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이런 글만 써서 미안해
World Professional Association for Transgender Health 트랜스젠더 건강을 위한 세계 전문가 협회, DSM-5, 그리고 대부분의 실제 치료사들은 성전환증을 겪는 사람들이 성전환(Transition)하는 이유는 젠더 불쾌감(Gender Dysphoria)를 경감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젠더 불쾌감은 사회적, 감정적, 신체적, 성적, 정신적, 또는 복식적인 불안감을 말한다. 대부분은 사회적인 방법으로 또는 의학적인 방법으로 한 사람의 정신적 성별에 맞게 성전환하는 것으로 경감된다. 이것이 현대 주류 과학의 시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블랜차드는 트랜스 여성들은 우선적으로 성적인 동기에 의하여 성전환을 행한다고 보았다. 또한, 트랜스 남성이나 제3의 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블랜차드는 트랜스 여성들은 호모섹슈얼 트랜스섹슈얼과 논-호모섹슈얼 트랜스섹슈얼로 나뉜다고 보았다. 첫번째로 호모섹슈얼 트랜스섹슈얼은 여성적인 게이 남성들이고, 사회적으로 그들이 여성적인 게이 남성으로서보다 여성으로서 더 잘 받아들여지며, 이성애자들과의 만남에서 더 성공적일 수 있기 때문에 성전환을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자가여성애적 트랜스섹슈얼이다. 이 미친 변태새끼들은 거울만 보고도 딸칠 수 있는 것이다. 블랜차드는 이 그룹은 자가여성애적 이성애자, 양성애자, 혹은 무성애자 남성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블랜차드에게 그들의 성적 지향은 중요하지 않은데, 이들을 모두 다른 무엇보다 먼저 여자가 되는 것에/ 여자가 되는 생각을 하는 것에 성적으로 흥분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그런 성적 흥분을 성전환의 첫번째 동기로 본 것이다.
블랜차드가 두 그룹으로 나눈 것이 아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트랜스젠더들은 블랜차드가 제시한 두 유형과 유사하게 나뉘는 경향이 있는데, 한 그룹은 남성적인 것에 성적 매력을 느끼며, 주로 어릴 때부터 여성적인 특성을 보이고 일찍 성전환을 한다. 다른 그룹은 여성적인 것에 성적 매력을 느끼며, 앞의 그룹에 비해 늦은 시기에 성전환을 한다. 어릴 때는 평범하게 남성적으로 보였다는 것도 부합한다.
처음에 이런 유형 구분을 보면, 꽤 잘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에 대해 생각해보면 할수록, 그 허점은 점점 더 크게 드러난다. 첫번째 그룹처럼 주로 어릴 때부터 여성적인 특성을 보이고 일찍 성전환을 했지만, 여성들에게만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경우도, 두번째 그룹처럼 주로 어릴 때부터 남성적인 특성을 보이고 늦게 성전환을 했지만, 남성들에게만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경우도 허다하다.두 그룹 간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하는 것같아보여도 어디까지나 경향성에만 그칠 수 있을 뿐, 어릴 때부터 여성적인 특성을 보인다고 저 아이는 남자를 좋아하겠군. 이라고 말할 수는 절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을 해도 두 그룹으로 나누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블랜차드가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블랜차드에게는 HSTS나 자가여성애적 트랜스젠더들의 성전환 동기는 완전히 다른 심리학적 요인에서 기인한 것이고, 두 그룹 사이의 경계에 걸친 이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블랜차드는 성전환 동기를 뚜렷하게 차이나는 단 두가지, 동성애자 남성의 데이트 전략과 자가여성애적 성욕으로 나눈 것이다! 많은 트랜스 여성들은 이를 자신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고했지만, 블랜차드는 이 모두를 거짓말로 넘겨버렸다. 사실, 블랜차드의 이론 자체는 딱봐도 허술하고 과학적이라 할 수 없었기에 망각의 바다 속으로 잊혀져가고 있었지만...갑자기 이 이론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계기가 생겨난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J. 마이클 베일리가 자신의 대중과학 저서 '여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에서 블랜차드의 이론을 소개하며 이 이론은 약간의 유명세를 얻게 된다. 이 책에서는 호모섹슈얼 트랜스섹슈얼을 매우 섹시한 선천적인 성노동자로서 성적 대상화하고 있다. 이 다음 베일리는 단 섹스 로봇을 개발한 단 한 명의 사례만을 매우 자세히 묘사하며, 그녀를 자가여성애적 트랜스 여성으로 소개한다. 엄청나게 변태적인 묘사도 곁들여서 말이다.
이게 성전환증과 무슨 상관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베일리는 그녀를 아주 표준적인 자가여성애적 트랜스 여성의 사례로 보며 그녀의 것과 같은 성적 페티시즘을 모든 논-호모섹슈얼 트랜스섹슈얼 여성의 동기라고 주장한다. 즉 블랜차드와 베일리에 따르면 그들 모두는 오로지 그들의 이상성욕을 충족하기 위해 상담사에게 장황한 거짓말을 늘어놓고 그들의 쥬지를 자르는 것이다.
베일리의 '과학 서적'이란 게이 바에 가서 몇명과 얘기 좀 하고 책으로 펴낸 것이니...그럴만도 하다.
아무튼 이런 허술하고, 어쩌면 이론 자체가 블랜차드와 베일리 그들 자신의 성적 페티시즘인 것같은 이 이론은 과학계와 트랜스젠더들에게 당연히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블랜차드와 베일리의 옹호자들은 이를 '나르시시스트적 분노'로 일축해버렸다. 그야 이 이론에 따르면 여성이 된 자기 자신의 모습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나르시시스트들이니,
그들의 나르시시스트적 자아가 상처를 입으면 발광하지 않겠는가?
...그럼 이에 대한 논쟁은 뒤로 하고, 왜 자가여성애 이론이 틀렸는지 진짜 요점으로 넘어가자. 블랜차드의 유형론의 문제야 앞에서 소개했지만,
자가여성애라는 이상성욕을 지닌 개인이 그 때문에 성전환을 하는 것이야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블랜차드의 이론은 '여성의 영혼' 이론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으로서 소개된다.
여성의 영혼 이론이란 뭐...별 거 아니고 트랜스 여성은 '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의 영혼'이라는 상투적인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블랜차드의 옹호자들은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이 이 이론을 도그마로서 떠받들며 이 이론에 반박하는 연구자들을 마녀사냥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들에게 이 전통적 이론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블랜차드의 이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대 주류 과학은 두 이론 모두 거부한다는 것이다.
남성의 영혼이나 여성의 영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과학적인 용어로 인정받지 못한다.
생물학적으로 만들어진 혹은 습관화된 행동들, 그리고 이런 행동에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있을 뿐이며,
이것들은 대체로 바뀔 수 없는 영원불변한 것이 아닌 바뀔 수 있는 가변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자신의 모습이 자신에게 적합하게 느껴지는 성별에 부합하지 않음을 느낄 때
젠더 불쾌감을 느끼며 이는 많은 경우 우울증, 심한 경우 자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젠더 불쾌감은 앞서 말했듯 사회적, 의학적 성전환을 통해서만 경감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렇다면 자가여성애 이론의 경우에는 어떨까?
어떤 시스젠더 남성들은 자신들의 성기 사진을 찍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기까지 하기도 한다.
이것이 그들을 자가남성애자들로 만드는가?
어떤 시스젠더 여성들은 야한 란제리를 사서 입지만, 남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시스젠더 자가여성애자들인가?
어떤 여성잡지는 거울을 보며 자위하는 것이 흥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소개하기까지 한다.
아무래도 세상에는 생각보다 자가남성/여성애자들이 많은 것같다.
그렇다, 일반적으로는 평범하게 받아들여지는 섹슈얼리티가, 트랜스 여성에게 존재하는 경우
이는 XX필리아가 붙을만한 이상성욕이 되는 것이다.
정작 여성호르몬을 복용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대부분 성욕이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변화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블랜차드의 자가여성애에 대한 이론을 곰곰히 들여다보면, 어떠한 형식으로 이 이론이 생겨났는지가 보인다.
바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에 대한 선입관이 하나로 합쳐진 결과물이다.
동성애자를 성욕이 첫번째 동기인 변태성욕자로서 보는 선입관과
트랜스 여성을 나르시시스트로서 보는 선입관이다.
이런 선입관 위에 블랜차드는, 자신의 가설을 세우고 트랜스 여성들의 증언은 단순히 자기부정으로서 일축하면 되는, 반증불가능한 완벽한 이론,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가치가 없는 이론을 쌓아올렸다.
...그렇다면 자가여성애가 그렇게 잘못되었는가? 물론 아니다.
여성의 옷을 입는 것에 흥분하거나 여성의 신체를 가지는 것에 흥분하는 남성들은 분명 존재하며,
다른 대부분의 이상성욕처럼 이는 매우 무해하다.
그러나 정말로 자가여성애적인 트랜스 여성이 존재하느냐의 문제는 더 복잡하다.
트랜스 여성이라고 해도 여전히 남성적 신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성의 몸을 가지는 상상이나 여성으로서 성관계를 하는 상상에 흥분하는 경우는 존재한다.
'존재한다'지 '반드시 그렇다.'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다.
또, 이런 이른바 자가여성애적 증상을 보이는 트랜스 여성들의 경우에도
사회적, 의학적 성전환을 지속함에 따라서 자가여성애적 성적 환상들이 점점 사라져갔다.
그런데 블랜차드의 이론에 따르면 오직 이런 흥분만이 논-호모섹슈얼 트랜스 여성이
여성의 신체를 갖고 싶어하는 이유이며 그녀가 내보이는 어떠한 여성성도 남성적 성적 욕망의 부산물일 뿐인 것이다.
심지어 블랜차드의 논문에서조차 이렇게 말하고 있다.
"논-호모섹슈얼 트랜스섹슈얼 여성들의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자가여성애적 성향은 점차 감소하였지만
트랜스섹슈얼로서 남고자 하는 의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블랜차드의 말대로 트랜스 여성들이 자가여성애 이상성욕을 지닌 남성들이며 그것이 성전환을 하는
동기라면, 그들은 그들의 자가여성애 이상성욕이 사라진 뒤에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더 이상 선호하지 않아야 한다.
블랜차드의 이론은 확대해석과 일반화로 얼룩져있고, 비일관적 설명이 여기저기 덧붙여져서
오컴의 면도날로 난도질해버릴 수 있다.
조금 더 자세하고 엄밀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줄리아 세라노를 참고하라.
https://www.juliaserano.com/av/Serano-CaseAgainstAutogynephilia.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