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읽으면 학이편 첫 구절에 이런 말이 나온다.

學而時習之하니 不亦說乎아

여기서 說은 '기뻐하다'니까 '열'로 읽어야 한다고 배웠을텐데 왜 그렇게 그래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지?

說의 대표훈은 '말하다'이고 이때의 독음은 '설'이며 상고음으론 *hlotᴮ 로 재구된다.

상고한어는 접사 파생이 가능했고 접미사 *-s의 기능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지만

*hlotᴮ에 *-s(훗날 중고음 거성으로 발전)가 붙어 파생된 *hlotsᴮ는 '설득하다'란 뜻이 되고 유세(遊說) 같은 단어에 쓰인다.

이게 파생이다. 파생된 단어는 반드시 다른 글자로 적힌다는 보장은 없어서 이렇게 다음자가 발생할 수 있다.


한편 상고한어엔 '기뻐하다'란 동사 *lotᴮ이 있었는데 이게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열'이다.

그런데 '기뻐하다'에 한정적인 글자가 한대 이전엔 아직 없었고 그래서 兌 *lotsᴬ 나 說 *hlotᴮ 로 이른바 가차(假借)를 했다.

유사한 음절을 묶은 음절 그룹을 같은 글자나 성부로 표기하는건 상고한어 시대의 관습이고

나중에 엄밀성을 위해 의부 같은 부건이 추가되면서 외려 표음성이 떨어진것 같기도 하다.

한대 이후에는 心를 의부로 하는 悅라는 글자가 새로 만들어져 '기뻐하다'를 나타내게 됐다.

문자학에서 이러한 글자를 후기본자(後起本字)라고 부른다.

정장상팡 같은 연구는 상고 시기에 없던 글자에 대해서도 상고음 재구를 제시하는데

문자학을 하기에 앞서 주의해야 하는 점이다.


說 *hlotᴮ

 → 說 *hlotsᴮ (파생)

 → 說 *lotᴮ (가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