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iler ALERT!

꿈의 물방울이 몇 방울 떨어진 캔버스가 발광한다.


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한 빛의 무리.


누구나 그 반짝임에 눈을 뗄 수 없다.


그 반짝임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캔버스에서 차가운 불꽃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휘몰아치는 빛의 나선.


캠퍼스에서 투명한 빛의 벚꽃이 피어오른다.


한 소녀가 삼켜버린 사람들의 꿈과 악몽.


그것이 비가 되어 땅으로 내려와 그 대지를 적셨다.


나는 그 꿈의 물을 안료로 삼았다.


검은색만 있는 안료와 거대한 캔버스.


거기에는 그림이 필요 없다.


사람들의 한 가지의 생각을 더 많은 생각으로 연결하면 된다.


그것은 소리에서 음절로, 음절에서 선율로 변해가는 것 같았다.


내가 붓으로 칠할 때마다 온갖 감정이 다 들어갔어.


자신의 기억뿐만 아니라 본 적도 없는 기억, 그리고 알지 못하는 감정.


그런 소리를 이 캔버스에 아름다운 템포로 담아냈다.


내 붓은 그 음절에 몸을 맡겨.


개화는 음악처럼 이어진다.


벚꽃과 삼나무가 보였다.


삼나무는 죽음과 재생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라고도 불린다.


그것은 히카와 리나의 마음이다.


캔버스의 벚꽃과 어우러진 삼나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다음 순간


바람을 느꼇다


마치 질주하듯.


달리는 음속.


그것은 마치 아이가 달리는 듯한, 혹은 토마스가 달리는 듯한 굉음이다.


그녀석은 말했었다


우리들은


나약하고, 의기소침하고, 비겁하다,


거짓말쟁이, 허풍쟁이, 겁쟁이다


쿠소자식이라서 여기까지 온 거라고.


영웅을 동경하는 마음만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약하기 때문이야.


우리는 가속페달을 밟고 달릴 수 있잖아?


너뿐만아니야


나도 약해서 가속페달을 밟고 붓을 잡았어.


내가 히어로라면 너도 지지 않을 정도로 히어로야.


약한 인간만이 약한 신을 믿을 수 있다.


왜냐면, 약점이라는 것은 겹쳐지는 음표이기 때문이다.


캔버스가 개화를 계속하다.


그때마다 여러 사람의 생각이 내 영혼을 흔들어 놓는다.


토마스


아카시


리나와 유미


마코토, 토리타니 시즈루, 토리타니 사키


아이, 나츠메 코토코, 나츠메 미즈나


무수히 많은 생각들은 - 소리와 그림의 즉흥극을 불러일으킨다.


벚꽃의 시를 연주한다.


린, 그리고 시즈쿠


고마워


벚꽃이 피다.


오늘, 벚꽃이 핀다



벚꽃과 해바라기가 화려하게 피어난다.


그런 캔버스의 개화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지만--.


역시 그것은 사라져 간다.


무한한 대지에서 연주하는 음악처럼.


그 하늘로 사라져 간다.


벚꽃은 빛을 잃는다.


사라져가는 꽃의 찬란한 숨결.


생각의 꽃은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간다.


모두 흩어진 벚꽃은 마치 썩어가는 시체처럼 보인다.


괴상 사쿠라 피칠상 사쿠라 고름상 사쿠라 탄상 사쿠라 산상 사쿠라 소상 사쿠라


아름다운 벚꽃과 함께 죽어가는 시체의 모습을 '사쿠라칠상도(桜七相図)'라고 한다.


위대한 예술가 구사나기 켄이치로(草健健一郎)의 묘비명.


그 기억이 캔버스에서 개화한다.


하지만


그 묘비명마저 사라져 간다.


저 멀리 사라진다.


그럼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