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링크 삭제 이동 독일 (r120 편집) [오류!]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login이상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 기울임 취소선 링크 파일 각주 틀 =====# [[동프랑크 왕국]] #===== 카를 대제 사후 프랑크 왕국은 843년 베르됭 조약에 의해 [[서프랑크 왕국|삼]][[중프랑크 왕국|분]][[동프랑크 왕국|할]] 되었다. 이때 루트비히가 차지한 동쪽 지역(현재의 독일 지방)이 [[동프랑크 왕국]]이 된다. 훗날 프랑스로 이어지는 서프랑크에 비해 동프랑크는 카를 대제 때 새로 병합된 지역이 많았기 때문에 각 공작령들의 독립성이 강했고 이는 독일 분권주의의 기반이 된다. 동프랑크 왕국의 왕권이 약해지는 과정에서 각 부족들의 독립성과 자치권이 강화되는 흐름이 나타났다. 카롤링거 왕조 마지막 국왕인 유아왕 루트비히가 즉위하면서 왕권이 크게 약화되어 900년경 동프랑크 왕국을 구성하는 5대 부족 공작령인 [[작센]], [[프랑켄]], [[바이에른]], [[슈바벤]], [[로트링겐]]은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획득했고 이들을 동프랑크 왕국/[[독일 왕국]]의 5대 부족 공국(Stammesherzogtum)라고 한다. 911년 유아왕 루트비히 4세(재위 900~911)이 어린 나이에 후사없이 죽으면서 카롤링거 왕조의 혈통이 끊기게 되었다. 동프랑크 공작들의 회의를 거쳐 루트비히 4세의 친척인 프랑켄 공작 콘라트 1세(재위 911~918)가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콘라트 1세 시절 왕국 내 각 부족 공국들의 자치가 더욱 강화되었다. 한편 콘라트 1세 이래 공작들의 동의를 얻어 국왕으로 선출되는 관례는 이후 신성 로마 황제를 선출하는 관례로 이어지게 된다. 변경 사항 요약 약관 동의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문서를 하면 문서의 편집 역사에 (3.18.109.154)가 기록되며 이에 .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