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겜을 2007년 처음 시작했고 한패가 있는 웬만한 갓겜들은 다 해봤지만 올해까지도 절대 안해온 게임이 몇 개 있다.

카논, 에어, 클라나드, 리틀 버스터즈

야겜을 즐겨온 사람들이라면 이 게임들의 공통점을 알 것이다, Key. 그리고 나는 야겜 입문 초창기에 화이트 앨범과 키즈아토와 같은 게임을 겪으며 철저하게 잎빠로 자라온 사람이다.

그렇다. 현 시점에서 한쪽은 양지런했고 한쪽은 망했지만 예전에는 박터지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던 회사였다. 리프빠인 나로서는 어떤 게임인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반대편이니 절대 하지 않았었다.

나의 이러한 성격때문에 인생의 절반을 손해본 다른 일도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좋아해 오던 화이트 앨범의 후속작이 나온다고 했을 때 리나와 유키 등 기존 등장인물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싹 바뀐다는 것을 보고 "그게 무슨 화앨이냐 병신같네 절대 안해" 하며 10년동안 쳐다보지 않다가 올해 초에 할 게임이 없어지고 나서야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리프게임이라 한번 해보기나 해보자 싶어서 했는데 웬걸, 이게 지금까지 해본 모든 야겜중 원탑이었고 이런 갓겜을 발매 당시에 바로 하지 않고 거른 자신을 자책했던 일이 있었다.

여튼 그런 사족이 있었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키에 대한 적대감도 사라지게 되어서 엔젤비트를 처음으로 키의 작품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정확히는 애니라서 플레이는 아니고 본 것이지만).

그리고 흔히 카에클이라고 묶여서 불리는 세 개의 고전명작을 하려고 다운받아 게임을 실행한 순간,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

"와 씨발 말로는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그림 진짜 개좆같아서 못하겠네"

그렇게 키게임은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나와 히노우에 이타루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올해 초 야겜 커뮤니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시작하게 된 유자챈

이곳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이타루의 그림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들 중 몇몇은 그림은 욕하면서도 게임은 극찬하였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엿같은 그림의 디메리트를 안고 가면서까지 게임을 할까 궁금해서 그나마 이타루가 덜 묻은 리틀 버스터즈를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하루카와의 첫 만남, 엄청난 눈 크기에 경악한 나는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평소 남들이 고통받는 걸 좋아하는데 이타루의 그림을 싫어하는 유붕이들의 고통을 위해서 하루카의 첫 스탠딩 그림을 시작으로 이타루 게임들의 CG를 모아서 특별히 더 못생기게 나온 그림들을 골라서 아카콘을 제작해서 사용했고, 이타루의 트위터를 팔로우해서 새로운 그림이 올라올 때마다 굳이 퍼와서 채널에 올리고 사람들이 욕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욕하던 그림을 보니 갑자기 꽤 괜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몇몇 잘 나온 그림만 그런거겠지 싶었는데 그렇게 싫어하던 리틀 버스터즈의 하루카도 너무 귀여워 보이는 것이었다. 뇌이징이 온건지 정이 들은건지 거부감이 완전히 사라져서 10년 전부터 봉인해뒀던 리토바스를 시작으로 카에클을 모두 클리어 했고 애니로 재탕까지 광속으로 끝마쳤다. 그리고 게임의 시나리오와 음악에도 감동하여 자연스럽게 마에다, 히사야, 오리토의 팬도 되었다. 리프빠의 마지막 자부심이 남아서 키빠는 되지 않았지만.

스톡홀름 신드롬? 패리스 힐튼 효과? 어떤 쪽이든간에 그렇게 나는 이타루의 그림에 빠져들었고 어느샌가 유튜브와 트위치 생방송을 챙겨보고 있었고, 이타루가 참여한 모든 게임을 찾아서 하고 있었고, 이타루를 욕하는 사람들을 보니 진심으로 슬퍼하며 실드를 치고 있었다. 문, 원, 게로카스 말고 웬만한 이타루 게임은 다 해본 것 같다.


진리를 찾은 지금의 나는 일본에서 배송비 5천엔이라는 거금을 주며 이타루의 화집, 동인지, 이타루 게임, 굿즈를 사는 열렬한 팬이며 이타루는 세계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과거의 잘못된 언행을 반성하며 평생 이타루를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