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ts물 소설 번역 채널



 왕도의 본성.




"전황은 어떻게 되고 있나?"




 백발의 노인은 왕좌에 앉아 곁에 대기 중인 여인에게 물었다.




"예, 대답 드리겠습니다 왕이시여."




 대답하는 여인의 이름은 미노. 그녀는 한때 이웃 나라와의 전쟁 중에 혜성처럼 나타나 신묘한 계략으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성녀였다.




 다소 무자비한 구석이 있었지만, 그녀의 군사적, 정치적 수완은 과거에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비범했다.




"이미 정세는 결판 나가고 있습니다. 적의 대부분은 사라졌고 남은 잔당들도 이리저리 도망치고 있습니다. 한편 아군은 아직 거의 무상에 가까운 상태고, '마왕'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승패는 거의 결정된 듯합니다."


"호오, 과연 그렇군. 역시 그대에게 맡기면 모든 게 잘 풀리는구나."


"그렇게까지 왕께서 신뢰해주시니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왕의 칭찬에 미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 미노라는 여인은 정말 우수했다.




 그녀를 만나고 왕은 지금까지 자신의 '자신의 기분만 맞추던' 문관들이 얼마나 믿음직스럽지 못한 존재였는지 알게 되었다.




 쓴소리를 해서라도 이익이 되는 행동을 권하는 미노. 처음엔 성가시게 느껴졌던 그녀의 발언도 자세히 생각해보면 모두 자신의 이익이 되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는 면만 빼면 그녀가 하는 말은 대개 적중했다. 왕으로서 이렇게 믿음직한 참모도 없었다.




"그럼 페니의 건은 어떻게 되고 있나?"


"그는 아직 행방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지금 페니를 수색할 만한 여력은 없습니다."


"그런가. 평민 출신이라 국가 위기에 겁쟁이가 되었나 보군. 대장군 감은 아니었나."




 왕은 전황 보고를 듣고 기분이 좋아져 흥미를 다음으로 옮겼다. 즉, 3대 장군이라 불리던 페디아의 주요 인사 중 한 명인 페니의 실종에 대해서였다.




 민중의 지지가 엄청났고 큰 공을 세웠기에 만장일치로 대장군으로 인정받은 남자. 성벽에 문제는 좀 있었지만 그 역시 페디아라는 나라를 구한 영웅 중 한 사람이었다.




"아니요, 그의 실종은 제 탓일 겁니다. 성 아래 마을 일이 그의 역린을 건드린 모양입니다"


"그렇군"


"현명하신 왕께서는 그 행위의 의미를 이해해주셨지만... 평민 출신인 그에겐 이해할 만한 교양이 부족했던 듯합니다. 꾸짖음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흠. 아니, 자네는 잘하고 있어. 그럼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수색을 계속하고 전후에 페니와 이야기하는 게 좋겠어"




 미노는 우울한 듯이 슬픈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사실 그의 실종은 미노에게 타격이었다.




페니 본인의 지휘 능력도 그렇지만 페디아에서 드물게 '능력적으로 신뢰할 만한 문관'인 엠마가 함께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해내던 경비, 치안 유지 일을 방치할 순 없고, 그렇다고 대신할 인재도 키워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미노가 일을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되어 그녀의 부담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 자비로운 말씀 감사드립니다"




 미노는 왜 더 많은 인재를 모으지 못했을까?




 미노는 결코 인재 교육을 게을리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직접 가르치고 엄청나게 힘을 쏟아 부하를 키워냈다.




 하지만 미노가 대장군 자리에 오른 지 아직 몇 년밖에 안 되었다. 최근에야 겨우 쓸 만한 인재가 몇 명 나오기 시작한 정도였고, 아직 믿고 맡길 만한 존재라고 하기엔 부족했다.




"...... 엠마가 내 뒤를 이어주길 바랐는데....."




 천연 그대로 '쓸 만한' 문관 엠마. 평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살아 숨쉬는 도시 정치의 상계에서 성장하여 자금을 모으고 페니의 참모로서 그를 대장군까지 올려놓은 너무나 조숙한 천재.




 사람에 굶주려 있던 미노에게 그녀는 정말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그런 엄청난 여자에게 눈독들여진 소녀는




"...... 어라? 이거?"




 전쟁이 결판나는 동시에 봉기하기 위해 아군으로 끌어들인 귀족의 방을 빌려 성 안에 잠입해 있었다.




 이미 페니 일행은 전장에서 성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럴 만도 했다. 만일의 경우 가세하려고 성벽에 숨어 전황을 지켜보던 페니가 본 것은 피부를 태울 듯한 광채에 휩싸여 마왕군이 순식간에 전멸하는 광경이었다.




 저런 패를 준비하고 있다니 역시 미노는 무서웠다. 하지만 이라면 페니가 나설 일은 없을 것이다.




 저 여자라면 알아서 적은 피해로 전쟁에 이길 테니까. 그 승리해서 긴장이 풀린 찰나의 틈을 노리는 것. 그것이 이번 페니 일행의 전략이었다.




승산은 반반일 것이다.




 아무리 저 여자가 초인이라 해도 마족과의 전쟁 한창 중에 쿠데타 대책까지 할 여유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역습을 준비하고 있는 게 미노라는 여자였다.




 녀석의 생각을 너무 많이 읽어도, 너무 적게 읽어도 안 읽히는 법이 없다. 그래서 엠마는 결행 직전까지도 예민하게 주변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왜 그러나 엠마"


"아, 아니요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누군가 마도부대 쪽을 불러주시겠어요?"


"오, 오오. 어이 누구 마도사 좀 불러다오!"




 그래서일까. 무언가를 알아차린 엠마가 멈춰 서서 의아한 표정으로 마법사 부대를 불렀다.




"...... 이건"




 엠마가 알아차린 그 무언가란.......? 천으로 덮여 숨겨져 있는 작은 새로운 마법진이었다.




"왜 이런 곳에? 네, 대답하자면 이 술식은..."


"뭐라고? 그런 마법을...."




 부하의 보고를 듣고 엠마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엠마가 큰 착각을 했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위화감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무엇을, 착각하고 있다. 엠마는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페니 씨, 조금 기다려주세요. 생각을 정리하겠습니다"


"오, 오오."




 어린 군사는 무의식중에 손톱을 깨물며 그 마법진의 의미를 생각했다.




 누가 이런 곳에? 언제부터, 어떤 목적으로?




"...... 아."




 엠마의 본령은 정무와 금융이었다. 그녀는 군무보다 정치에 능한 후방 지원형 참모였다.




 그녀는 군사로서도 그런대로 적성은 가지고 있었다. 진을 치고 서로 노려보며 적의 작전을 읽고 전략을 세우는 건 남들보다 잘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유동적인 전장에서의 지휘는 엠마가 잘하지 못하는 분야였다. 그녀는 난해한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정답을 도출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쉬운 문제에 대해 정답을 단박에 알아맞히는 타입은 아니었다. 사람에게는 장단점이 있고, 엠마는 군사 지휘에 적합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지휘는 초인적인 전쟁감각을 가진 페니가 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아직 성장의 여지가 남아있다. 더 커서 익히면 좋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페니 씨, 작전 변경입니다."




 그렇기에 엠마는 눈치챘다. 이건 계책이라는 걸. 그녀가 잘하는, 천천히 서로 읽어내는 타입의 계책이라는 걸.




"흠, 어떻게 바꿀까, 엠마?"


"계획을 앞당겨서 지금 당장 왕좌를 포위할 겁니다."


"......뭐?"




 과연 그게 정답일까, 오답일까? 미노라는 계책의 괴물에게 놀아난 걸까? 아니면 그녀의 뒤통수를 칠 수 있을까?




 아니면 모든 것이 엠마의 착각이었을까?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일을 벌이지 않기로 했잖아"


"네. 그것이 이상적이었죠"


"전세가 인족 쪽으로 기울었다고는 해도 아직 예단할 순 없어.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설 이유가 뭐지 엠마"


"계책의 틈에서 잃어버리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엠마는 곧장 고개를 들어 자신이 사랑하는 백성을 위한 영웅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믿어주세요.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당신이 취해야 할 행동은 지금 당장 왕좌의 방을 포위하는 것입니다."


"음. 하지만 나는 왕을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


"네, 당연히 아무도 죽이지 않고 부탁합니다. 가급적이면 왕도 넘겨달라고 하는 형태가 이상적이지만 ....... 모든 것을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제발 결정해 주세요, 페니 씨."


"....... 흠, 흠. 좋아, 다들 들었나! 출정 준비를 해라!"




 즉단즉결. 이것이 그의 장점이었다.




 페니는 머리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결코 무능하지는 않았다. 그에겐 타고난 동물적 직감이 있어서 순간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선택한 선택지가 대개 정답이었다.




 그래서 페니는 자신의 직감과 최애의 군사를 믿었다.




"나라를 바꾼다. 왕을 바꾼다. 나라를 위해 백성이 희생되지 않는,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각원 각처에 통달해주세요. 결전의 때가 왔다고"




 그 호령에서 십여 분 후. 페니의 협력자인 성 안에 남아있던 귀족들과 경비병들은 일제히 페디아 국왕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 페니 장군의 배신, 국왕에 대해 이빨을 드러내고 왕좌의 방을 향해 다가온다.




 그 엄청난 소식을 들은 미노는




"네? 에, 거짓말이지? 지금?"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를 떨며 절망의 표정으로 왕좌 바닥에 주저앉았다.




"뭐, 뭐라고!! 그게 사실이냐!?"


"네, 네. 그 외에도 그를 따른 듯한 귀족들도 다수 궐기했습니다"


"저 평민 출신 불량배 녀석이! 설마, 설마 이 왕좌를 노렸단 말인가!"


"잠, 잠깐만 에에에..."




 그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은 이를 갈며 격노했다. 미노는 비틀거리며 이마를 짚고 눈물을 머금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건 안 되는 거야 엠마, 잘못된 수는커녕 큰일날 일이지... 그런 걸로는 후임자도 맡길 수 없어... 잘못 봤나 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미노, 저자들에 대한 뭔가 방책은 있나!?"


"음, 뭐. 보험 정도는 준비해뒀죠, 당연히."




 미노의 충격받은 모습은 왕과는 조금 달라서, 반란당한 충격이라기보다는 엠마의 행동에 대한 실망의 감정이 진하게 보였다.




 ──── 이런 타이밍에 일을 저지르고 병사들에게 동요가 퍼지면 마족에겐 딱 좋은 상황. 그런 것조차 모르는 거라면 엠마라는 소녀는 소위 조숙할 뿐인 범인이었다.




"여기는 저 바보 두 사람에게 고통을 맛보게 해주자."




 어쩔 수 없다. 애써 놓쳐두긴 했지만 이런 타이밍에 쿠데타 같은 걸 성공시킬 순 없다.




 최악의 경우 죽일 수밖에 없겠지만 여기선 이기게 하겠다고. 하고 미노는 속으로 조용히 분노하며 왕좌에 주둔해있던 근위병을 집합시켰다.




"모두들, 정념의 때야. 내 지시를 잘 들어."




 설령 이 왕좌를 포위당한다 해도 미노에겐 이길 가망이 있었다. 아니, 거의 이길 수 있다.




 오히려 미노에게 이 쿠데타는 어떻게 엠마 일행을 죽이지 않고 넘길까 하는게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반역자들은 어디에 진을 치고 있지?"


"여기와 여기에 적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쪽 복도 부근에 낯선 경비병 무리가 있었다고"


"아, 그렇군. 아..."




 병사의 보고를 들은 미노는 잠시 생각하는 시늉을 한 뒤,




그럼 5명씩 양쪽으로 나눠서 이 라인을 유지하며 방어선을 쳐. 저 폭발로 역할을 잃은 내 부하들에겐 이미 철수 명령을 내렸어. 그들이 돌아오면 우리의 승리에야. 그러니 공격할 필요는 없어. 이런 좁은 통로에선 방어하는 쪽이 유리하니까. 상대의 움직임을 살피며 차분하게 천천히 천천히 서로 노려보며 시간을 벌어."




 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길 수 있겠나, 나의 오른팔 미노여"


"물론입니다. 뭐, 지켜봐 주세요. 제겐 특별한 비책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들은 정예 중의 정예니까요"


"음음, 그렇다면 좋다. 페니 녀석 잡히면 어떻게 해줘야 하나... 그렇게 눈여겨봐 줬는데 그 은혜를 잊다니"




 왕은 이를 갈았다. 사실 왕은 페니를 싫어하지 않았다.




 이야기하고 있으면 기분 좋은 남자였고 거짓말하지 않는 대나무를 쪼갠 듯한 성격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기에 그가 모반했다고 듣고 더욱 슬프고 분했던 것이다.




"저 군사 꼬맹이와 함께 처형해주겠어"


"그렇죠.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은 이 나라에 필요 없어요"




 왕좌의 방에는 미노와 왕, 두 사람뿐이었다.




 전승 분위기의 성 밖과는 정반대로 궁지에 몰린 2명의 권력자.




 그, 페디아 제국의 역사를 바꿀 대사건의 결말은 ────
























"아, 이 자인가."






















 왕의 목에서 위가 사라지며 결판이 났다.




"아, 어머나"




 조금 전까지 자신의 오른팔인 미노와 이야기를 나누던 백발의 노인은




 화려한 옷을 두른 말 못하는 으스러진 살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이것으로 충분하겠지, 박쥐?"


"네. 머리를 으깨고 그 혼란 속에 나라를 차지하는 거죠. 훌륭한 책략이었습니다."




 미노는 눈을 크게 뜨고 갑자기 왕좌의 방에 나타난 2마리의 마족을 주시했다.




 여기는 왕도성의 가장 안쪽, 뒤로는 절벽밖에 없는 페디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이런 곳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어느새 나타난 걸까. 어디서부터 들어온 걸까.




"야~ 어디서 들어왔어?"


"아, 저는 하늘을 날 수 있거든요. 인족의 지휘 계통을 끊어내려고 왕좌에 참상했습니다 미노 양."


"그렇구나. 왕도의 절벽도 새한테는 무력하겠지..."




 왕도는 북쪽으로 평원이 펼쳐지고 남쪽으로 절벽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군사 방어는 북쪽에 집중되어 있어 남쪽에 감시 등을 배치하지는 않았다. 하늘을 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쉽게 기습할 수 있을 것이다.




"자, 박쥐야. 여기서 내가 저놈들 인간족의 배후를 공격하면 되는 거지?"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저들이 우리를 기습한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가 저들의 뒤를 노릴 차례입니다."


"크하하하! 그럼 거기서 멍하니 서 있는 인간아. 내 쾌진격을, 손가락 물고 지켜보라고."




 으득,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왕의 시체. 그것을 밟는 마족 두 명에게 미노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분부대로 마족의 왕이시여. 부디 다른 종족과 마찬가지로 이 나라의 인간들도 지배해주세요"




 목 없는 왕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미노는 무릎을 꿇고 마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 어이. 너, 너무 빨리 항복하는 거 아냐?"


"아니, 왜 실망하고 있는 거야?"




 미노는 마왕을 노려보았다. 그 표정에는 불만이 역력했다.




 그녀는 마왕의 정보를 단편적으로밖에 알지 못했지만 사전 정보대로 바보 같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럼 우선 패배의 책임 지고 너는 죽여서 먹어야겠다. 인간들의 수뇌부를 쳐부순다는 작전이었으니까"


"아니, 그만둬요. 저기 마왕님, 제가 마족 편으로 끌여들인 첩자 못 들으셨어요?"


"아, 그렇다면?"




 그렇게 듣고 미노는 마왕과 박쥐 마족을 향해 편지를 꺼냈다. 그건 분명 박쥐 마족 본인이 보낸 편지였다.




"박쥐 씨에게 인간 관련 정보를 흘려준 건 저에요. 좀 더 감사해주면 좋겠네요"


"...... 진짜냐?"




 그 말 그대로였다. 박쥐와 미노는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주고받았다.




 그 이유는 인간과 마족 중 누가 이기든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서로가 서로를 감싸주는 것, 그것이 박쥐와 미노 사이에 맺어진 비밀 약속이었다.




"사실입니다요 마왕님. 그녀는 마왕군이 승리하는 날 우리의 동료로 맞아들인다는 조건으로 인간의 문화와 역사, 기술을 흘려주셨습니다"


"오오오. 박쥐, 너 그런 것도 하고 있었구나. 교활한 녀석"




 마왕은 적지에서 뜻밖에 아군을 만나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가 원하는 싸움은 이런 게 아니었다. 더 피가 끓고 살이 뛰는 힘의 정상결전을 바라고 있었다.




 짓밟는 것보다 좋은 상대. 차라리 마왕은 수중에 넣은 저 인간 소녀 검사와 계속 싸우고 싶을 정도였다. 이렇게 너무 쉽게 승리해버리면 맛이 없었다.




"하아. 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되지?"


"지금 획득한 인간 왕의 목을 들고 성문 쪽에서 기습하면서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죠. 수수께끼의 대마법으로 우리 군대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아직 동굴 진지에서 나온 아군과 협공하면 밀어낼 수 있습니다. 왕이 없어져 혼란에 빠진 인간들을 처리합시다."


"미안해요. 그 마법의 정보를 전해주지 못해서. 나도 몰랐고 저 아이가 그런 걸 할 줄은."


"탓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고 마왕은 박쥐에게 노인의 목을 건네받았다.




 그는 그것을 받자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일어섰다.




"아아, 그럼 갈까?"


"아뇨,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마왕님. 제가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하지만 싸움을 향해 나서려던 마왕을 미노는 싱글벙글하며 만류했다.




"마왕님은 확실히 강하시지만 마법에 대한 지식은 그다지 깊지 않으시죠?"


"아아, 뭐 그렇지"


"그렇다면 마왕님은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인간들의 마법은 복잡 기괴해서 아무리 달인이라도 발목을 잡힙니다. 그리고 여긴 왕좌의 방, 인간들의 거점 중 마법적으로 가장 방어가 잘된 곳 중 하나예요. 갖가지 마법이 걸려있는 이곳에 있는 한 당신의 몸은 다치지 않을 거예요"



 미노의 제안은 마왕의 대기였다. 그걸 들은 마왕의 혈관이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하? 장난치지 마, 역시 난 출진한다. 이미 충분히 참았고 남은 전력상 내가 나가지 않으면 힘들 겠지."


"아니오, 그걸 알면서도 만류하는 겁니다. 박쥐 씨,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니, 미노 양. 마왕님 말씀대로 전력상 마왕님이 나가주시지 않으면 힘들 것 같군요. 여기서 마왕님을 대기시키는 건 악수라고 봅니다"


"봐! 역시 난 나가야 해. 이제 됐지, 난 간다"


"네에. 이제 되는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붙잡아두어서"




 그 제안에는 심상치 않은 게 있었다. 인족 군사이면서 인족의 입장을 배신하고 마족에게 정보를 흘려준 그녀. 마왕의 힘을 알고 호의적으로 손을 잡고 인간의 문화를 흘려준 악랄한 여군사.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 잡힌 마족인 자기 앞에서 그렇게 말한 미노를 박쥐는 조금 너무 신뢰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주문은 끝났으니까요"












 갑자기 소리가 사라졌다. 세계에서 색이 사라졌다.




 주위에 울려 퍼지는 고함소리가 사라지고 왕좌의 방은 회색 세피아로 물들었다.




"...... 어?"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마왕님. 여기엔 마법적인 장치가 되어있으니 꼭 여기서 기다려달라고"


"뭐, 뭐라고!?"




 미노가 빛 없는 눈으로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녀의 태도가 돌변한 걸 눈치챈 마족 둘은 조금씩 현재 사태를 짐작해갔다.




 ...... 설마. 함정, 인가.




"밖에서 내 부하가 공간적이고 시간적으로 이 왕좌의 방을 차단했어요. 여긴 세계로서의 위상이 어긋난 공간이에요"


"무슨 소리야, 너"


"내부에서의 탈출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해요. 마술을 모르는 자가 이 고위 복잡한 결계 마법을 풀 수 있을 리 없죠"


"너, 우리 편 아니었어? 나한테 항복한 거 아니었어!? 그럼 뭘 하고 있는 거야, 이건 무슨 일이냐."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거야?"



 박쥐는 알고 있었다. 마왕이 때려눕힌 인간이 분명 인간의 왕이었다는 걸. 눈앞의 소녀는 왕 다음가는 권력자이자 인족의 대장군이라는 걸.




 그렇기에 박쥐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희생양으로 삼은 건가. 인간은 자신들의 왕과 최고위 군사를 아까워하지 않고 함정의 미끼로 썼단 말인가. 지금까지 계속 배신한 척하면서 자신과 정보를 교환한 것도 포석에 불과했던 건가.




 그것이 인간의 전략인가 ────




"어떤 사람의 견해로는 당신은 기습에 약하고 마법 지식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맞나요?"


"...이 자식."


"원래 왕도의 최남단인 이 방은 '남쪽에서 침략해온 적'에 대한 최종 방어선으로서 설계된 거예요. 그럴 생각만 있었다면 병사를 배치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뭐, 쓸데없는 피해를 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비워뒀지만."


"...이 자식!"




 광기였다. 작전을 세운 본인의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고 써버리는 인간의 사고방식.




 그건 개개인을 존중하는 마족에겐 이해할 수 없는 정신나간 짓이었다.




"넌, 탈출할 수단이 있는 거냐?"


"없어, 그런 건 없어. 이 장벽은 절대 뚫을 수 없어."


"그럼 죽어라. 넌 이 고립무원의 공간에서 나와 박쥐에게 사지가 찢겨져 잔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거야."


"...... 그게 어때서?"




 미노의 그 표정에는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 마치 그렇게 당하는 걸 처음부터 바라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마저 있었다.




 그녀는, 인족의 군사 미노는 자신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망설임 없는 표정 속에, 마왕은 작은 체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 이봐. 설마, 너?"


"음, 왜 그러세요 마왕님?"




 그리고 다시 마왕은 그 군사의 모습을 보았다.




 야위고 푸른 얼굴, 핏기 없는 사지. 머리카락은 약간 축 처지고 볼도 움푹 패였다.




 과로로 인한 것일까? 아니,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희미한 죽음의 기운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너, 병마에 갉아먹히고 있구나?"


"그런 셈이지. 그냥 두어도 난 앞으로 몇 달 버티지 못하고 죽을 거야"




 마왕은 깨달았다.




 눈앞의 인간은 죽음을 각오하고 마왕을 함정에 빠뜨린 게 아니었다. '죽어가는 자신을 미끼로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했을' 뿐이었다.




"유감이야, 마왕. 당신이 죽인 지금의 왕은 믿을 수 없었어, 다음 왕은 이미 정해져 있어! 지금 당신이 죽일 나는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죽는 공수표! 그리고 참모인 내 후계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장해 있었어!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야!"




 격리된 공간에 여인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죽음의 상을 띠고 비틀거리면서도 인족의 군사 미노는 압도적 강자 둘을 앞에 두고 크게 웃으며 서 있었다.




"대단해, 엠마. 갑작스러운 반란에 깜짝 놀랐지만, 네 진형을 보고 이해하게 되었어! 왕좌의 방을 지키는 근위병들을 놓치기 위해 일부러 쿠데타를 서두른 거지!? 내 작전을 너에게 전부 읽혔구나. 아, 정말 믿음직스럽다!!"




 그 얼굴에 후회나 공포는 없었다.




 미노는 기쁜 표정이었다. 마족 두 명에게 처형당할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웃고 있었다.




"이게 사람이 싸우는 방식인가?"


"사실 더 많은 걸 준비해뒀는데 말이야. 예를 들어 왕도 앞 평원은 신호 하나로 지반이 내려앉도록 해뒀고, 이 성이라도 신호 하나로 요새로 빠르게 변할 수 있게 다시 설계했지. 클라리스의 여동생이 다 망쳐버렸지만..."




 언니가 언니라면 동생도 동생이라니, 하고 미노는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역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녀의 목적은 확실히 이뤄졌다. 그건 웃을 만했다.




"뭐, 이런 단순한 함정에 걸려들 정도면 너희들이 아무리 지혜를 짜내봤자 인간에겐 이길 수 없을 거야. 애초에 유사 이래로 너희 마족은 단 한 번이라도 전쟁에서 인간에게 이긴 적이 있었어? 좀 강한 게 나타났다고 꿈을 너무 크게 꾼 거 아냐 마족?"


"..."


"제발 좀 학습해서 이제 공격하러 오지 마. 어차피 마족은 인간에게 절대 이길 수 없어."


"...닥쳐."


"어머, 화났어?"




 그렇게 순순히, 하찮은 계략에 걸려든 두 마족은.




 승리에 도취한 죽어가는 여자에게 이를 갈 수밖에 없어서,




"───── 죽어라"


"어쩌게?"




 분노를 으스러뜨리기 위해 조용히 손바닥을 그녀에게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