 킹의 턱을 이리저리 살폈다.



"있네요."



프린세스가 킹의 턱에서 빼낸 무언가를 꺼내보였다.



"이게 뭔가?"


"쇳조각이요."


"근데 그게 왜 아빠 턱에서?"


"아마 아침에 버섯 먹을 때 걸린 거 같아."



버섯 먹을 때라?


킹이 곰곰히 자신의 턱뼈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보니 그때 쓰던 꼬챙이가 쇠꼬챙이였는데.


뼈 뿐인 몸이라서 부러져서 박혀도 모르고 넘어간 건가.


프린스가 양손으로 자신의 두개골을 잡았다.



"그러니까 땅바닥에서 아무거나 주워먹지 말라고 했잖아요!"


"어허 땅바닥이라니, 어찌 그런 품위 없는 말을 하느냐."


"아빠가 품위 없는 행위를 하니까 그렇죠!"


"이번 건 주워먹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느냐."


"왜 없어요, 순전히 그 때문인데!"



거의 울 거 같은 프린스.


그를 중재하는 이는 그의 어머니였다.



"그만 화내라 프린스, 골 울린다."


"그치만..."


"사정이 그런 거라면 잘 얘기를 하면 융통성 있게 넘어갈 거다. 너무 걱정 말아라."


"얘기라니, 누난 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프린스의 길고 새하얀 손가락뼈가 번역기를 가리켰다.



"저거 방금 고장났잖아. 우리가 말 한대도 알아들을 수나 있겠어?"


"걱정 말아라. 이럴 때를 대비해서 가져온 게 있으니까."



저주받은 하인 부인은 주머니에서 카드 몇장을 꺼냈다.


알파벳이 한 글자씩 인쇄된 카드였다.





"다크 네크로피아한테서 빌려왔단다."


"이걸 조합해서 말을 하자고요?"


"10장 남짓으로요?"


"게다가 몇개는 중복인데."


"아니, 잘만 쓰면 될 거 같지 않느냐. 보거라. 이렇게 하면..."



킹이 이리저리 카드를 섞었다.





"더위?"


"금새 하나의 단어가 만들어지지 않느냐. 기초적인 의사전달은 할 수 있을 게다. 조합해보자꾸나."



킹의 열의에 못 이겨 프린스와 프린세스도 위저보드를 붙들게 되었다.


공항에서 위저보드를 쥐고 끙끙대는 해골들.


기묘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이건 어떠냐."


"NANI? 무슨 뜻이에요?"


"'뭐' .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여기 있냐고 하는 게다. 이거면 보내주지 않겠느냐."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여보."


"이건 어때요?"


"DIE? 안 보내주면 죽는다고?"


"바로 그거야."


"너무 과격하지 않니? 그보다 이게 낫지 않을까?"


"TEA?"


"곧 있으면 티타임이잖니. 간식이나 먹고 오자고 꼬시는 거야."


"짐이 보기엔 별로인 것 같은데."


"ANAL 어때요. 화장실이 급하니까 우리 좀 보내달라고 하는 거죠."

"너무 음란하다."


"HAL. 이건 어떠냐. 안 보내주면 이걸..."


"당신은 애들 앞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에요!"



이러쿵 저러쿵 아이디어는 많이 나왔지만

10장 짜리 카드로 구현할 수 있는 단어는 정해져있었고

시간은 성실히 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이러다 비행기 놓치겠어요."


"뭔가... 뭔가 좋은 의견 없는 게냐?"


"아빠, 누나 머리에서 김 나는데요."


"염려 말아라. 우린 체온따위 없느니라."


"... 됐다! 이거면 되지 않을까요?"



프린세스가 슥슥 카드를 짜 맞추었다.



"오오!"


"그럴 듯하구나."



해골 가족 모두는 프린세스의 안을 보고 감탄하였다.



"이보게 젊은이."



말이야 안 통하긴 하지만 보디랭귀지는 예외이다.


저주받은 하인 킹이 손짓으로 공항 경찰들을 가까이에 불렀다.






맑은 하늘 아래 비행기 한대가 날고 있었다.


유쾌한 해골 일가가 탄 비행기였다.



"누난 어떤 종족으로 수술해달라고 할 거야?"


"마법사족! 거기 옷이 예쁘더라고! 너는?"


"남자는 공룡족이지! 그 웅장한 자태, 포악한 박력..."


"공룡족은 너무 야만적이잖아."


"아님 드래곤족도 좋고. 하늘 한번 날아보고 싶었어."


"짐은 환룡족이 끌리더구나."


"... 그거 드래곤이랑 똑같은 거 아니에요?"



해골 가족의 발랄한 대화와는 달리

공항에 남은 이들의 대화는 암울했다.



"제정신이야! 꼴에 경찰이란 놈들이 범법행위를 해!"


"죄송합니다..."


"사과로 끝날 거면 경찰은 필요 없어!"



혼나던 이들 중 하나가, 서장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뗐다.



"그, 그래도 그 해골들 나쁜 사람 같아보이진 않던데요..."


"그딴 것도 말이라고 경찰 입으로 뱉는 거냐!"


"실제로 몸수색했을 때도 뭔가 나오진 않았다고요..."



당연히

서장의 부하들을 향한 분노는 그런 허접한 변명으로 풀릴 물렁팥죽 같은 것이 아니었다.



"느이들이 뭘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



혼나는 부하 경찰들의 손에는 위저보드 카드 세장이 들려있었다.


방금 해골 가족이 협상에 썼던 물건이었다.


세 장을 이으면 하나의 단어가 완성되었다.



"경찰이! 뒷돈을 받아먹어! 그러고도 너희가 경찰이냐!!"


"그치만... 그냥 팁이라면서 줬단 말이에요."


"팁은 개뿔이! 느이들이 무슨 식당 종업원이라도 되는 줄 알아!"



FEE(팁, 사례금) 라는 단어가.




*

창작문학채널에서 떡 돌리러 왔습니다!

2차 창작도 환영이니 놀러들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