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는데


유독 그들의 비합리적인 엘리트 의식이 역겨워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성적에 따라 인생 수준이 맞춰지는 것이 정당하다.' 


'공부 안한 8등급 9등급 날라리들 잘되는 꼴이 보기 싫다.' 


'성적 순으로 인생을 맞추는게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


이런 병적인 서열 강박증과 박탈감 의식이 역겨웠습니다. 


성적이 다른 것이랑, 돈을 버는 것은 별개인데 왜 나쁘다고 생각하냐고 물어볼 때

"자신들은 이렇게 공부해서 대학을 나와도, 처음부터 거대기업으로 들어가는 것 아니면 대개 월 300 400에서 시작하는데, 저 날라리들은 공부도 안 했으면서 꽁으로 돈을 벌어서 잘난 체 한다." 


"무식한 놈들이 돈을 많이 벌면 이상한데 써서 나라 경제가 안 돌아간다. 똑똑한 사람이 돈을 많이 받고 이끌어야지 나라 경제가 잘 돌아간다."


이런 궤변을 내놓아서 충격적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학벌 수준에 인생 수준을 맞추려 드는 것일까요? 


자신들이 달려온 한국의 성적 마라톤 12년이 무의미 해졌다는 사실을 직면하는게 두려웠던 것일까요?  




그들이 열등감을 표출하는 대상들은, 높은 학력이 무조건 요구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자영업자, 인터넷 방송인, 인플루언서, 육체노동자, 기술직 노동자, 연예인 등 다양한 직업들입니다. 


그 엘리트주의자들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든 간에, 얼마나 성실하게 살던 간에


고귀하고 우월한 지식 노동을 하는 자신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저급한 노동을 하는 존재라고 어떻게든 밑바닥으로 내려다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것과는 별개로, 불쌍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학벌 마라톤에서 높은 성적을 받을수록 그에 비례해서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12년을 달려왔는데


그 믿음을 누가 만들었죠? 그들이 배우고 자란 주변에서 만들었죠.


그리고 쓰디 쓴 현실에 부딪힌 사람들이 그 믿음을 지키려고 발악하고 있습니다. 


슬프게 이 믿음은 높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만 가진 것이 아닙니다.




N수생 친구들 중에서, 수능에 중독되어 1등급 금메달을 노리고 수능 마라톤을 반복하는 친구들이 보이는데


저는 볼때마다 안쓰럽게 느껴져 차라리 학벌 마라톤을 포기하고, 그 대신에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찾으라고 조언했죠. 


그런데 그들은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한국에서 학벌 낮으면 무시받잖아.'


'사람 취급 못 받잖아.'


차별이 내면화된 모습에 저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고, 악순환의 고리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좋은 학벌을 쟁취한 사람들이 충분한 자존감을 얻지 못하면, 자신들의 상대적인 존재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낮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을 모욕하고 짓밟고 못살게 굽니다. 


낮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은 그게 한이 되어서, 학벌 마라톤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달리죠.


그리고 그 마라톤에서 넘어지고 고꾸라지길 반복한 사람들, 혹은 만족하지 못하고 굴레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인생이 잘 되는 경우보다 망가지고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 시대는 좋은 학벌을 가져도, 그것이 바로 좋은 소득과 삶로 이어지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서강대 나온 경영학과 30명 중에서, 취업한 애들이 2명에 불과할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죠. 


고속성장기의 출세 신화처럼 학벌로 출세하기 위한 허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고.


학벌마라톤만 바라보고 달려온 학생들에게는 큰 절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노의 화살을, 학벌마라톤의 낙오자, 혹은 탈출자들에게 돌리면서 


출세 신화가 끝난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 악순환.....


그들이 언제 현실을 깨닫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