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링크 삭제 이동 영국 (r121 편집) [오류!]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login이상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 기울임 취소선 링크 파일 각주 틀 ====#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 1801년에는 명목상의 [[아일랜드]]의 왕 직위를 없애고 아일랜드도 연합 왕국의 일원으로 편입시켜 국호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으로 고쳤다. 19세기의 대부분을 차지한 빅토리아 시대에는 [[산업혁명]]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고 막강한 해군력과 [[식민지]]를 바탕으로 전세계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에 영국의 인구는 어떤 시기보다도 가장 빠르게 증가했던 시기였지만 인구가 계속 증가했던 잉글랜드, 웨일스 지역과 스코틀랜드 지역과는 다르게 아일랜드 지역은 오히려 인구가 크게 감소해서 많은 차이를 보였다. 해당 시기까지 영국의 수도였던 런던의 인구는 수백 년 동안 끝도 없이 성장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위상을 가진 도시로 번성해 왔다. [[영국]]은 정치, 산업 등이 발전했고 문화적 성취도 세계 최선진에 있었던 국가이다. 유럽 본토의 주류 문화가 귀족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과 달리 영국의 문화는 시민 계급이 주체가 되었다. 대중문화가 나타나서 대중 소설이 나오기도 했다. 이 시기의 영국은 대영 제국이라고 불렸지만 영국 국왕은 한번도 황제를 칭해본 적이 없었다.[* [[유럽]]에서의 황제(Emperor)란 로마의 지배자라는 의미와 통하는 경우가 많아서 비잔티움 제국과 그 정통성을 계승한(혹은 그렇다고 주장하는) [[라틴 제국]], [[트레비존드 제국]], [[니케아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등과 [[가톨릭]]의 권위로 서로마를 계승한 [[신성 로마 제국]] 등이 황제를 썼다.] 대영 제국이라고 불리는 것은 제국주의 시절의 식민지 제국(colonial empire)으로서의 의미가 강했고[* [[프랑스]]는 왕국, 공화국, 제국 등의 본국의 정치 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시기를 통틀어서 프랑스(식민)제국이라 불렸다.] 영국 국왕의 칭호 중 하나에 황제가 생긴 것은 [[무굴 제국]]의 멸망 이후에 인도의 황제를 겸하면서부터이다.[* [[영국]]은 19세기부터 [[인도]]를 거의 완전히 통치하고 있었지만 세포이 항쟁을 거쳐 1872년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여제 칭호를 사용하기 전에는 이미 세력이 약해진 [[무굴 제국]]의 황제가 명목상 인도의 황제였고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했던 국가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기도 했다.[* [[뉴질랜드]]와 영국 사이의 시간차는 12시간으로 정반대에 있어서 대영 제국에서 완벽히 해가 지는 것을 보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했다.] 대영 제국도 식민지에 큰 영향을 남겼는데 표면적으로는 모든 인종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간주하기도 했지만 현실에서는 열등한 유색 인종들에게는 아직, 어쩌면 영원히 스스로를 다스릴 자격이 없다는 원칙이 적용되기도 했다. 아메리카 인디언 학살,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학살,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내전 등의 분쟁과 인종주의적인 문제도 일으켰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에 뿌리내린 봉건적 악습들이 폐지되고 영국의 법과 제도적 전통이 정착하면서 그러한 혜택은 식민지 시대 이후 독립 후에도 꾸준히 이어지게 되었다. 변경 사항 요약 약관 동의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문서를 하면 문서의 편집 역사에 (18.191.180.60)가 기록되며 이에 .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