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쩐 일로 여길 찾아온 거지?"


젖살이 덜 빠진 미성숙한 모습. 그에 반하는 손에 들린 유리 재질로 보이는 파이프와 관능적인 목소리는 그녀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담배를 피운다기보다는 비눗방울을 부는 것 같았다. 


“산드리용”

“돌아가”

“오랜만에 보는 친우인데 대접이 박하군”


친구라는 말에 그녀의 얼굴은 천천히 굳어갔다. 

아니, 처음부터 그녀의 표정은 굳어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유리 조각들처럼.


“등에 칼을 꽂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던가? 머리가 나쁜 사람이 권력을 휘두르느니 상식도 맛이 가버렸나?”


역설적으로 날이 선 말투에서 지독하게 사랑했던 여인의 잔향을 느껴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잘못한 건 아나 봐?”

“산드리용,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기 위해 찾아왔다.”


쩍-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 파편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비명을 지르듯 깨졌다. 


“기회? 그건 또 무슨 말이지?”


분명한 질문이었으나 어조에는 노기가 깃들어있었다.


“마도왕 엔디미온이 아닌, 너의 친우 엔디미온으로 자네를 찾아왔다. 산드리용, 총명한 자네라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터인데.”

“내가 이래서 당신이 싫었던 거야. 알아?"


명백한 적대감과 혐오, 왕관을 쓰기 위해 셀레네의 손을 잡을 때 버렸다고 생각한 감정이었지만, 마음 한쪽이 아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대가 거부하면 무엇이 바뀌지?”

“언제나 그렇지, 당신 마법보다 사람 목숨으로 장난치는데 더 재능이 있어. 그래서 마도왕인가?”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이번에야말로 묻지. 이곳을 떠나주겠나 산드리용? 그대의 친우로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다.”

“그게 지금 물어보는거야? 내게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면서도? 친우라고 자칭하는 인간이 할 말이야?”

“먼 곳에서 사라진 것을 추억하는 게 불에 탈 밀밭을 지켜보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녀는 총기가 사라진 눈으로 제정신이 아니라며 중얼거렸다.


“태울 수 있다면, 태우던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지만.”


그녀가 파이프를 입에 물며 말했다. 내뿜어진 연기가 뺨을 스쳤지만, 분노는 끓지 않았다. 오히려 여전한 담력에 놀라움을 감추어야만 했다. 하지만, 사람은 어딘가 뒤틀린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건 창성마도왕이라는 자리에 오른 자신에게도 아니, 오히려 그런 자신이기에 뒤틀린 음심이 끓었다.


“제니”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그녀가 엔디미온이 아니게 되었다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가?


이번에는 입꼬리가 눈에 띄게 비틀렸다.


“자네의 공방에는 어린 마녀들이 대부분이지 않은가?”


자네를 포함해서 말이지. 쟁취하지 못하고 이루지 못할 사랑은 뒤틀리기 마련이고, 그 표현 또한 어긋나기 마련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배신자의 말로는 자네도 알 것이고, 내겐 산드리용. 자네의 생사만이 중요하다는 말이지. 이름 모를 어린 마녀들이 내게 무엇이 중요하겠나.”

“이 자리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참 어렵게도 말하네?”

“그럴 수 있다면 말이네.”


삶을 피부로 체감하지 못한 지도 오래되었다. 스치는 바람은 고통이고, 그 고통이 삶을 대변해주지는 않는다. 내게는 그야말로 삶이라는 공허하고 따스한 모순적인 것을 다시 느낄 기회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삶을 체감하던 순간을 공유하던 사람, 내가 가장 인간다운 감정을 느끼던 상대가 필요했다.


긍정적인 교류는 바랄 수 없다. 그건 바위에서 물을 짜내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이다.


“자네가 화를 내는 모습이 퍽 정겹군.”


오히려 감정 하나 드러나지 않은 굳은 표정이 그녀에게서 삶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미친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아니, 자네는 몰랐어. 그러니 지금도 나와 말을 섞고 있지 않은가?”


하하-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였으나, 어딘가 지우지 못할 세월과 한탄이 서린.

광소라고도 할 수 있는 웃음이었다.


“이제 전할 말은 다 한 것 같으니 일어나지, 차도 내오지 않는 곳에 오랫동안 있을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아서.”

“애들 건드리면, 너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야…”


떨리는 손을 애써 등 뒤로 숨기며 말하는 모습이 썩 애처로웠다.


“애들이라… 자네도 아이가 아닌가? 그 모습으로 어찌… 아니 내가 무사하지 못해도 즐겁겠군. 기대하겠네.”


내 부탁을 들어주어도 좋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공방을 나서려 물건들을 갈무리했다.

울음을 참는듯 몸을 떠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몸이 되며 감정의 역치 또한 낮아진 듯했다.


“자네가 나를 거절하지만 않았어도… 유리 조각이나 만들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에 꽤나 만족했을지도 모르네,

딱, 그런 모습을 한 딸아이 한둘을 낳아 기르면서 말이지.”

떠는 그녀의 모습이 퍽 즐거웠다.


“산드리용. 아니, 베르. 나는 이만 가보지.”


공방의 문을 닫고 나서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위치크가 내 메인덱이고 최애 테마인데

엔디미온이랑 관련있다고 하길래

써봐씀...

재밌게 봐주면 좋겠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