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수도령 예배당.

수도 백성들이 하루에도 수천번 왕래하며, 외국인들까지 심심치않게 오는 인류제국의 찬란한 문화유산.

그웅장한 대문에 붙은 전단의 제목이었다.


"마족에게도 구원은 있습니다."


마족이라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이단에 가까운 신학적 담론.

마족이 무엇인가? 인류제국의 숙적이자 간악한 이교도의 무리였다.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고 호시탐탐 제국을 무너트리려 하는 악.

또한 악마와 인간의 피가 같이 흐르는 숙적이었다.


고로, 이런 글을 쓴 자는 일평생을 지하감옥에서 지내야 할 것이 분명.

허나 전단을 쓴 필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강한, 수위높은 도발을 이어갔다.


"아무리 사특한 존재의 피가 섞였다 한 들, 그것은 그들이 지닌 원죄가 아니며, 저지른 과오는 더더욱 아닙니다."


인류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그 외에 종족에 구원은 없다는 교리에 정면 반박한 것이다.


필자는 글을 쓰던 중 감정이 격해졌던 것인지, 서체는 더욱 굵고 강렬해졌다.


"그럼 그들이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 것 같으십니까? 황궁 정원을 초록색이 아니라 금빛으로 매울 황금? 구름에 닿을정도로 높게 솟아오른 교회의 건축?"


이윽고 그 글씨는 호두 한 알 크기에서 귤 한개 크기로 커졌으며.


"아니, 전 단호하게 말하겠습니다. 자신이 이교도로서

 지내온 과오를 뉘우치고 회개하며 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 그를 의지하는 것 단 하나입니다."


그 불경함의 끝에 이르러선 글자 하나가 오렌지만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감정이 가라앉았는지 


"저는 이 도발적인 선언에 있어서 모든것을 입증 할 증거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어떠한 가감없이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제 이름은 로렐, 하이리온 지방에 사는 수습 사제이니, 부디 절 재판에 세워주십시오"


그렇게 얌전해진 서체와 함께 전단은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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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단이 배포 된 이후, 수도 전반에 파장이 일었다.

제국은 이 담론을 반박하는 것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이를 일종의 이단발흥으로 보며, 로렐을 즉시 파문했으며.


오랜시간 마족을 적대해온 시민들 또한 전단을 붙인 이 로렐이란 자를 처단해 달라고 요구하는 시위가 열릴 정도로 격렬히 반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이리온 지방의 로렐이 제국 군단병의 손에 이끌려, 수도에 압송되었다.


***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글씨로서 저지른 모독을 회개하고 교단의 수습사제로서 처형당할 기회를"


백발이 성성한 고위 재판관이 쳐진 눈 사이로 노기어린 눈빛을 띄며 로렐에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찾으라는 기회의 부여.


허나 로렐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대답했다.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미리 사죄합니다. 재판의 절차를 어기는 것을."


그렇게 수위들이 말릴 틈도 없이 로렐은 어금니 뒤편에 묶어둔 마정석을뱉어서, 영상을 재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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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절 마족으로 이땅에 태어나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영상은 사제복을 입은 마족이 피를 토하면서 신성마법을 쓰며, 인간들을 지키는 영상이었다.


신성마법.


경건한 사제의 신성력을 소모하여 마족을 포함한 악의 존재에겐 파멸의 뜨거움을, 인류에겐 치유의 온기를 나눠주는 마법.


영상속 마족 남성은 분명 그 영광의 광휘를 쓰고 있다.

자신의 몸을 불태우면서 사람들을 지켰다.


그렇게 몆분의 사투가 이어졌을까.


이윽고 영상 끝에 다다르고 나서야 마족남자는 쓰러졌고, 한줌 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곤 하늘에선 광휘가 비치며, 그 잿더미가 광휘를 따라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영상은 멈췄다.


신성마법을 쓰며, 사람을 구하고, 뭇 위대한 사제들처럼 죽음 후 구원받은 마족이 존재한다는 것의 증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