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링크 삭제 이동 최규하 (r27 편집) [오류!]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assistants이상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 기울임 취소선 링크 파일 각주 틀 [include(틀:공사)] [include(틀:대한민국 대통령)] ---- ||<-2><tablealign=right><tablewidth=450><tablebordercolor=#000000><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6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fff 70%, #fff 80%, #cd313a 80%, #cd313a 90%, #0047a0 90%, #0047a0);" {{{#!wiki style="text-align: left; margin: 0 5px -20px 0"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_대통령_휘장.png|width=45]]]]}}}'''{{{+2 최규하}}}''' [br] {{{-1 崔圭夏[* 일제강점기 말기 창씨개명한 일본식 이름은 '우메하라 케이이치(梅原圭一)'] | Choi Kyu-hah}}}}}}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최규하대통령.jpg|width=100%]]}}} || ||<-2> '''프로필''' || ||<|2><width=100> '''출생''' ||1919년 7월 16일 || ||[[강원도]] 원주군 원주면 봉산리 [br] (現 강원도 원주시 봉산로 134) || ||<|2> '''사망''' ||2006년 10월 22일 (향년 87세) ||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 || '''자택'''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15길 10[* 서교동 467-5] || ||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원수 묘역 || ||<|2> '''재임기간''' ||<bgcolor=#F5F5F5,#2D2F34>제10대 대통령 || ||1979년 12월 6일[* 보궐선거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당선 확정과 동시에 임기 시작. [[http://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Stream.do?filePath=R:/EBOOK//R/gazette-ebook-20061019/1979/eBook_Contents/ba0194321/ba0194321_30.jpg&pageInfo=1|관보]]. 1984년 12월 26일로 예정된 박정희의 잔여임기를 수행하게 되었다.] ~ 1980년 8월 16일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관료. 제10대 대통령이자 박정희 대통령 사망 직후 권한대행을 지냈던 인물이다. 소속 정당은 [[무소속]]. [[윤보선]]과 함께 인지도가 없는 공기 취급 대통령이다. == 평가 == 임기가 짧아서 딱히? === 긍정적인 평가 === 비록 [[12.12 군사 반란]]과 [[5.17 내란]]으로 좌절되긴 했지만 유신 체제를 종결시키고 민주화 세력에게 권력을 이양하기로 약속한 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두화이햄의 정승화 체포 동의안에 '''사후 재가'''란 점을 분명히 하며 훗날 [[12.12 군사 반란]]이 쿠데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남겼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전두환의 쿠데타를 사실상 묵인한 것 때문에 비판을 받기는 하나, 전두환에게 "당신은 정치인이 아니라 군인"이라며 눈치를 주거나 전두환이 건네는 돈을 '뇌물'이냐며 탐탁치 않아 했으며, 지속적으로 군대를 견제한 점을 들어 최규하는 할 만큼 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리고 청렴함으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 정적들조차도 최규하의 청렴함만큼은 인정했을 정도로 청렴함만큼은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 부정적인 평가 === 너무 허수아비 이미지가 강해서 대부분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최규하는 그 악명 높은 유신 체제 하의 대통령이었다. 그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으나, 12.12 군사 반란과 5.17 내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건 당연히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규하가 12.12 정국에서 한 건 사후재가가 다다. 또한 민주화 이후에는 12.12 군사 반란과 5.17 내란 등 신군부의 쿠데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아니, 당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것 때문에 까인다. 또한 그 당시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전두환조차도 비망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했는데도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갔다. 이러한 점은 훗날 최규하 기념 사업을 지지부진하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기념을 하려고 해도 뭐라도 남은 게 있어야 기록을 하는데, 최규하는 정말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것. 다만 일부 기록을 남긴 게 있었다고는 하나, 일부는 최규하 생전에 소실됐고, 일부는 유족들이 끝까지 비공개로 남겼다. === 총평 === 직업 정치인임에도 군대에 의해 허수아비로 전락한 [[윤보선]]과 달리 이쪽은 원래도 우유부단한 지도자로 꼽힌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정치적인 욕심은 전무했고, 이 때문에 정치적인 평가를 받는 일 자체가 드물다. 다만 비슷한 케이스로 꼽히는 [[윤보선]]이 부정적인 평가가 조금 더 우세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최규하는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 여담 == * 현재 유일한 [[강원도]] 출신 대통령이다. *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에 부역했다는 의혹이 있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의혹 선에서 그쳤고, 대한민국 정부에서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나 친일인명사전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 박정희 정부에서 등용되었기는 하나, 사실 박정희는 최규하가 [[이승만 정부]]에서 등용된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최규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동원 외무부장관의 추천으로 최규하를 써먹기 시작한 뒤로는, 최규하의 정치적 야망이 없다는 점 때문에 최규하를 다양한 곳에 써먹었고, [[김종필]]이 건강상의 문제로 국무총리에서 사임하자 국무총리에 등용하기까지 했다. == 관련 문서 == == 둘러보기 == [include(틀:서울의 봄)] [각주] [[분류:일반 문서]][[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ㅊ]][[분류:대한민국 대통령]][[분류:국무총리]][[분류:교육인]][[분류:외교관]][[분류:이승만 정부/인사]][[분류:박정희 정부/인사]][[분류:12·12 군사 반란/관련 인물 및 단체]] 변경 사항 요약 약관 동의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문서를 하면 문서의 편집 역사에 (3.15.143.181)가 기록되며 이에 .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