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최근 수정 시각:
하나회는(은) 김땡삼을(를)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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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사망 | |
자택 |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김영삼대통령묘소 |
학력 | |
재임기간 | 제14대 대통령 |
1. 개요 [편집]
IMF
Mr.IMF (金03)이란,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출신 제14대 대통령이다. 삼김의 일원으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여 끝끝내 집권에 성공한 인물이다. 집권 성공 시기 소속 정당은 민주자유당.
직간접적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한데, 이회창, 이인제, 이명박, 손학규, 이재오, 홍준표, 안상수, 정의화, 김문수, 이방호, 심재철, 박형준, 김태호, 노무현, 안희정, 이광재 등 많은 정치 거물들을 정계로 이끌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IMF 외환위기로 사실상 끝장나기 전까지 그의 직계 정치세력은 상도동계로 불렸다.
퇴임 후 가끔씩 언론 등에 근황을 보이다가 2015년에 급성 패혈증, 급성 신부전으로 사망했다.
생전에 칼국수를 존나 좋아했었다. 맛잘알 ㅇㅈ.
Mr.IMF (金03)이란,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출신 제14대 대통령이다. 삼김의 일원으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여 끝끝내 집권에 성공한 인물이다. 집권 성공 시기 소속 정당은 민주자유당.
직간접적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한데, 이회창, 이인제, 이명박, 손학규, 이재오, 홍준표, 안상수, 정의화, 김문수, 이방호, 심재철, 박형준, 김태호, 노무현, 안희정, 이광재 등 많은 정치 거물들을 정계로 이끌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IMF 외환위기로 사실상 끝장나기 전까지 그의 직계 정치세력은 상도동계로 불렸다.
퇴임 후 가끔씩 언론 등에 근황을 보이다가 2015년에 급성 패혈증, 급성 신부전으로 사망했다.
생전에 칼국수를 존나 좋아했었다. 맛잘알 ㅇㅈ.
2. 일생 [편집]
6.25 이후 장택상의 비서로 활동하다 1954년 3대 국회의원에 당선됨으로서 정치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당선 당시 나이가 만 25세라서 최연소 국회의원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이 타이틀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이후 5~10대, 13,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국회의원 9선을 달성한다. 이 기록은 김영삼 말곤 박준규와 김종필만이 가지고 있다.
박정희 때 험한 꼴 많이 봤다. 차 타고 집에 가는데 차가 질산 맞았다. 질산 맞은 차는 그날부로 폐차 처분됐다.
기껏 당 총재로 뽑혔는데 탈락한 이철승 새끼가 김태준 깡패 패거리에게 시켜 습격하는 바람에 구두도 못 신고 양말 바람으로 3층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 이때 김영삼은 당하고 있을수만 없다며 깡패를 사다가 김태준 깡패 패거리와 맞붙게 했다.
박정희가 발터ㅂ 맞은 후 전두환이 집권하고 이번엔 가택연금도 당해본다.
이후 전두환이 물러나고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하는데 김대중이랑 단일화 안 하고 나와서 노태우한테 발렸다.
하지만 김영삼에게는 천만 다행으로 노태우는 박정희나 전두환과는 달리 사람이 존나 물렁했다.
그래서 박정희 같으면 또 질산 맞을 판이었지만 노태우가 물러터져서 김영삼에게 먼저 합당하자고 손내밀었다. 그래서 박정희의 잔당 김종필과 같이 말랑말랑한 노태우와 3당 합당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김영삼의 계략이었고 합당 생각했을 때부터 하나회 조지려고 칼 갈고있었다. 군정종식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던 김영삼은 군정을 끝장내기 위해 노태우의 밑으로 들어가서 노태우의 열렬한 후계자를 자처했다. 이는 함정으로 김영삼은 노태우의 후계자로 확정되어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나와서 당선되자마자 싹 안면몰수하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체포해버렸다. 이렇게 김영삼은 스스로의 정치성향까지 바꿔가며 기어이 군사정권을 끝장내버렸다.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지방자치제, 금융실명제 등의 정책을 폈으나 임기 말인 1997년 한보 사태로 촉발된 IMF 사태가 터지면서 개같이 멸망하고 직계 정치세력인 상도동계도 공중분해된다.
이때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은 거의 5퍼센트밖에 안됬는데 이는 ㄹ혜 탄핵 되었을때와 비슷한 수준이고 당시 국민들에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천벌받을 인물로 전땅크를 제치고 당당하게 1위에 올랐다.
퇴임 후 가끔씩 언론에 근황을 보이다가 2015년, 본인이 IMF구제금융을 요청한 날로 부터 정확히 18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5~10대, 13,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국회의원 9선을 달성한다. 이 기록은 김영삼 말곤 박준규와 김종필만이 가지고 있다.
박정희 때 험한 꼴 많이 봤다. 차 타고 집에 가는데 차가 질산 맞았다. 질산 맞은 차는 그날부로 폐차 처분됐다.
기껏 당 총재로 뽑혔는데 탈락한 이철승 새끼가 김태준 깡패 패거리에게 시켜 습격하는 바람에 구두도 못 신고 양말 바람으로 3층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 이때 김영삼은 당하고 있을수만 없다며 깡패를 사다가 김태준 깡패 패거리와 맞붙게 했다.
박정희가 발터ㅂ 맞은 후 전두환이 집권하고 이번엔 가택연금도 당해본다.
이후 전두환이 물러나고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하는데 김대중이랑 단일화 안 하고 나와서 노태우한테 발렸다.
하지만 김영삼에게는 천만 다행으로 노태우는 박정희나 전두환과는 달리 사람이 존나 물렁했다.
그래서 박정희 같으면 또 질산 맞을 판이었지만 노태우가 물러터져서 김영삼에게 먼저 합당하자고 손내밀었다. 그래서 박정희의 잔당 김종필과 같이 말랑말랑한 노태우와 3당 합당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김영삼의 계략이었고 합당 생각했을 때부터 하나회 조지려고 칼 갈고있었다. 군정종식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던 김영삼은 군정을 끝장내기 위해 노태우의 밑으로 들어가서 노태우의 열렬한 후계자를 자처했다. 이는 함정으로 김영삼은 노태우의 후계자로 확정되어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나와서 당선되자마자 싹 안면몰수하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체포해버렸다. 이렇게 김영삼은 스스로의 정치성향까지 바꿔가며 기어이 군사정권을 끝장내버렸다.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지방자치제, 금융실명제 등의 정책을 폈으나 임기 말인 1997년 한보 사태로 촉발된 IMF 사태가 터지면서 개같이 멸망하고 직계 정치세력인 상도동계도 공중분해된다.
이때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은 거의 5퍼센트밖에 안됬는데 이는 ㄹ혜 탄핵 되었을때와 비슷한 수준이고 당시 국민들에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천벌받을 인물로 전땅크를 제치고 당당하게 1위에 올랐다.
퇴임 후 가끔씩 언론에 근황을 보이다가 2015년, 본인이 IMF구제금융을 요청한 날로 부터 정확히 18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3. 인간 관계 [편집]
자세한 내용은 김영삼/인간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
4. 평가 [편집]
4.1. 긍정적 평가 [편집]
- 하나회 숙청 및 독재정권 잔재 청산
- 금융실명제 실시
-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4.2. 부정적 평가 [편집]
- 경제감각 제로, IMF 외환위기 발생
- 반일선동
- 노동법 날치기 통과
4.3. 논란이 있는 평가 [편집]
- 3당 합당
- 지방자치제
5. 선거 이력 [편집]
6. 어록 [편집]
"전두환이는 와 불렀노, 대통령도 아이데이. 죽어도 국립묘지 몬 간다."
"니는 청와대에 술 처무러 왔나?"
"명예가 아닌 부를 택한다면 공직을 떠나라"
"달러가 없어? 달러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데?"
"김대중은 입만 열면 숨 쉬는 것 빼고 다 거짓말"
"노무현은 의리가 없어요."
"이카믄 되겠제?"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일본놈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7. 둘러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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