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ts물 소설 번역 채널




 그 여자는 웃고 있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시체 냄새가 감돌고, 사방에서 울부짖는 백성들에 둘러싸여. 그런 지옥 한가운데서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고 서 있었다.



 제국 최악. 렉스, 클라리스, 엠마가 최대한 경계하는 여자. 3대 장군 중 최약체인 미노 장군이 이 참상 속에서 여유롭게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 렉스"


"너희들은 말하지 마. 내가 다 처리할 테니까."


"으음,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굴면 힘들어. 좀 더 편하게 얘기해볼래? 자, 친근하게, 친근하게..."




 긴장이 풀릴 정도로 긴장감 없는 밝은 목소리. 미노는 작은 수첩으로 입을 가린 채 동그랗게 뜬 눈을 렉스에게 향하고 있다.




 ......찌릿찌릿, 공기가 얼어붙는다. 이전에 성에서 만났던 그녀와는 차원이 다른, 정체모를 공포와 오한이 내 등골을 훑었다.




"무슨 볼일이냐. 볼일 없으면 다신 나한테 말 걸지 마."


"... 유감스럽게도 제대로 볼일이 있거든."


"그럼 빨리 말해."


 


 렉스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런 폭발 직전의 사자를 놀리듯이 그 여자는 렉스의 눈앞에서 웅크리고 올려다보며 말을 이어간다.




"검성 렉스. 지금 시각을 기해, 당신에 대한 명령계통을 내 지휘 하에 변경합니다."


"... 네?"




 미풍에 분홍색 곱슬머리가 흔들린다.




"이건 당신의 고용주의 의향이기도 해. 내가 부탁해보니 엠마는 쾌히 동의해줬거든."


"아니! 그런 얘기는 못 들었어!"


"응, 방금 이야기를 통과시켰거든."




 스윽, 미노는 자신의 뒤편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을 따라 보니 안색이 창백해진 엠마가 병사들에 둘러싸여 주저앉아 있었다. ... 그 표정은 우울하고 초췌해 보였다.




"이봐! 엠마 무슨 일이야!"


"..."


"나를 팔아넘긴 거야? 장난치지 마, 이런 악마 밑에서 누가 일하겠어!?"




 격분한 렉스는 분노에 찬 채로 엠마에게 다가갔다. 소녀의 그 작은 몸뚱이를 양팔로 들어올려 윽박질렀다.




"난 너와 페니를 믿고 의뢰를 받았어! 이런 짓을 당할 거였다면 난 왕도에 안 왔어!!"


"... 죄송해요."


"너 미노와 짜고 있었냐!?"


"죄송해요. 죄, 송, 해요..."




 렉스에게 멱살을 잡힌 작은 참모에게서 나온 건 눈물 섞인 사과였다.




 눈을 빨갛게 부어올리고 너무나 억울한 듯 목소리를 떨면서 엠마는 울며 렉스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 엠마, 너."


"저는 페니 님의 참모입니다. 죄송해요, 당신들과 페니 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페니 님을 우선시합니다."


"..."


"배신자라 욕하고 질타해도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페니 님만큼은 배신할 수 없어요..."


"... 협박당한 거냐, 엠마."




 렉스는 그대로 조용히 우는 엠마를 땅에 내려놓았다.




 ... 보아하니 엠마는 렉스와 우리들을 원해서 팔아넘긴 게 아니다. 뭔가로 위협받아 미노에게 굴복한 거다.




"미안, 내가 좀 차분하지 못했어."




 엠마에게 작게 사과하고 렉스는 미노 장군을 마주했다.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키만큼 큰 대검에 손을 얹으면서.




"내가 네 명령을 들을거 같아? 난 거점으로 돌아간다. 우린 자유로운 모험가다, 엠마가 의뢰하는 게 아니면 따를 이유가 없어."


"흐응? 냉정하네, 그럼 왕도의 백성들은 마왕군에게 짓밟히겠네. 네가 없으면 많은 사람이 죽어버릴 거야."


"마왕군과 싸우는 건 제국군의 일이잖아? 난 그냥 모험가일 뿐, 나라의 앞날에 책임질 이유는 없어."


"난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야. 책임을 떠넘기는 게 아니라고."


  


 격분하고 있는 렉스는 한 칼에 미노의 목을 날릴 수 있을 거리까지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시원한 얼굴로 그런 렉스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순수한 사실이야 렉스. 네가 왕도를 떠나버린다면 여기서 살아가는 수십만 명의 백성이 전멸할 거야."


"내가 알 바 아냐."


"그럼 어쩔 수 없네. 네가 있기만 하면 죽지 않아도 될 목숨인데... 최강의 검성 님이 하찮은 감정에 휘둘려 도망쳐버리다니. 불쌍하네, 왕도 사람들."




 찰칵, 하고 렉스가 검을 뽑는다. 거기는 이미 미노의 목에 검이 닿을 거리다. 렉스가 마음먹기에 따라 다음 순간이라도 미노의 목과 몸통이 떨어질 것이다.




"그 이상 더러운 입을 벌리면 죽인다."


"... 그만해, 무서워. 근데 왜 내가 네 분노를 사서라도 너를 지휘 하에 두고 싶어 하는지 알고있어?"


"아니."


"사실 지금 제국군의 전력만으로는 왕도를 지켜낼 수 있을지 모르거든. 내 예상상 어떤 기묘한 책략을 펼치더라도 복구에 최소 수십 년은 걸릴 피해가 생길 거야. 간신히 격퇴한다 해도 이웃 나라에

가 복구 틈을 파고들면 이 나라는 끝장이네."


"..."


"... 하지만 너라는 말이 내 수중에 있다면 왕도를 무사히 마왕군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 반드시 지켜."




 미노는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검을 뽑은 렉스의 눈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 내가 주는 의뢰의 보수는 내 목숨이야."


"뭐!?"


"넌 날 미워하겠지? 죽이고 싶어 미칠 거야?... 만약 네가 따라준다면 나는 왕 앞에서 선언하지. '내가 렉스에게 내 목을 보수로 제시했습니다'라고."


"제정신이냐, 너."


"만약 네가 내 명령에 따른다면, 그리고 마왕을 쓰러뜨리는 날엔 날 죽여서 목을 성 아래 내걸든, 성 밖에 꼬챙이에 꿰어 불에 구우든 난 할 말 없어."


"... 무슨 생각인 거냐."


"내가 생각하는 건 이 나라의 미래와 무고한 백성의 행복이야. 그러기 위해선 네 힘이 필요해 렉스 군. 어때, 너의 가족에 대한 복수를 하기 좋은 기회 아냐?"


"... 큿!"




 그런 미노의 미친 제안을 들은 렉스는 구역질 날 것 같은 얼굴로 검을 칼집에 넣고 발꿈치를 돌렸다.




"누가 니 밑으로 들어가겠냐, 그런 더러운 목따위 필요 없어. ... 당분간 그 숙소에 머물러주지. 왕도가 위험하다 싶으면 그때그때 나한테 의뢰 와. 수상하다 싶은 의뢰는 따르지 않겠다. ...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의뢰는 따라주지."


"음... 뭐, 그것도 좋네. 잘 부탁해 렉스."


"시끄러, 죽어."




 그렇게 거친 목소리로 미노를 일갈하고 우리의 리더는 아직 쭈그려 앉아 우는 엠마를 홱 들어올려 걸어갔다.




"가자, 모두. ...... 기분 나빠."


"네, 넷 렉스님."


 


 그런 우리의 모습을 미노는 즐거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헐? 렉스, 너 미노의 의뢰 받기로 한 거야?"


"... 왕도에는 아는 사람도 있어. 그 녀석들 버리는 건 의리에 어긋나."


"죄송해요 검성 님. 전부 다 제 탓이에요."




 미노와 헤어진 뒤 우리는 교회에 있던 카린과 합류해 숙소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한 정보 교환을 하게 되었다.




"지금처럼 페니 장군과 협력하면 안 돼는거지?"


"죄송해요, 죄송해요."


"사과는 그만해. 뭘로 협박당한 거야, 엠마?"


"페니 님은 너무 곧은 분이라 정치에는 어둡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잘 돌리기 위한 더러운 술수 같은 건 몰래 제가 하고 있었는데... 전부 미노한테 꼬리가 잡혔어요..... 모든 죄를 고발당해 페니 님이 처형당하고 싶지 않다면 검성 님을 넘기라고..."


"... 그 자가 좋아할 만한 수법이군. 역겹군."



 엠마, 이 나이에 부정에 손을 대고 있구나. ●세였지?




"엠마. 반대로 미노의 약점 같은 건 없어?"


"소문은 여럿 있지만 확실한 정보는 없어요. 애초에 그런 함정이나 올가미는 그녀의 주특기에요. 거짓 정보를 잡고 오히려 궁지에 몰릴지도... 죄송해요, 저로서는 미노에게 정치적 승부를 걸어도 이길 수가 없어요."


"아니, 엠마 너의 나이에 정치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서운 거 아냐? 하지만 확실히 그런 승부는 그 자의 독무대겠지."




 무섭다라는 게 이런 거구나. 더러운 것까지 삼키며 페니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하는 소녀 엠마. 정말 페니 장군의 브레인 노릇을 하고 있구나.




 ...... 엠마의 진화형이 미노 장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카린은 교회에서 뭔가 정보 얻은 거 있어?"


"...음, 뭐 미묘한 느낌이야. 그런데... 메이, 플라체, 너희들 포커페이스 잘해?"




 말을 받은 카린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했다. 뭐야, 갑자기 그 질문은.




"저, 저는 꽤 표정에 드러나는 편일 거예요."


"포커페이스가 뭐야? 멍한 얼굴인가?"


"메이는 못하고, 플라체는 논외로군. ...미안, 너희 둘 다 자리 비켜줘. 지금부터 내가 할 얘기는 실수로 입 밖에 내면 곤란한 얘기야."




 ........? 그런 중요한 얘기를 실수로 지껄일 녀석이 어디 있다고.




"아... 알겠습니다. 플라체 씨 갑시다."


"에, 왜?"


"저는 마법 공부하러 가볼 테니, 플라체 씨는 훈련소에서 연습하는 게 어떨까요? 오늘 아침 습격으로 마왕군도 다가오고 있다는 게 밝혀졌으니까요."


"그렇구나, 그렇네."




 확실히 나는 아직 수련이 부족해. 훈련을 게을리 할 여유는 없어. 렉스를 깜짝 놀라게 하려면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되지.




 후후, 하고 메이에게 손을 잡히고. 나는 흑마도사와 둘이서 방을 빠져나와 훈련장으로 향했다.










"...점점 플라체 다루는 법을 익혀가는구나, 메이 녀석."


"아니, 애초에 엄청 다루기 쉬운 인간 아냐, 저 애."


"그분을 장군으로 추천한 건 좀 무모했던 걸까요...?"


"숨 쉬듯이 속으니까, 좋을 게 없지. 저런 애는 권력 같은 촌스러운 걸 가지지 말고 모험가로 검이나 휘두르고 있는 게 제일 어울려."




 ...응? 왠지 어디선가 바보 취급당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번엔 실수하지 마세요, 여기를 쭉 가면 돼요."


"아아, 알고 있어."


"그럼, 전 이쪽이니까. 여기서 실례할게요."


"아아."




 중간까지 메이와 함께 걸어서, 나는 훈련장을 향했다. 오늘은 성의 병사들이 성 아래 마을로 쏟아져 나가, 텅 빈 공간을 독차지할 수 있다고 한다.




 ...가능하다면 나도 병사들 일을 도와주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시체 검시 같은 건 무리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검을 휘둘러 적을 쓰러뜨리는 것 하나.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왕군에 대비해 조금이라도 내 칼날을 갈아 두는 것 뿐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 나는 실전에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적을 죽이면 되는 거야. 망설임을 끊어낸 나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메이와 헤어져 혼자 검 손잡이를 쥐고 길을 걸었다.




 형을 잃은 소년의 비참한 목소리가 귀에 감겨 떨어지지 않는다. 저 참상은 용서할 수 없다. 마왕군은, 마족은 분명 인류의 적이다.




 단지 내 몸을 죽인 것만이 아니다. 마족은 내 바로 옆에서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 아무리 어떤 적이 나오더라도 단숨에 베어 쓰러뜨려주겠어.




 ...... 더는 예전의 나처럼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않겠어. 대집단 상대 훈련도 익혔고, 렉스의 검을 받아내며 내 기술의 예리함도 늘었다. 힘으로는 이기지 못해도 기술면에서는 확실히 성장했을 거다.




 그러니 나는 검을 휘두른다. 그저 무심하게, 곧게, 투명할 정도로 깨끗한 검술을 갈고 닦는다.




 그게 내 일이니까.












"...... 이게 내 일이니까."




 움찔, 하고 몸이 그 목소리에 반응해 움직임을 멈췄다.




 훈련장 문 근처까지 온 그 순간. 어디선가 지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돼. ...다른 누군가에게 맡길 순 없어."




 차분히 주위를 경계하고, 그리고 발견했다.




 내가 걷고 있는 복도 저 앞에. 내 쪽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음이 불안정한 여자가 걸어오고 있는 것을.




 멀리서 보이는 그 얼굴이 달빛에 비친다. 그 여자는 조금 전 헤어진 ────




"내가 ......"




 제국 최악, 미노 장군이었다.




"......!"


 


 경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나는 움직임을 멈췄다. 조금 전 엠마를 협박해 굴복시키고 렉스에게 직접 간섭할 권리를 얻은 악마 장군 미노. 그녀가 왜 이런 곳을 걷고 있는 걸까.




 내겐 상상도 안 가지만, 분명 좋지 않은 속셈이 있을 게 분명하다.




"......"


"......"




 이윽고 미노도 내 존재를 눈치챘는지. 걸음을 멈추고 복도 중앙에서 천천히 섰다.




 살짝 흔들리는 채로 그 여자는 나와 마주 보고 버티고 서 있다. 뭐야, 뭘 시작할 생각이지.




 미노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 몸가짐에서 무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고, 공격 마술을 쓸 수 있다는 정보도 들은 적 없다. 애초에 이 거리라면 주문을 끝내기도 전에 내가 미노의 목을 베어 날릴 수 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나는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하며 미노의 모습을 살피고...




"...... 큐우!"






 이윽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제국 최악의 눈이 빙글빙글 돌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 어?"


"으으으......"




 그 자리에 남겨진 건 눈을 돌리며 기절한 제국 최악과 나뿐.




 산더미 같은 서류에 파묻혀 왕도성 복도에 엎드려 쓰러진 대장군. 그 기괴한 광경 앞에서 나는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