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 가까운 해체쇼라 리뷰라 부르긴 좀 무거운 것 같고

아무튼 방금 올클하고 드는 생각들임



1. 해체 - 정(靜)과 동(動)의 문제


3-1장(미스즈)이 끝난 시점에서 느꼈던 건, "아, 체험판 하지 말고 아껴둘걸"하는 느낌이었다.

이 작품은 1장부터 5장까지 연계되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1장에서 등장했던 A가 3-1에서 A'로 등장하고, 다시 5장에서 A로 등장하는 식으로 재해석된다.


1장과 2장 체험판 발매 텀이 너무 길었기에, 

당연히 대략적인 내용을 숙지하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했으면 좋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자, 그럼 왜 시작하기 무섭게 '정과 동의 문제'라는 단락을 넣었는가.


모든 타임라인에는 '정적인 순간'과 '동적인 순간'이 있다.

단순히 내가 신체를 움직이고 있는 것만이 정과 동이 아니라 상황이 수동적으로 변화하는가, 아니면 내가 상황을 변화시키는가의 문제이다.



사쿠라의 각은 4장까지 끊임없이 '정'적인 순간을 보여 준다. 

등장인물 간의 갈등은 '의지의 대결'이다. 대결하는 인물 중 어느 쪽의 의지가 상대를 '초월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쿠사나기 나오야는 의지의 서슬 퍼런 날을 세우지 않는다. 

그가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건 5장이 되어서이고, 그 이전의 플롯은 나오야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태도를 보여주지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는가'를 보여 주지는 않는다.

(아마도 라이터는 이것을 '불러 주면 달려오는 히어로'에 대한 표상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더 문제가 되는 건 2장 말미에 나오야는 '정'적인 순간에서 '동'적으로 보이는 선언을 하지만, 

3장에서 4장에 이르기까지 전혀 그런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뭐, 일부분만 그렇다면 상관이 없다.

문제는 이 3장이 작품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에서 제공되지 않은 정보를 1장과 3장에서 나누어 뿌리고 있는 격인데, 번외편에 가까운 1장을 제외하면 3장은 너무도 고요하다.

등장인물 간의 갈등과 대립이 혀로만 이루어진다. 



특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나오야와 호사이의 논쟁이었다.

호사이의 가치관은 매우 심플하다. 자신의 예술관에 대해 저리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정확히 '이반 쿠팔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끝내는 게 '아주 옳은 선택이었다'는 if가 머릿속을 맴돈다.


하지만 라이터는 여기서 무언가를 '부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실은 필요 없는데.


중요한 건 온다 호사이가 쿠사나기 나오야를 위협하는 존재이며,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할 수 없는 회색지대에서 그 나름의 가치관을 외압을 통해 강요한다는 점이다. (의지의 대결)


실제로 호사이는 '천재'로 인해 일그러진 범인이라는 입장을 대변하며, 

그 대척점은 일그러지지 않는 의지를 품은 범인 나가야마 카나이다.

그것만을 전달하면 족했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네이와 미스즈의 언쟁과 대결, 화해와 이해라는 기나긴 3-1 루트는, 작품 내의 발언을 빌리자면 "연기와도 같이 공허했"다. (물론, 5장으로 이어지는 소위 '정사'를 보자면 공허한 게 맞다)


두 의지는 충돌하지 않으며, 이미 결정된 '차이'로 인해 예술의 껍데기에 불과했던 네이의 그림은 허망하게 패배하고, 가르침을 수용한다. 미스즈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는 구조도 "그냥 혼마 레이지로가 그래서" 이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아, 당연히 쿠사나기 켄이치로와 대면시키고 거울처럼 구도를 짠 건 그야말로 '켄이치로의 거울상'이라는 암시를 주는 건데,

혼마 레이지로에 대한 설명이 너무도 부족한 이 시점에서 딱히 의미는 없어 보인다.


이 모든 문제는 '혼마 미스즈'라는 개 뜬금없는 캐릭터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다. 

왜냐? 얘는 케이의 제자로 이미 낙점된 운명이라서다.


따라서 나는 3장에서는 상당히 백본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부족한 백본을 채워넣기 위해 "혼마 레이지로는 사실~", "토리타니 사키는 사실~"이 엄청나게 남발된다.

좋지 않다.


그나마 3-2(마코토)는 무언가가 진행된다. 

하지만 그건 잃어버린 청춘을 아쉬워하며 리바이벌시키는 자위행위, 혹은 부두술에 가까울 뿐 딱히 의미를 지닌 루트는 아니다.

마코토 본인도 루트 들어가자마자 말한다. 나오야 꼬추 만지면서.

루트 자체가 부두술이다. 십수년 전에 엇갈린 두 사람을 억지로 이으려는 주변인들의 눈물의 똥꼬쇼니까.


물론, 상기한 전부는 아가리털기로 진행된다.


따라서 작품으로서 유일하게 평가할 만한 부분은 4-5장으로 이어지는 '줄기'다. 

사실 이 부분부터는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고', 이 작품의 핵심이 드러나기 시작하니 따로 할 말은 없다.



2. 구축 - 재능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케이의 과거와 나오야의 움직임에 관해서는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4-5장은 예상대로란 측면에서도, 예상 밖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즐거웠다.

아마 대부분은 4-5장에 대해선 그리 큰 실망을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주제의식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엔딩을 본 순간 어느 정도 내 속에선 결론이 나 있었다.


재능이란 이능력이고

예술이란 이능력 배틀이다.


대충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가 떠오르는 사제관계의 연쇄와 

이게 예술인지 초인인지 분간이 불가능한 이능력 배틀을 보고 있으면 절로 손에 땀을 쥐게 된다.


과연 예술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이 작품에서 주구장창 나오는 예술이란 단어는 모든 것으로 치환 가능하다.

심지어 야가다로도 치환이 가능하다!


그리고 5장 막바지에서야 예술은 정의된다.

예술이란 인생이다.


엄청난 대서사시치고는 맥없는 결론이다.

만개하는 해바라기, 벚꽃과 함께 감동적인 텍스트가 제공되고, 그 연출은 나 역시 인상깊게 느꼈지만

결론적으로 쿠사나기 나오야가 다다라야 할 곳에 다다랐단 느낌이지 그 이상의 이견은 없었다.


따라서 사쿠라의 각이 던지는 '재능이란? 예술이란?'이란 의미는 한없는 보편성을 띠게 되며,

그 어떠한 요소에도 통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원했던 것은 이게 아닐 것이다.

보편적인 예술론이 아니라 스윗일남 나오야오빠 쭈쭈파티라는 "엔터테인먼트"를 보고 싶었던 게 아닌가?


나가야마 카나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약속된 감동을 바랐"기에 스윗일남 나오야가 뭔지는 몰라도 뭔가 보여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작품의 전체 줄기에 있어 '의미를 가지는 시간'은 '4장과 5장'에 국한되며, 

그마저도 '혀놀림으로 의지를 겨루는' 방식 자체의 문제로 인해 그냥 넘어가도 좋았을 한 순간은 무한히 반복된다.


그리고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솔직히 카나한테 천년벚꽃 피는 거 보고 놀라긴 했는데 

갑자기 잇카쿠햄 떠오르더라


근데 응애카나 보고 애끼기로햇음



3. GOAT - 연출



최고의 연출로 꼽는 건 베스파 타고 가는 씬

이거 짱구에서 본 적 있음



그리고 인상깊었던 부분

그 누구보다 쿠사나기를 사랑한 크싸레의 마지막 발악


연출에 애먹었다더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나 하나가 인상적이다


무릎베개 씬은 너무 재활용돼서 신선미가 떨어졌는데, 

오히려 그 반복 덕에 맨 마지막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4. 결론


여기까지 읽는다면 아 이 스카지빠새끼가 드디어 대가리가 깨졌구나, 라 생각하겠지만

지금까지 깐 게 무색하게도 난 상당히 재미있게 했다.


심지어는 사쿠시보다 맘에 들었고, 이 작품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조용한 엔딩을 맞았다고 생각한다.

이게 다 사랑하니까 하는 말이야 어?


아무튼,

사쿠시는 묵직한 한 방이 있는 스크립트가 아쉬운 그래픽과 연출을 먹여살렸다면

사쿠각은 그래픽과 연출이 아쉬운 설명충 스크립트를 먹여살렸다는 인상을 도무지 떨칠 수가 없다.


특히 언어가 '투머치' 였다는 느낌은 도저히 지울 수 없다.

행동원리에 대한 끊임없는 설명은 변명으로까지 느껴진다.


'시'에서는 일상을 쓰고자 오만 개드립과 섹드립으로 '동'을 채워넣었고, 이게 재미있다는 평가를 한 사람도 제법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손에 힘 빡 주고 썼는지, 그 얼마 남지 않은 동적인 씬마저 한없이 의기양양한 정(靜)으로 대체당했다.


그렇게 보자면 '학교'란 것이 참으로 강력한 도구다.

주인공은 의도치 않더라도 무조건 무언가 과업을 해내야 한다. 이를테면, 사쿠라의 시 2장(벚꽃의 발자국)이 있다.

사쿠라의 각 3장(미야자키 회화학교 그림배틀)이 구조상 동일한 역할을 하는데(작은 과업의 부과와 정보 제공), 

둘 사이의 무게감을 비교해 보면 대충 견적이 나올 것이다.


학원물이 뒤지게 나오는 건 청춘 부두술뿐 아니라 그냥 편해서 그런 것도 맞긴 해 보인다.


역시나 '시'는 몰라도 '각'은 남정네 둘이 서로 째려보면서 미의 여신이 어쩌고 영원성이 어쩌고 씨부리는 것보단

스윗일남 나오야맨과 우주괴인 린이 꼬추(후타나리)에 날세워서 칼질하는 게 더 '재미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무의미한 기호의 나열이고, 전해지지 않는 언어에서 의미를 찾아내기란 어렵다.

언어로 인물의 의지를 전하려 하기보다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게 더 좋은 방법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안노센세 왈, "엔터테인먼트성을 추구"하겠다던 '에반게리온 신극장판'도 결국에는 안노센세 심리드라마로 끝났는데,

내 딴에는 굉장히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아마 '각'도 그런 부류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여담.

사와다 나츠 우시가에루 키타로 목소리 다 맛갔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