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급도 아니고 시급 (비하인드)』


뭐야이거뭐야이거뭐야이거

하? 뭐야 이거. 하? 뭔데 이거. 아니 진짜 뭔데 이거?

몇 번을 생각해도 정말 대체 뭔지 이해가 안 가는데, 쟤 내 방에는 왜 온 거야?


아니 뭐, 나를 붙잡으려고 왔다는 건 알겠어. 진지하게 설득하려고도 했고, 그런 열정적인 태도가 싫지는 않아.

남자가 진지한 표정 짓는 거 참 좋다니까. 얘기가 학생회 권유로 넘어가서 후반에는 그 표정에 살짝 빠져 있었고.

학생회에 내가 필요하다고 말해 준 것도 기뻤고, 왠지 살짝 고백받은 기분이라서 두근거렸어.

그래도 그렇지, 왜 쟤는 나한테 진지한 얘기를 할 때마다 갑자기 우리 집에 찾아오는 건데!?

내가 방에 틀어박혀서 연락이 안 되니까 그런 거겠지만……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금 더 능숙하게 굴 수는 없는 거야? 남자들은 여자 집에 찾아오는 걸 그렇게 쉽게 여기나? 난 살면서 남자 집에 찾아간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옛날에 쟤랑 같은 반이었을 때, 그렇게 어릴 때는……또래 애들도 가볍게 이성 친구의 집에 들락거리곤 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때부터 남녀 안 가리고 사이좋게 지내는 애들은 기본적으로 다 인싸들이잖아.

타고나기를 이성이랑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 타고났다고 해야 하나?

쟤는 뭔데? 취미가 아싸 같을 뿐이지, 사실은 막 인싸고 그런 거 아냐?

아니면 날 그냥 옛날처럼 생각하고 있다거나? 그때도 쟤네 집에 간 적은커녕 대화한 기억조차 거의 없는데?


"……하아."


자연스럽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내가 한심하다고 느끼는 건 이런 걸로 동요하고 있는 나 자신일까, 무신경한 같은 반 남자애일까.

그래, 분명 쟤는 아싸 특유의 무신경함 때문에 성별이 다른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잊고 뜬금없이 우리 집에 찾아온 거야. 분명해, 틀림없어. 그렇다면야 나도 아싸인 입장에서 동병상련의 정신으로 너그럽게 용서 못 할 것도 없지. 솔직히 말해서 처음 봤을 때는 완전 깼고, 오늘도 엄청 무서웠지만. 뭐, 그래도, 으음…….

아까까지 '남자'가 누워 있었던 침대 앞에는 전신 거울이 놓여 있었다. 이건 정말 큰 실수였다고 반성하며, 그것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자의식 과잉이라, 거울에 비친 얼굴─일반적으로 못생겼다는 평가를 받는─을 보면서도 조금은 괜찮아지지 않았나 하고 착각하곤 한다.

조금은 볼 만해진 것 같은데. 매일 거울을 바라볼 때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하지만 그 바탕이 변할 리가 없으니, 어떻게 덮을 수는 있어도 못생긴 게 고쳐지진 않았겠지.

얼굴에 칼을 대는 건 무섭고, 옛날 같은 반이었던 애랑 만나서 괜히 그런 부분을 지적당하기도 싫다.

참 곤란한 게, 난 내 얼굴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종종 이런 말을 내뱉지 않으면 금방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넌 못생겼어."


매일같이 아침 저녁으로 주문처럼 마음 속으로 되뇐 끝에, 요즘 들어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쟤도 나를 어릴 때처럼 대한다거나, 아싸라서 그렇다거나……그런 식으로 본인에게 잘못된 이유가 있어서 여자 집에 무턱대고 찾아온 게 아니라, 단순히 '못생긴 년은 여자로 인식하지 않으니까' 내 방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온 걸지도 모른다.

너한테만 뭐라고 해서 미안해. 사실 문제가 있는 건 난데. 나도 고치고는 싶은데 그게 안 돼서 힘들어.


"하아……."


다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번에는 방금 전과 달리 한심한 대상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다.

이렇게 현실을 마주하고 매일같이 말한 끝에 요즘 들어 겨우 자각을 했는데, 왜 나는 질리지도 않고 또 인정 욕구를 끄집어내려는 걸까. 그래도 쟤는 생각보다 더 나를 여자처럼 대해 주던데.

교복 입었더니 칭찬해 주고, 내 마음에 반응해 주었으면 할 때 반응해 주고…….

아까도 날 보고서 그렇고 그런 상상을 했다고 말했었지.

그거야 여자애가 자위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침대 앞에 전신 거울을 가져다 둔 내 잘못니까. 뭐, 그……한 것도 맞고.

쟤는 내 그림을 좋아한다 그랬고, 학생회 임원으로서 필요하니까 조심스럽게 대해 주는 거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나 얼굴은 못생겼어도 몸매는 꽤 괜찮은 편 아닌가? 그냥 살이 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슴 크기에는 그럭저럭 자신 있는데.

그렇게 음흉한 시선을 느낀 적은 딱히 없지만, 학생회 얘기가 끝나고 모델을 시켰을 때부터 걔 행동이 뭔가 수상쩍기도 했고…….

다시 침대를 바라보았다. 시트가 흐트러져 있는 침대. 방금 전까지 그곳에 남자가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하아……!"


또다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심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내뱉은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참아. 내 방에 남자를 들인 것도 두 번째(심지어 두 번 다 같은 남자)인데, 오늘은 침대에 눕히기까지 했는걸. 게다가 상반신은 다 벗긴 채로 말이야.

안 돼, 생각하지 마. 떠올리기만 해도 미칠 것 같아. 이래서 침대는 안 쳐다보려고 했는데. 남자 근육을 떠올리면 안 돼.

솔직히 그렇잖아? 걘 나를 여자로 보고 있지도 않은데.

그런데 내가 걜 생각하면서 흥분하면 안 되는 거잖아. 그렇지?

그래도 사진도 찍었는데. 아니 진짜 안 돼. 지금 보면 진짜 망해.

그치만 모처럼 사진까지 찍었는데, 내용 확인만 하는 건……그래, 이건 자료야. 그러니까 제대로 찍혔는지 확인은 해야 하는 거잖아. 아 미치겠다, 입꼬리가 막 제멋대로 올라가려고 해.

아 미치겠다, 현실 남자 몸 개쩔어, 인터넷에서 받은 사진이랑 완전 다르잖아.

이게 다른 누구도 아니고 같은 반 남자애라는 점이 진짜 미칠 것만 같아.

진짜미쳤다너무좋아서입꼬리가안내려가으히히히안되는데이거개쩔어.


"하앗, 하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이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너무 좋아서 사진을 보기만 했는데도 호흡이 거칠어질 지경이야.

이제야 알았다. 남자든 여자든, 못생기고 뚱뚱하든, 무신경하든 의식하고 있든, 그딴 거 이전에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내 의지로 걔를 내 방에 들였다는 점이라는 걸.

처음에는 어쩔 수 없긴 했어. 액타도 잡아 줬고, 학교 일로 왔다는 것도 궁금했고.

그래도 이번에는 충분히 거절할 수 있었잖아.

걔는 '내가 뭐든 한다고 약속했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그래도 거절할 마음이 있었으면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

하지만 혼자 배신당했다고 생각해서 미워하고, 이젠 안 만날 거라고 정해 놓고서도 인터폰 소리가 났을 때는 마음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기대하고 있었어.

걔는 정말로 내 흑역사를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고, 정말로 성실한 녀석인 게 아닐까 하고.

심포지엄 때처럼 내 마음에 대답해 주지 않을까 하고. 정말 그렇게 됐지만.

그래 맞아. 이걸 인정하기 싫어서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고 있었는데, 난 결국 걔가 찾아와 줘서 기뻤던 거야.

오랜만에 남자랑 얘기하고, 여태 갈 수 없었던 학교에도 나가고, 섞일 수 없었던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지낸 지난 일주일이 정말 즐거웠어.

그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히요링이 있다는 점도 컸지만, 지금 이 환경에서 내가 가장 많은 얘기를 나눈 건…….

나를 방에서 데리고 나가, 친하게 지내 주었던 남자는.

오타쿠라는 사실을 주변 사람에게 들킨 뒤로, 내가 바라던 학교 생활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같은 반 남자애랑 즐겁게 오타쿠 토크를 할 수 있는 방과 후를, 난 지금도 마음에 들어──


"하아."


관두자. 계속 생각했더니 지쳤어. 침대에 누워서 팔로 두 눈을 덮었다.

뭘 감상에 젖어 있는 거야. 학생회에 남아 달라는 얘기 좀 하러 온 것 가지고 어디까지 가는 건데. 이래서 아싸는 안 되는 거라니까.

남자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방에 잠깐 들였다고 완전 들떠서는, 쪽팔리게 말이야.

심지어 놀러 온 것도 아니고 학생회 용무 때문에 온 건데.

그래도 예전부터 이런 걸 해 보고 싶긴 했어. 싸우고, 화해하고, 내일 또 보자고 인사하는 그런 거.

걔는 꽤나 진지하게 날 설득해 주었는데, 그런 건 싫지 않아.

오히려 그런 소년만화 같은 열정이 마음에 들어. 남자가 진지한 표정 짓는 거 참 좋다니까.

그리고 잘 보면 걔 얼굴이 나쁜 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꽤 멋있기까지……하다는 건 너무 과장인가.

그래도 사귈 만한 얼굴이냐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 오케이 할 정도는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뭐, 뭐 아무튼 못생기지는 않았지. 아 그래도 여자들한테 인기 있을 얼굴이냐 물으면 그건 좀 애매한 수준이니까, 나처럼 못생긴 사람이랑 잘 어울리지 않을까? 따 딱히 사귀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그건 아닌……것 같지만, 몸은 꽤 괜찮았지.

아──, 남자 상반신 너무 좋아……역시 남자애랑 친하게 지내면 이래저래 재미있는 일이 생기는구나.

걘 나한텐 유일한 남자인 친구잖아. 앞으론 좀 더 친절하게 대해 줄까.

심포지엄 때도 그렇고, 오늘 설득하러 왔을 때도 그렇고, 아주 쪼끔 두근거리긴 했으니까.

그렇다고 사귀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얼굴도 보이게 찍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일단 남자 냄새가 다 사라지기 전에 더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