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링크 삭제 이동 독일 (r120 편집) [오류!]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login이상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 기울임 취소선 링크 파일 각주 틀 =====# 잘리어 왕조 #===== 오토 왕조의 마지막 황제 하인리히 2세가 사망한 후, 프랑켄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잘리어가의 콘라트 2세가 황제로 선출되었다. 콘라트 2세와 그의 아들 하인리히 3세의 시대에 황제의 권력은 절정에 이르렀고, 하인리히 3세는 3명의 교황을 폐위시키기도 하였다. 결국 하인리히 3세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 하인리히 4세가 3세의 어린 나이로 선출되면서, 황제의 전제적 권력 행사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대거 분출하였다. 하인리히 4세는 특히나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전면적인 도전을 받아 서임권 투쟁(Inverstiturstreit)에 휘말리면서 카노사의 굴욕을 겪기도 하였고, 말년에는 아들 하인리히 5세에게 제위를 찬탈당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다. 하인리히 5세는 1122년 보름스 협약을 통해 서임권 투쟁을 종결지었다. 이를 통해 황제는 서임권을 포기하는 대신, 성직자에 대해 봉건 영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았다. 독일에서는 봉신으로서의 영주에 대한 충성 맹세가 성직 서임식보다 먼저 거행되어 성직자의 세속적 지위가 강조된 반면, [[이탈리아]]와 [[부르군트]]에서는 성직 서임식이 먼저 진행되어 종교적 지위가 강조되었다. 이로부터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변경 사항 요약 약관 동의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문서를 하면 문서의 편집 역사에 (18.227.111.58)가 기록되며 이에 .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