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소설의 모티브는 '제 2회 차원전쟁'에서 가져왔습니다.

※ 해당 소설에 등장하는 카드군은 기존의 공식 설정과 다른 2차 창작입니다.

※ 해당 모티브가 된 듀얼 로그는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각색을 더했습니다. 



- 지난 화 -


차원 전쟁 - 1 -

차원 전쟁 - 2 - 

차원 전쟁 - 3 - 

차원 전쟁 - 4 - 

차원 전쟁 - 엔디미온 외전 - 

차원 전쟁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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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에클레시아!"


여명이 차오르는 이른 새벽, 알버스가 다급하게 에클레시아를 깨웠다. 잠이 덜 깬 에클레시아가 실눈을 떴다. 알버스가 침대 위에 절반 정도 올라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에클레시아의 눈이 번뜩 뜨였다.


"…에…으에?!"


본래 성녀의 방은 불가침 영역. 교주 외엔 누구도 들어오면 안되는 신성한 곳… 아니 그 전에 여자 혼자 있는 침대에 남자가 올라와 있으면, 이렇게나 얼굴이 가까이에 있으면 누구라도 당황하는 법이다. 


"엌!"


에클레시아가 비명을 지르며 알버스의 뺨을 후려갈겼다. 균형을 잃은 알버스가 뒹굴며 떨어졌다.


"부, 부, 부, 불경해요 알버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는데!!" 


뭔 소리래? 알버스가 뺨을 쓰다듬으며 일어났다. 난데없이 얻어맞은 게 억울해서 따지려고 했지만 에클레시아는 이불 속으로 숨어버린 뒤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사로운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알버스가 이불을 거둬내며 소리쳤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창 밖에 이상한 게 나타났다고!!"


빨개진 얼굴을 양 손으로 가리고 있던 에클레시아가 고개를 들고 창문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에클레시아가 숨을 삼켰다.


창문 안에 모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무언가가 있다. 하늘마저 가려버린 무언가. 그것은 지상을 향해 손을 뻗었고 지상에서는 하얀 빛줄기가 솟아올랐다. 


공중에서 손과 빛줄기가 맞부딪히자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강렬한 파동이 드래그마를 뒤덮었다.

벽에 금이 가고 창문이 산산조각 났다. 풍압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가는 에클레시아를 알버스가 재빨리 받쳐주었다. 뒤늦게 폭발음이 들렸다. 좀 전의 파동으로 드래그마의 어딘가에 사고가 발생한 듯 했다. 에클레시아의 시선은 여전히 창 밖을 향해 있다. 그녀의 낯빛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에클레시아는 모른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세계의 근간을 뒤흔들, 재앙의 화신임을.


"대체… 무슨 일이…"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에클레시아는 스스로 몸을 끌어안았다. 이렇게 가녀린 그녀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알버스가 무의식적으로 에클레시아를 어깨를 감쌌다. 두 사람의 시선이 창 밖을 향했다. 빛과 부딪힌 거인의 몸이 크게 기울었다. 땅이 가라앉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무언가 떠오른 듯 에클레시아가 중얼거렸다.



"……웨더…?"



에클레시아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






엔디미온이 그토록 경계했던 '그것'.

차원에 종속되지 않는 최악의 창. 신의 천적. 반공 병기 AA-ZEUS. 엔디미온을 바라보기만 할 뿐 움직이지는 않았다.


AA-ZEUS의 출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여태까지 잠잠하다가 왜 갑자기 움직인 걸까? 마도국 엔디미온의 전력을 한데 모아도 AA-ZEUS에 닿을 지 미지수인데, 지금 남아있는 인력으로 대항할 수 있을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엔디미온은 해내야만 했다.


엔디미온이 선두에 나서 영창을 시작했다. 남아있는 모든 병사들과 하얀 마법사들도 엔디미온의 영창을 따라 외쳤다. 신체의 생명력과 맞바꿔 날리는 최후의 일격. 저 정도의 크기를 가진 상대를 죽이려면 이 방법 밖엔 없었다. 망설임은 없다. 어차피 지금 여기서 쓰러뜨리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엔디미온은 자신이 쌓아왔던 모든 것을 걸었다.

신념을 포기하고 친구를 배신하고 아내를 억지로 떠나보내면서 까지 얻은, 극한으로 농축된 마력. 오직 이 순간 만을 위해 악인을 자처했다. 자신은 어찌되어도 상관없다. 그저, 자신의 세계의 안녕을. 소중한 이들이 있는 우리의 세계에 AA-ZEUS가 접근하는 일이 없기를. 인의를 저버린 것에 대한 대가를 받을 때이다.


AA-ZEUS도 위험을 직감했는지 그들을 향해서 번개를 머금은 손을 뻗었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듯 했다.


그들의 머리 위에 황야의 일대를 모두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이 정도의 술식이라면 행성의 표면도 깎을 수 있다. 엔디미온의 갑옷에 금이 갔다. 이는 곧 신호였다. 모든 것을 발산하기 위한 신호. 모든 이들이 일제히 외쳤다.



VARUS



멸망의 주문이 빛으로 형상화 되어 위로 솟아올랐다. 그 여파로 엔디미온과 병사들의 갑옷이 깨지고 말았다. 그들의 머리가 하얗게 세고 피부에 주름이 잡혀갔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최후의 빛이 AA-ZEUS에게 닿자마자 주변 일대의 모든 것이 쓸려나갔다. 네크로밸리 뿐만 아니라 빛과 중력까지도. 일순간 행성이 진동했다.


세상의 울림 이후,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형태를 유지한 존재는 백발의 노인이 되버린 엔디미온 뿐이었다. 그토록 견고했던 무장과 아이템, 병사들과 조언축 하얀 마법사들까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엔디미온이 주저 앉았다. 그는 곧 죽는다. 그만큼 초월적인 일격이었다. 자신은 해냈다. 이 정도 위력을 버텨낼 생명은 없다. 그리고 직격으로 맞은 AA-ZEUS는,


크게 휘청였다.


 




"……아."



그 뿐이었다.

AA-ZEUS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격'에 적잖이 당황한 듯 했지만 그 뿐이었다. 살짝 타 들어간 자신의 손과 엔디미온을 번갈아 봤다. 아주 잠깐, 청록빛 소용돌이가 멎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몰아쳤다. 둔탁한 기계음이 울려퍼졌다. 엔디미온은 축을 잃은 헝겊인형처럼 바닥에 엎어졌다.


그냥 잠깐 기울었을 뿐인가? 그렇게나 발악을 해도 결국 무용지물이었는가. 엔디미온 전역의 마력을 모았더라도 안됐겠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차원의 마력까지 모을 생각이었는데. 아니, 모았더라도 대적할 수 있었을까. 상대는 차원을 멸하는 파괴신. 고작 차원을 넘나드는 정도인 내가 어찌해볼 상대가 아니었다. 모든 걸 내던졌는데. 아니, 상관없구나. 이젠. 이젠 아무런...의미가....?


사람은 죽음을 목도할 때 주마등을 본다고 한다. 하지만 엔디미온의 눈에는 생물이 보였다.

그루터기에 앉아서 멀뚱히 엔디미온을 바라보고 있는 분홍색 토끼 한 마리. 그 옆으로 노란 사막여우와, 밤색 털을 가진 강아지가 함께 있다. 조금 전까지 이곳은 한 차원의 존망이 걸린 전쟁터였다. 후회와 자책을 곱씹고 있는 패잔병 앞에 복실복실한 털과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어린 생명체들이 나타난 것이다.


동물들이 엔디미온에게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걱정되는지 끄응 거리며 주변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이것은 AA-ZEUS의 능력인가? 이 짐승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를 향한 능멸인가? 엔디미온은 눈을 감아버렸다. 더 이상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최후를 따뜻한 색으로 덮어버리는 그것들이 미웠다.


크로울리와 산드리용, 셀레네의 모습이 떠올랐다. 적어도 여기엔 그들이 없어 다행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엔디미온을 보며 동물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세상 모든 색채가 파스텔톤으로 물들어갔다.

에클레시아와 알버스, 막시무스, 드래그마, 웨더의 잔해, 령신의 성전이 있던 공터, 그리고 엔디미온까지.

오직 AA-ZEUS만이 그 존재를 유지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물들어져 간 세상은 허공에 흩어졌고 다시 한데 모여 숲을 이루었다.


숲 안에서 무지개빛 털과 뿔을 가진 거대한 알미라즈가 나왔다. 알미라즈가 길게 울자 숲 곳곳에 숨어있던 동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물들은 즐거워보였다. 파괴와 전쟁의 고리가 끊어지고 자신들의 터전이 살아났다. 과일을 물고 오는 동물들도 있고 숨바꼭질 하듯 다시 숨어버린 동물도 있다.


알미라즈가 AA-ZEUS를 향해 울었다. AA-ZEUS는 그대로 안개처럼 사라졌다. 맑은 하늘이 돌아왔다. 햇살은 더없이 청녕했다.

동물들이 알미라즈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을 하나 둘 껴안으며 알미라즈는 인자하게 웃었다.




이전 세계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