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링크 삭제 이동 김대중 (r122 편집) [오류!]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assistants이상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 기울임 취소선 링크 파일 각주 틀 === 정치 활동 === [include(틀:추가바람)] 1954년 목포시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지만 낙선한다. 이후로 김대중은 수많은 낙선을 겪는다. 김영삼이 수많은 당선을 겪은 것과는 대조적. 한편 목포에 있다가 영월군 의원으로 가기도 했다. 7대, 13~15대 총 4번을 대선에 도전했으며 15대 대선에서 끝내 당선된다. 7대 대선 이후 [[박정희]]가 유신 체제를 발동하자 일본에서 귀국을 거부했는데도 납치를 당했다. 이후 실질적 가택연금 상태에 들어간다.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대국적으로 총살당하자 가택연금이 해제되었으나 [[전두환]]이 DJ의 측근들을 마구 고문했고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전 세계에서, 특히 미국에서 사형시키지 마라고 압박을 넣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당해 간신히 살았다. 1982년 12월 그 유명한 [[앙망문]]을 전두환에게 쓰고 미국으로 망명한다. 전두환이 몰락하고 13대 대선에서는 [[김영삼]]이랑 단일화 안하고 나와서 [[노태우]]에게 발린다. 14대 대선에서도 김영삼에게 발린다. 패배 후 [[정치 안해요|정치를 안한다면서]] 정계 은퇴 선언을 했으나 제 15대 대선을 위해 정계복귀를 하는 통수를 갈긴다. 대통령 시절 행적은 [[국민의 정부]] 문서 참조. 이후 얌전히 있다가 친구 [[노무현]]이 국정원에 데뷔하자 충격을 받고 얼마 안 가 본인도 친구따라 국정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변경 사항 요약 약관 동의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문서를 하면 문서의 편집 역사에 (3.133.144.197)가 기록되며 이에 .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