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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인류의 적인 마왕군이 주둔하는 동굴 거점.




"적당히 해라 이놈들..."




 황금빛으로 빛나는 긴 머리카락. 근육질의 하얀 피부. 그것은 보는 이들 모두에게 공포와 선망을 불러일으키는 생명의 정점이었다.




 마족의 왕, 강인한 마족을 그 실력으로 통솔하는 괴물. 즉 마왕이라고 불리는 사내.




 그는 부하들을 둘러보며 사나운 미소를 띠고 주먹을 쥐더니 포효했다.






"나를 슬슬 출격시켜라!!"


"또 마왕님의 안 좋은 버릇이 나왔어!"




 보아하니 마왕님은 슬슬 출격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마검왕이 졌잖아!? 그러면 꽤 싸울 만한 전사가 있다는 거 아냐! 날 싸우게 해줘!!"


"제발 좀 더 참아주세요!! 아직 제일 골치 아픈 적을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움직임이 어째서인지 적에게 완벽하게 간파되고 있습니다! 예지 능력자나 그에 준하는 마법사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령 움직임을 읽혀도! 이 내가 인간들을 몰살하면 되잖아!!"




 모든 마족의 정점. 압도적인 '전투력'의 힘으로 온갖 마족들이 복종을 맹세한 존재.




 그런 마왕은 필사적인 표정의 부하들에게 출격을 만류당하며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마왕님, 당신이 함정에 빠져 당하신다면 마족은 끝장입니다!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세요!"


"이 내가 인간 따위에게 당할 리 있다고 생각해!? 인간이 설치한 어중간한 함정 따위 내게 통하지 않는다!!"


"마왕님 바보 아닙니까! 걸려들면 안 되는 함정에도 쉽게 걸려들잖아요!!"


"누가 바보야 이 자식!"



 그 금색 머리의 왕을 바보 취급한 어리석은 마족은 마왕에게 얻어맞고 땅속 깊이 파묻혔다. 땅 밑에서 "살려줘"라는 처량한 애원이 들려온다.




 마왕이라 불리는 그의 전투 스타일은 매우 단순했다. 다가가서 후려친다. 그에게 있어 가벼운 주먹질일 뿐이지만, 그 일격이 강인한 마족마저 땅에 처박아 버릴 정도의 위력을 낳는다.




 하지만 역으로, 마왕은 적을 쓰러뜨리려면 가까이 다가가야만 한다는 거고. 그리고 그에겐 인간들이 쓰는 잔꾀 마법 같은 지식은 전혀 없었다.




 거기다 마왕은 싸우는 행위 그 자체에 관해서는 비할 데 없는 천재였지만, 머리는 결코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주변에서 보완해줬지만 꽤 속기 쉬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저 강할 뿐인 존재였다.




 그런 마왕은 '전투력은 빈약한 주제에 교활하고 잔꾀와 모략, 기습이 특기인 인족'과의 전투에 치명적으로 맞지 않았다.




"마왕님의 강함은 알겠지만, 예를 들어 순간이동 함정에 걸려 어딘가 멀리 날아가신다면 스스로 돌아오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끝장입니다."


"그런건 안 걸린다!!"


"적에게 우리 움직임을 읽는 능력자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그 인간을 특정해서 죽일 때까지 마왕님을 출격시킬 수 없습니다!"


"시끄러워 바보!"



 그리고 그의 또 하나의 단점은 '성질이 급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인족 침략'을 목표로 결탁한 온갖 마족의 현자들이 마왕을 대신해 끈기 있게 마왕군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그저 강할 뿐인 마왕에게는 그게 불만스러울 뿐이었다.




"엄청 참았다고 나는!!"




 원래 그는 슬그머니 숨으며 왕도 부근까지 진군할 생각은 없었다. 당당하게 "나는 마왕이다, 인간들의 영토를 빼앗겠다, 아하하하"라고 선언하며 위세 좋게 국경에서부터 진군해 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지혜로운 마족들은 그를 만류했다.




 간신히 마족들이 마왕군이라는 형태로 수백 년 만에 뭉쳤는데 그런 난잡한 진군은 아깝다. 마족은 지혜로는 인간에게 못 미치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었다.




 그리고 마족들은 조금씩 왕도 주변에 거점을 세우고 아군 병력을 진출시켰다. 인족에 지배된 비옥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지혜를 짜냈다. 당당히 쳐들어가려는 마왕을 설득하고 마족들은 기습을 위한 계획을 세심하게 진행해 나갔다.




 하지만 그 마지막 일보, 왕도 습격 직전이라는 타이밍에 어느 부대인지는 모르겠지만 멋대로 인족의 마을에 기습을 가해 약탈을 벌인 마족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왕군의 계획은 모두 틀어졌다.




 인족은 임전태세가 되었고 성문의 경비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군데군데 병력이 보내져 기습 따위를 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어느 종족이냐, 마음대로 쳐들어간 바보는!"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출격한 흔적이 없습니다."


"말도 안 되잖아!"




 오랜 숙원이었던 인족 침공. 그 가장 중요한 첫 수를 망쳐버린 마왕군 간부들은 머리를 감쌌다.




 하지만 지금 와서 임전태세가 된다고 해도 마왕군은 이미 왕도 부근까지 진출해 있었다. 아직 유리한 건 마족 쪽일 터였다.




 그렇다면 다소의 피해는 각오하고 이대로 정공법으로 왕도를 함락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인족은 수가 많고 머리가 좋아. 보라고, 놈들 이런 곳에 요새를 세우고 있잖아."


"슬슬 내 차례가 될 텐데..."


"이 위치는 교활하군. 늘 배후를 잡힐 수밖에 없는 꼴이야."


"이미 우리 존재는 발각되었어. 여기부터는 꼼꼼하게 확실히 진군해야 해. 먼저 이 요새에 병력이 들어오기 전에 점령해야겠어."


"이견 없네."


"내 차례는 아직이야?"




 이런저런 사정으로 마왕군은 속도 위주로 서둘러 요새 공략을 했다. 하지만 그 결말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요새에는 이미 인족이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굉장한 마법사가, 제1진은 인족의 마술에 패주했습니다!"


"게다가 패주한 아군은 매복당해 거의 전멸했습니다!"




 마치 이쪽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던 것 같은 대응. 아니 분명히 인족의 마법 중에는 그런 종류의 마법이 있을 게 틀림없다.




 아마도 교활한 인간은 성 아래 마을로의 습격을 계기로 미래 예지의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 같다.




"큰일입니다, 요새 구원에 향한 마검왕님이 쓰러졌습니다!"


"그의 부하 몇 명이 돌아왔지만, 모두 전신에 상처투성이입니다"


"인족의 전투력도 얕잡아 볼 수 없습니다!"



 나쁜 소식은 멈추지 않았다.




 마왕군에서도 강력한 장수였던 마검왕이 쓰러지고 패주했다. 이 사실은 마왕군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교활한 기습에만 당하지 않으면 인간은 마족에게 이길 수 있는 거 아니었나!"




 무엇보다도 도망쳐 돌아온 마검왕의 부하의 보고에 의하면 마검왕은 당당한 싸움으로 한 명의 검사에게 두 명이 달려들어 정면에서 인간에게 패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간 장수의 전투력은 마족의 맹장에 필적한다는 것이 된다.




 마족들은 인간을 약하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길 만한 상대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 전제 조건이 무너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군의 수뇌부를 때려눕힌 다음 혼란 틈타 전면 공세로 일거에 결착지어야 한다"






 마왕군이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다.




 인족의 영내에 침입해서 왕을 암살하고 혼란을 틈타 나라를 뺏는다. 정면 승부는 조금 불리해 보였다.




"어이! 그래서 내 차례는 언제인 거야!"




 마왕이라는 존재가 지금 그들에게 있어 유일한 승기였다. 아직 인족은 마왕의 존재를 모른다.




 마음만 먹으면 맨손으로도 한순간에 산을 골짜기로 바꿔버릴 말도 안 되는 전투력. 존재 자체가 부서져 있는 싸움이라는 행위의 화신.




 그런 마왕을 혼란에 편승해 최종 결전에 투입할 수 있다면 승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냉정하게 대책을 짜인다면 마왕은 쉽게 처리될 가능성이 있다. 인간은 지혜로운 생물이다. 마왕이 강할 뿐인 바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얼마든지 방법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적은 이쪽의 움직임을 읽고 있는 것 같다. 마왕을 함정에 빠뜨리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왕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최종 결전의 그 순간 만반의 준비를 갖춰 출격하실 예정입니다"


"싫어! 나는 이제 싸울 거야! 제발 싸우게 해줘!"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렇기에 마왕군은 마왕의 존재를 숨겨두고 싶었다. 정말 신뢰할 만한 마족 외에는 마왕을 알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건 다행이었다. 미노조차도 마왕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 이제 지긋지긋해!"




 그래서 이건 행운일지도 모른다.




 인족에게는 압도적인 행운.




"나는 나간다. 애초에 이렇게 수싸움을 하는건 잘못됐어. 당당히 싸워 쓸어버리는 게 마족이지!"




 마왕의 머리가 약했던 것. 싸움에 굶주려 인내심의 끈이 끊어진 것.




 마검왕이 패하면서 마왕의 투지에 불이 붙은 것.




"마왕님!!"


"가르쳐주지, 빈약한 내 동족들아. 진정 강한 자는 잔꾀 따위에 지지 않는다."




 간부들의 표정이 바뀐다. 그건 마왕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금빛 머리카락을 곤두세우며 마왕은 여유롭게 일어섰다.




"내가 혼자서 돌격한다. 그게 가장 피해 없이 승리를 거머쥘 수단이니까"










 그 말과 함께.




 부하가 멈추라는 목소리를 낼 틈도 없이 마왕은 옥좌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니, 부하 중 누구도 떠나는 마왕을 눈으로 쫓을 수 없었을 뿐이다.




"...... 마왕님을 쫓아라!"


"서둘러!"


"아니, 이미 늦었어. 마왕님이 출격하신다면 기습의 의미가 ────"




 그 순간의 일에 마왕군의 간부들은 초췌해졌다. 이제 그들은 마왕이 어디로 향했는지조차 상상이 가지 않았다.




 요새로 향했나? 왕도로 향했나?




 마족에게 있어 최종병기가 멋대로 출격하고 냉정함을 잃은 부하들이 내린 결론은




"그렇다면 지금 전군이 진격할 수밖에 없겠지! 마왕님은 이른바 압도적인 강함을 지니고 계신다!!"


"때를 기다린다거나 느긋한 걸 하고 있으면 순간순간 불리해질 뿐이야!"




 마왕을 쫓아 일제히 출격했다.




 애초에 그들은 인간처럼 사려 깊은 생물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앞장서서 돌격해버리면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그것뿐이었던 것이다.




"전군, 돌격!"




 마왕군에 이름을 올린 각 마족의 우두머리들은 급히 출격 준비에 착수했다.




 이렇게 해서 결전의 시작을 알리는 북은 마왕 본인의 성급함에 의해 조용히 두드려졌다.


























































 추악하기 그지없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 결사의 각오로 고향(왕도)을 떠나 위험한 요새로 출정한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보기 힘든 에로 영감의 난장판이었다.




"우효효! 술잔치다!"




 요새의 회의실에선 홍등가 여인들이 늙은 장군을 상대로 아양을 떨었고 침실에는 상인들이 호기로 삼아 비싼 술을 팔러 와 있었다.




 정말 여기는 전쟁의 최전선일까? 아니면 유곽일까?




"그 대패 이후 한동안은 전쟁 같은 건 일어나지 않겠지. 지금은 원기를 회복할 때지."




 이 에로 영감은 퇴폐적이고 자포자기한 태도였다. 그래서 국가의 영웅이면서도 그 직책에서 밀려났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 술이나 마시고 노래나 부르자."




 결사의 각오로 요새에 출정한 진지한 병사들은 한탄했다.




 아아, 우리는 왜 여기 있는 걸까.




 여자들은 노인을 홀리고 상인들은 싱글벙글 상품인 술을 늘어놓았으며 예인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춤을 췄다.




"안심해, 안심해. 여기는 이 나라 어느 곳보다 안전한 거점이야~"




 그건 사실이었다. 방어에 특화되어 건설된 이 요새는 원래 국내에서 가장 견고한 거점이었다.




 그리고 노인에겐 자신감도 있었다. 그가 가장 잘하는 싸움이란 즉 방어전이다.




"우히히히! 평생 여기서 살고 싶구먼!"




 욕망에 빠진 병사들은 장군과 함께 타락했다. 그 꼴은 실로 우매함의 극치라 할 만했다.




 복도에는 술병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여자들의 후끈한 냄새가 병사들의 숙소에 가득했다.






'경애하는 미노 대장군 각하에게...'






 ...... 그 참상을 성실한 병사가 미노 대장군에게 보고한 다음 날. 2명의 새로운 지휘관이 요새로 파견되어 병사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 처형!"


"횡포야!"




 요새 안을 병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클라리스가 내린 첫 번째 명령은 처형이었다.




 이 쓰레기 영감이 귀중한 군비를 "원기 회복"이라며 여자들과 술에 쏟아 부었다. 클라리스는 드물게 격노하여 즉시 처형을 결정했다.




 좋은 판단이다.




"전쟁터에서 여자를 안는 게 뭐가 나빠!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부하에게 여자를 붙여주는 건 상관인 내 도리라고!"


"네가 제일 즐기고 있잖아 이 쓰레기 영감. 몇 명이나 데리고 있었어"


"나도 아직 현역이라고!"


"...처형"


"찬성"


"횡포야!!"




 전쟁터에서 여자를 사는 병사가 많은 건 알고 있다. 나도 남자였고 그 심정은 이해한다.




 ...... 그것을 군비로 하지 말라는 단순한 이야기다. 게다가 자신의 오락거리까지.




"내가 목을 벨게. ...고통 없이 한 칼에 끝내줄게"


"싫어! 나는 거유에 파묻혀 질식사하고 싶어!"


"미안해 빈유라서. 그럼 목을 숙인 자세로 고정시켜줘 병사 아저씨."


"히익!!"




 횡령에 더해 이 녀석은 절도와 음란죄도 저질렀다. 메이의 엉덩이를 만진 것만으로도 처형은 면할 수 없다.




 나는 무표정하게 검을 뽑아 그대로 상단으로 겨누었다. 나는 힘이 약하지만 곧게 예쁘게 검을 내리친다면 노인의 목쯤은 양단할 수 있다.




 병사에게 힘껏 제압당해 울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는 노인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
































 등골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비유하자면,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걸 깨달은 순간. 그런 섬뜩한 느낌이었다.




 등줄기에 엄청난 식은땀이 배어나오고 작게 손이 떨리며 마음이 극한의 추위로 덮였다.




 압박감에 숨을 쉴 수 없어 들어 올린 검을 내리치는 것도 잊은 채, 나는 '그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뭐!?"


"...살기?"




 뒤늦게 늙은 변태와 클라리스도 그것을 눈치챘다.




 압도적인 그 존재감을.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이 굴복할 '천재지변'과도 같은 무언가의 기척을.




 소름이 돋는다는 게 이런 거였다.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겨룰 만한 상대도 아니다. 아니, 같은 경기장에 오르려 한다는 생각조차 건방진 압도적인 '힘'이었다.






"사랑의 벽 슈퍼실드!!"






 즉시 클라리스가 방어벽을 쳤다. 분명 클라리스도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방어 마법을 치지 않으면 큰일 날 거라는 직감적인 무언가를.




 그리고 클라리스의 행동은 정답이었다. 무엇보다 그 직후 요새가 반파되었으니까.








"어?"








 그 굉음을 인지한 건 무너져가는 요새의 모든 것을 내려다본 후였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혼란스러워했다.




"얼빠져 있지 마 플라체!! 적이다!!"




 성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거대한 요새가 클라리스가 방어벽을 친 부분 이외가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




 그 공격의 폭심지에 그것이 있었다. 황금빛 긴 머리카락을 곤두세우고 웃고 있는 소름 끼치는 존재감의 '무언가'가 거기에 있었다.




 그 '무언가'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몸짓으로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 팡.




 흔들어 댄 팔 끝에서 모든 것이 날아갔다. 아이가 모래밭에서 난동을 부리듯 투박한 물결 무늬의 대지가 흙먼지와 함께 형성되었다.




 ...... 그건 정말이지 괴물이라고 부르기에 걸맞았다.




"...... 철수다!!"




 병사들이 멍하니 서 있는 가운데 늙은 장군이 지시를 내렸다. '저런 괴물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늙은 장군은 재빨리 깨달은 모양이었다.




"미끼 역할은 나 빼고 모두가 맡아라. 너희들 최대한 시간을 벌어주려무나!!"




 기묘한 몸놀림으로 병사들의 구속을 빠져나간 영감은 바스락거리며 기어가듯 그 자리에서 재빨리 달아났다. 그 엄청난 도망 실력에 황금 괴물에 정신이 팔려 있던 플라체는 반응하지 못하고 보내주고 말았다.




"너희들 잘 부탁한다, 다음은 맡겼다!"


"잠깐... 도망치지 마 이 쓰레기 영감!!"




 도망치는 노인을 보고 소녀 검사가 절규했지만,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는 '무언가'에 시선을 빼앗겨 쫓아갈 여유가 없었다.




 군자금으로 술판을 즐기고, 전투가 시작되자 가장 먼저 도망친 늙은이에게 질려하면서도, 플라체와 클라리스는 조용히 각오를 다잡고 무기를 겨눴다.




"도망가는 자는 내버려둬 플라체. ...그보다 정념의 때인 것 같구나"


"...그런 것 같네. 운이 없어."




 그래, 겨눠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건 이론상 행운이므로.




"인족에서 가장 강력한 대개인전 요격지는 바로 이곳이니까"




 '괴물'이 여기까지 온 이상. 저놈을 처치하는 것은 ────








"우리가 녀석을 사냥하자."


"그래."






 
























 노인은 도망친다. 기척을 지우고 소동물처럼 겁에 질려 숲에 숨어 길 없는 길을 나아가며 왕도로 내달린다.




 하고 싶은 대로 한 끝에 비참하게 도망친 늙은 장군. 분명 요새 병사들의 그에 대한 평가는 바닥을 칠 것이다.




 아아, 초라하구나. 과연 그는 장수로서 적격이었을까. 목숨이 아까워 도망쳐 과연 위인이라 할 수 있을까.




"...... 아, 저런 괴물이 적이라니........."




 식은땀을 흘리며 노인은 달린다. 살기 위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할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어쩔 수 없었기에.






 ...... 아니다.








"모처럼 이런 늙은이에게 다시 출전 기회가 주어진 거다. 역할은 다해야 죽을 수 있지"




 이 노인은 자기 목숨이 소중해서 도망친 게 아니었다. 진정으로 '인류의 승리'를 위해 거점을 버리고 달아난 것이었다.




"내가 그곳에 있어봤자 휴지 쪼가리만큼도 도움이 안 돼. 그보다는..."




 노인은 관찰안에 자신이 있었다. 적을 분석하고 이해하며 대책을 짜는 게 특기였다.




 장년기의 그의 활약을 떠받친 건 검술의 솜씨도, 군략의 날카로움도 아니었다. 다른 이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관찰'의 능력이 높은 것이야말로 그의 신수였다.




 국익의 화신 미노가 국가의 위기에 이런 호색하고 이기적인 노인을 의지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 적을 아는 노장. 그건 미노와는 별개로 완성된 하나의 '군사로서의 극치'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노는 "사전에 모은 정보를 종합하고 음미해 최적해를 모색하는" 데 비해 노장 로렐은 "적을 알고 자신을 알아 그 자리에서 최선책을 선택해간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전장에서는 분명 그가 미노보다 뛰어난 군사다.




 그 노인이 돌연 습격해 온 '무언가'를 보고 이해한 것은






- 저 '무언가'는 아마도 마왕이다. 삼류라면 지금까지 아껴둘 이유가 없다.


- 저 '마왕(추정)'은 마법을 쓸 줄 모른다. 마법을 쓸 수 있다면 클라리스의 방어벽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대책을 세웠을 터다.


- 그리고 저 '마왕(추정)'은 ────






 그의 관찰안은 그 '무언가'라는 존재를 훤히 들여다봤다. 순간, 그 행동과 주변 상황을 살펴본 것만으로.






- ──── 저 '마왕(추정)'은 부하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 즉 그는 '제멋대로에 성급한' 성격이다.


- 그리고 저렇게 압도적인 힘을 지녔을 '마왕(추정)'이 아껴두어졌다는 건 즉.......






 싸움에만 매달려 살아온 노인이기에 천금같은 '정보'를 이해했다.








- '마왕'에게는 기습이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 ────








 가져가야만 한다. 이 정보를 미노에게 전해야만 한다.




 노인은 홀로 비참하게 도망쳤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병사들에게 전장을 맡기고 적 앞에서 도망쳤다는 죄로 문책받을 걸 알면서도 달아났다.




 지금 이 눈으로 본 마왕 측의 '급소'라는 정보를 가져가기 위해서.




"용서해다오, 저 괴물은 바닥을 알 수 없어. 분명 너희로는 이길 수 없을 거야."




 노인은 후회와 참회의 마음에 사로잡히면서도 도망치길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너희의 희생을 헛되이 하진 않겠다. 반드시 역할은 다할 테니..."




 노인이 달려가는 그 뒤로 엄청난 굉음이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