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커뮤니티에 글 쓰는 걸 선호하진 않는다. 옛날에 했던 게임들 기억도 좀 되살려 보니까 굉장히 즐거웠다. 

주변에 씹덕 친구는 있어도 미연시를 중점으로 파는 친구는 없었기에 유즈챈의 존재를 알고 눈팅하는 것도 재밌어서 나도 글 리젠에 한번 기여해보려고 이렇게 리뷰를 써보게 되었다.

  

말이 7년차지 사실 중간에 3년 정도는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에 4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먼저 필자의 성향을 좀 참고해주기 바란다.

필자는 게임을 볼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제작진을 살펴보는 것이다. 원화가, 성우, 시나리오 라이터 등등 어떤 게임을 플레이 하려고 할 때 제작진의 성향을 미리 알고 보면 게임을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게임은 좋다."라고 평가하는 기준은 시나리오 완성도 > 음악 >= 성우 > 원화 퀄리티 순서다. 


왜 원화가 제일 뒤에 있는가? 사실 필자는 입문작이 클라나드다. 그래서 딱히 얼굴에 필수 요소들만 있으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시나리오 완성도가 가장 중요도가 큰 이유도 마찬가지로 입문작이 저거다보니 게임의 주제나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를 정말 크게 신경쓴다.


음악. 정말 중요하다. 게임의 분위기를 책임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오프닝 엔딩에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뭔가가 있으면 미친다.  


필자는 원래 애니메이션 성덕 출신이다. 근데 미연시는 대부분이 주인공(남자) 성우가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대사가 들리는 애니메이션에 비해 의존도가 낮다. 그래도 성덕 출신인 걸 못 버려서 성우 타고 똥겜 몇 개 먹어본 전적은 있다.  


왜 미연시인데 H씬은 신경쓰지 않는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필자는 H씬이 스토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 한 거의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있으면 좋은 정도?


여기까지 봤으면 이 새끼가 어떤 새낀지 파악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 Summer Pockets(+REFLECTION BLUE)

눈부심만은 잊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뉴비들에게 이 게임을 입문작으로 추천 할 것이다. 

필자는 18년도에 처음 이 게임이 나왔을 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엔젤비트 게임판을 빼면 Key사에서 내놓은 7년만의 오리지널 정식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는 원문 플레이가 아예 불가능한 수준의 일본어 실력이었고 청해로만 스토리를 이해하기에는 시나리오가 너무 방대했다. 

그렇게 잊고 살다가 이게 웬 걸? 확장판 소식을 듣고 이미 한패가 완성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확장판 한패까지 기다리기에는 내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기에 무인판과 확장판을 두 번 플레이했다.  


게임을 키자마자 들리는 이 BGM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클라나드를 애니메이션으로 알게 되고 게임까지 플레이하다가 Key빠가 되어버린 나로서는 그 감성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에 환호했다. 

이게 끝인가? 오프닝도 전주부터 가려운 곳을 단번에 찾아서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 같았다.


이제 시나리오를 따져보자. 

Key게임은 전통적으로 항상 모든 개별 루트를 클리어하고 나면 생기는 "트루" 루트 그랜드 루트가 있다.

사실 이런 시스템을 가진 게임은 가볍게 캐릭터만 즐기고 빠지는 라이트 유저들은 싫어하는 요소다. 

하지만 필자는 무거운 게임을 선호하기에 개별 루트 내내 굉장히 즐거웠다. 

확장판의 개별 루트 추가본도 할만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이 세계관의 비밀이 천천히 풀려가는 재미도 좋았다.

또 Key 특유의 개그코드도 잘 맞았고 중간중간 생각할 만한 복선도 등장하기에 세세하게 다 읽어가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가족애"라는 요소가 정말 사기적인데, 그냥 가져다가 붙이면 감동적으로 만들어버린다. 근데 이 사기적인 요소를 밥먹듯이 사용해도 질리지가 않는다.

섬포는 개별 루트에서 빌드업을 하는 과정이 정성스럽고, 회차가 반복될 수록 내가 이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성우는 어떨까? Key사는 인지도가 낮은 성우들을 이곳저곳에 많이 사용하는데, 이게 왜 인지도만 낮지 실력은 하나같이 출중한 성우들이 모여드는 건지 디렉팅을 잘하는 건지 거의 처음 보는 이름의 성우들도 캐릭터에 잘 맞게 딱 이거다 싶은 연기를 보여줬다. 


원화는 리틀버스터즈부터 앤젤비트를 거쳐 완전히 안정화된 Na-Ga의 작화가 인상적이었다. 

Key게임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진입장벽이 높은 작화였다. 하지만 이를 원래는 단점은 단점으로 생각하고 장점을 크게 내세워 정면돌파하는 식이었는데, 단점까지 개선이 되었다는 점에서 크게 점수를 주고 싶다.


섬포의 진수는 그랜드 루트(ALKA, Pocket)가  끝나고 나오는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알카테일(무인판 오프닝)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좋은 오프닝 정도로만 생각했다가 모든 진실을 알고 보는 알카테일의 가사는 ALKA와 Pocket에서 2번 운 나를 한번 더 울게 만들었다. 


총평: Key사에 관심이 있다면 가장 먼저 즐겨볼 만한 게임 





 2. 금빛 러브리체


 지금은 깨닫지 못했더라도, 『언젠가』 떠올렸을 때,『지금』은 절대로 빛나고 있어. 

친구와 있던 시간. 가족과 있던 시간. 사랑을 했던 시간. 세계는, 언제나 금색이야. 

모든 시간이···골든 타임이니까.


섬머포켓이 전연령 입문작이라면 금빛 러브리체는 18금 입문작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아니 무슨 게임 시작하고 보이는 캐릭터들이 모두 금발이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즐겼기에 첫 인상은 이게 무슨 병맛게임인가했다.

한창 Key사에 빠져있던 나에게 이 때는 같은 비주얼 아츠 소속이었던 첫 사가 게임이다. 

니이지마 이후 사가 게임은 다 해봤지만 이걸 넘은 게임은 없다. 

사계시리즈에서도 하츠유키 사쿠라가 최고봉이지만 이것만큼은 못했다고 생각한다.


금빛 러브리체는 다 필요없고 그냥 이거다. 

이 CG와 함께 나오는 BGM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다. 


시나리오 구성 상 히로인의 공략 순서가 어느 정도 정립되어있는데, 이건 조금 아쉬웠다. 

트루 루트인 리아와 아예 관련 없는 히로인도 있고, 특정 히로인을 먼저 보지 않으면 떡밥을 회수하는 과정이 꼬이게 된다. 


그런데도 실비아 - 리아 - 실비아 마지막 추가 에필로그까지 다 즐기고 나면 이 게임에 단점은 사라진다. 


우리는 시간이 지날 때마다 이때가 좋았다, 그때가 좋았다. 라고 하지만 삶의 끝에서 바라보면 모든 순간이 좋았다는 걸 알게 된다. 

모든 순간이 빛나는 골든 타임이라는 것이다. 리아루트에서 리아가 결국 죽는 걸 아쉬워 하는 의견도 종종 보이는데, 필자는 오히려 리아의 죽음이 이 게임을 완성시켰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보다 일찍 끝을 마주 보게 된 리아는 누구보다 삶의 아름다움을 깨달았고, 이를 주인공에게 전하고 실비아와 주인공을 통해 이어간다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성우 연기를 보자. 웬만하면 다 아는 얼굴들인 걸 알 수 있다. 히로인의 각각 개성을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특히 리아의 성우는 전작에서도 트루 루트 히로인을 담당했는데 그 때와는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총평: 내 삶의 방식을 바꿔 준 게임. 지금도 우리는 골든 타임에 있다.





3.사쿠라의 시


사랑하는 이가 죽었을 때는, 자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이가 죽게 되면, 그 방법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업장이 두터워, 명이 길어진다면, 봉사의 마음으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봉사의 마음으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카하라 츄야-「춘일광상(春日狂想)」



뿌리부터 성덕인 나에게 성우보다 음악을 더 높은 평가 기준으로 만들어버린 작품이다. 

오프닝인 벚꽃의 시만 봐도 미연시 노래 순위랭킹에서 대부분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도 처음 그것이 허무라면~ 이 문장이 보이면서 흘러나오는 피아노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다.


이 게임으로 마츠모토 후미노리의 이름을 알고 팬이 되어버렸다. 

특히 오프닝 엔딩 트루 엔딩 정도로만 보컬곡이 있는 대부분의 게임과 다르게 모든 히로인마다 다른 엔딩곡을 가진다는 점이 굉장히 좋았다.


미연시에서 소재로 삼기에 예술, 특히 구체적으로 회화라는 분야는 너무나 마이너하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잘 모르는 분야이고, 그래서 필자도 처음에는 조금 어렵다고 생각했다. 혹시 전작인 멋진 나날들처럼 미친 전개가 되는 것은 아닌 지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시나, 작품을 가볍게 이해하고, 이 작품들이 캐릭터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파악하면서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간다.  


사쿠라의 시는 주인공인 쿠사나기 나오야라는 인물의 삶 자체를 보여주는 게임이다. 

주위 인물들이 계속해서 나오야의 그림을 굉장하다고 말하지만 게임을 처음 플레이하는 우리들은 공감이 안된다. 얘가 왜 그림을 그만두었는지, 꾸준히 상을 수상하고 있는 케이같은 천재들이 왜 계속해서 나오야의 복귀를 원하는지 전혀 공감할 수 없다. 


필자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쿠사나기 나오야라는 인물이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의 과거를 보여주며 무어전에 출품하는 것까지의 과정에서 그냥 캐릭터 자체가 멋지다고 느꼈다. 몇몇 그림도 대충 글묘사로 때우지 않고 CG로 보여줬을 때 이 게임에 얼마나 진심인지도 느껴진다.


3장 시즈쿠 루트부터 4장,5장을 쉴 새 없이 진행했던 것 같다. 플레이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시즈쿠 루트의 묘비명, 4장의 올랭피아, 5장의 나오야와 린의 대화는 기억에 남아있다.  


스스로의 희생으로 주위를 돕는 자세, 천재와 범(凡)인 등등 철학적인 접근을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쿠라의 시는 개인만의 이해 방식에 따라 많은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게임이라고 본다. 

후속작인 사쿠라의 각도 있지만 사쿠라의 시 자체만으로도 5장까지만 본다면 하나의 완성작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총평: 철학적인 고찰과 작품 전체의 주제의식, 분위기, 음악 취향에 맞으면 잊을 수 없는 명작.

 





4.벚꽃, 싹트다. -as the Night's, Reincarnation-


이것은, 당신의 인생을 위한 이야기-


리뷰를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 


정말 말 그대로 인생을 위한 이야기일 줄 알았겠냐고

사쿠모유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건 모든 설정과 캐릭터가 버릴 곳이 없다는 것이다.

또 개별 루트가 트루랑 비견될 정도의 고점을 가진 경우도 오랜만에 보았고, 두 번 하기에는 너무 분량이 크긴한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모든걸 알고 보는 강조점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페보겜 특유의 감성, 서서히 고조되는 빌드업 과정이 취향이라면 이 게임에 안 빠져들 수가 없을 것이다.


오프닝, 삽입곡, 엔딩 들으면 그냥 대가리가 깨진다.

트루 루트 오프닝 연출 봐라. 이게 게임이다.



동경하는 누군가처럼 산다. 스스로의 존재를 긍정해주는 사람. 태어나줘서 고마워. 

아. 눈에서 물이 안 멈춘다.


리뷰를 쓰면서 머리속으로 생각하니까 계속 가슴이 벅차오르고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

그냥 명작이다. 꼭 해라. 두 번 해라.


총평: 우루시바라 유키토의 역작, 안해본 뇌 삽니다.



정말 자세하게 얘기해 보고 싶은 작품은 이렇게 4개를 꼽을 수 있겠다. 


간단하게 몇 개만 더 얘기 해본다면


1. 예익의 유스티아 - AUGUST의 변종, 몰입도가 아주 높고, 사건 전개도 빠르다.


2. G선상의 마왕 - 마왕이 브금만 틀고 나오면 재밌어짐, 마지막 10분이 이 게임의 진짜다.


3. 형형색색의 세계,빛,붉은 눈동자에 비치는 세계 - 스토리가 맛있고 신쿠가 귀여워요. 사와다 나츠 팬이라면 반드시 할 것


4. 리라이트(+) - 리라이트랑 겹치는 장르 중에 이거 이상은 본 적이 없다. 다른 Key사 게임들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리라이트는 대체할 게임이 없다.


5. ef - the first tale. ef - the latter tale. - first tale만 보면 이게 왜 명작인가? 할 수 있는데 latter tale까지 다보면 무릎을 치며 감탄할 것이다.


6. 달에 다가가는 소녀의 작법 - 여장물을 즐기지 않는 필자도 재미있게 즐겼다. 


7. 9-nine- - 미친 성덕겜이지만 시나리오도 꽤나 재밌다. 노래가 다 좋다.


8. 누키게 같은 섬에 살고 있는 빈유(나)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1,2 - 그냥 정신 나간 게임이 될 수도 있는 소재를 잘 활용한 게임.



여기까지 길고 재미없는 리뷰글을 봐줘서 고맙다. 

쓰다보니까 의식의 흐름대로 막 쓴 부분이 있는데 조금 이해해주라. 옛날에 했던거라 기억이 좀 오락가락한다.

또 기회가 있으면 리뷰로 찾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