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윽... 꽈악... 끼어서..."


 좁고 어두운 방.

 한 남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남자는 나다.

 나는 한 여자의 앞에서 종이를 들고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그 여자는 혼자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나를 진지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조금 더 빨리, 움직일게."

 "잠깐. 스톱."


 손에 둘둘 만 종이뭉치가 탁 하고 내 머리를 때린다.


 "잠깐만. 조금 더 숨결을 섞어서 발성하라고."

 "아까는 숨결을 빼라면서."

 "발정난 개처럼 허덕대니까 그런거지. 그런 남주의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잖아?"


 책상에 앉아 한쪽 다리를 꼬고 고압적인 태도로 날 내려다보고 있는 여자.

 나를 억지로 컴퓨터 앞에 앉아 대본을 쥐여주고 목소리를 녹음하고 있는 여자.


 수수하기 짝이 없고 평범한 여자가 억지로 허세를 부리고 있는 티가 팍팍 풍기고 있는 여자.

 이 여자는 내 소꿉친구다.

 

 그리고 남자끼리 떡치는 소설을 쓰는 작가. 개변태 bl작가다.

 오늘은 자기 소설의 특별 후원자들에게 나눠줄 asmr을 만들거라며 이 짓거리를 강요하고 있다.


 얼굴은 별로지만 목소리는 쓸만하니 사주겠다니.

 남자가 bl asmr 따위 녹음할 수 있을 것 같냐...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큰 돈이었다.

 소꿉친구가 말한다.


"목소리는 bl 그 자체인데 왜 이렇게 연기를 못해? 너 bl asmr 들어본 적 없어?"

"들어본 적 있겠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던가."

 "듣는 사람의 귓가에 남주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맴돌도록. 느긋느긋하게 네 숨결이 귓바퀴를 타고 들어가도록."

"그래서 느리게 했잖아."

"리듬이 나쁘다고."

 "그 리듬을 전혀 모르겠는데. 어느 정도로 느긋하게 숨결을 내야 하는데."

 "흐음... 대충 이런 느낌인데."


 소꿉친구가 숨결을 거칠게 내기 시작한다.


 "하아, 흐으, 흡..."


 혼자 낀 팔짱. 왼쪽 팔을 감싸잡은 오른손. 그 중지가 순간 파르르 떨린다. 숨결에 맞춰.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야한 호흡이다.

 숨을 한번 몰아쉬던 그녀는 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거 아니다. 잠깐만. 지금 들은 건 잊어. 이 템포가 아닌데..."


 그것보다 더 야한 호흡이 있단 말인가.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다 눈알을 굴린다. 왼쪽 팔을 감싸잡은 오른손. 그 중지가 딱딱딱 움직여 왼쪽 팔을 살결을 초조하게 두들긴다.


 "으음... 대충... 이런 느낌인가. 다시 해볼테니 이 호흡을 기억해봐."


 그리고 그녀는 숨결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스으으읍, 하아아,"


 그 순간, 그녀의 오른손 중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그녀의 왼팔 살결을 중지가 살짝 눌러 돌리기 시작한다.


 "흐으읍, 후우, 후우, 스흐흡, 후우, 스흡..."


 교묘하게 위아래로 올라가거나 살짝 손톱등으로 걸어 긁거나 하며 교활하게 움직이는 중지.

 나는 깨달았다.


 아... 얘가 말하는 BL의 호흡이라는건...


 여자가 딸 칠 때 호흡인거구나...


이녀석, 자신이 자위하는 방식을 상상하며 그때 호흡을 떠올리는게 분명하다. 그 호흡을 bl의 호흡이라며 내게 강요하고 있는거고. 


 중지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하지만 이녀석은 내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아니, 자위 호흡을 재현하는데 집중해서 내 시선이 중지 끝에 가있다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애초에 이녀석, 자기 중지가 움직이고 있다는 자각은 있을까?


 "쓰흡, 하아, 읏, 흣, 읏,"


 갑자기 중지가 현란하고 빠른 템포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녀석의 호흡도 거칠어진다.


 아, 씨발.

 발기할거같다.


 "흐읏... 후흐흡... 후푸흐...."


 그리고 중지가 순간 멈춘다. 숨결이 느긋해진다.

 아아... 이건... 오르가즘... 이겠지...


 섰다.

 자괴감 오진다.


 그녀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외친다.


 "자아, 이제 알겠지? 이게 bl의 호흡이야. 여자들은 남자들의 이런 숨결에 꼴린다고!"


 자기 자위 페이스를 재현했을 뿐인 호흡인데요.

 bl남주의 호흡이 작가가 클리딸치는 호흡을 재현한거란걸 독자들이 알면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까요.


 그렇게 필사적으로 기분을 가라앉히려 한 순간 소꿉친구가 환호성을 질렀다.


"와, 씨발! 쩔어! 너 지금 선거야!?"

"아."


 그녀가 내 바짓섶을 바라보며 깔깔거리며 웃는다.


 "내가 방금 한 호흡을 듣고 꼴리다니! 역시 너도 이젠 인정할 수 밖에 없겠지."

 "뭐, 뭘 인정할 수 밖에 없단건데."


 그야 이렇게 세우고는 빼도 박도 못하지.


 그래, 차라리 말하자.

 여기서 말하고 편해지자.


 "그래, 나는, 너를..."


 내 말이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펼쳐지기 전에 그녀가 외쳤다.


 "그래! 넌 넌 bl에 꼴리는 남자야!"

 "뭐?"

 "이 완벽한 bl의 호흡에 발기했잖아?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호흡이었겠지! 이게 바로 bl에만 있는 진정한 관능, 진정한 꼴림이라고! 네 꼬추가 증명했어! 네 정체성을!"

 "......와아, 이거 미친건가 진짜. 한순간이라도 그런 생각을 한 내가 바보였다.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 했다."

 "??? 뭔 말함? 아무튼 다시 녹음 시작이야! 돈 받고 싶으면 제대로 해라고!"


 이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헤벌레 침을 질질 흘리며 기뻐하는 얼굴을 보기  위해,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흉내를 내며 신음소리를 내는 기묘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이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개변태 부녀자 히로인이 멸종되어서 아쉬움

부녀자 히로인은 언행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음탕함 + 살짝만 찔러줘도 bl 속성 날아가고 개변태가 되어버리는게 매력이라 생각함...