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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강서구의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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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식량 수탈(개간, 수문건설 등)

1. 개요 [편집]

일제강점기 시절 現 부산광역시 강서구(부산) 지역과 일제의 관계 등을 설명하는 문서.

2. 상세 [편집]

옛부터 강서구는 일본과 가깝기로 유명한 거제, 부산 사이에 있으며 왜적이 처들왔던 곳이고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군이 처들어왔던 곳이다. 강서구의 산물을 일본으로 수출하기도 했는데 명지소금, 명지김 등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곡식수탈 등을 하기 위해 수로, 제방, 수문 등의 수리시설을 건설하고 저습지를 개간하여 비옥한 낙동강삼각주 땅에서 농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일제의 수리조합 사업으로 대저수리조합, 김해수리조합 등의 수리조합이 생겨났다. 이때 대저에서 배를 키워 대저 배가 유명했었다. 대저조합은 해방 후에 한국농어촌공사 등의 이름으로 바뀌는데 625전쟁 시기인 1952년 2월 22일에 색색이라 불리는 미군전투기 F86 세이버가 평강비행장으로 가는데 수리조합 사무소에 추락하여 직원과 주민이 죽고 다치는 일이 있었다. [출처.]]땅은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와 동양척식주식회사가 가져갔고 곡식은 낙동강을 통해 일본으로 가거나 부산역까지 운반해서 부산항에서 배로 일본에 갔다.

가덕도는 진해만과 부산앞바다에 있는 중요 요충지라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 사령부가 생기고 외양포에 포진지와 군 막사, 일식가옥, 인공동굴 등이 생겼다. 가덕도 대항, 새바지, 그외 산 등에 인공동굴이 있고 새바지와 대항의 인공동굴은 관광지로 쓰이고 있다. 태평양전쟁 때에는 조선군으로 강서구 일대 주민들을 동원하였다. 외양포 마을 주민들은 쫒겨나고 해방 후 제비뽑기로 사람을 정해 남겨진 일식가옥에 살았는데 자기 땅이라고 인정해주지 않아 내 땅 하나 없이 어업 등으로 살아가는데 신공항이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

부군면통폐합으로 대상면과 대하면을 합쳐 대저면으로, 가락면과 덕도면을 합쳐 가락면으로, 녹산면과 태야면을 합쳐 녹산면으로, 창원부를 마산부로 개칭하고 도농분리로 외곽이 창원군이 되면 천가면은 창원군이 되었다.

대저의 평야가 제국비행협회의 시오덴 노부타카에 의해 비행장으로서 최적의 입지로 선정되어 1944년 비행장 건설을 시작하고 1945년 2월 11일 부산해군항공대라는 이름의 훈련기지로 개장했다. 여기에 활주로가 없을 시절에는 부표를 달아 평강천 위에 착륙하기도 했으며 이 훈련기지에서 훈련한 기체는 K5Y 93식 중간연습기로 붉은 잠자리(아카 톰보 히꼬키)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비행기는 사람이 밀 수 있을 정도이며 프로펠러를 손으로 돌려 시동을 건 후 날아갔다. K5Y로 비행장에서 가미카제 훈련대가 훈련을 하기도 했다. 비행기를 보관하는 격납고는 근처 마을 곳곳에 있었는데 흙으로 동산처럼 만드는 식이였다. 이 흙은 근처에서 가져왔는데 덕도산을 파내고 그 흙은 철로로 운반해서 격납고를 만들었다. 이 때 덕도산을 파면서 인공동굴이 생겼는데 방공호의 용도로 훈련을 하기도 했다. 인공동굴을 덕도산 곳곳에 있으며 창고 등으로 쓰인다. 격납고를 만드는데는 주민들이 동원되었는데 동원되면 주민들에게 전표를 주고 그 전표는 옥수수나 밀가루 등을 바꾸어주었다. 그 시절 주민들은 애국심을 생각하기 전에 배고픈 사람이 많았기에 생계수단으로 일했다고 한다. 격납고는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신평마을에 남아있다.[출처]

3. 식량 수탈(개간, 수문건설 등) [편집]

[출처.] https://www.bsgangseo.go.kr/news/view.do?nIdx=9203&mId=0301000000, 강서구청, 강서구보, 배종진, 2022-02-24[출처]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부산 강서구청'에서 '2014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4유형으로 개방한 '(박상기의 강서이야기)(작성자:강서구보, 박상기)'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부산 강서구청, https://www.bsgangseo.go.kr/news/view.do?nIdx=1773&mId=0301000000 '에서 열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