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링크 삭제 이동 독일 (r120 편집) [오류!]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login이상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 기울임 취소선 링크 파일 각주 틀 ====# 막시밀리안 1세와 제국개혁 #==== 1493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선출된 막시밀리안 1세는 독일사에서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에 위치한 황제로 평가된다. 막시밀리안 1세는 우선 마리 드 부르고뉴와의 결혼을 통해 [[부르고뉴]]와 [[저지대]] 지방을 획득한데 이어 당시 떠오르던 [[스페인 제국|에스파냐 왕국]]과의 결혼 동맹을 통해 합스부르크 가문의 흥기 기반을 닦았다. 또한 1508년 최초로 교황의 대관 없이 대관식을 치룬 황제가 되어 중세 후기부터 이어져 오던 세속권력의 종교권력에 대한 우위를 확실시하였다. 막시밀리안 1세 치세의 무엇보다도 중요한 업적은 1495년 실시한 제국개혁(Reichsreform)이었다. 1495년 보름스에서 열린 제국의회에서 막시밀리안 1세는 제국 내 사적인 무력 행사인 '페데(Fehde)'를 영구적으로 금지한 영구 평화령(Ewiger Landfriede)의 선포, 제국대법원(Reichskammergericht)의 설치, 제국 차원의 일반세인 일반 페니히(Gemeiner Pfennig)의 도입과 같은 제국의 체제 정비를 위한 개혁령을 선포하였다. 1495년의 보름스 제국의회는 '제국의회(Reichstag)'라는 말이 최초로 사용된 회의로, 여기서 광범위한 제국개혁 조치가 실시됨으로써 중세의 궁정 회의(Hoftag)가 그 기능 및 법적 지위가 크게 확대된 제국의회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후 제국개혁은 1498년 또다른 최고 법원인 제국궁정원(Reichshofrat)의 설치, 1500년 통일된 중앙 정부인 제국정부(Reichsregiment) 및 제국을 10개의 지역구로 나눈 제국관구(Reichskreis)의 설치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결코 의식적으로 통일된 중앙 집권 국가 혹은 근대적인 의미의 '국가'를 형성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제후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독일의 자유(deutsche Freiheit)라고 하면서 이를 황제의 전제로부터 보장받아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황제 자신조차도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고 제국 차원에서 통합된 중앙 정부를 형성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제국정부는 기본적으로 제국 내 신분 대표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기에, 황제는 제국정부가 자신의 권력을 침해한다고 여겼다. 제국정부는 1502년 막시밀리안 1세가 폐지한 이후 카를 5세 시대에 잠깐 부활하였으나, 역시 황제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얼마 안가 사라졌다. 변경 사항 요약 약관 동의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문서를 하면 문서의 편집 역사에 (3.14.79.25)가 기록되며 이에 .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