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eF

2016년 1위겜인데도 불구하고 ㅈ박은 개별 루트와 이거 뭐심?? 하는 요소가 많아 호불호가 굉장히 많이 갈리는 작품이다

본인도 개별 ㅈ박았다고 생각하고, 히나코 루트 엔딩을 처음 보고 뇌정지왔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원문플하다가,,, 뭘 이해를 잘못했나...??? 싶기도 하고 많이 당황스러웠음ㅋㅋㅋㅋ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인생 게임으로 꼽는 이유는

이 게임이 지금까지 한 것 중 "가장 스토리가 완벽했기 때문"도 아니고

"가장 인생에 큰 영향을 줬기 때문"도 아니며

"가장 고점에서 뽕이 오졌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게임 안에 담긴 내용이 나의 생각을 이끄는데 많은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이 아래의 이야기 중 게임 내용은 거의 없다. 내 삶의 대략적인 이야기다.

관심 없으면 그냥 넘겨주길 바람ㅎ




나는 어릴 때 천재라 불렸다 (먼저 대회에 참여한 다른 분의 글을 보고 이 이야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구몬 수학을 잘 풀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릴 적 내게 많은 투자를 하지는 않았으나 5살부터 구몬 수학 학습지를 손에 쥐어주셨고

나는 그것이 너무나 재밌었다.

딱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란 없었다. 학습지 따위에 어려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계속해서 내가 아는 것은 많아졌고, 나는 자연스럽게 선행학습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멍청한 형들을 놀리는 것이 즐거웠다. 멍청한 선생을 깔보는 것이 즐거웠다.

지금 또래의 아이들이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그러다 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미리 배운 친구였다.

그 친구와 어떤 수업을 들으면, 그 친구는 이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과제를 완벽하게 해냈다.

아, 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았구나

이 친구보다 내가 못 배웠기 때문에 절망한 것이 아니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미리 배웠다는 것 외에 어떤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뛰어난 것이 아니라, 미리 알았을 뿐이다.


이때부터 나는 영재와 천재라는 말을 구분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재, 수재는 만들어질 수 있는 것

천재는 따라잡을 수 없는 것, 그렇게 태어난 것

나는 그저 누구나 될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어느 날,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지금까지 중) 천재라고 부른 친구를 만났다.

압도적인 재능이었다.

내가 수십 시간을 들여 연습하고 연주한 곡을 들려주기만 해도 성조를 바꿔 편곡까지 해서 바로 연주할 수 있었다.

영상으로만 듣던 초절기교를 눈 앞에서 들었다.

나의 노력을 순식간에 뛰어넘을 수 있는 친구가 부럽고 무서웠다.

나는 줄타기를 하다 추락한 광대가 되었다.

나의 무대는 끝나고, 나는 대중과 하나가 되었다.


그래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냥 살다가 군대를 갔다. 군대에서도 음악을 했고, 공부를 했다.

어느날 선임과 생활관 딴따라를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악보를 가져왔다.

괴랄하지도 않은 곡이었다. 플랫이 좀 많이 붙어있을 뿐 단순한 곡이었다.

그래서 쳐줬다. 단지 그걸로 천재냐는 말을 들었다.


반가운 단어는 아니었다. 누구보다 아니라는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끼는 바가 있었다. 연습하기 전 옛날 어느 때에는, 이 곡을 초견으로 칠 수 없었을 것이다.

청음으로 듣고 치는 것만으로 놀라워했을 것이다. 재능이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단계적이다. 너무나 아득하게 높아 아찔한 경지가 있을 뿐, 질적 도약이 있을 뿐

갑자기 용기가 치솟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천재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만둘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세계 치트물도 아니고, 처음부터 쉬울 수는 없는 법이다.



군생활 중 휴가를 나와서 한 게임이 레리프였던가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섬에서 학교 생활을 재현하며 다시 한 번 도전하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의 실패담에 귀기울이는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하나씩 자신의 실패를 극복하고 앞을 보며 나아가는 모습이, 나에게는 너무나 눈부시게 느껴졌다

그렇게 소소한 성취로도 행복할 수 있구나

그런 자조적인 자아도 아직 남아있었으나

너희들이 극복하면 좋겠다는,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임이었다.


그러던 중, 분기에 해당하는? 선택지가 나왔다


1. 커뮤니케이션

2. 변화에 뒤처지지 않는 것

3. 변화의 선두에 서는 것

4. 전부 중요(위 3개 선택지 다 보면 마지막에 생김)



나는 무엇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나에게 이것은 단순한 게임 선택지 이상의 질문이었다


나에게 의미있는 일은 새로운 것을 밝히고 알아내는 것, 궁금한 것을 알아내는 것


나는 이미 일어난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판단과 사후처리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나는 인정하지 않은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AI 과학자로 등장하는 모모처럼, 나는 뭔가를 변화시키는 삶을 살고 싶었다.

세계를 변화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뭔가를 만든다면 의미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었다.

잘나지 않아도 된다. 영재일 필요도 천재일 필요도 없다. 인정받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뭔가를 한다면,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을 언제까지고 추구하고 싶었다.


도전해 보는거야, 다시 한 번

인생에 명확한 성공도 실패도 좌절도 없었다. 누가 일으켜 세워 등을 밀어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내가 그렇게 나약하다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도 뭔가 벽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것을 마주보고, 말로 뱉게 해준 것이 이 게임이었다.

그런 것을 느끼게 하는 힘이 이 게임에 있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62 - 허영심에서 비롯된 천재숭배 (중략)

천재가 '기적'으로서 우리로부터 아주 격리되어 있다고 생각될 때만이 천재는 우리의 감정을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니체-


"시가 기적의 치유제는 아니지만, 읽는 이의 영혼의 심층부에 가닿는다."

"참본질에 다가가려면 설명이 아니라 직관과 느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삶의 어디까지 왔는가를 이 시들이 느끼게 해주었다." 

-류시화-



뛰어넘을 수 없는 천재는 분명 있다.

지금은 그게 뭐 어쨌다는거냐고 생각한다.

하지만 천재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때도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나에게 레리프는 하나의 시다. 영혼의 심층부를 두드린 작품이다. 직관이다. 느낌이다.

솔직히 개별 스토리 개 똥이다. 다시 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때 감상은 그랬다.

하지만 군생활 내내 뭔가를 할 때 이 게임만이 내 가슴에 남아 있었다.

언제나 곱씹으며 움직인 것은 아니다. 그래도 분명히 나를 움직이게 한 많은 것들 중 하나였다. 


인생은 여행이다. 수많은 샛길과 돌길에서 헛고생과 지랄을 반복하고서야 지금에 이른다.

매 순간 본 것들이 남아 다음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결정한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수많은 명작이 존재한다

레리프가 거기에 낄 수 있을까?입이 찢어져도 그렇다고는 못하지ㅋㅋ

그래도 야겜 중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게임이 있다면, 내 마음에 가장 울린 게임을 골라보라면

레리프만큼은 반드시 목록에 올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갓겜이고, 누군가에겐 똥겜이다

나에게는 똥겜이며, 동시에 인생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