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푸른 저편의 포리듬 마시로 루트의 중요한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글의 모든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재미로 읽어주세요^_^




 

 푸른 저편의 포리듬을 시작하기 전 유자챈에서 리뷰글들을 살펴보는데 리카, 마시로 루트가 아스카, 미사키 루트에 비해서 재미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글이 많더라구요. 근데 이상하게도 인기투표 1위가 마시로더군요? 그래서 제일 첫 주자로 마시로를 선택했습니다. 아직 다른 히로인들을 만나보지 못해서 그런가? 마시로 루트도 상당히 매력적이고 성장물로서의 짜임새가 좋다고 생각해서 한번 끄적여 본 리뷰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임을 알아주시고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 



1. 공통 루트의 그녀


 아직 게임을 전부 즐기지는 못했지만, 공통 루트에서 마시로의 행적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하여 아쉽습니다. 재능이 있는데 FC를 즐기기까지 하는 주인공 포지션의 아스카, 재능이 있지만 더욱 뛰어난 재능에 낙담해버린 미사키, 고지식한 성격 탓에 재능의 벽에 막혀버린 리카와 다르게 작중에서 마시로는 재능이 없는 평범한 범인 포지션이며, 그녀가 FC를 시작하게 된 이유조차 좋아하는 미사키 선배를 따라서기 때문에 나머지 히로인들에 비하여 FC에 대한 애정도 부족합니다.(어찌보면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이긴 합니다만) 보통 스포츠물은 재능vs노력의 구도를 상당히 좋아하고 재능이 없던 주인공이 피나는 노력을 통하여 이를 뛰어넘는 스토리는 이미 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마시로 특유의 후배+귀여움을 강조한 캐릭터성이 이런 왕도적인 스토리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철저히 스토리를 캐릭터성 위주로 밀고 나가야 하고, 여름 대회에서 마시로의 경기부분만 생략되는 등 분량 면에서도 왠지 다른 히로인들에 비하여 밀립니다.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제 4장의 대부분을 마시로와의 에피소드로 할애하였고 이는 분명히 마시로 루트의 기반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한계 역시 드러나는데 "미사키를 좋아한다"가 캐릭터성의 상당한 부분를 차지하기 때문에 그녀는 미사키가 없이 단독으로 행동하면 상당히 매력이 감소하고, 이야기가 미사키와 마사야 사이에 끼여서 흘러간다는 느낌을 상당히 강하게 받았습니다. 이 흐름은 이후의 마시로 자신의 루트에서도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개인루트에서는 더욱 강화된 귀여움과 양질의 일러스트, 과거와 관련된 서사로 이를 훌륭하게 커버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마시로 루트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2. FC를 계속할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마시로는 상당한 능력자인 다른 히로인들과 다르게 가장 평범하고 가장 부족합니다. 그런 그녀가 FC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동경하는 미사키의 존재 때문이었고, 마시로 루트의 처음은  미사키가 여름 대회에서 패배 후(정확히는 신도의 패배와 아스카를 향한 두려움으로) FC부를 탈퇴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마시로는 이미 마사야와 그녀가 경기에서 승리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고, 이 약속은 여름 대회에서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이에 더해 미사키까지 부를 나갔으니 지금까지 그녀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 역시 부를 나가는 것이 당연하였고 작중 인물들도 이를 예상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마사야와 하나의 약속을 합니다. 그녀가 승리하도록 만들겠다는 약속에 더하여 미사키를 FC부로 돌려오겠다는 약속을. 이 약속은 좋아하는 미사키 선배를 위한 선택이자 자신을 위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마사야도 어렴풋이 짐작했듯 미사키는 FC가 시시하거나 지루해져서 그만둔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재능을 뛰어넘는 재능에 마음이 꺾여버렸고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본 마사야는 이를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시로도 그녀를 항상 바라보았기에 그녀가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절망하였다는 것을 알아보았고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되돌려 놓기 위하여 FC를 계속하게 됩니다. 


 이처럼 마시로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미사키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입니다. 그녀 혼자서 서사를 만들어 나가기에는 부족하기에 과거란 소재와 마시로-미사키-마사야의 관계를 잘 이용하여 재미있는 스토리를 보여줍니다. 미사키의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고 이번에는 마시로와 마사야의 관계에 집중해 봅시다.


3. 서로 같은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






  여름 대회가 끝난 후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마사야는 가장 뛰어난 성적을 보였던 아스카를 집중적으로 코칭합니다. 스포츠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유망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는 마시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이들과 다르게 재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더욱 뼈저리게 알고있죠. 그렇기에 그녀는 그가 자신을 배려하여 완곡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화가 난 마음으로 그를 찾아 나섭니다. 


 마시로 루트에서 시선은 매우 중요합니다. 서로 여러 사건들을 헤쳐나가면서 사랑하는 마음이 싹튼 두 사람은 자신의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봅니다. 마사야는 코치로서 그녀를 바라봅니다. 그녀를 바라보면 배경으로 그가 그토록 사랑했지만 결국은 자신을 좌절시킨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죠. 선수인 마시로는 경기와 훈련에 집중해야 하기에 부활동 중에는 그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녀는 선배 마사야를 사랑하는 후배인 마시로로서 그를 바라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서로가 마주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오해가 일어나고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도 차이를 보입니다. 우리는 같은 것을 보아도 같은 것을 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철학적인 말장난이 아니라 같은 물체를 보고 드는 생각이나 순간의 감상들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두 사람에게도 해당됩니다.




(마사야, 신도, 미사키에게 모두 해당되는 독백, 셋의 공통점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마사야는 자신이 더 이상 마음대로 날아갈 수 없게 된 하늘을 너무나도 두려워합니다. 자신이 누비던 온 세상을 뒤덮은 광활한 하늘은 끝이 없이, 어느 곳이던지 도달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진 희망의 존재였지만 그는 하늘에서 추락했고 그가 보았던 찬란한 하늘은 음울한 푸른 빛에 가라앉아 그의 마음을 좀먹습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지만, 하늘은 존재 그대로 공허한 압박일 뿐입니다. 






(사실상 마시로의 고백장면. 그녀는 마사야로 인하여 하늘을 좋아하게 되고 아스카 덕분에 이를 다시 확인한다.)


 마시로 역시 처음부터 하늘을 좋아하진 않았습니다.(좋아하지 않는다고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FC부원들과의 교감을 통하여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두 선배 마사야와 미사키로 인하여 하늘을 점차 좋아하게 되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하늘=마사야가 됩니다. 그녀는 마사야를 좋아하는 만큼 하늘을 좋아하고 FC부에서 누구보다도 하늘을 좋아합니다. 그녀는 하늘로부터 마사야에게 고백할 힘을 얻고 마사야가 자신을 언제나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마사야도 자신처럼 하늘을 좋아하길 바라죠. 





 마사야에게 마시로는 그가 말한 그대로 천사와도 같습니다. 그녀는 그가 미워하는 하늘에서 내려와 그녀가 사랑하는 하늘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그의 하늘을 구원하고, 이제 그들은 정말로 같은 하늘을 바라보게 됩니다.


4. 새하얗게 덧칠한 푸른색은 하늘색이었다




  마사야를 낙담시킨 쓰라린 패배와 좌절의 기억은 올 블루라는 시퍼런 가슴의 멍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는 FC부의 코치를 하는 동안 마사야의
꿈속에서, 환상에서 계속해서 그 모습을 보이며 마사야를 괴롭힙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사실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라는 이름으로 고정되어 누군가의 기억이나 마음속에서 영원히 생명을 이어가죠. 마사야의 기억의 하늘로 자리잡은 올 블루라는 푸른 고통은 하늘을 난다면,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흉터가 되어버렸습니다. 마사야는 언젠가 마시로와의 대화 중 이런 올 블루를 언급했지만, 마시로는 이를 전혀 다른 뜻으로 오해합니다. 



 




 마시로는 올 블루가 하늘과 바다의 경계도 모호해져 모든 것이 푸름으로 칠해진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착각하고 마사야에게 이를 보여주기 위하여 그를 데려갑니다. 마사야는 처음엔 당황하지만 이것이 마시로가 생각하는 올 블루임을 알고 그 아름다움을 감상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위하여 수고를 다해 이런 풍경을 보여준 그녀를, 자신과의 약속을, 미사키의 마음을 위하여 아침 저녁으로 연습하며 노력하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이로 인해 마사야의 올 블루는 새로 덧씌워집니다. 그가 패배해버린 과거는 변하지 않았지만 푸른 빛의 옛 기억은 새하얗게 덧씌워져 이제 그는 올 블루를 떠올릴 때면 마시로와 보게 된 아름다운 아침의 풍경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올 블루와 마시로(새하얀)을 더하면 푸른색과 흰색의 합인 하늘색이 되는 것처럼, 그의 푸른 상처는 사랑하는 새하얀 사람을 만나 아름다운 하늘의 풍경으로 치유되었습니다.(아마 노린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시로 루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입니다ㅎㅎ


5. 세 사람의 성장 이야기








(성장 스토리의 네 컷 요약)


 마시로 루트가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리뷰가 많은 이유는 아마 스포츠물인 작품의 특성과 마시로의 성장이 어딘가 어긋나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아직 다른 루트는 안 해봐서 객관적이진 않습니다만...)  마시로의 성장은 재능을 앞서는 노력을 내세운 스포츠물에서의 성장보다는 세 사람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휴먼드라마에 가깝기에 스포츠물의 시원시원함을 기대하신 분들은 조금 실망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작품 고유의 장르에서 장르적인 재미와 서사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은 크나큰 단점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은 단점을 가리고도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서사성이 부족한 캐릭터의 단점을 미래로 달려나가기 보다는 과거를 돌아보고 기억을 덮어씌우며 앞으로 한 발짝씩 걸어나가는 방식의 진행을 통하여 상당히 몰입감있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전개하였습니다. 

 

 세 사람은 마시로라는 중심점을 통하여 상처받은 과거의 기억을 새로 칠하고 이 기억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다시 구원합니다. 소심한 성격으로 외톨이처럼 지냈던 마시로는 솔직하지 못한 미사키지만, 그녀가 내민 손을 통하여 구원받았고 그녀(마시로)는 다시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고통받는 마사야를 구해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로 인해 마사야는 다시 하늘을 마주할 힘을 얻게되고 이 힘은 다시 자신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꺼내준, 자신이 겪었던 재능의 벽 앞에서 무너져버린 마시로에게 다시 향합니다. 계속 패배만을 반복하던 마시로는 진부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랑의 힘을 통하여 다시 일어서게 되고 제일 처음 자신을 구해주었던, 어쩌면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인 미사키를 향하여 도전장을 내밉니다. 마사야와 약속한 두 가지 약속의 실현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에게 이번에는 자신이 손을 내밀어 주기 위하여 그녀는 진심으로 경기에 임하고, 미사키 역시 솔직하지 못한 자신을 내던지고 온 힘을 다하여 경기에 집중합니다. 결과는 마시로의 승리. 마시로가 작중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승리이자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마사야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준 그야말로 모든 이야기의 종착점 입니다. 마사야는 과거를 이겨내고 하늘을 마주보게 되었습니다. 미사키는 솔직하지 못한 자신을 버리고 분함을 표현하며 다시 열정을 되찾았습니다. 마시로는 재능의 벽을 뛰어넘고 내민 손을 받아내기만 했던 자신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손을 내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손을 내밀어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길 바라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히로인 별로 리뷰하는 건 처음인데 괜찮다면은 나머지 히로인들도 노력해볼게요.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_^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