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사 읽기 싫으면 쭈우욱 스킵해서 ---선 있는곳부터 읽어주면 됨 (스압)

스포는 거의 없어요






나는 예전부터 글 읽는 걸 좋아했다.


장문의 글만 있으면 이 글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기대했고 나에게 어떤 즐거움을 줄지 궁금해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애니를 접하고 1년도 안되어서 원작 라노벨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애니는 보면 볼수록 글로 보는 묘사에 비해 무언가 상상력을 제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렇기에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뿐 제대로 즐길 수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글은 기승전결이 갖추어진, 깔끔한 글이었다. 라노벨에서는 제대로 맛볼 수 없는 느낌이었다. 기나긴 시리즈물은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이 들어 불편했고, 단편집은 그 분량에 아쉬움을 느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꿈도 희망도 없는 암울한 스토리를 가진 라노벨을 찾단 도중, 구글 알고리즘 덕분에 나는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종이 위의 마법사 (紙の上の魔法使い)


이 작품을 처음 만난 나는 이게 게임이란 사실을 알고, 부족하던 지식을 총동원해 이 게임을 찾고, 찾고, 또 찾았다.


결국 1주일이란 긴 시간동안 찾은 끝에 찾아내는데 성공하였고, 매우 긴장되는 마음으로 게임을 실행했다.


처음 플레이했을 때의 감상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초반부는 즐겼으며, 체험판 분량이 끝나갈 때쯤 뒷통수를 세게 맞았고, 조금 회복시켜주나 싶었는데 중반부에서 다시 통수를 때린 뒤, 엄청난 속도로 앞에서 던졌던 떡밥과 복선을 회수해 나갔다.


이때의 경험은 정말 전율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여기에는 내가 원하던 이야기의 완결성과 기승전결, 재미와 씹덕스러움이 전부 포함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내 뇌리에 매우 깊숙히 각인되어 버린 것이다.






9월 말, 나는 이 작품의 한글패치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즐겨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니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겨주기를 바랬다.


나의 부족한 실력을 가지고 이 작품을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은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대한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게임을 알리고자 카미마호 광고를 만들었다. 더 재미있게 중계를 즐기고자 카미마호콘을 제작하였다.


지금은 그저 챈에 카미마호 열풍이 불어, 하루하루가 즐겁다.






11월에 들어와서, 나는 내 입문겜을 재탕하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계획했던 일이지만, 지금이 바로 적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부담없이, 천천히 진행하려고 했다. 이 게임에 있는 모든 요소를 파악하고, 분석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게임을 하나부터 열까지, 스크립트 한줄한줄을 신중하게 읽어가며 게임을 플레이했다.


그렇게 하니 정말 많은 떡밥과, 엄청나게 신중히 깔려 있는 복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다시금 전율했다. 원래 다른 게임을 주로 하면서 천천히 하려 했던 카미마호 재탕은, 어느새 메인으로 즐기는 게임이 되어 있었다.


4장까지 끝내고 5장을 진행하고 있는 지금, 각 장마다 나만의 분석글을 작성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게임을 본 결과, 처음 플레이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약 4배에 달하는, 정말 말도 안되는 플레이타임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것조차 분석글 작성 시간을 포함하지 않은 시간이다. 나는 이 게임에 진심이었다.


강스포) 카미마호 1장 분석-이야기의 얽힘

강스포) 카미마호 2장 분석 - 요루코의 가치관과 감정

강스포) 카미마호 3장 분석 -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

강스포) 카미마호 4장 분석 - 이야기의 얽힘 2편

각 분석글은 2500자 분량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논리상 오류가 넘칠 수 있다. 읽을거면 읽고 아님 말자.



------------------------------------------------------------------------------------------------------




카미마호는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카미마호를 하면서 나는 비주얼 노벨의 좋은 점을 깨달았다. 나는 파죽지세로 게임을 찾아다녔으며, 유자챈도 알게 되고, 직후 있었던 여름방학은 아예 하루에 최소 6시간씩은 면시를 붙들고 있게 되었다.


카미마호를 하면서 나는 복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대충 플레이를 했을 뿐임에도 사소한 복선 몇개가 순간적으로 떠오르던 나는, 내가 만약 복선과 떡밥을 모두 눈치채고 있었다면 게임의 고점이 얼마나 높아질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이때부터 나는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사소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고, 복선을 분석하면서 짜 맞추는 습관이 들었다.


카미마호를 하면서 나는 bgm의 절묘함을 깨달았다. 그 어떤 연출보다 bgm을 순간적으로 끊는 연출이 얼마나 강한 파급력을 갖는지 깨달았고, 각 상황에 맞는 절묘한 bgm이라는 것이 글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뇌에 때려박을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내가 면시를 한 것은 이제 6개월이 넘어간다. 아직 많은 게임을 플레이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나만의 기준은 생겼다.

갓겜과 똥겜을 많이 접해본 지금, 나는 이 게임을 다시금 돌아본다. 과연 이 게임은 좋은 게임이었을까? 



나는 절대 좋았다고 말할 수 없다.


스크립트랑 스탠딩이 맞지 않는 오류도 있고 오프닝과 엔딩도 없으며 그렇다고 CG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개별루트는 하나같이 복선 던지기가 주가 된, 일직선을 강요하는 게임이었지만 그 결과물인 트루루트는 과도한 세탁기로 인해 망가지고 말았다.

작품 후반부에 가서는 작화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키리하 이사람은 여기서부터 죽을 징조를 보였단 거다...



그러나 이런 단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게임을 사랑했다.

몰입감을 보장하는 중반부 전개를 보고 사랑했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 은근슬쩍 집어넣는 치밀한 복선을 보고 사랑했다.

중간중간 밝혀지는 강력한 반전을 보고 사랑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확고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이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 모두를 사랑했다.






이 신기한 만남이 필연이라면, 이 넓은 면시계에서 카미마호를 처음으로 만날 확률은 운명이라 불러도 좋은 것일까.

나에게 있어서 카미마호는 내 청춘을 면시에 담글 수 있게 해준, 하나의 활자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