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별로 후기 쓸 생각도 없었고 작업 막바지에 여러 의미로 똥 밟은 것도 있고 해서 걍 넘기고 싶은데

다른 작업자들은 다들 챈에 글을 안 쓰니 나라도 뭐 하나 기록 남겨둬야겠다 생각해서 대충 의식의 흐름대로 써봄


뭐 사실 후기 쓴다고 해도 프로그래밍 파트 제외하곤 작년 7월에 이미 끝나서 한참 지나서 슬슬 기억 흐릿해지기 시작함...

일단 다 해놓고 왜 이렇게 마무리가 늦어졌냐면 한패 인원 모집과 번역이랑 프로그래밍 담당한 메인 역자가 최종 작업 중에 갑자기 물리적으로 사라졌다

암튼 다들 자기 작업 끝난 상태로 알아서 끝내겠지 하고 기다리고 있길 반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길래 작업자 찾고 터지고 다시 찾고 어떻게 마무리해서 나왔습니다

막바지에 갑자기 돌연 실종된 거라 다들 걱정하고 있으니 살아있으면 살아있다고 생사라도 알려주셈...

 

21년 6월에 작업 들어감

워낙 문장을 좋아하는 겜이라 모집할 때 가벼운 마음으로 개별 하나 거들까 하고 참여했는데 예상 외로 추가 지원자가 없어서 둘이서 작업하다보니 점점 이것저것 하는 게 늘어났다

한패 나온다고 해도 인기 있을 게임도 아니니 걍 둘이서 느긋하게 하기로 했음

21년 9월에 처음에 내가 맡은 개별 루트들은 1차 번역 끝남

22년 1월에 검수자 들어와서 작업 속도 오르고 2월에 전 텍스트 1차 번역 끝

그랜드 루트 부분은 역자 검수자 할 거 없이 사실상 그냥 셋이서 번역하고 검수하고

그 후로는 7월까지 2차 번역 및 검수

검수자가 익명을 희망해서 크레딧에 익명으로 올라가긴 했지만 검수만 한 게 아니라 그랜드 루트 일부는 본인이 번역할 정도로 진짜 일 많이 했어

7월 말~8월 초부터는 다른 파트들은 전부 작업 끝나고 대기하면서 세세하게 번역 퀄리티 상승 작업만 함

8월 중순부터 메인 역자&프로그래밍 담당 실종

진짜 실종임

23년 3월 마무리 작업해줄 프로그래밍 인원 구인

5월에 문제가 생겨 다시 인원 구하고 각종 작업 및 브러시업

거진 열흘 사이에 프로그래밍 담당이랑 둘이서 똥꼬쇼 오지게 했음 막판에 붙잡혀서 고생 많았다 이 사람도

6월 한패 공개



번역하면서 역자와 검수자가 머리 맞대고 세세한 부분들 되게 신경 많이 썼음

직역과 의역의 비율, 엄청나게 많은 오탈자와 잘못된 관용구들 추리해서 수정, 번역한 문장들 전체적으로 분위기 맞추기, 적절한 문법과 맞춤법 정리, 고유명사 정리, 구두점 조절 같은 것들까지 싹 다 세세하게 손댔다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신경 쓸 부분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고심하면서 작업했으니 잘 즐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임... 

개인적으론 문장이 정말 예쁜 게임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대로 쓸 수 없는 부분들을 일부러 무너뜨려 번역한 곳이 많아서 그대로 못 보여주는 게 좀 아쉽기도 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좀 괜찮아지긴 했는데, 사실 작년 1월부터 중증의 만성 콜린성 두드러기로 진짜 삶의 의욕이 미친 듯이 뚝뚝 떨어져서 작업하면서 되게 고생했었음

일상 생활도 제대로 못 하는데 약 먹고 몽롱한 상태로 작업한다고 후반부엔 뒤질맛이었음 어떻게 했는지도 몰겠어

그래서 도중에 안 나가떨어지고 무사히 공개할 수 있는 게 좀 기쁘네요


이제 겜으로 넘어가서

파라레로는 흔히 비교되는 아오카나를 비롯해서 일반적인 청춘 스포츠물을 생각하면 참 숨막히고 칙칙하고 다우너한 분위기의 게임이지만, 우구이스카구라의 다른 게임들과 비교해보면 배드엔딩 같은 게 하나도 없는 밝고 희망찬 게임이기도 함

분명히 어릴 때 가정 환경이나 학창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 없을 거라 생각되는 루쿠루의 어두운 면을 최대한 절제하고 섬세한 묘사와 문장, 정적인 분위기만 남겼다

그렇기에 브랜드의 팬에게서는 평가가 낮을 수 있지만, 대중성은 가장 높은 게임임

스토리 전개 또한 브랜드의 여타 작품들과 다른데, 다른 게임들은 특정 엔딩에 도달하는 구조가 선형적이라 그 사이에 분기를 하나씩 뚝 떼어버리는 구조인데 파라레로의 경우에는 1~6장 공통 후 4개의 개별 루트와 그랜드 루트가 별도로 존재하는 구조임

개인적으로 진히로인 루트가 정해져 있다는 식의 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다보니 파라레로의 분기가 더 마음에 듬 

그랜드 루트가 있는 게임은 보통 다른 개별 루트를 전부 끝내야지 열리는 구조가 많은데 이 게임은 초회차부터 바로 진입이 가능한 것도 독특한 부분이고

다만 개별 루트들이 짧다 보니 그 점은 많이 아쉬움


그러면 개별 루트를 할 필요 없이 그랜드 루트만 하면 되는 게임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고

개별 루트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의 결과는 모두 인과의 정합성이 유지됨

특정한 선택을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의 파장이 각 루트에서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배경과 심리 상태 같은 걸 잘 알 수 있다

그랜드 루트만 봐서는 각자가 싸우는 이유를 제대로 알 수가 없어서 몰입도가 좀 떨어질 수 있는데 개별 루트에서 그걸 보충하는 형식임

유즈와 리아 루트는 과거, 호타루 루트는 미래에 대한 중요한 장면들이 있음

다만 하리 루트는 메인 스토리라인만 봤을 땐 좀 건너 뛰어도 된다고 생각하긴 해

유일하게 카디널즈 주축의 루트긴 한데 그 이상의 의미는 별로 없음

요컨대 개별 루트가 짧아도 중요하긴 하니까 제대로 이해하려면 끝내고 그랜드 루트로 넘어가기


아 이거 쓰고 있는 도중에 댓글 올라온 게 있는데 이번 달부터 월간 신작 소개 영상 안 올릴 생각임

막바지에 작업자 구하다가 차단 먹고 일주일 좀 쉬면서 생각해보니 굳이 할 필요 없는 작업은 하지 않는 게 맞는 거 같애

한패고 뭐고 자유로운 야겜혼이 되어 날아갈 거야~~~


두서 없이 썼는데 암튼 모 열심히 작업했습니다

오래 기다려준 사람들도 많은데 겜 재밌게 해주세요

Q&A도 열심히 작업했으니 번역 탭 가서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