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링크 삭제 이동 프랑스 (r114 편집) [오류!]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login이상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 기울임 취소선 링크 파일 각주 틀 ====# [[냉전]] 시기 #==== 이후 [[알제리]], [[베트남]] 등의 [[식민지]]들을 놓지 않으려고 전쟁까지 벌였지만, 결국 패배하고 물러났다. 알제리, 베트남 등의 식민지 지배를 포기하지 않으려던 [[프랑스 제4공화국]] 정권은 [[자유 프랑스]] 망명 정부의 지도자로 명망을 얻은 샤를 드골이 정권을 장악하여 없어지고 [[프랑스 제5공화국]]을 수립했다. 냉전 기간에 프랑스는 [[NATO]]를 탈퇴하고 독자 노선을 선언해서 미국과 영국 중심의 유럽 질서에 정면으로 대립하면서 국민 감정도 꽤나 소원해졌던 적이 있다. 당시 프랑스가 [[NATO]]에서 탈퇴한 원인 중 하나는 프랑스의 핵무기 개발을 미국과 영국이 저지하려고 시도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핵무기는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강대국의 상징이었고, 미국의 관점에서는 프랑스 같은 나라까지 핵무기를 가지게 하여 핵을 확산시킬 의사가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1956년 일어났던 [[제2차 중동전쟁]]에서 영국-프랑스 동맹은 [[수에즈 운하]]를 점령했지만, [[소련]]은 철수하라는 요구를 하면서 노골적인 핵공격 위협을 했고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이집트 점령을 지지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으며, 자신들이 받게 된 취급을 굴욕으로 느꼈다. 프랑스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영국이 미국과 함께 프랑스의 핵개발에 반대한 것이었다. 영국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자금, 기술, 인력을 지원한데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미국과 비밀 협정을 통해 전후 핵기술을 공유하기로 합의까지 해 놓은 상태에서 미국에게 배신당해놓고도, 자체적으로 1957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자 곧바로 미국 편을 들면서 프랑스를 방해했다. 수에즈 운하 사건에서 함께 소련의 핵공격 위협과 미국의 냉대를 받았던 영국이 프랑스의 핵개발을 방해하는 것은 상당한 충격을 받게 했다. 프랑스는 국방비의 상당 부분을 핵개발에 쓰는 강경한 정책을 펼쳐 핵을 얻는다. 그러나 핵개발 성공 이후에도 미국과 영국은 프랑스를 냉대했고, 결국 프랑스는 [[NATO]]를 탈퇴하고 독자 노선을 강행하게 된다. 변경 사항 요약 약관 동의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문서를 하면 문서의 편집 역사에 (3.145.201.17)가 기록되며 이에 .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