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면 오늘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까?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누구나 들어봤을 유명한 말.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해도 내일이 되면 그 사과나무는 사라짐.

오늘 무엇을 하든 내일이 되면 모두 다 소용이 없게 됨. 그렇다면 무엇을 하든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리고 내일의 세계에서>는 우리에게 이 작은 의문에 대해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볼 시간을 갖게 해주는 작품임.


인구 700명 남짓의 작은 섬 마을. 그곳에서 스바루, 유우히, 아사히, 아오바, 미나미는 살아감. 

그러던 어느 날 약 3개월 뒤에 운석이 지구에 충돌해 세상이 멸망한다는 소식이 전세계에 퍼짐. 

이 작품은 종말을 앞둔 등장인물들이 보내는 약 2주 간의 일상에 대해 그려내고 있음.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섬세한 심리 묘사임. 갑자기 충격적인 상황에 놓인 등장인물들의 불안, 공포, 고뇌. 

그리고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과 미묘한 관계의 변화를 서정적이고 따듯한 문체로 담담하게 풀어냄.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의 일상은 <Summer Pockets>에서 느꼈던 것처럼 잔잔하고 포근함.

언제까지라도 잠겨 있고 싶은 일상이 점차 무너져 내리고 다시 쌓아 올려지는 평화롭고도 위태로운 마을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음악과 감각적인 일러스트, 위에서 말한 문체가 어우러져 풍부한 감성을 느끼게 함.

또 이야기의 대단원에서 절정에 달하는 강하고 감동적인 메시지성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음.


한편 이야기의 주요 내용이 일상이고 커다란 사건 보다는 일상 속의 사소한 변화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게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음. 

그리고 이 작품은 공통된 큰 줄기를 중심으로 몇 번의 선택에 따라 각각의 히로인 루트로 분기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개별 히로인 루트들 사이에 겹치는 내용이 많음. 

그래서 처음에는 괜찮은데 그 다음부터는 선택지 이벤트 후 기독 스킵되는 분량이 많아서 템포가 끊기고 

몰입도가 저하되는 단점이 있음. 루트 별로 편차도 조금 있는 편임.


미나미 루트는 개별 히로인 루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음.

가장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요소가 넘치고 연애 묘사에서 설레는 장면이 많았음.

서로 의지하고 지지하는 관계성의 역전과 재역전이 인상적이었음.

개인적으로 연애 묘사에 있어서 연인 사이의 양방향성을 중요시하는데

스바루와 미나미는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받쳐준다는 것이 잘 느껴졌음.

히로인의 외모, 캐릭터성, 스토리 모두 미나미가 최고.


아오바 루트는 주인공이 벽창호를 넘어 눈치 고자라서 많이 답답했지만 

10년 동안 한결같은 아오바의 순애보가 좋았던 루트였음.

암 걸리는 주인공의 행보와 세계 종말의 이중 콤보 때문에 정신이 돌아?버린

아오바의 조울증 포스와 눈물겨운 히로인 어필 때문에 비교적 재미 있었음.


유우히 루트와 아사히 루트는 소꿉친구 세 사람의 특수한 관계성에 대해 다루는 루트임.

8년 전에 유우히, 아사히 자매의 어머니가 죽은 후 언니인 아사히는 어머니의 대신을 하기로 했고

어릴 적에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유우히는 언니에게 어머니를, 스바루에게 아버지를 요구하게 됐음.

이런 특이한 관계가 바뀌는게 주 내용인데 솔직히 유우히와 아사히의 심리를 따라가기 힘들었고

스토리도 뭔가 아침 드라마 보는 느낌이 들어서 별로였음.

캐릭터성 면에서도 아사히는 그냥 매력이 없고 유우히는 성격이 너무 애 같아서 짜증났음.


엥? 그러면 미나미 루트 빼고는 별로 아니야? 라고 할 수 있는데 노말 루트와 애프터가 단점을 만회함.

누구와도 이어지지 않는 노말 루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의 메시지를 가장 강하게 품고 있는 루트임.

노말 루트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스바루(주인공) 루트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음.

다른 어느 루트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루트이고 갓할아버지와 갓버지의 캐리가 빛남.

마지막의 주인공의 강의 장면은 이 게임에서 가장 뽕이 차오르는 구간이라고 할 수 있음.

그리고 애프터 에피소드에서 다시 한번 이 작품의 메시지를 환기하며 깊은 감동과 여운을 줌.


결론적으로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미나미 루트와 노말 루트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었음.

종합적으로 봤을 때는 하루우루 본교편이 더 좋았던 것 같은데 메시지랑 여운은 아스세카가 좋은 듯.

마지막으로 미나미의 대사를 하나 남기고 글을 끝내도록 하겠음.




중요한 것은 모두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다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거기서 오는 것이며

충족할 수 없는 장소나 때에 따라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일을 잊지 않고

거기에 있어야 할 모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