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링크 삭제 이동 동로마 제국 (r19 편집) [오류!]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login이상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 기울임 취소선 링크 파일 각주 틀 === [[서로마]] 붕괴 이후 === 유럽에서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폐위당하는 476년 또는 율리우스 네포스가 사망하는 480년을 서로마 제국 붕괴의 해로 보지만 로마 제국에서는 자신들이 로마 제국을 통일한 것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하였고, 이는 타당한 것이였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부는 오도아케르와 동고트의 테오도리크를 형식적이나마 이탈리아의 파트리키우스로 봉한 것을 통해 이탈리아를 자신들이 석권한 것으로 봤다. 동로마 제국은 이후 멸망할때까지 공식 국호를 로마 제국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단순히 적의 영향력하에 들어온 실지 영역으로 인식되었다. 서로마 제국 멸망 당시 동로마의 황제였던 제논는 이탈리아를 회복하고자 모이시아에 정착해 있던 테오도리크의 동고트족과 협상하여동고트족을 이탈리아로 보냈다. 493년 오도아케르가 몰락하자 젊은 시절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산 적이 있는 테오도리크 왕은 이탈리아를 스스로 통치하였다. 테오도리크가 동고트 왕국으로 이탈리아를 통치하자 제논 황제는 서방 영토에 최소한의 명목상 수위권만 지켰다. 491년 로마인 혈통의 관리 출신인 늙은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황제가 되었으나 새 황제는 498년이 되어서야 이사우리아족의 저항을 제대로 통제했다. 자신이 여전히 기운차게 활동할 힘이 넘치는 개혁가이자 유능한 행정가라는 사실을 드러낸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상품 거래에 범용되는 폴리스(follis) 동화의 무게를 최종 결정하여 콘스탄티누스 1세의 화폐 제도를 완성했으며, 세제를 개혁하고 사람들이 싫어하던 크리사르기론 세금을 폐지하였다.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죽을 당시 제국의 국고에는 금이 32만 파운드나 있었다. 아나스타시우스 1세의 개혁은 이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엄청난 대프로젝트인 고토 수복 전쟁을 벌일 수 있게하였다. 변경 사항 요약 약관 동의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문서를 하면 문서의 편집 역사에 (52.15.128.243)가 기록되며 이에 .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