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이벤트 참여할 목적은 아니고 대체 이 회사의 뭐가 그렇게 좋냐, 계기가 뭐냐 하는 질문 몇번 받은게 생각나서 아직 초반이기도 하고 기억날때 정리해볼까 싶어서 씀


문상 안받을거고 클리어 파일 계열 굿즈도 안좋아해서 엔트리할 생각은 없어

스포되는건 따로 예전에 쓴 글로 빼서 스포는 없을건데 졸라 길다고 님들 안읽을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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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시에 입문한건 작년 12월쯤 백일몽 한패가 계기지만 사실 비주얼 노벨 자체를 처음 플레이한건 10년 정도 전의 일이다.

이 파릇파릇한 애새끼 시절에 한건 울적에 시리즈나 슈타게 시리즈, 조금 예외적으로 하루우루 같은거였는데 대부분이 애니를 재미있게 봤으니 원작도 해보자 하는 감각으로 잡은거였다. (하루우루는 걍 야겜이래서 잡음ㅎㅎ)

개인적으로 소비하는데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고, 호흡이 긴 작품들은 아무래도 부담스럽기 때문인지 손이 자주 가는 편은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애니메이션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고 라노벨이니 미연시 같은건 볼 생각조차 거의 안해봤다.

애초에 글 읽는거 자체를 뒤지게 싫어하기도 하고


왜 이런 이야기가 서두에 들어갔냐면 입문 초기의(사실 지금도 그럼) 나한테는 백일몽 정도의 플레이 타임도 무척 버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접하는 작품은 자연스럽게 플레이 타임이 짧은 작품, 예를들면 플라네타리안이라던지, 에피소드 구성인 나인이라던지, 아트리라던지 그런거에 치중된 편이었고 그 안에 들어있던게 쓰르라미 같은거 하던 시절에 해보려다 말았던 나르키소스였다.


한 당시에 느낀 감상은 문장이 예쁘고 감성적이다. 그림이 없는데도 몰입감이 좋다. 조금 틀내나지만 OST도 괜찮은거 같다.

근데 뭐 갓겜까지는 아니네


정도였다.

사실 이건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음

이게 뭐 90점대 쟁쟁한 게임들이랑 어떻게 비비겠냐


그래도 이정도로 준수하고, 플레이타임도 짧아 부담이 없는 게임이 챈에서 언급도 없고, 묻혀있다는게 조금... 안타까웠다.

2006년, 2007년에 나온 이 게임은 이제는 현역도 아니고 노떡에 스탠딩 cg도 없다.

이걸 결함으로 받아들일지, 기획 의도대로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백지로 받아들일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챈의 대부분은 전자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록 그게 의도된 바라 할지라도 어딘가 결함투성이인 이 게임을 히로인인 세츠미와 겹쳐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챈에서 영업을 하고 중계를 보면서 게임에 대한 애정이 짙어져갔다.

그러는 사이에 건너건너 관계가 있는 오와루바도 했다.


울면 안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라온 사람은 나 말고도 많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는 사이에 우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도 분명 있을테지

어린 시절, 눈물샘을 고장낸 이후로 처음으로 눈물다운 눈물을 흘려봤다.


머 아무튼 그러다보니 문득 궁금해진게 아닌가

나르키소스가 은색 1장의 현대판이라는데 이거도 한번쯤 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이 순간적인 충동이 아직 반환점 근처에도 가지 못한 뒤지게 길고 긴 여행길의 시작이었다.


사실 은색이라는 게임을 알게된지는 나르키소스보다도 훨씬 오래됐다.

서두에서 나는 10년 전에 노떡겜들을 몇 개 하면서도 미연시를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했지만, 작품명을 알아서 손해볼건 딱히 없다는 생각에 게임 이름이나 시놉시스 같은걸 찾아본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시놉시스가 은근히 인상깊게 남았던게 은색이었다.

제목도 졸라 심플한게 요상하기도 하고 회사 게임이 죄다 색깔 이름이라는거도 존나 인상 깊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생이란게 참 기구하고 희안하다.


그때는 이렇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씨발 왜 이렇게 된거지


머 아무튼 어떻게 게임을 해보려고 했는데 게임을 켜자마자 쉽지가 않다는걸 느꼈다.

내 모니터가 4k라 게임은 다 dpi를 시스템(고급)에 맞춰서 하는데 이렇게 하면 기본 폰트는 뿌옇게 흐려져서 읽을게 못고 dpi 조정을 안하자니 졸라 작고 또 폰트를 바꾸려고 하면 가지고 있는 폰트 대부분이 길쭉해져서 출력된다.



그렇게 또 런치고 한참 방치를 하다가 추석에 폰으로 뭐 할거 없나 싶어서 나르키2nd재탕-히메코 에필로그 순으로 오랜만에 나르키 시리즈를 잡아봤다.

히메코 에필로그 뒤져도 안할줄알고 스포 본게 아직도 기억나서 좀 아쉬웠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맛보는 감성이 너무 좋았다. 2nd 같은 경우도 1st를 한 뒤에야 보이는거도 제법 있었고


근데ㅋㅋㅋ 재밌게 했는데 막상 원래 예정이었던 추석이 시작도 되기 전에 끝내버렸음

추석에 나 모해

그렇게 뭐할지를 찾아다니다가 포팅 목록에서 오랜만에 다시 은색과 마주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이거는 이거아님??? 이거는 여기서 가져온거 아님??? 하는데 원래 나는 뭘 보면서 깊게 생각하는걸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이야기의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건 좋아했지만 그냥 생각없이 다 보고 난 뒤에 떠오르는걸 정리하는 정도였다.


은색은 주제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게임이 아니다.

카타오카 토모 본인의 스타일이 그런것도 있고, 초기의 작품이라 그런것도 있을 것이다.

나르키소스도 그렇지만 핵심적인 주제에 대해 지나가듯, 넌지시 이야기하고서는 그것과 관련된 상징, 은유들을 알게모르게 작품 전체에 채워넣는게 이 사람의 스타일이다.

뭐 당시에는 이런 이해 없이 이 회사나 라이터의 게임을 단순히 감성 하나 보고 하는 게임이라 생각한 탓도 있고 해서 초회차의 나는 은색이 뭘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제대로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감성에 취했다.

이 세상에는 이렇게나 어여쁜 소리가 있다는것을 느꼈다.


여기서 1차적으로 뇌수가 흘렀다.

이거도 마찬가지로 90점대의 갓겜이냐고 물으면 음 글쎄? 라고 대답하겠지만, 그럼에도 뭔가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실 지금도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은색은 아직 2회차 못해봤거든



나르키소스를 해 본 사람이라면 곡명은 모르더라도 기억나는 ost가 몇 곡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깊은 곡을 꼽으라면, 내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오프닝이나 이 곡 스칼렛을 뽑을것이다.




사실 이 곡은 나르키소스의 오리지널 곡이 아니다.

원곡은 바로 미즈이로의 스칼렛




은색을 하고나니 왜인지 이 곡의 오리지널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그녀석들과 만났다.



미즈이로의 특징이라면 어린 시절의 선택으로 현대(개별 루트)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지금봐도 은근히 신선한 시스템이다.

단순히 개별의 내용이 정해지는게 아니라, 은근슬쩍 캐릭터들 간의 호칭이나 관계도에 미묘한 차이가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처음으로 해본 캐러게는 하루우루, 두번째는 금발겜, 세번째는 마브러브 엑스트라

하루우루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해 본 루트들은 만족스러웠고, 마브러브 엑스트라도 재미있게 했다.

희안하게도 금발겜은 나랑 많이 안맞았는데 이런걸보면 감성이 조금 옛날에 머물러 있는걸지도 모르겠다


미즈이로도 딱 그 시절의 게임 답게 처음에는 참 재미있었다.

인트로 의매 빌드업은 진짜 감성 뽕이 치사량 수준이었고 티키타카도 진짜 존나 웃긴긴데다 애들도 보다보니까 졸라 귀여움ㅋㅋㅋ



근데 씨발 이 게임은 첫 루트 중간부터 공략 히로인이랑 맨투맨이 되고, 스토리가 진행되면 재미가 뒤지게 없어졌다.

중간중간 나오는 감성적인 문장들은 은색에 뒤지지 않는데도, 진짜 그냥 재미가 없다.

차라리 그냥 계속 티키타카만 보여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처음으로 듣는 스칼렛, 그 첫소절에 육성으로 감탄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개틀겜이라 관련 정보도 하나도 몰랐고 첫 루트 선택이 아주 기가막혔던거도 있었겠지

이걸 참아낸 나의 인내심에 건배


뭐 그 뒤에도 기대했는데 좆같았던 루트, 무난하게 재미없는 루트의 환상적인 봉합실력에 흐르는 뇌수가 멈출뻔 한적이 있지만 메인 루트 둘이  좋아서 결과적으로는 재밌었다.

아니 단순히 재밌었다고만 표현하기에는 조금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몇십 시간이나 얼굴을 맞대고서, 밥을 먹고, 티비 보고, 자고, 놀리고, 때리고, 맞고, 싸우고, 울고, 마지막에는... 웃었다.

같은 마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며 같이 살아왔다.

만남이라는게 운명이라면, 기구한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이루어진 하나의 필연이라면 그것에 감사하다고 여기고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마브러브 이후로, 오랜만에 떠나보내는게 아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애정이 깊어졌다.

사랑이라기보다는 마치 오랜세월 만나온 친구와 같은 정겨움이 피어났다.


미즈이로는 연애보다는 마치 일상 이야기에 가까운 인상의 작품이다.

게임을 하는 내내 그렇게 느꼈다. 일상을 참 재미있게 보내는구나 하고


게임을 클리어 하고 제일 놀란 점은 바로 이 일상이야말로 게임의 주제였다는 점이다.

이 넓은 씹덕판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작품은 참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비일상과의 대비를 통해서 그걸 전하고는 한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것의 소중함은 사라진 뒤에야 느낄 수 있으니까

미즈이로도 어느정도 비일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이걸 말하기는 하지만 그걸 뒷받침하는 일상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 나에게는 뭔가 신선하기도 하고, 와닿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 게임을 평할때 기복 없고 반복적인 일상이 지루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나도 플레이 하면서 그렇게 생각한적이 많았고

하지만 그게 이 게임의 본질이자, 의도라는걸 알았을때 정말 놀랐다.



자연스럽게 이 회사의 다음 한패작을 잡게 되었다.

사실 하려다가 미룬 게임이 참 많았는데 홀린듯이 이걸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사나라라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은색의 포맷을 빌려서 미즈이로의 이야기를, 나아가 포근한 힐링을 추구하는 작품이다.

회사의 중핵인 카타오카 토모가 아닌 아오카나 메인 라이터가 디렉터를 맡았다는 점도 독특한데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더 독특한 부분이 있다.


'누구에게나 소원을 이루어주는 찬스가 온다.'

이 설정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비일상을 통해 일상을 이야기하는 이야기로 보이겠지만 재미있게도 이 게임에서 이 '소원'은 등장인물의 갈등을 해소하기는 커녕 단순한 만남의 계기가 되는 수준에 그치거나, 심한 경우에는 오히려 갈등을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거만 해도 요상한데 소원들의 라인업은 더 가관이다.

아니 시발 말이 되냐? 소원을 들어준다는데 매번 최신형 게임기를 받을 수 있게 해달랜다ㅋㅋㅋㅋ

플레이 하는 당시에는 몰입이 되지 않았다.

뭔가를 말하려고 이렇게 했다는건 알겠는데 그게 뭉실뭉실 떠오르는 느낌 뿐이라 잡히지 않는 느낌?

이건 회사의 다른 작품들을 하고, 한 작품의 주제를 되짚어보면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만 스포일러가 되니 예전에 쓴 글로 대체하고 싶다.


(스포) 은색, 미즈이로, 라무네, 120엔, 사나라라) 사나라라로 알아보는 회사의 라이프워크 



은색, 미즈이로, 사나라라, 나르키소스

이제 이 회사의 한패게임은 대충 끝이 났다.

두개가 더 있긴 하지만 이 당시에는 구하지 못해서 슬슬 미뤄둔 게임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쿠시를 시작했다.

예전에 스바히비를 처음부터 떡밥 캐치하고 추측하던 중계를 본게 인상깊어서 였을까?

사쿠시는 그렇게 해봐야겠다 생각했고 이때의 경험으로 다른 시야로 게임을 보는 방법을 조금 익혔을지도 모르겠다.


사쿠시를 끝내고 네코네코 소프트의 게임을 다시 잡았다.

풀프 게임을 바로 하는건 부담스럽기도 했고, 이 여행길 덕에 쌓아온 현생의 업보가 너무 불어나서 미니 팬디나 단편을 위주로 하기 시작했다.



게임을 잡기는 했지만, 그때든 지금이든 스노우볼 마냥 불어나서 수습할 수 없어진 프로젝트나 내년에 할 졸업작품에 마음이 심란해졌다.

사쿠시에서 인용된 그림 '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의 제목이 계속 생각났다.

내가 할 수 있는게 대체 뭘까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걸까


참 길고 길었다. 여기서 잠깐 번외로 내 인생 게임을 소개하자



120엔 시리즈는 사나라라와 같은 네코네코 소프트의 힐링 게임 시리즈이다.

시작은 팬디스크에 수록된 독립된 단편이었고, 그게 시리즈화가 되어서 합본 게임이 나온 케이스이다.


이 120엔 시리즈의 주제인 '인연과 만남'은 회사 대표인 카타오카 토모의 좌우명인 '옷깃만 스쳐도 인연'과 큰 관계가 있기도 하다.

그런만큼 120엔의 주제를 통해 다른 작품을 해석하거나, 120엔에 나온 소재가 다른 게임에 인용되는 경우가 간간히 있다.

사나라라가 배경은 독립되어 있지만 어디까지나 기존의 주제를 이어가는 작품이라면, 120엔은 배경은 이어지지만 독자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한패를 구하는걸 포기하고 있었던 작품인데 우연히 살아있는 한패 파일을 구하게 되었다.

아니 120엔식으로 말하자면 60억분의 1의 확률을 넘어 운명과도 같이 나에게 다가왔다고 표현해야 할까


120엔 시리즈는 참 따듯한 이야기이다.

앞서 플레이한 사나라라도 참 따듯한 이야기지만, 120엔은 더욱 따뜻하다.




특히 가장 처음 한 겨울은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것만 같아서

그래도 괜찮다고 옆에서 토닥여 주는것만 같아서

추운 겨울 하늘 아래에서 함께 마신 따뜻한 코코아 같아서


무언가 가슴 속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저 느꼈다.


읽는 사람을 위로해준다. 그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배치된 수많은 상징과 은유들

처음 할 당시에는 그게 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럼에도 가슴 속에 남았다.

은은하게 배치된 상징들이 티나지 않게 이야기를 받쳐주고 있었다.


나는 겨울이 가장 좋았지만 여름, 가을, 봄 모두 좋았다.

특히 겨울은 처음 플레이한지 3주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세번을 했으니 말이다.



120엔을 하고 무언가 기시감이 느껴졌다.

문득 사나라라와 120엔 시리즈가 기묘하게 닮은꼴이라는 생각이 든것이다.

위에 링크된 사나라라 스포 리뷰를 쓴게 이쯤이었다.

큰 관계가 없어보였던 이 두 게임이 이정도로 얽혀있는게 많다면, 사실 이 회사 게임들은 캐릭터나 외전 뿐만 아니라 주제적인 부분에서도 어느정도 관계가 있는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무렵 플레이한 것이 나르키소스 0였다.


나르키0은 참... 독특한 게임이다.

나르키소스 시리즈 특유의 그 감각이 유지되어 있는데도 게임의 전체적인 향취는 네코네코 소프트 게임에 가깝다.

특히나 많이 사용된 소재는 라무네와 120엔의 봄

게임 자체도 시리즈의 최종장에 걸맞게 정말 좋았고 게임에 사용된 네코네코 게임 소재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건 뭐 따로 노리뷰를 썼으니까 이걸로 대체하자 https://arca.live/b/yuzusoft/37986492



그 다음에 한 것은 비의 마지널


이쪽도 은근슬쩍 나르키소스, 120엔의 요소가 들어있었다.

노리뷰는 여기 https://arca.live/b/yuzusoft/38265116



아무튼 이 게임들을 하고서 위에 얻은 의문은 더 깊어져만 갔다.

궁금한채로 있는거도 그래서 비교적 스샷도 많이 찍었고, 기본적인 골자는 알고있는 미즈이로부터 되짚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도수 없는 안경으로 바라본 세상처럼 두루뭉실하게 느껴졌던 이 회사의 게임들이 또렷한 상을 가지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네코네코 소프트에서 사용되는 미즈이로(물색)의 의미 


플레이 당시에도 미즈이로가 평범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알고있었다.

왜냐하면 게임에서 직접 그렇게 말했으니까

하지만 이정도로 복잡하고 함축적으로 은유를 해두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 다음으로는 나르키소스 1st를 다시 해보기로 했다.

플레이 당시에 나는 1st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가필수정된 소설판도 봤지만, 이제야 좀 이야기 다워졌구나 싶은 감상에 그쳤다.

주인공이 하나도 공감이 안되는거도 있고, 이야기 자체의 풍성함이 부족하다고 느껴진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나르키의 원안인 은색 1장, 1980을 한 지금이라면, 미즈이로, 사나라라, 120엔, 2nd, 제로를 한 지금이라면 무언가가 보일 것만 같았다.

더 멀리있는 것이 보일것만 같았다.


나르키소스 1st의 네코네코 소프트 구작 관련 소재 모음 


그리고 게임을 하고 나온건 정말 생각한 것 그 이상이었다.

은색 뿐만 아니라 정말 다양한 게임에서 다양한 소재가 등장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비록 그게 다른 게임에서 빌려온 빚이라 할지라도 이 게임이 이토록 풍성한 게임이었다는걸 이때 처음 알았다.

2nd는 비교적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기에 더 풍성하다고 느껴진거였을테지

이때를 기준으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카타오카 토모의 게임(적어도 단편)은 두번 할때 진가가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나르키소스로 시작된 글은 나르키소스로 끝을 맺었다...

면 수미상관도 이루어지고 깔끔하니 좋겠지만 현실이 아닌걸 어떡하냐???



120엔의 겨울 3회차를 한게 이쯤이었다.

딱히 이유는 없고 츄라이해서 중계 생겼는데 하는거 보니까 갑자기 개땡기길래 했음


120엔의 겨울 정리


이걸 정리하면서 참 많은걸 느꼈다.

원래 내가 이상적인 게임이라 생각한 것들은 슈타게처럼 플룻이 완벽에 가깝거나, 마브러브나 조금 급은 안맞지만 오와루바처럼 단점이 있더라도 그 이상으로 보여주는 장점이 압도적이거나, 사쿠모유나 무라마사처럼 주제적으로 고민할거리가 있는 작품이었다.


정리하자면 고점이 높고 반전 같은거도 좀 있으면서 주제도 좋아야된다 이말이다.


하지만 120엔의 겨울에는 고점도 없고, 반전도 없고, 눈물도 없고, 고민할거리도 없다.

있는것은 읽는이를 위로하는 따뜻하고 포근함 감성 뿐


하지만 그 포근한 감성을 전달하기 위해서, 라이터가 이렇게나 고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야기의 구성에, 대사에, 은유에, 상징에 모두 의도가 들어있었다.


라무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은 아무리 빠르더라도, 아무리 간편하더라도 정말 전하고 싶은 것을 전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진다.'



미즈이로는 물빛이라는 단 두 글자를 전하기 위해 수십 시간을 사용했다.

물빛에는 그정도의 무게가 있다.


은색도, 에메랄드 그린도, 60억분의 1의 만남도, 눈부셨던 날, 어쩌면 곡 하나하나에도 모두 그정도의 무게가 있다.

느리고, 불편한데다가...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닿았다.

그렇기 때문에 남았다.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멀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60억분의 1... 어쩌면 지금은 80억분의 1

당신과 내가 만나 눈부시게 빛날 수 있었던 운명의 확률에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